소설리스트

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69)화 (69/102)

#069

도현이 이겸을 향해 의뭉스럽게 웃었다. 어째선지 그 웃음이 몹시나 불안했다.

그사이 배상우는 마치 제 아들을 칭찬하듯 으쓱거리기 바빴다.

“이놈이 자경단이었을 땐 말이야~! 어땠는지 알아? 수상한 놈들은 백이면 백 집어내고! 아주 진기명기야, 진기명기.”

“…야.”

이겸은 조용하게 그를 불렀다.

“응, 겸아.”

“너 혹시…. 아니다.”

배상우도 서도현의 능력을 모르는 것 같은데 여기서 괜히 말 꺼내 봤자 화만 불러올 뿐이다.

“서도현이. 그래서 시간 언제 돼? 이놈 허락 맡는다더니 허락은 맡았고?”

“네. 겸이가 해도 된대요. 다음 주가 적당할 것 같네요.”

“그래. 그럼 다음 주에 연락 줄게. 그보다 둘이 뭐 사귀냐? 뭐 볼일 보러 가는 것도 허락을 맡아? 래터는 사생활도 없냐?”

단순 볼일이 아니라 능력을 쓰는 일일 테니까요. 이겸은 입술을 달싹였다.

“됐다. 할 말은 끝났으니 이만 가 볼게. 이것도 잠깐 시간 내서 온 거라. 넌 다음 주에 보자.”

배상우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겸과 도현에게 신신당부했다.

“맞다. 너희 내가 어디 가서 습격받았다는 거 소문내지 마라?”

그래도 내가 체면이 있지. 소문나면 난 쪽팔림에 습격받아 뒈질 거다, 라고 중얼거리며 홀연히 사라졌다.

“…….”

배상우가 떠나고 침묵이 고요히 가라앉았다.

“우리도 이만 갈까.”

“잠깐만.”

이겸이 도현을 붙잡았다.

“왜?”

“…….”

“겸아, 무슨 일 있어?”

도현은 하얗게 질린 이겸의 볼을 쓰다듬었다.

“추워? 난방 켜 달라 할까?”

이제 슬슬 날이 풀리고 있어 카페에서 난방을 끈 것 같았다. 카운터 쪽을 살피는 도현에 이겸은 그의 손을 뿌리치고 조심히 되물었다.

“그… 스파이 색출 말이야.”

“응.”

“어떻게 하는 건데?”

“…….”

도현이 말을 하지 않자 이겸의 불안감은 증폭되었다.

“혹시 말이야. 그거 혹시….”

“겸아.”

그가 이겸을 달래듯 불렀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서도현의 동공은, 처음 만난 그날과 비슷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무정하게 느껴질 정도로 깊고 어두운 동공, 버릇처럼 올라가 있는 입꼬리, 귀의 피어싱.

“죽을 때가 되면 신이고 뭐고 없어. 중독됐다 해도 무슨 소용이야. 다 제 살기 급급하지.”

“…….”

“그때가 되면 백이면 백, 다 자백하더라고.”

***

도현은 코트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은 채 사무실로 들어섰다. 그의 얼굴엔 평소답지 않은 짜증이 가득했다.

“어라, 겸이 형은요? 같이 나가신 거 아니에요?”

“퇴근.”

“퇴근이요? 온 지 한 시간도 안 됐는데?”

재우가 컵라면을 후룩 흡입하며 의문을 표하자 도아는 빠른 눈치로 그에게 주의를 줬다.

“한동안 안 싸우더니 또 터진 거지 뭐.”

도현은 긍정하듯 반박하지 않고 홀로 독백했다.

“어렵네.”

정말 어려웠다. 이번엔 또 뭐가 문제지? 그간 잘 지내고 있었잖아. 근데 또 왜? 윤이겸은 정말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뭐 때문에 화났는지는 대충 알 것도 같았다. 이해가 안 갈 뿐이지 눈치나 머리가 나쁘진 않았으니까.

도현은 길이가 긴 소파에 두 발을 쭉 뻗고 누웠다.

그래도 동생이라고, 심란해 보이는 제 오빠가 걱정된 도아가 운을 뗐다.

