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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36)화 (36/102)
  • #036

    강의가 끝난 이겸은 가방을 챙기고 빠르게 강의실을 나서려 했지만 금방 어깨가 붙잡히고 말았다.

    “윤이겸! 요즘 강의 끝나고 어디로 새냐!”

    “그러니까. 오랜만에 애들끼리 밥 먹고 술이나 마시러 가자.”

    “…나 어제 술 마셨는데.”

    “뭐? 누구랑!”

    이겸의 친구들이 왜 자기네들이랑은 안 마시냐고 억울함을 토해 냈다.

    “너네끼리 마셔. 그리고 나 술 안 좋아하는 거 알잖아.”

    “근데 어젠 누구랑 마셨는데!”

    “누구긴….”

    이겸은 말끝을 흐렸다. 이내 쓰고 있던 검은 모자를 꾹 눌렀다.

    “말해도 몰라.”

    “누군데. 고등학교 친구들?”

    “아니야.”

    제게 달라붙는 친구들을 질질 이끌고 건물 밖을 나왔다.

    “그럼 강의 끝나고 맨날 어디 가는데?”

    “그냥…. 취업 준비?”

    돈도 벌고, 비슷하긴 하니까….

    “뭐!? 너 취업 준비해? 어디! 어디 회사!?”

    “그럼 지금 인턴이야?”

    “그런 거 아니야.”

    부사장이다 이놈아. 감투뿐이지만. 이겸은 래터 사무실로 가기 위해 놀자고 치대는 친구들을 외면한 채 꿋꿋이 걸음을 나섰다.

    자신도 차재우화되고 있는 건지, 어차피 자취방에 있어 봤자 혼자니까 사무실로 향하게 되었다. 그럴 거면 친구들이랑 놀 법도 한데 그건 또 귀찮았다. 그저 사무실 침대를 차지하고 누워 있는 게 몸도 마음도 편했다.

    “그럼 다음 주는? 다음 주는 시간 돼?”

    “야, 다음 주는 우리 다 안 돼. 이제 시험공부 해야지.”

    “아, 그렇네.”

    이겸의 뒤를 바짝 쫓아오며 저들끼리 떠들고 결론짓던 친구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앞으로 값비싼 외제 차 한 대가 빵- 시끄러운 경적을 울렸다. 주변 차들도 없고, 빨간불에 건너는 사람도 없고, 위험할 것 하나 없던 평화로운 도로 위에 소란을 일으키는 매너 없는 행동이었다.

    이겸과 친구들의 시선이 외제 차로 향했다. 선팅이 짙은 창문이 스륵- 내려가더니 서도현이 훤칠한 얼굴을 드러냈다.

    “윤이겸.”

    반갑다며 제 이름 석 자를 부르곤 입꼬리를 말아 올리는 그를 본 이겸의 표정이 순식간에 썩어 들어갔다. 어디서 많이 본 차다 싶었더니 네놈이었냐.

    “미안. 먼저 갈게.”

    이겸은 친구들을 뒤로하고 도현의 차로 다가섰다. 그러자 그는 어서 타라며 조수석 문 잠금장치를 해제했다.

    “여긴 왜 왔어.”

    “데리러 왔지. 어서 타. 뒤엔 친구?”

    도현은 이겸의 뒤에 뻘쭘하게 서 있던 친구들을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이겸의 친구, 주승태는 이겸의 등을 몰래 콕콕 찔렀다.

    ‘누구야?’

    행동이 그렇게 물어보는 것 같았다. 직장 상사…는 따지고 보면 맞긴 한데 그런 식으로 소개하면 절대 믿지 않을 것 같았다.

    “그냥… 직장 친구. 미안, 오늘은 나 먼저 갈게. 다음에 보자.”

    이겸은 빠르게 조수석에 올라타며 창문 밖 친구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어, 어 그래. 다음에 보자. 꼭 보자.”

    어리벙벙 인사를 건네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차가 출발했을 때, 이겸은 창문을 올렸다.

    “왜 왔어?”

    “말했잖아. 데리러 왔다고.”

    “왜 연락도 없이 데리러 오냐고.”

    “가끔은 이런 것도 좋잖아. 기분도 나고.”

    도현이 싱긋 웃었다.

