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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54)화 (54/102)
  • #054

    이겸이 서도현과 화해했다고 말한 이유는 단순했다.

    그야 친구가 위험에 처해서 도와 달라고 했을 때, 한걸음에 달려와 주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그로 인해 오토바이도 부서지고 옆구리에 칼도 찔리고, 모든 게 제 탓처럼 여겨졌다.

    그렇게 둘의 싸움은 유야무야 끝나 버렸다.

    진심 어린 사과는 받지 못했지만, 때론 백 마디 말보다 단 한 번의 행동이 더 깊게 다가온다면 그게 진심 아닐까.

    ‘모르겠다.’

    이겸은 자취방 침대에 털썩 누웠다.

    일단 서도현이 자신을 위해 준다는 건 잘 알았다. 다만 그게 어떤 방식인지 난해할 따름이다.

    그리고 백 마디 말보다 단 한 번의 행동이라면….

    주승태는 뭘까.

    자경단에서 주승태를 끌고 갔지만 그를 왜 데리고 간 건지, 이겸에게 그 어떤 설명조차 자세히 해 주지 않았다.

    한 가지 떠오르는 가설은 최대한 무시하고 싶었다. 절대 진실이 되면 안 되는 가설. 확실해질 때까지 절대 풀어 보지 않을 추측이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머리에 열이 올랐다. 끙끙거리며 침대 위를 뒹굴고 있을 무렵, 서도현에게서 연락이 왔다.

    “…여보세요.”

    - 내려와.

    “그래.”

    뭉그적거리며 일어나 겉옷을 챙겨 입었다.

    그날 이후로 이틀이 흘렀다. 오늘은 그날의 일에 대해 참고인 조사가 있는 날이다.

    준비하고 내려가니 조수석엔 남궁산하도 타고 있었다.

    “이겸아 안녕! 밥은 먹었어?”

    며칠 후면 휴가가 끝난다 들었는데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복귀해야겠네, 라는 측은지심이 들었다.

    “아직이요.”

    간단히 대답하고 뒷좌석에 올라탔다. 후끈한 히터 바람이 밀려왔다. 시트는 미리 데워 놓았는지 뜨거울 지경이다.

    ‘짜증 나.’

    싫어하고 싶은데 자꾸만 다정히 대해 주는 탓에 짜증이 났다. 감정 하나 제대로 소화해 내지 못하는 얼간이도 아니고.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아직도!?”

    “생각이 없어서요.”

    다른 걱정들로 머리가 지끈거릴 만큼 가득 차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도현이 핸들을 틀었다.

    “근처에 들러서 먹고 가자.”

    “어어. 난 당연히 괜찮은데, 그쪽에서 2시까지 와 달라고 했는데 그러면 좀 늦지 않을까?”

    “늦으면 지들이 뭐 어쩔 건데.”

    산하가 입을 합 다물었다.

    “아니 난 괜찮아. 별로 식욕도 없고. 늦을 것 같으면 바로 가는 게….”

    “한식? 양식? 일식? 뭐가 좋아?”

    “딱히.”

    이겸이 거절하려 했지만 도현은 여러 메뉴들을 들먹였다.

    “도현아, 여기 근처에 맛있는 칼국숫집 있어. 거기 갈래? 이겸이는 어때?”

    “…뭐든 상관없어요.”

    이겸도 어차피 가게 될 거면 근처 가까운 데나 가자 싶었고, 도현도 불만은 없는 듯했다.

    “그럼 거기로 가자. 내가 길 안내할게. 도현아, 여기서 오른쪽!”

    칼국수 세 개를 주문한 후, 산하가 수저를 세팅하며 우울한 이겸을 달랬다.

    “이겸아, 친구 일은 너무 걱정하지 마. 분명 우리처럼 참고인 조사 받는 걸 거야.”

    “그걸 당일에 받아요?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 후유증은 없는지, 병원부터 데려가는 게 먼저 아니에요?”

    “…그건.”

    산하의 말문이 막혔다. 이겸은 한숨을 내쉬며 찬물을 들이켰다.

    “따져 물어서 죄송해요. 형 잘못도 아닌데 갑자기 화가 나서 그랬어요.”

    “아니야. 그럴 수 있지. 친구가 그런 일을 당했는데 화가 안 나는 게 이상해.”

    “…감사합니다.”

    그렇게 나온 칼국수를 먹는데, 도현은 식사를 마칠 때까지 아무 말이 없었다.

    ***

    결국 참고인 조사에는 늦었다.

    “세 분 들어가기 전에 우선 피 검사부터 할게요.”

    “피 검사는 왜요?”

    직원의 말에 이겸이 되물었다. 바쁜 직원을 대신해 남궁산하가 조잘거리며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혈액에서 크리처 피가 검출되나 확인하는 거야.”

    “…검출이요?”

    “응. 블러드 헌터는 검출되거든.”

    핏속에 있는 크리처의 피는 1부터 100까지의 수치로 나눈다.

