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5
“주승태가… 블러드 헌터요?”
이겸은 믿을 수 없다며 재차 확인했다. 배상우는 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너무 외부인 앞에서 나불댔나? 아, 도현이 너도 이제 외부인이지 참.”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이겸이 다짜고짜 버럭 캐물으니 배상우가 곤란하단 얼굴로 도현에게 물었다.
“…얘 뭐야?”
“그냥 알려 주세요. 문젯거리는 만들지 않을 테니까.”
이겸의 옆에 앉은 도현이 여상히 답했다.
처음부터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건 아마 남궁산하도 마찬가지, 그리고 이겸도 그런 쪽으로 은연중에 예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부정하고 싶어 외면했겠지만 언젠가 드러날 사실이었다.
“아드렐 소속의 블러드 헌터야. 솔직히 아드렐은 별거 없는데 요즘 걔네들이 아담과 교류하는 장면이 목격돼서 골치지.”
배상우가 숨길 것 없다며 털어놓았다. 아담이라면 블러드 헌터 중에서도 유명한 단체였다.
함부로 건들면 자경단 내부에서도 전력 손실이 큰 탓에 줄곧 타이밍만 기다리며 손만 빨고 지켜보는 곳 중 하나였다.
“주승태는요?”
이겸은 다른 건 됐으니 얼른 주승태에 대해 알려 달라고 재촉했다.
“주승태? 그자는 아드렐 소속의 졸병이야. 졸병 중에 졸병. 허드렛일이나 하는 적당한 계급조차 받지 못한 놈.”
이겸의 안색이 눈에 띄게 나빠졌다. 배상우는 깨달았단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겸을 손가락질했다.
“아, 혹시 너 이번 사건의 피해자? 그렇네! 그러고 보니 나이도 같네!”
“피해자요?”
도현의 눈이 가늘게 뜨였다.
‘무슨 꿍꿍이지.’
배상우는 그들의 반응에도 굴하지 않고 덤덤히 말을 이었다.
“납치당한 척 민간인을 속여 유인했다 들었는데 그게 너였구나.”
“납치당한 척이요? 굳이 왜….”
산하가 이겸의 기분을 살피며 조심히 물었다.
“그건 아직 몰라. 다만 확실한 건 원래 졸병들은 작전에 참여하지 않아.”
하지만 졸병인 주승태가 작전에 참여한 걸로 보아선 꽤나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듯싶었다.
배상우의 말을 들은 이겸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뭐가 어떻게 굴러가는 상황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배상우는 이겸을 확인하곤 대화 주제를 유쾌한 쪽으로 바꿔 나갔다.
이겸은 의자를 드르륵 끌며 일어났다. 음료에는 한 모금도 손대지 못했다.
“미안, 먼저 일어나 볼게.”
“…….”
“오늘 감사했습니다.”
이겸이 갈 준비를 하자 산하도 따라 일어섰다.
“그럼 저도 이만 갈게요! 감사했습니다. 도현이도 다음에 보자.”
“둘 다 차 없잖아. 태워 줄게.”
도현도 둘을 따라 나가려 하자 배상우는 아쉬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이겸과 산하를 먼저 차에 보내고 도현은 배상우와 둘이 남아 못다 한 할 말을 나눴다.
“왜 그랬어요?”
“뭐가?”
“다 알면서 모르는 척 얘기 꺼낸 거요.”
이겸의 나이를 알려 주지도 않았는데 같은 나이니 뭐니, 애초에 이겸이 그 사건에 연관된 인물인 걸 알고 접근한 것이다.
자신들의 참고인 조사가 마칠 시간을 기다렸다 우연히 마주친 척한 것도.
“친구가 그런 애였는데, 모르고 있는 건 불쌍하잖아.”
친구는 자길 친구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데, 그것도 모자라 납치당한 척 불러내 위험하게도 만들었다.
그런 걸 여전히 친구라고 걱정하는 윤이겸의 꼴을 보면 뭐라도 알려 주고 싶었다. 그놈은 네가 생각하는 그런 애가 아니라고. 그딴 애 걱정하지 말고 네 앞가림이나 잘하라고.
“말하면 안 되는데, 단순히 내 참견이었지.”
배상우가 담뱃불을 붙이며 중얼거렸다.
“불쌍한 놈.”
자경단의 대부분이 그랬다. 블러드 헌터에게 친한 지인이나 가족이 당해 복수심에 스스로 자원하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그 때문에 상우는 이겸 같은 이들을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쓸데없는 참견일지라도, 뭐라도 해 줘야 될 것 같았다.
