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7
“형, 차 더 가까이 붙여 주실 수 있어요?”
“응. 차 부서지는 건 신경 쓰지 마. 수리 비용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거참 든든하네.
- 도착했어?
“응.”
- 시작할까?
“…잠시만. 신호 줄게.”
동시에 건너편 탑차의 창문이 스르르 내려가고 반짝이는 총구가 이겸을 향했다.
“총?”
간담이 서늘해졌다. 아무리 한적한 도로라지만 불쑥 총부터 들이밀고 본다고? 카메라도 있을 텐데…. 협회에서 처리해 주나?
멈칫하던 사이 총탄이 발사됐다.
탕탕!
귀를 괴롭히는 총성과 함께 산하가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익-. 소음을 내며 차창이 흔들렸다.
“으와아앗-! 이겸아, 괜찮아? 안전벨트는?”
“괜찮아요.”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무슨 영화 추격전도 아니고!’
자신이 이런 추격 신을 찍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나마 타이어에 안 맞은 게 다행인가….
“일단 저 차는 확실한 것 같네. 창고에 네 친구가 있는 건가?”
“네. 근데 자물쇠로 잠겨 있어요. 열쇠가 있어야….”
“응?”
산하가 영문을 알 수 없단 얼굴로 이겸을 바라봤다. 왜 일 더하기 일은 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모르냐는 시선이었다.
“그냥 부수면 되잖아?”
“…아. 그렇네요.”
이겸이 뻘쭘히 답했다. 생각해 보니 여기는 도덕을 지킬 필요가 없었다. 산하의 가방을 뒤적이며 물었다.
“여기 있는 무기 아무거나 써도 되는 거죠?”
“으응. 딱히 상관은 없는데, 총은 바로 다룰 수 있는 게….”
“괜찮아요.”
강태하는 총이나 무기류를 모으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가끔씩은 그것을 다루는 영상들도 챙겨 보곤 했는데 이겸은 그의 어깨너머로 함께 봐 왔다. 전부 머릿속에 들어가 있다.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겸은 우선 탄알의 개수를 체크했다.
‘총 6알.’
“탄알 더 없어요?”
“아쉽지만 지금은 그게 끝이야.”
아쉽지만 그런대로 목표물을 조준해 방아쇠를 잡아당겼다. 목표는 탑차의 자물쇠.
항상 보기만 했지 직접 쏴 보는 건 처음이다. 탕! 소리가 나며 그 여파로 팔이 떨려 왔다. 잘 맞았나 확인했지만 아슬아슬하게 빗나간 상태.
“좀 더 차를 붙일게.”
산하의 녹색 차가 탑차의 창고 쪽으로 바짝 다가왔다.
“어떻게 할까?”
탑차의 사이드 미러로 그들을 지켜보던 이가 물었다. 조수석에 앉은 자가 여상히 답했다.
“들이받아.”
남궁산하가 놀라 비명을 질렀다.
“으악!”
콰앙-!
탑차가 후진하며 그들의 차를 들이받았다. 끼이익-. 녹색 차가 가드레일에 긁히는 거센 소음이 났다.
“형! 차 뒤로 빼요!”
“그러고 있는데 안 돼!”
자그마한 소형차가 탑차에 저항할 수는 없었다. 이겸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스스로가 한심했다. 이걸 예상하지 못하다니. 차라리 더 거리를 벌린 뒤, 우선 탑차의 타이어부터 노리는 방식이 나았으려나.
서도현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상황을 해결하지 못할 것 같자 이겸은 저도 모르게 무작정 그를 떠올렸다.
이내 무작정 창밖으로 팔을 뻗어 총을 쏘았다. 노리는 건 타이어였으나 고작 두 번 만에 총기가 손에 익을 리도 없었고, 차가 심하게 흔들리는 탓에 조준이 맘껏 되질 않았다.
산하는 제 왼쪽 측면을 확인했다. 가드레일 너머는 포장되지 않은 도로, 급경사와 함께 무성한 숲이었다.
“이…이겸아!”
쿵-! 쿠궁-. 쿵!
가드레일이 부서지고, 녹색 차가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그 와중에 윤이겸은 크게 소리쳤다.
“아직 시작 안 했지!?”
기다렸단 듯 이어폰 너머 목소리가 울렸다.
- 응. 신호 줘.
굉음이 잇따라 들렸을 텐데도 무척이나 평온한 태도였다.
