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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65)화 (65/102)

#065

“그러니까 애증이 아니라….”

순간 서도현과 눈이 마주쳤다. 재우에게 뭐라 한마디 하려 했지만 의욕이 뚝 떨어졌다.

“아니, 됐다. 나 좀 눕는다.”

그냥 쉬기나 해야지. 침대로 가기도 귀찮아 소파에 두 발 쭉 뻗고 누웠다. 다리에 재우가 걸리긴 했지만 딱히 상관하진 않았다.

“야, 차재우. 둘이 2차전 벌일 수 있게 우린 나가서 쇼핑이나 하고 오자. 옆 편의점에 신상 과자 나왔대.”

“진짜? 신상 뭐? 지금 가자.”

신상이란 말에 눈이 돌아간 재우가 얼른 외출 준비를 했다.

“2차전은 무슨. 싸운 거 아니라니까. 넌 우리가 싸우길 바라는 눈치다?”

“꿍해 있어서 뭐에 쓰게요. 그냥 대판 싸우고 화해해요. 저흰 나가서 몇 시간 후에나 들어올 테니까.”

이겸이 퉁명스레 말했지만 도아의 말에 어쩔 수 없이 누웠던 몸을 일으켰다.

‘판 깔아 주면 잘 못하는데.’

언제나 자신이 일방적으로 서도현에게 화를 내고 그가 마지못해 사과를 하는 식이었다면, 이번은 쌍방으로 입을 꾹 다물고 현 상황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까 몰래 본 사건 일지도 자꾸 아른거리고 서도아도 마찬가지지만 더욱 서도현을 대하기 어렵게 느껴졌다.

이윽고 학생 둘이 나가고, 이겸은 발 뻗어 그의 다리를 툭 쳤다.

“야, 삐졌냐?”

“삐진 것보단 조금 섭섭하네.”

“섭섭해? 뭐가?”

의외로 순순히 대답하는 서도현에 이겸이 되물었다.

“잊지 마. 난 나름대로 너랑 잘 지내려고 노력 중이야.”

“네가? …아.”

저도 모르게 반박하던 이겸이 손등으로 제 입을 막았다.

그간의 행적들을 되짚어 보면 그 나름대로 노력은 했겠지. 자신이 화가 날 것 같으면 미안하다고 사과도 해 주고. 더 짜증을 유발할 뿐이지만.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서도현은 주승태의 일에 단번에 오토바이를 끌고 찾아와 주고, 주승태의 정체가 밝혀지자 위로도 해 주고, 그를 만날 수 있게 힘써 주었다.

서도현이 노력 중인 건 알고 있었다. 그의 평소 말투와 태도에 화가 나서 그렇지.

그치. 사람 버릇이 어디 쉽게 고쳐지나. 당장 자신만 해도 서도현이 무슨 말만 하면 뭐가 됐든 날이 서게 반응하는데.

“그래. 아까는 내가 미안했다.”

나 없이 잘만 살 것 같은 놈이 그런 말을 하니까 좀 이해가 안 돼서 그랬다, 라는 끝말은 차마 입에 담지 못하고 꾸욱 눌러 참았다.

“진심도 없이 사과를 하네.”

“허? 내가?”

그 말을 얘한테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이겸이 눈을 날카롭게 뜨고 쏘아붙였다.

“…그러는 넌. 내가 자경단에 안 갈 거 확신했으면서 아까는 뭐가 그렇게 급했냐? 빨리 나오라고나 하고. 심심했단 건 핑계고 내심 내가 홀라당 가 버릴까 불안했던 거 아니야?”

“그땐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것 같아.”

“…….”

“나도 너 없으면 안 된다고 그랬잖아.”

이겸은 멍청히 눈을 깜빡였다. 얘가 뭘 잘못 먹었나? 손을 뻗어 도현의 이마에 올렸다.

“열은 없는데.”

“겸아.”

“…….”

“넌 안 갈 거잖아. 남을 속여 뭘 성취하는 것도 싫어하고. 양심에 찔리는 짓도 싫어하고.”

예호와 대련했을 때의 일이었다. 서도현의 능력을 사용해 승리했던 일, 그때 화를 냈었고, 지금도 그 상황과 비슷했다. 그의 능력으로 이뤄 낸 업적이었다. 예호 때만 해도 그만큼 화를 냈는데 자신이 그 업적을 이용해 자경단에 이직을 할 리 없다는 확신이었다.