“오빠. 이번엔 뭐 때문인데? 대화는 해 봤어?”

“할 틈도 없었어.”

대화를 해 볼 틈도 없이 이겸은 질린 눈을 하고 도현을 밀친 후, 카페를 나섰다.

“그래서 이번엔 뭐 때문인데?”

서도현은 제 동생을 바라봤다.

‘꼴에 동생한테 좋은 오빠 노릇은 하고 싶나 보지.’

이전 헌터 테스트를 보러 갔을 때, 이겸이 그리 말했었다. 좋은 오빠 노릇이라. 도아한테도 말하라면 언제든 말할 수 있다. 그녀에게 트라우마만 없었다면.

괜히 7년 전 기억을 잊은 게 아닐 텐데, 혹여나 죽음, 블러드 헌터 등 그런 부정적인 단어들로 기억이 되살아나는 게 싫어 최대한 언급하길 피했을 뿐이다.

“정 신경 쓰이면 겸이 형네 집 찾아가 보세요.”

그럴까. 재우의 말에 도현은 잠시 고민을 하다 몸을 일으켰다.

“나갔다 올게.”

“응. 근데 오빠, 오늘 CA 지역 있으니까 저녁엔 와야 해.”

“늦으면 재우랑 사냥하고 와. 위험할 것 같으면 연락 주고.”

재우가 활기차게 대답했다.

“네! CA는 저희한테 맡기고 얼른 다녀오세요!”

딩동- 딩동-.

초인종을 누르길 몇십 번, 이쯤 되면 시끄러움을 참지 못하고 항상 나왔었는데 오늘은 집구석에 꼭꼭 숨어 열어 줄 생각이 없는 건지, 아니면 다른 곳에 있는 건지 현관문이 열릴 기미가 없었다.

이내 도현은 이겸의 번호를 찾아 눌렀다. 몇 번의 신호음이 울렸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진짜 꼭꼭 숨었네.”

능력도 그렇고 사람이 물 같았다. 손에 잡힐 듯하지만 막상 주먹을 쥐면 흩어 사라지고 만다.

친해진 거 아니었나.

윤이겸. 난 네가 진짜 어려워.

***

“전화 안 받아도 돼? 계속 울리는데.”

“스팸이야.”

“개새끼라고 뜨는데.”

“스팸이니까 개새끼 맞지.”

이겸은 강태하의 집에서 한가로이 과일을 우물거리며 답했다.

개새끼. 서도현은 정말 개새끼였다.

그날 이후로 사람 죽이는 살인병은 좀 고친 것 같더니만. 스파이 색출? 능력을 써? 죽을 때가 되면 다 자백을 해? 그럼 그 이전에도 언제나 같은 방법으로 스파이 색출을 해 온 거야? 이런 미친. 미친 사이코 새끼를 이해하려 든 자신이 바보였다.

나한테 미안하다며. 죽여서 미안하다며. 그럼 이건 뭔데. 나는 그 세계를 기억하는 특별한 존재이니 죽이지 않고, 타인은 어차피 잊으니 괜찮다? 상관없다? 그러다 나처럼 또 기억하는 사람이 나오면. 그때 또 사과하려고? 아니지. 그 개새낀 사과도 잘 안 하지.

“무슨 일 있어?”

“무슨 일…. 있기야 있지.”

이겸은 강태하를 쳐다봤다. 애가 어릴 때부터 어른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한 번쯤은 조언을 구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슬금슬금 피어올랐다.

그보다는 누가 이 짜증 나는 마음에 공감해 주길 바라는 것이 더 컸지만 말이다.

“너는 만약에.”

“응.”

“으음.”

이겸은 말하길 망설였다. 이걸 어떻게 풀어 설명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과일을 오물오물 씹으며 생각을 정리하곤 재차 질문했다.

“꿈에서 누가 널 죽였어. 자꾸 죽여.”

“악몽이네.”

“그치. 악몽이지. 근데 일어나면 기억을 못 해. 악몽을 꿨는지도.”

“그래?”

“응. 근데 그게 정말 악몽일까? 기억도 못 하는데?”

