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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34)화 (34/102)

#034

딩동- 딩동-.

이겸의 자취방에 시끄러운 초인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문을 열고 나가자 반질반질한 얼굴의 서도현이 서 있었다.

“안녕. 밥은 먹었어?”

“방금 먹었는데.”

“아쉽다. 같이 먹고 싶었는데.”

그는 처음 이겸의 자취방을 방문한 것치곤 익히 자연스러운 태도로 발을 들였다.

“뭔데. 왜 왔는데.”

이겸은 제 휴일을 방해했다는 것에 미미한 신경질을 풍기며 머리를 긁적였다.

“오늘 일 있으니까 비워 놓으라고 했잖아.”

“…그랬다고? 언제?”

내가 그런 걸 잊을 리 없는데. 요즘 어지러운 일들이 많아 까먹었나. 이번 달 스케줄을 떠올리는 이겸을 사이로 도현이 당당히 말했다.

“방금.”

‘진짜 짜증 나네.’

이겸의 속마음이 고스란히 표정에 내비쳤다. 도현은 굴하지 않고 외쳤다.

“크리처 사냥 가자.”

들려오는 언짢은 소식에 잔뜩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번 크리처는 츄페스야.”

“츄페스?”

“아…. 혓바늘 크리처 말이야. 등급은 중인데 상 등급 가까이 돈이 좀 되거든.”

이겸은 가기 싫다는 걸 온몸으로 표현하기 위해 뭉그적거리며 침대에 몸을 뉘어 이불을 머리끝까지 푹 뒤집어썼다.

“피곤해. 혼자 갔다 와.”

도현의 손길에 의해 이불이 살포시 거둬지며 제 머리칼을 사락거리는 감촉이 느껴졌다.

“피곤해?”

“어. 이제부터 잘 거야. 깨우지 마.”

“그래.”

순순히 떨어지는 도현의 허락에 이겸은 불신을 품고 슬그머니 그를 쳐다봤다. 그러자 그가 이겸을 벽 쪽으로 밀더니 자신도 침대에 몸을 눕혔다.

“CA 시각은 저녁이니까 한숨 자고 가도 되겠다.”

“…시발.”

이겸의 입에서 조용히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그걸 들은 도현은 살포시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왜 일찍 온 건데.”

“너랑 놀고 싶어서.”

“난 놀기 싫은데. 서도아나 차재우랑 놀든가.”

“도아는 친구 만나러 갔고, 재우는 다른 용무.”

…이겸이 멈칫했다. 굳이 생각해 보지 않았었는데 따지고 보면 차재우도 래터 이외에 다른 용무가 있겠지. 허구한 날 래터 사무실에 있는 것밖에 못 봐서 당연한 사실을 떠올리지 못했다.

“재우 걔는 집 놔두고 왜 사무실에서 산대.”

“부모님이 타 지역에 계셔서 혼자 살고 있어.”

고등학생이면 아직 독립할 시기는 아닐 텐데. 어린 나이에 고생이네. 도현에게 등을 보이며 벽 쪽에 얼굴을 붙이고 있던 이겸은 제 머리를 부드럽게 간지럽히는 그의 손짓에 졸음이 몰려왔다. 이겸은 자장가처럼 중얼거리는 도현의 말과 함께 잠에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일어나 보니 도현은 침대에 등을 기대고 바닥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고 있었다.

“일어났어?”

먼저 말을 걸지도 않았는데 기척으로 느낀 건지 도현이 휴대폰을 내려놓고 얼굴을 뒤로해 이겸을 살폈다.

“아직 안 갔어?”

침대에 같이 눕길래 잘 줄 알았건만 자지도 않고, 도현은 이겸이 깰 때까지 심심하지도 않았는지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응. 같이 크리처 잡으러 가야지.”

그쯤 되면 집념을 넘어선 집착이었다.

결국 항복한 이겸이 부스스한 몸을 일으켰다. 서도현도 있는데 별일이야 있겠어. 협회 습격 사건 이후로 그에게 마음을 열다 못해 아주 약간의 의지도 하게 된 이겸이었다.

“저녁은?”

“귀찮은데.”

“난 점심도 안 먹었는데.”

“…아.”

이겸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갈 생각이었는데, 약속도 안 잡고 온 탓에 정작 본인은 먼저 먹었다고 하지, 그 후엔 잠들어 버리지…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한 도현이었다.

그는 시계를 확인하더니 시간이 빠듯할 거 같다며 근처 편의점에서 식사를 때우자고 권했다. 그러든지. 이겸은 대충 옷을 챙겨 입고 도현과 함께 편의점을 나섰다.