    이겸은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그를 노려보다 이내 따스하게 불어오는 히터 바람에 눈을 감기로 했다. 매번 버스 타고 가는 것보단 차로 데리러 오는 게 확실히 편하긴 했기 때문이다.

    “근데 지금 어디 가?”

    이겸은 창문 밖 풍경에 사무실로 가는 길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물었다.

    “도아랑 재우도 학교 마칠 시간이라 데리러 가게.”

    그렇게 안 생겨선 운전기사를 자처하는 도현이었다. 그는 곧장 학교 정문 앞에 차를 주차하고 하교할 아이들을 기다렸다.

    잠시 기다리니 시끌벅적한 하교 소리가 들려오며 친구들과 인사를 마치는 도아가 보였다. 교복을 입은 도아가 뒷좌석에 올라탔다.

    “재우는?”

    “저랑 같이 타면 애들이 오해한다고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릴 테니까 태우러 오래요.”

    도현은 순순히 차를 돌렸다.

    “버스 정류장은 어느 쪽인데?”

    “직진해서 왼쪽으로 꺾으면 돼.”

    이겸은 의아한 얼굴을 지었다. 서도현이라면 그냥 버스 타고 와라, 라고 할 것 같았는데 굳이 태우러 가는 게 의외였다.

    마지막 재우까지 태웠다. 이겸은 뒤에 올라탄 재우에게 냉큼 잔소리를 퍼부었다.

    “그냥 도아랑 같이 타면 되지. 귀찮게 사람을 오라 가라야?”

    “그치만 친구들이 놀린단 말이에요!”

    “서도현이 네 시종이야?”

    재우는 잔뜩 풀이 죽어 입술을 댓 발 내밀었다. 도현은 괜찮다며 그런 이겸을 말렸다.

    “뭐 어때. 우리가 남도 아니고.”

    이겸은 놀라 운전석의 그를 쳐다봤다. 남이 아니라고?

    ‘이제부터 래터는 가족이야.’

    얘 계속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하아. 결국 짤막한 한숨을 내쉰 이겸은 그놈의 가족 놀이에 조금은 어울려 주기로 했다. 어렵지도 않은 일이고… 뭐, 소꿉놀이 같기는 하네.

    ***

    “형, 어제 츄페스 혼자 잡았다면서요? 서도아한테 들었어요.”

    “응. 죽는 줄 알았어.”

    서도아는 누구한테 들은 거지, 짤막한 생각이 오갔지만 보나 마나 제 친오빠인 서도현이 출처일 게 뻔했다.

    ‘문이 열려 있네.’

    주차하고 온다는 도현을 놔두고 재우, 도아와 함께 먼저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이겸은 소파에 앉아 있는 낯선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누구세요, 라고 묻지도 않았다. 일순 생각이 불거지며 한 발짝 뒤로 성큼 물러섰다. 무의식적으로 재우와 도아를 제 뒤로 보내며 낯선 이를 경계했다.

    “산하 오빠?”

    그러다 도아의 맑은 목소리에 그를 쳐다봤다.

    산하? 남궁산하라면… 군대 갔다던 그분?

    소파에 등을 돌리고 앉아 있던 그가 몸을 일으켰다. 족히 190cm는 넘어 보이는 키에 머리는 감자처럼 바싹 깎여 있었고 덩치가 우락부락했다. 그가 팔을 올리며 주춤하더니 손바닥을 보이며 말했다.

    “아, 안녕!”

    긴장했는지 끝에 이탈한 음정, 소심한 인사였다. 저분이 남궁산하라고?

    “언제 왔어요? 제대는 아닐 테고, 휴가?”

    “으…응. 놀래 주려고 몰래 왔는데, 사무실에 아무도 없어서.”

    그는 사실상 첫 대면인 이겸과 재우의 눈치를 살피며 팔을 뻗어 그들의 손에 들려 있는 짐을 뺏어 갔다.

    “무겁겠다. 내가 들어 줄게. 네가 이겸이지? 네가 재우고!”

    “안녕하세요. 윤이겸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산하 형! 차재우라고 합니다!”

    “안녕!”

    남궁산하는 저를 반겨 주는 이들에 아까보단 씩씩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다 짐을 놓고는 이겸의 양어깨를 쥐고 이리저리 흔들어 살폈다.

    “협회 습격받았다며! 현장에 있었다 들었는데 다친 곳은 없어? 괜찮아? 멀쩡해? 도현이는? 도현이는 어디 있어?”