“아픈 것도 싫어하고.”

아프다고 항상 찡찡거리던 과거의 자신이 떠올랐다.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고.”

서도현과 있을 땐 싫다는 표현을 좀 자주 하긴 했다.

그 후에도 서도현은 이겸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해 늘어놓았다. 이겸은 내가 그렇게 많은 걸 싫어했나, 싶기도 하고 반대로는 서도현이 그렇게 날 관찰했나 의아하기도 했다.

“넌 그중 날 제일 싫어하지.”

“…….”

“그러니까. 우리 좀 친해져 보자.”

도현이 재차 말해 왔다.

“난 노력하고 있어. 넌 노력 중이야?”

이겸은 생각에 잠겼다. 노력? 했냐고? 노력 중이냐고? 하지 않았다. 그저 서도현을 싫어하기에 급급했다. 그도 그럴 게 싫으니까. 나를 죽였으니까. 싫어하는 게 당연한 거니까.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가 자신을 구해 준 적도 많았다. 아마 수도 없이. 그렇다고 자신을 죽였다는 과오가 사라지진 않겠지만 그는 잘 지내보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 중이었다.

왜? 마스터로서, 사장으로서 멤버들 간의 화합은 중요하니까? 멤버 모두 각자의 역할이 있듯이 화합은 사장이 이뤄야 할 ‘당연한 일’이니까?

서도현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가 노력을 ‘하고 있다’라는 사실이었다.

넌 노력을 했냐고? 안 했는데. 너를 싫어하는 감정을 표출하기도 바빠 노력할 시간이 없었다고 말하면 화내려나.

“윤이겸, 난 네가 래터에 남았으면 좋겠어.”

“왜? 내가 여기서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그것도 있는데.”

그것도 있는 거냐. 서도현이 그렇지 뭐. 이제는 그의 대답에 대해서 바로 발끈하지 않고 어느 정도 담담할 수 있었다. 그는 원래 이런 유의 사람이니까.

“난 너랑 사냥 나가는 게 재밌어.”

“난 크리처 사냥 싫은….”

이겸은 재차 입을 다물었다. 의식하지 못했는데 서도현이 말하고 나니 제 행동이 훤히 보였다. 또 싫다고 말할 뻔했네.

“너랑 대화도 잘 안 되고, 싫어하는 것도 많지만, 그래도 즐겁긴 해.”

“내가 래터라서?”

슬며시 눈치를 보며 물었다. 이것도 부정적인 질문이라고 여기는 건 아니겠지?

“아니.”

이내 도현의 답에 놀란 이겸이 눈동자를 확대했다.

“그동안 고민해 봤는데 넌 특별한 것 같아.”

“뭐?”

처음엔 윤이겸이 자신의 면전에 대고 험담을 하거나, 욕을 하거나, 싫다고 말해도 전혀 아무렇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자꾸만 묘한 감정이 들었다.

서도현은 나름대로 열심히 고민했다.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윤이겸을 관찰했다.

윤이겸은 싫다, 라는 단어를 대체 하루에 몇 번을 하는 걸까, 왜 이렇게 싫어하는 게 많은 걸까, 좀처럼 잘 지내려 노력해 봐도 그는 늘 화내기 일쑤였다.

관찰한 결과 윤이겸은 제 앞에서만 싫어한다는 표현이 유독 늘고, 자신과 있을 땐 모든 걸 싫어했고, 자신에게만 늘 화를 내었다.

그래서 잘해 주려고 노력했다. 무슨 일이 터지면 달려 나가고, 친구 일로 슬퍼하면 위로해 주고, 수감된 친구와도 만나게 해 주고, 이겸이 하교할 때 데리러도 가고, 여러모로 노력했지만 그는 언제나 일관되게 굴었다.

때문에 자신은 왜 이렇게까지 노력하는 걸까 스스로에게 재차 되물어 봤다.

그렇게 의문과 답변이 재정립되었다.

윤이겸은 특별하다. 왜? 래터이기도 하지만, 좀 더 유별난 이유를 대자면 내 세계를 기억하는 유일한 자니까. 같이 있으면 편하고 즐거우니까.

“…내가? 특별하다고? 어디가?”

“우리 둘만 기억할 수 있잖아.”