편의점 테이블 위에 라면을 두고 면이 익기를 기다리던 와중, 이겸은 현재 자신들이 있는 편의점이 권상혁과 처음 만났던 편의점임을 깨달았다.

나무젓가락을 반으로 깔끔히 쪼갠 도현이 운을 떼었다.

“기억나? 이 근처에서 널 만났었는데.”

도현은 답지 않게 뿌듯한 얼굴을 한 채 젓가락으로 컵라면을 휘적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땐 권상혁? 협회 소속이랑 여기 왔었지? 지금은 나랑 오게 되네.”

이거 운명인가? 장난스레 말하는 그의 말에 이겸은 정색하며 삼각김밥을 베어 물었다.

전혀. 지금이야 서도현과, 차재우, 서도아와 어쩌다 같이 지내지만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정신이 아득하다. 도대체 몇 번을 죽은 거야? 서도현이 장난으로라도 그때의 일을 상기시켜 주지 않기를 바랐다.

“미안.”

그리고 사과는 바로 튀어나왔다.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게 빨랐던 그가 이겸의 기분을 알아챈 것이다.

“미안하면 그때 일은 앞으로도 꺼내지 마.”

“응. 곰 젤리 먹을래?”

“줘 봐.”

이겸은 그가 건넨 화해의 젤리를 한입에 모두 털어 넣었다. 입 안에서 질겅질겅 씹히는 게 무슨 맛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묘하게 중독성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오물거리고 있자니 서도현이 물어 왔다.

“네가 다 먹으면 나는 간식 뭐 먹어?”

“먹지 마. 맛없어.”

이겸의 단호한 말에 도현은 묵묵히 라면을 삼킬 뿐이었다.

가벼운 식사를 마치고 인적이 드문 골목길, 이겸은 불안한 눈치로 도현에게 물었다.

“…혓바늘 크리처는 어떻게 생겼어?”

“혀에 바늘이 잔뜩 나 있어.”

“그럼 어떻게 잡아?”

“입을 못 열게 하면 돼. 혀에 난 바늘 빼고 특별한 공격은 없으니까.”

입은 어떻게 못 열게 해? 다물려서. 어떻게 다물게 하는데? 턱을 발로 차. 턱을 어떻게 차? 턱이 가까이 다가오면 발로 차면 돼. 턱은 어떻게 해야 가까이 와? 우선….

그럼 이건? 저건? 어떻게 해야 해? …그건 어떻게 하는데?

이겸은 잔뜩 쫄아 되도 않는 사소한 질문들을 계속했다. 그야 그럴 것이 이번 크리처는 그다지 위험하지 않으니까 너 혼자 잡아 봐, 라는 도현의 전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도현은 귀찮지도 않은지 계속해서 왜? 왜? 거리는 이겸에게 성실히 대답해 주었다. 그러다 이겸과 조용히 눈을 맞추었다.

“겸아.”

“…….”

“무서워?”

“어.”

이겸은 도현의 물음에 자존심을 세우지도 않고, 단번에 수긍했다. 힐끔 그의 눈치를 살폈다. 이러면 봐주지 않을까 싶은 희망을 가지고.

하 등급이면 몰라도 중 등급이기도 했고, 크리처 사냥을 나갈 땐 언제나 서도현과 합을 맞춰 잡았었다. 하지만 뮤턴트 크리처도 잡았었고, 이제는 이겸도 혼자 잡아 볼 때가 되었다고 언급하는 도현에게 내심 겁이 났다.

더 좋은 길드를 들어갔으면 1팀, 2팀, 3팀 등 각 팀에 들어가 여러 명이서 안전하게 크리처를 사냥했겠지만 인원도 다섯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래터였다. 당연히 다수로 크리처를 사냥하면 안전이야 할 테지만 래터는 그럴 수 없었다.

팀은 무슨 개별 활동이 무척이나 많았고, 이겸도 래터에 들어온 이상 그에 익숙해져야 했다. 적어도 도아처럼 중 등급 정도는 홀로 잡을 수 있어야 했다.

도현은 단호했다.

“내 능력 알잖아.”

“알긴 하지. 크리처 나타나면 뭐든 시도해 봐. 너 죽게 안 놔둬.”

죽는 것도 싫긴 한데, 다치는 것도 무섭고 싫어. 이겸이 말을 꺼내려던 순간,

그때였다.