    “잠시 주차하러….”

    “형?”

    마침 타이밍 좋게 서도현이 사무실로 들어섰다. 도현아! 남궁산하는 몇 년 만에 주인을 만난 강아지처럼 반갑게 달려가 이겸에게 했던 것과 같이 양어깨를 쥐고 다친 곳은 없는지 그를 살폈다.

    “제대한 건 아닐 테고, 휴가?”

    “으응. 놀래 주려고 몰래 왔는데 아무도 없어서….”

    서도현은 그의 깜짝 방문에 크게 당황한 건 아닌지 그저 되물어 보는 게 전부였다. 그 질문이 놀랍게도 서도아와 똑같다는 게 신기했다. 유전의 힘인가.

    이겸은 남궁산하가 도현에게 시선을 뺏긴 틈을 기회 타 슬그머니 소파에 가서 재우의 옆자리를 차지해 앉았다. 산하와 인사를 마친 도현은 맞은편 소파에 앉아 이겸과 재우를 정식으로 소개해 주었다.

    “이쪽은 나랑 같은 나이인 윤이겸, 여기는 도아랑 같은 나이인 차재우.”

    “잘 부탁해! 난 남궁산하고 28살!”

    “잘 부탁드려요.”

    그 이후 이겸과 재우가 래터에 들어오게 된 이유나 서로의 능력들을 공개했다. 이겸의 물을 시야로 대체하는 능력이나 재우의 꽃 피우는 능력을 듣자 남궁산하의 눈이 반짝였다.

    “인원은 적지만 능력은 다양해서 다행이다…!”

    다양하면 뭐 해, 전력이 안 될지도 모르는데.

    그는 진심으로 래터의 성장을 바라는 것 같았다. 재우는 서도현의 전투에 반해서 들어왔고, 자신은 서도현의 능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들어왔고, 도아는 그의 동생이니까 자연스레. 그렇다면 남궁산하는 어떻게 들어오게 된 거지?

    “산하 형은 어쩌다 래터에 들어오게 됐어요?”

    이겸의 궁금증을 긁어 주려는지 재우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남궁산하는 머쓱한지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나는 크리처에 당하고 있는데 도현이랑 도아가 구해 줬어.”

    “걔네가 구해 줬다고요?”

    이겸의 눈이 황당함으로 휘둥그레졌다.

    서도아는 몰라도 서도현이 그럴 인물이 아닌데. 자신은 죽여서 맞이하고 남궁산하는 구해 주는 차별적인 태도는 뭐냐며 원망을 담아 도현을 쳐다봤다.

    “산하 형은 뭐라 할 새도 없이 기절했거든.”

    “나도 기절할 걸 그랬나.”

    도현의 설명에 이겸이 중얼거렸다. 남궁산하의 시선도 그에 따라 옮겨졌다.

    “너는 어떻게 들어왔어?”

    우락부락한 덩치와 맞지 않게 소심한 성격인지 타인의 눈치를 기민하게 관찰하는 것과 항상 굽어 있는 넓적한 등과 쭈그러든 어깨. 이겸이 남궁산하의 성격을 파악하느라 답변이 없자 그는 슬그머니 눈동자를 데굴 굴리며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민감한 질문이야?”

    “아뇨. 특별할 게 없어서요. 서도현이 권유해서 들어온 게 전부거든요.”

    “아아, 그, 그렇구나. 껄끄러웠다면 미안해. 앞으로 이런 질문 안 할게.”

    “아니요. 전혀 상관없는데요.”

    이겸의 괜찮다는 격려에도 산하는 여전히 그에게 미안한 눈치였다.

    “겸이 오빠 얼굴이 좀 날카롭게 생겨서 겁먹었나 봐요.”

    “그런 거 아니야…! 도아야, 사람 얼굴 가지고 판단하면 안 돼. 나는 그냥 초면이고 하니까 조심해서 나쁠 것 없다고….”

    “저보다는 서도현이 더 짜증 나는 얼굴이지 않나요?”

    가만히 앉아 있던 도현에게 이겸의 화살이 날아갔다.

    “아니야! 도현이가 얼마나 착한데! 도현이는 나 구해 주기도 했고 착한 애야.”

    “…쟤가요?”

    남궁산하의 거센 부정에 이겸은 멍청히 눈을 깜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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