현장의 상황은 당사자가 제일 잘 알고 있다는 믿음인가. 혹은 이겸을 깊이 신뢰하고 있는 건지, 그도 아니면 상황이 어떻게 흘러도 상관없다는 건지 그의 심정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이겸은 산하가 앞으로 튀어 나가는 걸 보호하듯 급히 팔을 뻗었다. 열 번밖에 못 쓰는 소중한 기회다. 경사가 가파르다지만 절벽도 아니었고, 주변엔 나무가 빼곡했다. 차는 잠깐 구르다 어딘가에 부딪혀 얼마 안 가 멈출 거다.
남궁산하에겐 미안하지만 이런 데에 귀중한 기회를 낭비할 수 없었다.
예상대로 차가 몇 번 구르다 전복된 채 멈췄고, 매캐한 연기 틈새로 이겸은 급히 안전벨트를 풀었다.
“형 괜찮아요?”
“으응, 그럭저럭. 너는 다친 데 없어?”
산하의 머리를 타고 한 줄기 피가 흘러내리는 걸 목격했다. 도현의 능력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음에도 선택하지 않아 그가 다쳤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들었다.
“형은 여기 있으세요.”
“잠깐… 이겸아!”
어디서 괴력이 발생한 건지 이겸은 찌그러진 문을 열고 탈출했다.
“내려가서 죽었는지 확인하고 와.”
“그래.”
성큼성큼 낙하했던 길을 거슬러 올라가니 두 인영이 보였다. 이겸은 아까의 후진으로 차가 부딪히며 자물쇠가 부서져 창고의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걸 발견했다. 그 틈으로 살며시 친구의 얼굴이 보였다.
‘…주승태.’
얼른 그에게로 가려는 사이, 내려오던 블러드 헌터와 눈이 마주쳤다.
“한 놈 살아 있었군.”
“…….”
슬며시 허리춤에 고정해 놓은 단검을 빼 들었다. 이겸은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지금 발견된 게 그나마 나았다. 그가 이대로 내려가 남궁산하를 죽이려 한다면 일이 더 복잡해질 것이다.
생판 남이었다면 상관없겠지만 이겸에겐 남궁산하도 친한 지인에 해당되었다. 그러잖아도 자신의 선택 때문에 상처를 입은 사람이 죽는 꼴을 두고 볼 수 없었다.
적은 두 명. 자신이 두 명 모두 여기서 발을 묶어 놔야 한다.
이겸은 해답을 구하듯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서도현.”
- 응. 가는 중이야.
중저음의 목소리가 이어폰 너머로 나지막하게 들려왔다.
너라면 지금 어떻게 할 거야? 질문은 이어지지 못했다. 남자가 칼을 빼 들고 총알같이 이겸에게 달려들었다.
“시작해!”
- 그래.
서도현의 이능이 펼쳐지고 이겸은 묘한 감각을 느꼈다.
시작된 거 맞나? 맞겠지? 그의 시작은 오직 본인만 설정할 수 있지 이겸에겐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와 확신을 하기 어려웠다.
아직은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탕-! 탕-!
이겸은 단검을 내려 두고 권총을 택했다.
연발로 쏘아졌지만 두 번 다 빗맞았다. 이겸이 못 쏜 게 아니라 남자의 신체가 빠르게 반응해 피한 것이다.
그러다 우연찮게 남자의 안면을 향해 총알이 날아갔다. 그는 손을 올려 제 얼굴을 가렸다. 인간의 손일 터인 피부가 크리처처럼 기괴하게 변했다.
탄알은 그의 손등에서 가볍게 막혔다.
목격한 건 처음이다. 블러드 헌터만 할 수 있다는 크리처화. 저렇게 생겼구나.
“크리처화. 이 모습을 목격하다니, 너 운이 좋군.”
“어. 로또에도 자주 당첨되더라.”
이렇게 또 블러드 헌터를 만난 걸 보면 말이지.
이겸은 부러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끌었다. 기억상 마지막 남은 탄알이다. 좀 더 고심해서, 분명한 한 발을 맞춰야 한다.
남자는 바로 달려들지 않고 여유롭게 굴었다. 언제든 처리할 수 있다는 뜻인가? 이겸 역시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그도 구조가 올 때까지 시간을 끌어야 했다. 때문에 남자의 대화에 어울려 주었다.
“권총이라니, 역시 신참이 할 만한 선택다워.”
“…뭐가 말이지?”
‘내가 신참이란 건 어떻게 확신한 거지?’
눈살을 찌푸리자, 남자가 대답했다.
