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4
“윤이겸! 내가 보지 말라고…!”
성을 내던 배상우는 윤이겸의 멍한 얼굴에 멈칫하다 사건 일지의 날짜를 확인했다.
‘…이날은.’
이내 태연한 척 다시 책장에 꽂아 넣었다.
“에휴, 됐다. 널린 데 놔둔 내 잘못이지. 다음부턴….”
이겸은 그의 훈계와 주의를 하라는 타박에도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서도아가 납치? 왜?’
그보다 서도현은…. 그 사람이 정말 직장 동료라면 자경단? 서도현은 7년 전, 15살의 어린 나이에도 자경단으로 활동했던 건가? 근데 같은 동료가 왜 서도아를 납치하지?
…블러드 헌터와 결탁을 했나?
한참을 배상우의 설교를 들으며 생각의 흐름이 끝으로 치달을 무렵 역시나 그 시간이 돌아왔다.
“커피? 차?”
“…차로 부탁드려요.”
“그래. 여기 분위기는 어때? 좋은 것 같아?”
“네.”
정해진 질문에 같은 대답으로 응답하는 로봇처럼 감정 없이 말하며 배상우의 맞은편에 앉았다.
“대답이 뭐 그래? 오늘 와 보니 래터보다 깨끗한 것 같다, 그것도 아니면 일 처리가 빨라 보인다, 뭐 그런 거 있잖아.”
“래터보다 깨끗하네요.”
“너희 사무실이 더럽긴 하지. 거기서 생활은 되냐?”
“익숙해지면 괜찮더라고요.”
이겸의 머릿속에선 서서남매에 대한 사건 일지가 자꾸만 맴돌았다.
이내 테이블에 고개를 숙이곤 머리를 부여잡았다. 생각이 짧았다. 흥밋거리로 남의 사건 일지를 뒤지는 정신 나간 짓을 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그것보다 우연히 집었던 게 서도현과 서도아와 관련된 일이라니.
그들의 과거를 함부로 들춘 것 같아 죄책감이 피어올랐다.
“왜 그래?”
배상우는 제 컵의 은색 핀을 윤이겸의 찻잔에 담갔다.
“색깔은 안 변하는데.”
“…….”
“아, 이건 말이야.”
핀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지만 이겸은 도무지 집중할 수 없었다.
‘하아… 앞으로 걔네 얼굴을 어떻게 보냐.’
물론 당사자들 앞에서 말하진 않을 거다. 굳이 들쳐내 트라우마를 도지게 하고 싶지도 않았고, 더군다나 우연히 사건 일지를 읽어 알게 됐다고 말해서 뭐 하려고.
잠자코 모른 척하는 게 상책이지만 왜인지 양심 한구석이 찔렸다.
기억의 부작용이었다.
차라리 나도 잊었으면. 시간이 반복됨에 따라 잊을 수 있다면.
언제는 그 기억으로 살아남았으면서 이제 오니 잊고 싶었다.
이기적인 생각이겠지만 인간이 다 그렇지. 좋은 것만 기억하고,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듣고 살고 싶었다.
땅이 꺼져라 한숨만 내쉬자 배상우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젊은 놈이 벌써부터 한숨질이야! 뭐가 마음에 안 드는데! 엉?”
“아뇨. 그게 아니라.”
“그럼 뭐!”
“…크흠. 몸이 좀 안 좋아서.”
“뭐? 그럼 진작 말하지.”
배상우는 컵을 내려놓고 탁자 옆 서랍을 열었다. 구급함처럼 각종 약들이 가득했다.
“어디가 아픈데? 열나? 두통? 배? 몸살?”
“굳이 따지자면 두통이요.”
배상우는 알약을 하나 꺼내 내밀었다.
“자, 두통약.”
“감사합니다.”
이겸은 거절하지 않고 순순히 받아 삼켰다. 사실 아프진 않았지만 머리가 복잡하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알약 하나 먹는다고 죽는 것도 아니니까.
“몸 안 좋으면 집까지 데려다줘?”
“아, 그게….”
이겸은 시간을 확인했다. 항상 도현과 같이 다니다 보니 손목시계를 차고 다니는 게 버릇이 되었다.
아직 5분이 지나지 않은 시각.
어쩔까. 고민하다 오늘은 이만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생각할 거리도 있으니 배상우가 뒤이어 무슨 설명을 해 준들 귀에 안 들어올 게 뻔했다.
휴대폰을 꺼내 서도현에게 지금 나갈 테니 그만하라고 문자를 보냈다.
[데리러 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