꿈이라 실제로 죽은 것도 아니고, 일어나면 기억도 못 하는데 그걸 악몽이라 할 수 있을까?

강태하는 무슨 그런 질문을 하냐며 피식 웃었다.

“악몽을 기억 못 한다고, 네가 악몽을 안 꾼 게 돼?”

“…그치. 그렇지.”

내가 기억 못 한다 해도 악몽을 꾼 건 꾼 거잖아. 당사자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나와 서도현은 기억하고 있잖아. 그 사람이 한 번은 죽었다는 걸.

“대답이 됐어? 요즘 이상한 질문 많이 하네. 그 친구 때문이야?”

“그 친구?”

“서도현… 이라 했나.”

“아, 그 개새끼.”

“개새끼? 방금 그 친구가 전화했구나.”

“…….”

이겸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왜? 둘이 싸운 거야?”

“싸웠다기보단…. 그냥 내가 일방적으로 화낸 거지.”

“그럼 그 친구가 잘못했네.”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강태하에 이겸은 멈칫했다. 강태하가 말을 덧붙였다.

“내가 널 잘 아는데.”

“…….”

“네가 별 시답잖은 이유로 화낸 적은 없어. 단 한 번도.”

그가 확신에 가깝게 말해 주었다.

“그래서. 그 친구랑은 계속 싸울 거야? 연락도 피하고?”

서도현과 계속 싸울 거냐고? 싸우고 싶지 않아도 싸우게 된다. 화해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싸우고,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도 반복된다. 그와 자신은 죽도록 맞지 않는 성향이니까. 어쩌면 자신이 남들보다 더 그의 모든 것을 낱낱이 알고 있어서 그럴 수도 있다.

서도현은 보통 사람들과 다른 뇌 구조를 가진 것 같았다. 어차피 모두 잊으니까. 그는 그 사기적인 능력으로 인해 도덕적 감수성을 빼앗겼다. 내가 뭘 해도 상관없다는 안일한 마음이 되풀이되다 보니 그런 것 같았다.

이해는 됐다. 이겸 자신도 반복에 반복을 하다 보면 남이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거나, 대답도 하지 않을 때도 있으니까.

그도 그럴 게 질리거든. 모든 게. 경험해 봐서 아주 잘 알고 있다. 진절머리 칠 정도로.

그렇게 따지면 자신은 나은 편이긴 했다. 처음 반복을 알게 되고, 그 옆에서 함께 기억해 주는 서도현이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서도현은, 그런 능력을 가지고 홀로 몇 년간 지내 왔다.

정신이 이상해질 만도 하지.

그는 아마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게 잘못인지도 모르는 지경까지 도달한 것 같다.

이해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행동이 정당화되는 건 아니다.

“겸아, 또 전화 울리네. 안 받아도 돼?”

“…잠깐 받고 올게.”

이겸은 아예 집 밖으로 나가서 전화를 받기로 했다. 아무래도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은데 괜히 남의 집 방구석에 처박혀 대화하기도 껄끄러웠다. 강태하네 집 비밀번호야 이미 알고 있으니 들어가고 싶을 때 들어갈 수 있었다.

강태하의 말대로 계속 싸울 것도 아니고, 서도현도 나름 자신과 잘 지내기 위해 노력하는 걸 안다. 잘못이 잘못인지 모르면 알려 줘야겠지. 네가 하는 짓은 도의적으로 어긋났다고.

“여보세요.”

- …….

스피커 너머로는 답이 없었다. 아마 이번에도 안 받으리라 예상하고 전화를 한 모양인데, 그걸 받아 잠시 멈칫한 듯싶었다.

“전화했으면 말을 해. 아까부터 시끄럽게 계속 걸어 대고.”

- 어디야.

“할 말이 그거냐. 친구 집.”

- 그래서 문을 안 열어 줬구나.

우리 집에도 왔었나? 이겸은 비상계단에 걸터앉아 통화를 이었다.

“그래서 왜 전화했는데. 할 말 없으면 끊고.”

이겸이 전화를 끊을까, 끊으면 또 안 받을까, 스피커에서 다소 다급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한편으로는 그것이 절박하게도 들렸다.

- 미안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