“평생 총이 무적인 줄 알고 살아왔겠지? 헌터쯤 되면 총알도 가볍게 피할 수 있는 것도 모르고.”
이겸은 입을 다물었다. 그 말은 즉, 무기 선택을 잘못했다는 거군.
“총이 통하지 않는 이능도 있고, 나처럼 피할 수 있는 헌터들도 널렸지.”
헌터들의 무기는 특수하다. 크리처에게서 나온 부산물을 통해 기술계가 만들어 주는데, 그러잖아도 적은 자원을 일회성 탄피에 사용할 수 없었다.
때문에 헌터가 사용하는 탄알이라 해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일반적인 탄알일 때가 대부분이었다. 그 정도야 남자가 설명한 대로 방심하지 않고, 차분히 이능과 뛰어난 신체 능력을 이용해 피해 버리면 그만이다. 총은 크리처 세계에서 칼보다 뛰어난 무기가 아니었다.
이겸은 좀 더 시간을 끌 겸 질문했다.
“…그럼 네 무기는 뭐야? 일반 칼?”
“설마. 위대하신 그분이 나눠 주셨지. 너희처럼 죽이고, 빼앗는 게 아니라.”
“누가 보면 우리가 나쁜 사람인 줄 알겠네.”
남자는 그런 이겸이 불쌍하다며 혀를 찼다.
“참으로 안타까워. 악이 악인 줄 모르는 것만큼 가여운 일 또한 없지.”
자기소개하나?
“뭐래. 멀쩡한 내 친구 납치해 간 사람이 누군데.”
“그는 보면 안 될 걸 봤어.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필수 불가결.”
“그게 내 친구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남자는 또 한 번 쯧쯧 혀를 찼다.
“저런. 그 소수에 본인이 속한다 해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는 게 이치이거늘.”
“난 못 해. 그리고 내 지인들도 안 돼.”
“당당히 악을 선언하는군.”
이겸은 남자를 노려봤다. 말이 맞지 않았다.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라면 크리처도 죽어 마땅해야 하지 않나?”
“크리처라니. 그분을 그런 사특한 단어로 부르다니. 우리는 공존을 논하는 거다.”
“공존?”
“그래. 그분과 인간의 공존. 될 수 있음에도 되지 않고, 할 수 있음에도 노력하지 않고, 대화를 시도해 보지도 않고 무작정 도륙을 꾀하고 본다니, 이게 야만인이 아니면 누가 할 짓인가?”
이겸은 불쑥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크리처와 인간의 공존? 눈앞의 남자가 내뱉는 말은 순 모순 덩어리였다. 크리처의 주 먹이가 인간인데? 그걸 제물로 갖다 바치는 것도 다른 누구도 아닌 블러드 헌터였다.
결국 남자는 제 좋을 대로 해석해 자신만의 세계에서 오직 자신들이 선을 행세한다 착각하는 거였다.
“공존이 아니라, 크리처에게 굴복하는 거 아닌가?”
피를 나눠 마시면 동료가 돼? 듣긴 했다. 크리처는 제 피를 마신 이들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것도 크리처 나름이라고 들었다.
인간은 동족을 살인하지 않는가? 어떤 사이코패스는 같은 동족이라도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죽이곤 했다. 그리고 그건 크리처도 마찬가지다. 소수의 크리처는 블러드 헌터를 동료로 인식한다 해도 회까닥 돌아서 죽일 수도 있고, 난폭한 크리처일수록 그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이겸의 반박에 남자는 가련한 눈을 지었다.
“굴복…. 너희 야만인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 마치 짐승과도 다름없구나.”
“짐승은 크리처고.”
“그분이 하사하는 피를 나눠 마시면 함께 동료가 되고, 우리는 공존을….”
“이봐. 아직 멀었어?”
그때 탑차 쪽에서 블러드 헌터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남자가 대답하기 위해 잠시 위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곧 끝….”
타앙-.
이겸은 그 순간의 빈틈을 절대로 놓치지 않았다. 곧장 총을 발포했고, 타이밍과 목표 모두 정확했다. 다트로 친다면 10점짜리 점수였다. 정확히 상대방의 안구를 향해.
총구를 당긴 손끝이 떨려 왔다. 이겸에게 있어 단연 처음이었다. 항상 크리처만 사냥해 왔지 처음으로 사람을 죽일 각오를 한 공격, 생과 사를 걸고 싸워 쟁취한 승리, 그리고 살인.
“거봐.”
그만큼 확신이 있었다. 이 한 발은 저놈을 죽일 유효타라고.
“총도 나름 쓸 만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