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50)화 (50/102)

#050

블러드 헌터라고 해서 다 같은 주제 의식을 가진 공동체 집단이 아니다. 크리처를 신앙하는 건 비슷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양한 신념이 존재하고 그로 인해 여러 단체가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어떤 곳은 모든 크리처가 위대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가 하면, 또 어디는 높은 등급인 ‘상’만 취급한다. 혹은 아주 하찮은 크리처여도 오직 그 종족만을 숭배하는 등, 집단은 가지각색이다.

크리처의 피를 마시고 그 능력을 얻는 만큼 블러드 헌터 역시 크리처화의 특징이 제각기 달랐다.

그리고 그중, 악명 높은 단체가 몇몇 있었다.

그곳은 일개 졸병들도 한 명 한 명 강해서 자경단에서 쉽사리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자경단의 리더인 A가 나타나 한 곳의 지부를 추적해 격파했다는 소문이 있긴 했지만 사람들 대다수가 믿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A는 언제나 행방이 묘연하고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으니까.

오죽하면 중학교 2학년 시절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자경단에 몸을 담고 있던 서도현조차 단 한 번도 마주친 적 없었다.

“말한다고 네가 알 턱이 있나.”

“아아, 듣보잡 조직이구나.”

“…아드렐 소속이다.”

“응. 처음 들어 봐. 별거 없구나.”

서도현은 급히 몸을 숙였다. 그의 머리 위로 칼자루가 쌔앵 날아 스쳐 지나갔다.

“능력도 별거 없네.”

염력.

헌터들의 이능 중 가장 흔한 것이었다. 그만큼 능력 개발이 잘된 편이었고, 열심히 연마한다면 진취적인 성과를 이루는 것도 가능했다. 반대로 파해법 역시 다양하고 많았다.

그리고 서도현은 염력을 상대로 전전긍긍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들은 단순 겁쟁이에 불과하다.

멀리서 손만 휘저으며 공격할 줄만 알지 실전에는 취약했다. 물론 아닌 이들도 있겠지만 서도현은 듣도 보도 못한 소속의 나부랭이가 그럴 만한 실력을 갖고 있다고 여기지 않았다.

추측이 아니라 확신했고, 똑바로 간파했다는 자신도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정답이었다.

“약해 빠졌네.”

검의 경로가 훤히 보이고, 염력을 사용하는 범주도 예상 가능했다.

이런 녀석한테 윤이겸이 당하다니. 아직 크리처가 아닌 사람을 상대하는 건 낯선 모양이지.

그래도 한 놈 처치한 건 나름대로 괜찮은 성적이었다. 그 후에 바보같이 독에 당했단 게 문제지만, 이건 알려 준 적 없었으니 후에 가르쳐 주면 될 일이다.

보아하니 등에 상처를 입은 모양이라, 이번 판은 리셋하기로 결정했다. 산하가 가져온 해독제로 독을 없앨 수야 있으나, 상처까지 회복되는 건 아니었다.

‘앞으로 1분 후인가.’

앞의 남자는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다. 이번 판은 쉬어 가기로 결정한 도현이 여유롭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까 그 길 말고 다른 길로 왔으면 좀 더 빨랐으려나.’

내비가 안내했던 곳 말고 다른 길로 갔다면 3분이 아닌 2분 안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남자의 관자놀이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서도현.

블러드 헌터라면 그 이름을 모르는 자가 드물었다.

모든 블러드 헌터 단체의 후보군 리스트에 톡톡히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크리처의 피를 정기적으로 대량 섭취만 한다면 세뇌를 당해 크리처를 섬기게 되는, 다시 말해 제 편으로 만들 수 있는 편리한 방법이 있다. 그 때문에 블러드 헌터 내에서도 조직으로 끌어들이고 싶은 이가 있으면 잡아다가 피를 억지로 먹이는 풍습이 존재했다.

보통 각 단체마다 아군으로 만들면 좋을 자들을 후보군 리스트에 따로 작성해 보관해 놓기 마련이다. 거기서 서도현은 언제나 출석률 100%를 찍고 있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잡힌 바 없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는 블러드 헌터의 가장 강대한 적이란 의미였다.

처음 작전을 세울 때부터 서도현이 나타날 거란 짐작은 했다. 예상했고, 수긍했다.

하지만 윤이겸은 예상 밖의 일이었다. 단번에 제 동료를 끝장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심지어 공간 잇기라는 동료의 능력을 역이용하기까지 했다.

말이 되는 상황이 아니다. 갓 들어온 신입 헌터가 할 수 있을 만한 일이 아니다.

순조로울 것만 같던 작전이 조금 기이하게 굴러간다.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블러드 헌터의 아무개가 서도현을 지칭한 문장이다.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능력도, 습관도, 공격 경로도, 말하지 않았음에도 그는 모든 것을 간파하고 있다. 그렇기에 백전백승.

남자는 방금 전의 윤이겸을 보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자신을 놀라게 해 놓고, 고작 독에 당한 건 한심하고도 어이없었지만 말이다.

그때만큼은 아무개가 무엇을 보았는지 순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개가 어디의 누구인지, 어느 계급인지, 소속인지 모른 채 그저 그가 한 말이 흘러 흘러 모두에게 들렸을 뿐이지만 이거 하난 확실했다.

