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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53)화 (53/102)

#053

이겸은 도현이 건네준 총을 잡고 망설였다.

방금 전까지 전투를 했던 터라 감각은 소름 끼칠 정도로 예민했다. 저 너머의 수풀에 숨어 있는 사람이 보일 정도면 말이다.

총구는 그를 향해 있었다. 방아쇠만 당기면 되는데 쉽사리 손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책임질게.”

아까와 같은 달콤한 감언이설로 이겸을 꼬드긴 도현은 방아쇠로 손을 겹쳐 왔다.

“쏴.”

그게 계기였다.

타앙-!

도현이 빠르게 이겸의 손에서 총을 거둬 갔다. 자경단 쪽도 부산스러워지더니 A의 명령 아래 몇 명은 총성이 울린 쪽으로 뛰어갔다.

“어때?”

가까이서 물어 오는 도현에게 떨떠름히 대답했다.

“…죽은 것 같아.”

이겸은 가만히 제 손을 바라봤다. 유리창을 깨느라 유리가 박히고, 자잘한 상처가 생겼다. 그래서 손이 떨리는 걸까.

내 손으로 직접 사람을 죽였다. 발끝을 타고 스멀스멀 올라오는 거북한 느낌.

주승태의 일도 정리되지 않았는데 이런 일이 또 발생해 얼떨떨한 건가? 그런 유의 떨림이 아니다.

심지어 이번이 처음도 아닌데 왜 지금에서야.

다시 한번 큰 손이 덮어졌다.

“괜찮아. 네가 말렸는데, 내가 억지로 방아쇠를 잡아당긴 것뿐이야.”

이겸은 문득 깨달음을 얻었다. 이 떨림은 살인에 대한 공포나, 험난한 일을 겪은 탓에 진정되지 않는 불안함이 아니었다.

위험을 마주하고 나서, 공포가 공포였단 걸 인지하고 나서, 악몽을 꾸고 나서, 기어이 엄마의 품으로 뛰어가는 어린아이의 투정 같은 떨림이었다.

그제야 마음 놓고 울음보 터트리는 그런….

이겸은 제 옆의 도현을 바라봤다.

“넌 아무 잘못 없어.”

“…….”

“다 내가 한 거야.”

언제나 가장 힘들 때 찾아오는 건, 천사가 아닌 악마였다. 그리고 그는 마치 마법을 부리듯 모든 상황을 해결해 주었고, 이겸은 그의 꼬임에 너무나도 쉽게 넘어갔다.

토닥여지는 어깨에 조용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

이겸과 도현, 산하는 나란히 승용차 맨 뒷좌석에 앉았다. 앞좌석은 자경단들로 채워졌다.

A와 자경단 중 한 명은 주승태와 블러드 헌터들의 시신을 수습해 다른 승용차로 이동 중이었다.

“…형, 차 전복시켜서 죄송해요. 비도 오는데.”

“괜찮아! 어차피 버리려고 했어! 이렇게 된 김에 하나 사지 뭐!”

헌터로 몇 년 일하다 보면 차 한 대 사는 건 일도 아니었다.

“넌 그런 걱정 안 해도 돼. 친구 일도 있고 많이 힘들 텐데.”

“그럼 차 구매하실 때 비용이라도 보태….”

“아냐 아냐 아냐! 그럴 필요 없어. 어차피 곧 휴가도 끝나서 부대 복귀 해야 하고, 차는 나아아중에 다시 사면 되니까 너는 아무 생각 하지 말고 푹 쉬어!”

“…감사합니다.”

이겸은 지끈거리는 눈을 감았다. 더 이상 대화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지금이라면 누군가 차가운 길바닥에 던져 놔도 노곤노곤 잘만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도현은 턱을 괴고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창밖을 바라봤고, 중간에 앉은 산하는 앞좌석의 자경단을 툭툭 건드렸다.

“저기요.”

“네.”

“초면에 실례지만 A는 어떤 분인가요?”

탐구병이 또 도졌는지 휴대폰 메모장을 꺼내 들며 눈을 반짝인다.

“저희도 잘 모릅니다.”

“A의 성함은요? 연세는 어떻게 되죠?”

“잘 모릅니다.”

“A가 나타난 건 최근이라 들었습니다. 그럼 여러분들이 A를 보게 된 것도 최근이라는 뜻인데, 명령을 따르는 이유가 있습니까? 혹은 무척 강해 힘으로 모두를 눌러 찍었다거나?”

