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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39)화 (39/102)

#039

며칠 후, 여느 때와 다름없이 강의를 듣고 사무실로 오니 도현이 있었다.

“왔어?”

“응.”

“밖에 춥던데. 내가 태우러 갈 걸 그랬나.”

“뭐 하러. 택시 타고 왔어.”

재우와 도아는 아직 학교, 남궁산하는 조금 후에 도착한다고 들었다.

그러고 보니 곧 남궁산하의 휴가가 끝난다. 이겸은 그동안 남궁산하와도 둘이 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친해졌다. 산하 형 가기 전에 파티라도 하려나. 서도현은 은근 그런 걸 좋아하니까 무슨 무슨 기념일이라면서 회식을 할지도 몰랐다.

고기도 자주 먹으니까 질리는데, 다음 회식은 오마카세(맡김차림)라도 가자고 할까. 물론 가격은 비싸겠지만 서도현은 돈에 한해서 아끼는 법이 없었다. 그만큼 벌어들이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이겸도 어느 날 제 통장을 확인하고 눈을 휘둥그레 떴으니 그동안 헌터로 활동해 온 도현의 통장에 0이 몇 개 찍혔을지 대강 짐작이 가곤 했다. 아마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살아도 평생 먹고살 수 있겠지.

“오늘부터 등급 테스트 볼 수 있다던데, 협회에 하러 갈래?”

“지금?”

“응. 오늘 CA 지역은 없으니까.”

건물 시공은 끝났나? 이겸은 벗었던 옷가지를 다시 챙겨 입었다.

“그러지 뭐.”

***

곧 고등학교 수업이 끝날 시간이다. 도아와 재우에게는 하교 후 사무실이 아닌 협회에서 보자고 일러 놓았고, 남궁산하도 지금 협회로 오는 중이라고 했다.

이겸은 도착한 협회 내부를 둘러봤다. 제일 많이 시공한 곳은 가장 전투가 험난했던 입구, 1층이었다. 이왕 공사하는 거 인테리어를 화려하게 탈바꿈하기로 했는지 몰라볼 지경으로 변했다.

“등급 테스트는 지하야.”

익숙하게 걸음을 옮기는 도현의 뒤를 따랐다. 지하 1층. 분명 훈련실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훈련실과 함께 그 옆에 조막만 한 표지판으로 등급 테스트라고 안내되어 있었다.

“등급 테스트 많이 어려워?”

“쉬워. 30분 정도? 밖에 안 걸려.”

“그렇게 빨리 끝나?”

체력 테스트나 뭐 그런 거 안 하나? 의아한 듯 눈을 크게 뜬 이겸에게 서도현은 무심하게 대답했다.

“응. 따지자면 헌터 테스트가 더 어렵지.”

헌터 테스트도 ‘하’ 등급 크리처를 잡는 게 전부였다. 그것보다 더 쉽다고? 어쩐지 안심이 되었다.

“넌 2차는 몰라도 1차는 ‘상’ 등급으로 나올 거니까 너무 긴장 마.”

이겸은 도현이 많이 유순해진 걸 알 수 있었다. 긴장 하지 말라고 위로도 해 주고 원래라면 그럴 인간이 아닌데. 애가 좀 착해졌나?

그런 생각도 잠시.

등급 테스트실 문을 열자 직원이 상냥히 웃으며 말했다.

“어서 오세요. 테스트 보러 오셨나요?”

“그럼 놀러 왔겠어요?”

도현이 삐뚜름하게 대꾸했다.

…뭐야 이 금쪽이는. 대학 학업을 병행하며 수많은 알바를 접했었던 이겸에게 서도현은 진상 그 자체였다.

도현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비스듬히 서 있었다. 하필 얼굴도 날카롭게 생겨서 ‘나 성격 나빠요.’라는 문장에 힘을 실어 주었다. 애써 그를 외면한 이겸은 작성한 서류를 직원에게 건네주었다.