둘의 앞에 크리처가 기괴한 모습을 한껏 드러냈다.

이겸은 본능적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뭐? 혀만 조심하면 된다고? 거대한 지네 모습을 한 그것은 눈이 네 개가 돋아 있었고, 무수한 다리들은 제각기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왜 하필 자신이 상대하는 크리처 종류에는 징그러운 것들이 많은 걸까. 아니면 대부분의 크리처가 징그러운 걸까?

눈을 깜빡이고만 있자 이겸의 손에 단검이 쥐어졌다.

“이걸로 싸워.”

“…서도현.”

그를 불렀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이내 크리처는 곧장 몸을 굴려 다리를 이겸에게 휘둘렀다. 윽, 징그러. 자취방에서 볼 법한 집 벌레 같았다.

다행히 아슬아슬한 차이로 공격을 피한 이겸은 어딘가 위화감이 들었다.

그간 훈련의 성과일까. 발로 할퀴려 하면 피하고, 다가오면 피하고, 주변에 물도 없는데 크리처의 속도가 눈에 훤히 보이는 기분이었다. 크리처를 만나면 무서워 떨기 바쁜 날들과 달리 좀 더 차분히, 시야를 확장하니 그것이 제게 달려오는 장면이 느리게 재생되어 보였다.

그것은 몸을 웅크렸다가 반동을 발돋움 삼아 단번에 달려왔다.

뭐지, 왠지 피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때의 인간형 크리처보다 약해서 그런 건가. 서도현의 말대로 뮤턴트 크리처를 만나고 나니 쉬워 보이기까지 했다.

우선은 오른쪽으로 피한 뒤…, 혀가 위험하다 했지.

이겸은 자신에게 입을 크게 벌리며 다가오는 크리처에 가볍게 방향을 틀어 피하고 도현의 말대로 턱을 걷어찼다.

후하. 잠깐 본 혓바닥은 제각기 크기들의 바늘들로 촘촘히 덮여 있었다.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일 게 뻔했다.

끼엑-. 소리를 내며 크리처는 몸을 잔뜩 움츠려 경계하는 태세를 취했다. 지네가 뱀과도 같이 똬리를 트는 게 신기했다.

그때 도현이 슬그머니 다가와 크리처의 두 번째 마디를 가리켰다.

“저기 금 간 부분 보여?”

“…응.”

“저기가 약점이야.”

그렇게 말하고 뒤로 물러선 도현은 또다시 이겸의 전투를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시계를 확인했지만 이제 막 2분이 지날 무렵이었으니, 아직 시간은 많았다.

이번엔 이겸이 용기 내어 성큼 한 걸음 다가갔다. 크리처는 주춤하더니 이빨을 딱딱거리며 그 사이로 혀를 스윽 내밀었다. 그것을 피해 한 바퀴 크게 돌아 두 번째 마디에 올라탈 무렵, 혀가 채찍처럼 뻗어져 나왔다.

이내 이겸의 눈앞에 촘촘한 바늘들이 다가오고….

“조심하라니까.”

크리처가 스폰(재화, 몬스터 등 특정 물건이나 캐릭터가 나타나는 것을 뜻하는 용어)된 시간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니… 혀가 그렇게 길 줄은….”

이겸은 변명하듯 떨떠름하게 말했다. 또 한 번 이겸의 손에 검이 쥐였다. 크리처 특성에 대해 알고 있으면 나한테도 얘기해 달라고.

투덜거리며 자연히 몸을 뒤로 물렀다. 아까도 이리 공격해 왔으니 지금도 그럴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오른쪽, 왼쪽, 왼쪽, 뒤로 한 발짝, 여기선 턱을 차고….

물 흐르듯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피하고 공격하고, 틈을 봐서 크리처의 몸통에 올라타 두 번째 마디까지 뛰어갔다.

채찍처럼 길게 뺀 혀는 몸을 숙여 피하고 두 번째 마디에 도착했을 때, 지네형 크리처의 마디마디가 꿈틀거리더니 중심을 잃은 이겸을 낚아채 똬리를 틀었다.

“윽…!”

몸이 조이는 것도 조이는 건데 원체 벌레를 좋아하지 않던 이겸인지라 지네에게 잡혔다는 징그러움과 혐오가 더 그를 공포에 떨게 했다.

그리고 다시 또 스폰.

이겸은 지친 눈으로 도현에게 투덜거렸다. 두 손 두 발 다 들고 퉁명스레 내뱉었다. 그건 마치 어린아이의 투정과도 같았다.

“나 안 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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