“…대답할 의무는 없는 것 같은데요.”

자경단이 껄끄러워하며 답을 피했다. 사실 그들도 방금 전 대답과 같이 A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를 따르는 건….

“상우 아저씨 때문이겠지.”

도현이 다리를 까딱이며 중얼거렸다. 산하의 고개가 획 돌아갔다.

“상우 아저씨? 그 분은 누구셔?”

“자경단 소속.”

배상우. A가 없을 때 거의 자경단을 이끌었던 리더이자 실세였다. 서도현이 자경단에 몸 담그고 있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쭉 있었기 때문에 잘 안다.

무슨 작전이 있을 때마다 “A의 명령이다.”라고 들먹였었다. 몇십 년 동안 잠적해 나타나지 않는 A를 하루가 멀다 하고 언급하기 바빴던 분이기도 했다.

“도현아, 좀 더 자세히 말해 줄 수 있어? 그분이 누군데?”

지난 일을 구태여 꺼낼 필요는 없었다. 그는 예쁘게 웃으며 말을 돌렸다.

“글쎄. 나도 나온 지 꽤 돼서 잘 모르겠네.”

“그렇구나. 그럼 어쩔 수 없지.”

“응. 생각나는 게 있으면 말해 줄게.”

“고마워!”

산하도 거절하는 말뜻을 깨닫고 방긋 마주 웃으며 더 캐묻지 않았다.

자경단은 백미러 너머로 서도현을 살폈다.

‘저분이….’

서도현이 나간 후, 막 자경단에 들어온 자신이었다. 그럼에도 서도현의 이름은 심심찮게 듣곤 했다.

배상우 아저씨가 술을 마실 때마다 항상 안줏거리로 씹는 이야기 때문이다.

‘걔가 자경단만 안 나갔어도 지금쯤 내 후임이 되었을 텐데! 아니다! 거기서 성격이 조오금, 아주 쪼오오오금 더 모나지 않았다면 말이지!’

자경단 내에서 배상우의 역할은 특별하다. A를 보필하고, A와 자경단 사이를 이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들도 아직은 갑자기 리더랍시고 나타난 A가 어색했지만, 자경단의 아버지와도 비슷한 위치에 있는 배상우의 말이라면 순순히 따랐다.

심지어 자경단 내에서 오랫동안 일하고, 실력 있는 사람들은 진작에 배상우를 통해 A를 미리 만나 본 적도 있다고 들었다.

“그쪽은 이전에 A와 만난 적 없습니까?”

자경단이 조심스레 물었다. 원래 A는 이런 간단한 신고 전화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출동하려 할 때 갑자기 같이 가자고 해서 의외라 놀라긴 했지만, 혹시 서도현이 이곳에 있을 줄 알고 온 건지 궁금증이 들었다.

앉아 있는 다른 자경단들도 내심 궁금한 눈치였다. 그야 그가 자경단에 있었을 때 실력만큼은 단연 넘버원에 들었으니 말이다. 어떻게든 A와 접점이 있었을 거란 게 그들의 추측이었다.

도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도현아, 너 A랑 만나 볼래?’

상우 아저씨가 권유했지만 그때 분명 거절했었다. 딱히 궁금하지도 않았고, 곧 스물이 되어 법적으로 길드를 만들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자경단을 탈퇴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그걸 알아서 뭐 하게?”

“…네?”

“알 것 없잖아.”

도현은 피곤했는지 어느새 새근새근 잠이 든 이겸을 확인하고 잠잠히 말했다.

“시끄러운데 좀 조용히 가자.”

“…….”

억울해. 질문했던 자경단은 울상을 지었다. 지금까지 시끄럽게 떠든 건 모두 남궁산하였고, 자신은 줄곧 대답만 하다 이제 겨우 한 문장 질문한 것뿐인데.

‘거기서 성격이 조오금, 아주 쪼오오오금 더 모나지 않았다면 말이지!’

상우 아저씨. 조오금요? 조오금 수준이 아닌데요.

***

도아와 재우가 잔뜩 토라져서 우물거렸다.

“너무해.”

“맞아요. 다들 진짜 너무해.”

산하가 쩔쩔매며 그들을 달랬다.