아무개는 서도현과 직접 싸운 게 아니다. 숨어서 지켜본 것이다.

윤이겸과 동료의 전투를 지켜본 것처럼. 그래, 마치 자신처럼.

그렇게 숨어서, 살아남아서, 그 구절을 널리 퍼트린 것이다.

남자는 문득 실소가 터져 나왔다.

여기서 나는 아무개인가.

하지만 아무개처럼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건 상관없다. 어차피 죽을 각오로 이 작전에 참여한 거였다.

이곳에 있는 이상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었다. 죽거나 혹은 자경단에게 잡히거나.

다수를 위해선 소수의 희생이 필요하다. 그리고 자신들은 기꺼이 소수에 자원했다.

그를 상대로 조금, 아주 조금만 더 버틴다면 확인할 수 있었다. 아니, 여기서 설령 자신이 죽더라도 저곳의 다른 이가 확인해 줄 것이다.

그렇다면 작전 성공이다.

순간 남자는 숲을 향해 눈동자를 굴렸다. 아주 미세한 움직임이었다.

그때 서도현의 고개가 시선을 따라 획 뒤로 돌아갔다.

남자는 숨이 덜컥 멎었다.

무성한 숲뿐인 어딘가. 남자의 시선이 향했던 곳을 도현은 낱낱이 탐색했다. 하나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그럼에도 확신할 수 있었다.

“저기에 무언가 있구나.”

“…….”

남자는 구태여 답하지 않았다. 긍정해도 부정해도 티가 난다면 침묵이 옳은 선택이었다.

도현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목숨이 중하면 나오겠지.”

탕탕탕탕-!

재킷 안쪽의 총을 빼 들어 숲을 향해 아무 곳이나 무작정 쏘아 댔다.

새들이 깜짝 놀라 푸드덕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5분이 되어 간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얻어걸리면 좋을 텐데, 무성하고 넓은 숲에서 숨어 있는 무언가를 맞추리란 사막에서 바늘 찾기와 다름없었다.

애초에 뭐가 있을지도 모르는 막연한 확신이었다. 저격당한 것이 사람일 수도, 혹은 짐승일 수도 있다.

탄알이 떨어지면 다시 장전해 쏘고, 또 장전했다. 그로서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급했다.

하나 그건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시선 하나로 무언가를 알아채고는 저를 본 척도 안 하고 숲에만 무작정 총을 쏘아 댄다. 너 같은 건 언제든 죽일 수 있으니 얌전히 기다리란 걸까.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둘 순 없다.

푹, 푸욱-.

남자는 칼을 조종해 도현을 찔렀다. 다리든, 배든, 허리든, 팔이든 어디랄 것도 없었다.

공중에 뜬 칼이 이리저리 유영하며 도현을 찌르고 지나갔지만 그는 고통스러운 기색조차 없었다.

남자는 기겁했다.

저만한 고통이라면 멈출 법도 한데, 총구는 여전히 올곧을 정도로 숲을 향해 있었다. 단지 급소를 노리는 공격만 미세하게 몸을 틀어 피할 뿐이었다.

도저히 공격이 통하지 않자 남자는 방향을 틀었다.

제 한 몸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면, 과연 동료에게도 같은 반응일까.

윤이겸은 여전히 독에 헤매는 중이었다. 그를 향해 칼을 날렸다. 죽일 의도는 없었다. 그는 아직 작전을 위해 쓸모가 있기 때문에 단순한 인질로 잡을 작정이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이겸 쪽으로 황급히 뛰어갔다.

“윤이겨엄!!!”

이겸은 문득 소리가 난 쪽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앞이 뿌옇게 안개가 낀 듯 흐렸다. 저를 향해 달려온 이가 괴물인지, 혹은 사람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다가온 누군가가 이겸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

푸욱.

주승태의 심장이 대번에 꿰뚫렸다.

남자가 질린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네가 왜.”

얌전히 창고에 기어들어 가 숨어 있을 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방해를 할 줄이야.

뚝, 뚝.

발치에 피가 고였다.

“내, 내 친구는… 건드리지 마!”

이겸은 순간 제 귀를 의심했다. 지금 들리는 제 친구의 목소리와, 손을 짚은 바닥에 따스하게 고이는 액체.

“아아….”

부질없는 탄식이 새어 나왔다.

이 축축함의 정체를 자신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익숙한 감각이다. 그야 몇 번 제 몸에서도 흘러나왔으므로.

그리고 이 피의 주인도 얼핏 알 것 같았다. 아니, 알고 있다.

환각인가? 싶다가도 너무나 사실처럼 또렷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주승태…?”

“이, 이겸아. …쿨럭! 도망, 도망쳐.”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겸은 떨리는 목소리로 누군가를 불렀다. 이 상황을 도와줄 해결책, 구원자이자 썩은 동아줄을.

그 밧줄을 절실하게 잡을 수밖에 없었다.

“서도, 현.”

“괜찮아.”

“어떻, 이거…. 어떻게 해야….”

서도현은 잠에서 막 깨어나 칭얼거리는 아이를 토닥여 달래 주듯 나긋하게 말한다.

“괜찮아. 악몽이야.”

눈 뜨면 사라질, 깨어나면 허상처럼 흩어질 악몽일 뿐이야.

진정해, 겸아.

내가 다 알아서 할게. 넌 아무 생각 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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