“지금은 마음 잘 추스를 수 있게 네가 옆에서 도와줘.”
어차피 비밀은 없다. 크리처 세계에 계속 있을 거라면 어차피 알게 될 사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차라리 지금 깨닫고서 털고 일어서는 게 좋을 거였다.
“제가 옆에 있는다고 도움이 될진 모르겠네요.”
꺼지라고 면박이나 안 주면 다행이지.
도현이 피식 웃으며 혼잣말했다.
“힘들 때는 옆에 온기가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거야. 나중에 같이 술이나 마셔 주든가.”
상우가 그를 툭 치며 타일렀다.
“쟤 술 싫어해요.”
“그래? 그럼 산책이나 운동으로 기분 전환 하든가!”
“춥다고 밖에 나가는 것도 싫어하던데요.”
“그거참 까탈스러운 애구만.”
한쪽 눈을 찡그리며 투덜거리는 상우에 도현은 작게 호응했다.
“까탈스럽긴 하죠.”
***
산하의 집이 가까워서 먼저 내려 준 후, 이겸의 집으로 향했다.
“서도현.”
“왜?”
“우리 집 말고 다른 곳으로 가 줄 수 있어?”
“어디?”
이겸은 내비에 강태하의 집 주소를 쳤다.
“아파트네. 누구 만나게?”
“어. 친구.”
“왜? 위로가 필요해?”
도현의 질문에 이겸이 그를 쳐다봤다.
주승태가 블러드 헌터라는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그 꼬임에 속아 넘어가 산하와 도현을 끌어들였다는 죄책감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에 대한 어떠한 불만도 표출하지 않았고, 남궁산하는 자신을 달래 주기 바빴으며, 서도현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심지어 배상우에게 주승태의 실체를 들었을 당시에도 무덤덤했다.
자경단에서 일했을 때 친한 지인들이 주승태처럼 알고 보니 블러드 헌터였다는 일을 많이 겪어서 그런 건가? 이겸은 아직도 주승태의 진의가 뭔지 알 수 없었다.
도현이 이겸을 마주 보며 물었다.
“뭣하면 내가 위로해 줘?”
“…어떻게?”
돌아오는 답변에 당황한 건 오히려 도현 쪽이었다. 필요 없다고 거절할 줄 알았건만 어떻게? 라니.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어정쩡하게 있다 배상우의 말이 떠올랐다.
“술 마시러 갈래?”
이겸은 잠깐 고민하다 찬성했다. 강태하는 언제든 볼 수 있으니까.
“그러자.”
“음, 어디로 갈까?”
도현의 심장이 평소와 다른 박동으로 뛰기 시작했다.
길고양이 같은 윤이겸을 길들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길들여진 쪽은 나였던 건가.
항상 거절만 당하다 고작 오늘 한 번 허락받았다고 내심 기쁘기 시작했다.
“가고 싶은 곳 있어?”
“다 좋아.”
도현은 최근 들어 가장 깊은 고뇌에 빠졌다.
어딜 가야 좋을까?
딱히 가리는 건 없었다. 래터와 같이 다니면 항상 재우와 도아가 먹고 싶은 게 많아 언제나 그들이 식당을 골랐다.
가끔 이겸과 단둘이 식사를 할 때는 근처 아무 곳이나 들어가 대충 먹거나 아이들과 먹었던 식당 중 맛이 괜찮았던 곳을 찾아가곤 했다.
아이들이 미성년자이기도 해서 술집은 간 적이 없는데….
그러다 이게 뭐라고 고민거리인가 싶어 근처 적당한 곳을 찾아 주차했다.
식당에 도착해 무던하게 안주와 술을 시켰다.
도현이 잔에 술을 따라 주자 이겸이 벌컥벌컥 마셨다. 즐겨 먹지도 않은 술이라 입 안이 썼다.
술잔을 내려놓은 이겸이 운을 텄다.
“너는….”
“응.”
“너는 그런 적 많아?”
“뭐가?”
이겸은 차마 말하지 못하고 입술을 달싹였다.
주승태가 자신을 속였단 게 아직도 믿기지가 않았다. 그가 블러드 헌터였다면 대체 언제부터? 언제부터 숨겨 온 거지? 친구잖아. 아직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자신의 앞을 막아서 대신 칼에 찔리던 주승태의, 그의 피가 떨어지는 감촉을 기억한다.