“아니야. 우리 정말 힘들었어. 너희도 같이 갔으면 위험했을지도 몰라. 도현이랑 이겸이도 저렇게 다쳤잖아. 너희라도 안 다쳐서 정말 다행인 거야.”

안 좋은 일을 굳이 소문내고 다녀서 좋을 것도 없다는 이겸의 뜻을 따라 주승태에 관한 일들은 도아와 재우에게 비밀에 부쳤다.

그 둘에겐 그저 지나가던 중 갑작스러운 크리처 습격을 받았다고만 둘러댔다. CA 지역도 아닌데 뭔 크리처 습격이냐며, 혹시 블러드 헌터와 관련됐냐고 의심하는 눈초리였지만, 다행히도 깊게 파고들진 않고 그저 억울해하기 바빴다.

“항상 이런 일이 발생하면 저희만 자리에 없잖아요. 저희도 도움이 되고 싶은데.”

“애들이 무슨 도움이야.”

이겸이 지친 눈으로 중얼거렸다. 오랜만이라면 오랜만에 도착한 래터 사무실에서 가볍게 씻은 후, 수건을 머리에 얹고 다친 손등을 소독하고 밴드를 붙이는 중이었다.

다행히 유리가 박히진 않은 듯했다. 그래도 자세한 건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 봐야겠지만.

도현 또한 옆구리에 난 상처를 스스로 치료하고 있었다.

“내일 출장 힐러 부를게요. 둘 다 치료받아요.”

도아가 휴대폰을 만지며 투덜거렸다.

실전 중 다쳤을 경우 병원에 가거나, 헌터 협회에 가서 힐러들에게 치유를 받거나, 대형 길드는 소속 힐러들이 근무해 무료로 치료받는 등의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제일 값싼 건 역시 병원이지만, 상처가 아물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힐러에게 치유를 받아 바로 나은 뒤, 크리처 사냥에 나가는 게 이득이었다.

또 다른 방법은 출장 힐러를 부르는 것인데, 제일 값이 비싼 만큼 실력이 뛰어났다. 걸어 다니는 중소 기업. 그들은 절단된 게 아니라면 웬만한 상처들은 하루 만에 치유할 수 있는 실력 좋은 사람들뿐이었다.

이겸이 초췌해진 낯으로 말했다.

“알았어. 돈은 내가….”

“무슨 소리예요! 헌터랑 싸우다 다쳤는데 당연히 래터 지출이죠. 산하 오빠 차도 래터에서 대 주니까 돈 걱정은 하지 마요.”

“…고맙다.”

이겸은 꾸물꾸물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한바탕 싸우고 들어와서일까, 마치 포근한 집에 온 기분이었다.

“어어, 도아야. 나는 괜찮은데. 내 차는 내가….”

“괜찮아, 형. 그냥 받아.”

“으… 응. 고마워.”

도현이 권하자 산하가 어설프게 고개를 끄덕였다. 쓸 수 없는 건 산하의 자동차만이 아니었다.

도현의 오토바이도 그곳에 버려두고 왔다. 고치면 어떻게든 다시 쓸 수 있겠지만 딱히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뒤처리도 자경단이 모두 수습해 준다니까 전복된 차도, 넘어진 오토바이도 그쪽에서 처리할 터였다.

‘버리라고 해야겠네.’

생각을 끝낸 도현은 이겸이 누운 침대에 걸터앉았다.

아주 살짝 손끝을 뻗어 머리칼을 어루만졌다. 눈은 감고 있지만 아직 자지는 않는 것 같은데 아무런 반응이 없다.

좀 더 욕심을 내 머리카락을 돌돌 꼬며 손장난을 쳤다.

그럼에도 얌전했다. 제 손을 쳐 내지도 않는다.

고양잇과 소동물.

갸르릉거리며 예쁘게 울길래 쓰다듬어 주다가 자칫 손이 예민한 부위를 스치면 이빨과 손톱을 드러내고 하악질을 하는, 그러다가 또 아무렇지 않게 쓰다듬을 허락하는 그런 동물 같았다.

“형들 화해했어요?”

재우의 물음에 도현은 이겸을 내려다봤다. 감겼던 눈이 뜨여 있었다. 하지만 입술은 도무지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도현이 대신 답을 해 주었다.

“응. 화해했어.”

신이 난 학생들과 안심한 듯 가슴을 쓸어내리는 남궁산하가 보이고, 이겸에게서 돌아오는 반박은 없었다.

무언의 긍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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