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5
도현이 웃으며 달랬다.
“지쳤어? 그럼 쟤는 누가 잡아?”
“네가 잡든가.”
이겸은 부루퉁하게 말했다. 처음부터 이상했어. 이건 사기야. 협회는 팀으로 크리처 사냥을 나서는 게 다칠 위험이 적어 안전하다고 했는데 여기 서도현을 봐라. 스파르타도 이런 스파르타가 없었다.
아무리 상황이 반복되며 위험이 사라진다 해도 싫은 건 싫은 거다. 더는 저 징그러운 지네와 싸우기 싫었다. 뮤턴트 크리처일 때는 쟤를 안 죽이면 내가 죽게 생겼으니까 어쩔 수 없이 반복, 또 반복해서 다쳐 가면서도 어찌어찌 승리한 거지.
지금은 자신이 굳이 크리처를 사냥하지 않더라도 대신 크리처를 죽여 줄 서도현이 있었다.
“혀에 난 바늘 빼고 특별한 공격은 없다며. 쟤 똬리도 트는데? 심지어 혀도 길고. 넌 나한테 제대로 알려 준 게 뭐냐?”
“그냥 헤쳐 나오면 되는 건데….”
투덜대는 이겸의 말에 도현은 저 쉬운 걸 왜 못 하지, 마치 천재가 일반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난 못 해. 네가 시범이라도 보이든가.”
이겸은 고개를 아래로 파묻고 괜히 시멘트 바닥에 발굽을 툭툭 쳤다.
이쯤 시간이 지났으면 크리처가 공격해 올 타이밍이었다. 느낌만으로 위를 보지도 않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아슬아슬해 보이지만, 충분히 여유롭게 크리처의 공격 경로에서 벗어났다.
전반까진 어떻게 하겠는데 두 번째 마디의 약점을 어떻게 노리냐고.
“알았어.”
그때 서도현에게서 긍정이 떨어졌다.
“뭐?”
“시범, 보여 줄게.”
도현은 단검을 빼 들고 스트레칭하듯 발을 굴렀다. 목을 좌우로 한 번 까딱이며 단숨에 크리처에게 달려들었다.
이겸이 크리처와 싸울 때 그들의 동작을 눈여겨본 건지 습관과도 같이 오른쪽으로 공격을 피하면 왼쪽에서 날아오는 혓바늘을 피한 후, 점프한 뒤 크리처의 위에서 머리를 강타한다. 이겸이 아래에서 그것의 턱을 걷어찰 때와는 다른 파워로 입 주변을 이루는 골격 뼈가 박살 나며 크리처의 입을 옴짝도 못 하게 했다.
그 후로 한 칸 내려가 두 번째 마디, 금이 간 부분에 단검을 깊이 쑤셔 박았다.
마디마다 달려 있는 다리들이 고통을 감내하듯 볼썽사납게 꿈틀꿈틀하더니 잠시 후, 육중한 사체가 땅에 쓰러졌다.
그의 위에서 손을 털며 내려오는 서도현의 모습에 이겸은 눈을 깜빡였다.
“봤지? 이렇게 하면 돼.”
애초에 얘는 너무 약해서 사실 시뮬도 필요 없어. 도현은 그리 말하며 걸어왔다.
이겸은 그런 그를 빤히 바라봤다. 숨조차 헐떡이지 않았다. 심지어 별다른 능력도 없이 오직 예측과 힘만으로 크리처를 압도했다.
이 세계에 있던 경험은 달라도. 예측할 수 있단 것은 도현과 이겸 둘 모두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서도현이 할 수 있다면 저도 언젠가 할 수 있단 소리였다.
이겸은 끄응, 신음을 삼키며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켰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 두 번이 쉬우면 세 번째는 더 쉬울 거고, 그다음은 더, 그 다음다음은 더…. 더.
이내 짤막한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그 누구보다 긴 5분을 보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
도현은 산뜻한 얼굴로 자동차 내비에 고깃집을 검색했다.
“저녁도 대충 때웠는데 근처 식당이나 들를래?”
“피곤해. 집에 갈래.”
“겸아, 고작 5분 싸운 걸로 지쳤어?”
이겸의 눈이 부릅떠졌다.
5분? 말이 5분이지 겨우겨우 크리처를 죽이자 사체 손상률이 너무 높다고 리셋. 또 언제는 턱을 세게 걷어찬 탓에 지네가 제 혀를 깨물었다. 혓바늘은 중요한 무기가 된다며 리셋. 다음은 혀를 조심해 마디마디를 박살 냈다. 가죽은 좋은 방패가 된다며 리셋.
…리셋. 리셋, 또 리셋.
결국 서도현의 하루치 10번의 시뮬 중 9번을 쓰고 나서야 겨우겨우 합격점을 받았다.
예전에는 크리처를 사냥하며 적응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했다면 지금은 어느 정도 나름 익숙해졌으니까, 크리처는 물론 사체 손상률도 최소로 해서 사냥하는 방식을 고수하느라 크리처 등급이 ‘중’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오래 걸렸다.
신체적 피로는 고작 5분이겠지만 정신은 닳을 대로 닳은 상태였다.
도현이 협회의 순례 트럭을 기다리는 동안, 이겸은 조수석에 올라타 쉬고 있었지만 쉰 게 아니었다. 집에 가서 좀 더 편히 몸을 눕히고 싶은 마음에 연신 꿍얼거리기 바빴다.
“다 왔다.”
그러던 사이 고깃집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는지 도현은 벌써 차를 세웠다.
“진짜 먹으려고? 피곤한데….”
“응. 술도 마실래?”
“나 술 약해. 그리고 너 운전은.”