    일반 헌터들은 대부분 0이며, 자경단은 상시 블러드 헌터와 대립하고 싸워 내성을 기르니 적게는 10부터 100 이전까지 다양하다.

    수치가 100을 넘어서면 키트에서 붉은 반응을 보이는데, 이 100이란 수치는 과학적으로 분석된 결과였다. 협회는 수치 100이 넘어가면 크리처화가 가능하다고 판단했고, 그러한 사람들을 블러드 헌터로 단정 지었다.

    “일반 헌터도 내성 기르면 안 돼요?”

    이겸이 물었다. 그럼 블러드 헌터와 우연히 마주쳐도 살 확률이 높아질 텐데. 환상 그거 짜증 났지….

    지난 일을 떠올리니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크리처의 피는 중독성이 높아. 한번 탐하게 되면 끝없이 탐할 수도 있으니까 처음부터 조심해서 나쁠 건 없어.”

    한마디로 의지의 문제다. 예를 들어 어떤 이는 수치 99를 찍고도 멀쩡하다지만, 수치 10에서도 중독 증세에 시달리며 결국 더 많은 피를 탐해 블러드 헌터로 전락하는 사람이 나올 여지가 있었다.

    피를 한번 탐하면 또 탐하게 되고, 다시 또 탐하게 되고…. 담배나 마약을 한번 시작하면 웬만한 의지가 아니고서야 끊을 수 없는 것처럼 일반 헌터들은 조금만 피를 접해도 블러드 헌터로 전락하는 반면, 블러드 헌터에서 개과천선해 일반 헌터로 돌아오는 이들은 극소수였다.

    협회는 그걸 염두에 두고 헌터들이 무작정 내성 기르는 것을 막았다. 물론 과거 자경단이었던 자나, 블러드 헌터였는데 죄를 뉘우쳐 합당한 벌을 받고 일반 헌터로 근무하는 이들은 예외였다.

    설명을 듣고 피를 뽑은 이겸은 검사 결과로 1이라는 수치가 나왔다. 블러드 헌터와 싸울 때 스친 피의 대가였다.

    직원은 혹시나 싶어 걱정돼 눈살을 찌푸리는 이겸을 달랬다.

    “이 정도 수치면 일반인과 다름없어요.”

    “그런가요.”

    안심한 이겸은 다시 대기실로 돌아가 검사를 받으러 들어간 도현과 산하를 기다렸다.

    도현이 검사실에서 나왔다.

    “수치 몇이야?”

    “87.”

    서도현은 자경단이었으니 87까지도 나오는구나. 87이면 자경단에서도 꽤 높은 수치이지만 이겸은 알지 못했다.

    연이어 수치 0을 기록한 남궁산하도 나오고 이겸이 제일 먼저 참고인 조사를 하러 떠났다.

    첫 질문은 가볍게 시작됐다.

    “2시에 뵙기로 했는데 3시에 도착을 했더군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습니까?”

    “식사를 하고 왔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크흠! 알겠습니다.”

    자경단은 다음부터는 주의해 달라는 말과 함께 몇 가지 질문들을 했다. 대략 그날의 상황들에 대해서였다.

    어렵지 않은 질문들이라 열심히 답변해 주고, 지루하다면 지루한 참고인 조사를 끝냈다.

    ‘내가 일 등인가.’

    제일 먼저 들어가서 제일 먼저 끝낸 건지 도현과 산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잠시 기다리니 산하가 나오고, 마지막으로 핼쑥한 얼굴의 자경단과 함께 상쾌한 얼굴을 한 서도현이 나왔다.

    아마 높은 확률로 서도현의 싸가지에 시달렸을 것이다.

    “다 끝난 것 같은데 이만 갈까?”

    “잠시만요.”

    이겸은 자경단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혹시 주승태라고, 제 친구인데 걔는 지금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그저께 A라는 자가 데려갔거든요.”

    “저도 잘 모릅니다.”

    “어디 간지도 모르나요?”

    “네.”

    “그럼 걔는 왜 끌려갔는데요?”

    “모릅니다.”

    아는데 모르는 척하는 건지, 아니면 정말로 모르는 건지. 뭘 물어보기만 해도 모른다는 답변만 돌아오니 속이 답답했다.

    “이게 누구야!”

    그때 멀리서 정장을 입은 한 인물이 반가워하는 기색으로 다가왔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다.

    “서도현이 아니야?”

    “안녕하세요, 상우 아저씨.”

    “그래! 잘 지내고 있었어? 넌 어째 나간 뒤로 연락 한 통이 없냐!”

    “바빴거든요.”

    서도현과 안면이 있는 사이인지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눈다.

    “상우 아저씨?”

    남궁산하의 눈이 돌아갔다. 그날 이후 자경단의 상우 아저씨에 대해 열심히 조사해 봤지만 나오는 자료라곤 A가 없을 때 자경단의 실질적인 리더를 맡아 주던 인물이었다, 라는 것뿐이었다.

    차에서 잠들었던 이겸은 아무것도 모른 채로 그들의 대화를 경청했다.