모두가 기억하지 못하는 잊힌 세계에서. 나는 너를, 너는 나를.

서로가 서로의 증명인 셈이다.

그러니 어떻게 특별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

처음 들어 보는 그의 답변에 이겸은 한층 누그러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언제는 특별 대우 해 달라는 거냐며 운운하던 사람이 인제 와서 특별하다고?”

‘특별 대우라도 해 달란 거야?’

“아, 그거?”

서도현이 태연히 말했다.

“그럼 하자. 특별 대우.”

“…너 지금 네가 무슨 소릴 하는 줄 아냐?”

“하자고. 해 줄게.”

이겸이 입술을 벙긋거렸다. 한다고 그게 지금 당장 되나?

“그러니까 너도 해 줘. 특별 대우.”

“…….”

“그 전에 친해지는 게 먼저겠지만.”

“아니. 일단…. 후우.”

이겸은 마른세수를 했다. 서도현이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말해 주니 뭐라 반박할 수가 없었다. 이러면 한 수 접어 줄 수밖에 없잖아.

“윤이겸. 넌 어떡할 거야.”

난 다 말했으니 이제 네가 말해 봐라, 이건가.

결국 입술을 잘근잘근 씹다가 그에게 대답했다. 유치원생도 아니고, 다 큰 성인인데 한쪽에서 진심을 보였다면 다른 한쪽도 그에 응해 주어야 했다.

“일단 뭐, 나도 노력은 할게. 그동안…. 그, 내가 너한테 유독 싫은 표현을 좀 많이 했던 것 같긴 하다. 앞으로는 줄일게.”

“그리고.”

“그리고?”

도현이 삐딱하게 제 피어싱을 문지르며 그를 내려다봤다. 하는 수 없이 이겸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하아…. 그래. 앞으로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하자.”

이내 도현의 입매가 느슨히 풀리고, 두 사람의 손바닥이 겹쳐졌다.

이겸이 래터에 들어오고 나서 수개월이 지난 후, 겨우 이뤄진 극적인 화해였다.

어렵게 화해를 마친 후, 그들은 사무실에서 각자 할 것을 하며 고요한 시간을 보냈다. 도아와 재우는 어디 멀리 나간 건지 아직까지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이겸이 뭔가 떠올랐다며 도현을 불렀다.

“아, 맞다.”

“응, 겸아.”

“너도 그 일 사과해.”

도현이 눈썹을 늘어트렸다.

“내가 또 사과할 게 남았나.”

“처음 만난 날, 나 죽인 거에 대해서.”

“미안. 앞으로는 안 그럴게. 그럴 일도 없겠지만.”

도현은 고분고분 사과해 왔고 이겸은 만족스레 받아들였다.

이전에도 편의점에서 곰젤리를 나누며 사과를 듣긴 했지만 제대로 된 것도 아니었고 그것이 진심이라 여겼던 적도 없으니까.

정말 친해지려면, 과거를 매듭짓는 일이 중요했다.

어차피 하루 보고 말 사이도 아니고, 서도현의 말마따나 가짜 경력으로 자경단에 들어가기도 뭣했다. 이겸은 방금 그의 사과를 받아들이고 관계 개선에 대해 노력을 해 보자 진심으로 결심했다. 그전에….

“야, 서도현. 나도 사과할 일 하나 있는데.”

“응.”

“사과라기보단 고백에 가깝지만, 사실 나 아까 집무실에서 사건 일지 봤어.”

“그래? 뭐 봤는데?”

이겸은 반듯이 그의 눈을 마주하고 질문했다.

“20**년 4월 5일.”

“…….”

도현의 눈에 순간 날이 서렸다.

“싫으면 말 안 해도 돼. 굳이 캐묻고 다니지도 않을 거고, 그 일에 대해 다시는 언급도 안 할 테니까.”

“그래?”

“어, 참고로 일부러 찾아본 건 아니고. 그날이 우리 부모님 기일이라 날짜에 제일 먼저 눈이 갔을 뿐이야. 그러다 우연히 너희 사건 본 거고. 다 보지도 않았어. 첫 장만 읽었으니까 자세히는 몰라.”

미안함에 주절주절 말이 길어졌다. 서도현은 책장을 넘기며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하필 그날 안 좋은 일이 있었네. 겸이 너도, 나도.”

“그러게, 도아도.”

이내 도현은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알려 줄까?”

“…….”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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