“스물두 살, 윤이겸. 소속 길드는…. 네, 확인했습니다.”

직원은 서도현을 슬쩍 보고 말을 삼간 후, 이겸을 안내했다.

“검사를 위해 이쪽으로 오시죠.”

“네. 야, 사고 치지 말고 얌전히 있어라.”

이겸은 도현이 또 죄 없는 직원들한테 시비라도 털까 봐 단단히 일렀다.

이후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는 서도현을 뒤로하고 직원의 뒤를 따라갔다. 따라간 곳은 어느 밀폐된 방 안이었는데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을 때 볼 법한 기계가 있었다.

“상의 좀 벗어 주시겠어요?”

“네.”

직원의 말에 훌러덩 웃옷을 벗기 시작한 이겸은 대체 몇 겹을 껴입은 건지 벗어도 벗어도 끝이 없었다.

목도리를 시작으로, 박시한 코트, 두툼한 맨투맨, 그 안에 빼꼼 튀어나온 긴팔 티, 흰색의 얇은 반팔 티, 발열 내의를 끝으로 상의 탈의 대장정은 막을 내렸다.

마른 몸이지만 탄탄히 자리 잡은 근육이 보였다. 기계를 점검하던 직원이 상의를 벗은 채 잠자코 기다리고 있는 이겸에게 말했다.

“…반팔 정도는 입어도 됩니다.”

“아, 네.”

반팔이라 했으니까 히트텍은 빼고 입자. 사실 벗으면서도 이거 언제까지 벗어야 끝나지 싶어서 내심 부끄러웠던 이겸이었다. 한꺼번에 집어 벗고 싶었지만 그렇게 해 버리면 나중에 입을 때가 또 문제여서 어쩔 수 없이 한 올 한 올 벗은 거였다.

이겸이 반팔 티를 챙겨 입고 직원의 요구대로 기계에 앉았다.

직원이 기계와 연결된 무수히 늘어진 선을 끌어와 이겸의 몸에 부착했다. 후에 기계의 화면을 톡톡 두드리니 우웅- 작동하는 소리가 났다.

“검사는 30분 걸리고, 바로 결과 나옵니다. 끝나면 다시 올게요. 지루하시면 여기 책이라도 읽으세요.”

“네.”

직원이 책을 건네준 후 방문을 닫고 나가자 홀로 남은 이겸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등급 테스트라길래 체력 검사라도 하는 줄 알았다. 높이뛰기, 민첩성 테스트, 오래달리기 등. 그런데 30분 동안 가만히 앉아 있으면 끝난다니. 이겸이 예상한 것과 동떨어져서 살짝 김이 샜다. 의외로 현대식이네.

제 몸에 부착된 선들은 호흡과 맥박을 측정하는 건가? 신기함에 기계를 요리조리 살폈다. 이것도 부산에 있다는 이련 회사에서 만든 건가? 문득 제작 회사라는 이련은 어떤 식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호기심이 일었다.

윤이겸이 기계를 살피고 있을 무렵, 도현은 대기실 의자에 의외로 얌전히 앉아 있었다.

‘사고 치지 말고 얌전히 있어라.’

그닥 어려운 일은 아니니 그렇게 하기로 했다.

하지만 모든 건 결심한 순간 무너진다고, 도현의 신경을 긁는 이가 나타났다.

“너냐? 우리 현식이 어깨빵 놓은 새끼가?”

누군가 쌍팔년도 조폭 감성으로 도현에게 시비를 걸었다.

도현의 고개가 서서히 올라가며 제게 말을 건 이를 확인했다. 기억도 안 나는 얼굴이다. 어쩌면 처음 보는 사람일 수도 있고, 과거에 시비가 붙었는데 잊은 얼굴일 수도 있었다.

이걸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는 와중 그가 검지로 도현의 이마를 꾹 눌렀다.