“역시 환각이었나.”
“뭐가?”
도현이 또다시 물어 왔다.
“그때 주승태가….”
“너 대신 죽은 거 말하는 거야?”
“너는 말을 해도 꼭…. 하아, 아니다.”
도현으로서도 답답할 따름이다. 말을 끝까지 잇지도 않고 혼자 중얼중얼거리기만 하니 말이다.
“그거 환각 아니야. 사실이야.”
“그치?”
이겸의 눈에 기대가 들이찼다.
“그런 애가 나쁜 놈들이랑 같은 편일 리가 없잖아.”
고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였다. 무슨 변화가 있다면 가장 빨리 눈치챌 것이다.
“분명 자경단 쪽에서도 오해가 있었던 거겠지?”
도현이 빈 잔에 술을 따라 주며 단호하게 말했다.
“수치 검사도 해 봤을 테고, 거기서도 확실하게 블러드 헌터라고 나왔겠지.”
“…….”
“부정하고 싶은 눈치인데, 해 봤자 달라지는 건 없어. 그냥 인정해.”
술잔을 쥔 이겸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얘한테 위로를 바란 내가 잘못이지. 그래도 나름의 경험자이니 무슨 조언이나 위로라도 해 줄까 생각했건만…. 서도현한테 뭘 바라냐.
그래도 자기 딴엔 위로해 주러 나온 거니까 세게 화낼 수도 없고,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비속어들을 꾸역꾸역 삼켜 내고는 최대한 중화해서 말했다.
“너는 친구도 없냐.”
“주승태? 걔처럼 되는 애들이 대다수일 건데 뭐 하러 만들어. 차라리 없는 게 낫지.”
“…지금 내 앞에서 할 말이야?”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렇다는 거지.”
“이럴 때도 이성적이어서 조온나 부럽네, 시발.”
서도현이 낯을 찌푸렸다.
“왜 비꼬아?”
“안 비꼬게 생겼어? 분위기 파악은 못 하면서 비꼬는 건 더럽게 빨리 눈치채네.”
이겸은 술을 들이켠 후, 안주를 짓씹었다.
“너한테 위로해 달라고 부탁한 게 실수였어.”
“위로 같은 거 잘 못해. 그래도 노력 중이잖아.”
“축하해. 애썼네.”
차라리 나온 음식이나 빨리 먹고 가는 게 속이 편할 거다. 이겸은 먹는 속도를 높였다.
“윤이겸. 상대가 노력 중이면 뭐라도 반응을 해.”
음식에 고정하던 시선을 올려 서도현을 쳐다봤다. 버릇처럼 올라가 있던 입꼬리는 굳게 다물려 있었고 눈은 살짝 화나 보이기까지 했다.
때 아닌 감상이 들었다.
항상 화를 내는 건 자신이었는데, 이번엔 역할이 바뀌었다.
그만큼 위로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는 뜻인가.
이겸은 짧은 한숨을 내쉬며 도현의 빈 잔에 술을 따라 주었다.
“그럼 위로는 됐고, 너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하는데?”
“친구를 만든 적이 없어서 너 같은 상황에 처한 적도 없어.”
도현은 술을 비우지도 않고 답했다. 이겸은 언짢은 기색을 숨길 수가 없었다.
노력하는 거 맞아? 적어도 고민이라고 해 보고 말하든가.
“만약에.”
도현이 말을 덧붙였다.
“만약에 그런 상황이 온다면 같이 따라서 나쁜 길로 빠지는 것도 괜찮지.”
“…뭐?”
“낭만 있잖아. 지옥도 함께 가 주는 친구.”
이겸의 말문이 막혔다.
“네가 슬퍼하는 수준에서 그치는 건 그 친구가 그저 그럴 만한 수준의 존재였던 거 아니야? 얼른 털고 일어나. 같이 CA 사냥 가자.”
“뭘 그럴 만한 수준의 존재야. 고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냈는데. 지옥까지 함께 가야 진정 위하는 거야? 어이가 없네.”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것도 아니고.
이겸이 화를 내자 도현이 뜬 눈으로 의문을 품었다.
“왜?”
“뭐가 왜야 또. 여기서 ‘왜’가 왜 나와.”
“난 같이 가 줄 거야.”
“어디를.”
“지옥.”
그러기 위해 만든 래터였다. 어디서든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일 것이다.
서도아, 차재우, 남궁산하, 윤이겸.
“너희들이라면 여지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