    서도현이 자경단에 일했을 적 친하게 지낸 사람인가.

    “만든 길드는 잘돼 가?”

    “그럭저럭이요.”

    “밥은 먹었어? 밥 먹으러 갈 건데, 같이 갈래? 뒤에 두 명은 길드 멤버? 같이 가자!”

    “밥은 먹고 왔고, 지금부터 일이 있어서 가 봐야 할 것 같네요. 다음에 봐요.”

    도현의 거절에 배상우는 아쉬움을 숨길 수 없었다.

    “너 인마, 내 전화도 씹는 마당에 언제 다음에 봐!? 안 돼! 못 보내!”

    상우가 도현의 어깨를 우악스레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밥 먹었으면 카페라도 가!”

    얼마든지 떨쳐 낼 수 있지만 도현은 일이 귀찮아졌다고 번거로워할 뿐 딱히 반항하거나 그러진 않았다.

    “거기 친구들도 아저씨가 사 줄 테니까 따라 와.”

    마치 아들 친구들에게 제 아들과 잘 놀아 줘서 고맙다는 말투로 자상하게 이겸과 산하를 불렀다. 산하는 눈치를 살피다 고개를 끄덕였고, 이겸도 그의 뒤를 따라갔다.

    지나갈 때마다 자경단이 고개를 숙이는데 꽤 높은 분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주승태에 관련된 것도 알고 있지 않을까.

    나중에 슬쩍 물어봐야겠다 다짐했다.

    ***

    배상우가 호탕하게 웃으며 주문을 마쳤다.

    좋게 말하면 인심이 좋고, 사람이 착하다. 하지만 여기저기 참견하길 좋아하며 남을 쉽게 믿어 사기도 잘 당한다.

    그리고 지금 서도현이 만든 래터의 이념에 배성우의 영향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사실 자경단은 그런 곳이다. 블러드 헌터를 잡지만 그 누구보다 블러드 헌터가 될 가능성이 높은 곳.

    그들과 싸우려면 피에 대한 내성을 기르는 수밖에 없지만, 꾸준히 내성을 기르는 건 마치 독과도 같았다. 그리고 그 독은 끊임없이 뇌에 속삭인다.

    내면의 크리처를 받들라고.

    그 때문에 자경단은 블러드 헌터와 싸우는 동시에 마음속 자기 자신과도 싸워야 한다.

    그리고 실제로 자경단들 중, 블러드 헌터로 넘어간 이들도 많았다.

    블러드 헌터처럼 크리처의 피를 받아들여 세뇌를 당할 시, 헌터들이 악하게 보인댔나.

    하지만 아무리 어떤 사람이 악하고, 밉고, 성에 안 차도 만약 가족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연을 끊을 수도, 소중한 이의 숨통을 끊을 수도 없다.

    그래서 배상우는 착안했다.

    길드가 대부분 수직적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면, 자경단은 지킬 건 지키면서 최대한 수평적인 구조를 선호하기로.

    마치 서로가 서로의 가족이란 생각이 들도록 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배상우의 작전은 성공이었다.

    블러드 헌터로 전락하는 자경단의 수가 반의반으로 줄었고, 더욱 사이가 돈독해져 적진에서도 뛰어난 호흡을 보여 주며 승리하는 일이 늘었다.

    하지만 이렇게 마냥 좋을 줄만 알았던 작전도 한 가지 단점이 있었다.

    블러드 헌터로 전락한 동료를 마주할 시, 감히 싸울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들이 증가한 것이다.

    블러드 헌터 측에서도 이러한 점을 알아채고, 일부러 한때 자경단이었던 사람을 전선에 내보낼 때도 있었다.

    그 때문에 지금은 다시 사무적인 분위기로 돌아가는 추세이지만, 그 시절 자경단에 있었던 서도현은 배상우의 전략이 부질없다 단언했다.

    그의 작전만큼은 단연코 좋았다. 하지만 팀이 처한 상황이 문제였다. 구성원 중 누군가 언제라도 블러드 헌터로 전락한다면 이 모든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허울뿐인 가족이란 울타리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래서 고안해 낸 게 래터였다.

    가족이란 단어로 단단히 울타리를 쳐 그 누구도 래터를 함부로 대할 수 없도록, 래터 멤버들도 서로를 소중히 여기도록.

    굳이 공적인 일이 아니라 사적인 일도 서로 도와 가며 하는 그런 이상적인 길드였다.

    그렇게 만들었고, 잘 굴러가는 중이다.

    음료가 완성됐다는 진동 벨이 울리고 산하가 가지러 갔다. 그사이 도현이 물었다.

    “아저씨, 주승태라고 아세요?”

    배상우는 이겸을 힐끔 보곤 특별할 것 없이 대답했다.

    “아, 잘 알지. 최근 잡혀 온 블러드 헌터?”

    “…네?”

    이겸의 고개가 바짝 들렸다. 동공이 잘게 떨렸다.

    의심이 확신으로 변질되는 순간은 언제나 소름 끼치는 불쾌감을 동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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