이겸이 한 차례 거부했지만 도현은 물러서지 않았다.
“난 안 마시지. 너 마실 거면 마시라고. 최근에 언제 마지막으로 마셨는데?”
“네 달 전인가.”
“각성 후엔 안 마셔 봤구나.”
“별로 안 좋아하니까.”
이겸은 그의 질문에 드문드문 대답해 주며 그가 벗어 놓은 겉옷을 대신 챙겨 입었다.
“네 옷 좀 입는다.”
“상관없어.”
서도현의 겉옷은 기술계가 크리처에서 나온 부산물을 이용해 만든 거라 특별한 기능이 있었다. 그중 보온성 기능은 이겸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었다.
‘돈 들어오면 이런 소재의 이불 같은 건 못 사나.’
어차피 목적지가 바로 앞이기도 하고 도현은 겉옷 없이 단출한 옷차림으로 식당에 들어섰다. 평소에는 자신과 손이 맞닿기만 해도 기겁을 하며 뿌리치는 이겸을 떠올리면 현재 제 겉옷을 뺏어 입는 그의 태도는 기껍기 그지없었다.
이겸은 그의 생각을 알지 못한 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식당으로 들어섰다. 이윽고 도현이 구워 주는 고기를 얌전히 받아먹었다. 자기가 구워 준다는데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도현이 권해 한 모금 들이켠 술은 여전히 썼다. 과학실 알코올 맛. 하지만 반병만 마셔도 취기가 돌았던 예전과 달리 현재는 왠지 한 병도 거뜬할 거라 느껴졌다.
그렇게 도현이 따라 주는 술을 받아 마시다 보니 저도 모르게 두 병을 넘어 버렸다. 그럼에도 조금 정신이 몽롱할 뿐 토하거나 다음 날 일어났을 때 어제 있었던 일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는 아니었다.
“산책할래?”
“싫은데.”
“잠깐 걷자.”
식사를 끝내고 정말 집에 가려는데 도현이 또 이겸을 붙잡았다. 거절이 무색하게도 결국 그에게 이끌려 주변 커피 가게에서 따뜻한 음료를 테이크아웃해 근처 공원 둘레를 산책했다.
이겸도 문득 자신이 왜 어울려 주고 있나 의문이 들었으면서도 착실히 그의 뒤를 따랐다. 오늘따라 서도현의 기분이 평소보다 들떠 보인다면 착각인가.
“야, 너 기분 좋아 보인다?”
이겸이 불시에 말을 내뱉었다. 술이 올라오는 탓에 더위를 느껴 매듭짓지 않은 목도리가 바람을 타고 휘날렸다.
앞서 걷던 도현이 뒤를 돌았다. 얼굴엔 생글생글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응. 좋아.”
그의 손이 이겸의 눈가에 닿았다. 정확히는 아까의 전투에서 살짝 긁힌 상처였다.
“다쳤네. 리셋할 걸 그랬나.”
“이깟 상처 하나 낫겠다고 시간을 돌린다고?”
그럼 츄페스 한 번 더 잡으라는 소리 아니냐. 이겸은 제 얼굴에 닿은 도현의 손을 치우며 작게 불평했다.
도현은 뭐가 웃긴지 또 웃음을 터트렸다. 오늘따라 웃음이 많았다.
“술 취했냐?”
“너만 마셨잖아.”
“그러니까. 근데 너 취한 것 같아. 이상해. 나 몰래 마셨어?”
“하하. 그런가? 진짜 기분 좋다. 취한 것 같아.”
왜 저래. 드디어 미쳤나? 이겸은 짤막하게 반응을 해 주며 주변 나무 벤치에 털썩 앉았다. 그 옆을 도현이 따라 앉았다. 잘난 상판엔 아직도 여전히 웃음이 고여 있었다.
도현이 입술을 열었다.
“오늘은 깊게 잠들 수 있을 것 같아.”
“그러시든가.”
그는 따뜻한 음료를 홀짝이며 되는대로 답하는 이겸을 빤히 응시했다.
싫은 척해도 내빼는 법이 없다. 대답도 싫으면 무시하면 될 텐데 퉁명스럽지만 짧게라도 대답해 준다. 방금의 전투도 싫다, 싫다 하면서 결국은 끝까지 해냈다.
사실 처음엔 윤이겸의 존재에 대한 거부감도 없지 않아 존재했다. 나만 똑같이 행동하면 절대 바뀌지 않는 거울 같은 세계. 가상 세계. 잊힐 세상. 그 안에 생긴 궤도를 알 수 없는 유일한 이물.
껄끄러웠다. 무척이나.
그를 잘만 키워 전투 합을 맞추면 서로가 더 성장하고 강해질 수 있는데 그걸 안 따르기도 뭐해 래터로 데려왔었다.
하지만 급박한 상황에서 윤이겸의 대처는 빨랐고, 현명했고, 영민했고, 날카로웠다.
나만이 아는 세상. 나만이 알기에, 남들보다 많이 알기에 지시를 내리는 데도 거침없었다. 그리고… 나와 같은 존재. 지시를 내리지 않아도 되는 존재.
윤이겸은 아닌 것 같지만 도현은 그와 함께 싸우는 전투가 재밌었다. 즐겁고 신이 났다.
윤이겸. 제 세상 속 유일한 이물이기에 유일한 내 편이었다. 전투 중 상황을 공유할 수 있는. 사실상 처음으로 생긴 동료.
“진심으로 환영해.”
그가 난데없이 독백했다. 음성이 살짝 상기된 게 마치 환희로 가득 찬 것처럼 느껴졌다. 이겸은 떫은 표정으로 되물었다.
“뭐, 래터?”
내 세상에 들어온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