“어이, 쫄았냐? 무슨 말이라도 하지? 난 예호의 2팀 김지환이다. 바로 옆에 훈련실 대여해 놨는데, 어때? 심심해 보이는데 나랑 한 판 대련할래?”

“…….”

도현은 김지환의 의중을 파악했다. 보아하니 예호의 1팀도 아닌 2팀이 래터의 마스터 서도현을 이겼다는 소문을 내고 싶은 모양인데, 대체 그런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건지.

“대련?”

“그래. 내 이능은 신체 강화. 가벼운 대련인 만큼 이능 없이 붙어 보는 건 어때?”

“글쎄. 태도가 마음에 안 드는데. 부탁을 하려면….”

도현은 발을 뻗어 김지환의 정강이를 세게 걷어찼다.

“으윽!”

퍽! 뼈가 아작 나는 소리가 들리며 그가 도현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정중하게 해야지.”

“…지환 선배, 괜찮으세요!?”

같은 2팀의 동료가 그를 부축하며 일으켜 세웠다.

“그러게.”

“…….”

“이기지도 못할 거 왜 깝치고 지랄이야.”

도현은 제 쪽으로 쏠린 시선을 확인하곤 낮게 혀를 찼다.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김지환의 눈에 핏발이 서렸다.

“대련하자 했지 누가 이렇게 무식하게…! 비겁한 놈. 방심만 안 했어도 당할 일 없었어.”

“방심을 왜 해. 등신같이.”

심장에 칼 들어와서도 방심했다 찌껄여 보지? 도현은 못 들을 걸 들었다며 제 귀의 피어싱을 버릇처럼 매만졌다.

“뭐야. 또 시비 붙었어? 겸이 오빠는 어디 가고?”

“형이 이겼죠? 이긴 거죠? 예호한테 이긴 거죠!?”

순식간에 지하가 시끌벅적해졌다. 교복을 입은 도아와 재우가 도현에게 다가왔다. 차재우는 일부러 다 들으라는 듯 줄기차게 소리쳤다.

“예호는 왜 상대도 안 되면서 래터한테 시비 거는 거지!? 맨날 대련하다 우리한테 얻어맞으면서!”

“무슨 대련이야! 단 한 번도 대련한 적 없는데.”

“이것 봐. 또 아닌 척한다. 모르쇠 하면 좋아요? 래터가 얼마나 봐줘야 하는 거예요? 비공식 대련만 10번이 넘어가는구만! 저번엔 마스터끼리 붙어서 처발렸다죠?”

예호는 억울할 따름이다. 그들은 실제로 한 번도 대련한 적이 없었고, VIP 방에서 김이성과 서도현 사이에 있었던 일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한마디로 차재우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정치질에 있어 목소리 큰 놈이 장땡이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오늘도 붙으러 왔어요? 나 참, 이 사람들은 귀찮지도 않나! 저번에 그렇게 깨져 놓고 잊을 만하면 또 기어 나오고! 무슨 두더지도 아니고.”

국어책 읽듯 또박또박, 발음도 뭉개지지 않고 배 속 깊숙이서부터 차오르는 공기로 쩌렁쩌렁하게 소리쳤다.

“뭐야, 예호랑 래터 비공식 대련도 하나?”

“그럴 만도. 길드 랭킹 순위가 예호 다음이 바로 래터잖아.”

“대련에서 계속 발린 거면 예호가 래터보다 아래 아니야? 순위 고쳐야겠는데?”

김지환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없는 얘기 좀 지어내지 마!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어디 어른한테…! 아악!”

내 사람에게는 한없이 유해진다. 차재우가 하는 모양새를 뿌듯하게 지켜보고 있던 도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아까 찼던 김지환의 정강이를 재차 가격했다.

“얘기 지어내지 말아 주세요, 라고 해야지. 그새 잊었어?”

부탁은 정중하게 하라니까.

“…너희 뭐 하냐?”

테스트가 끝나고 ‘상’이라 적힌 검사 결과지를 들고 나온 이겸이 눈을 깜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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