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33)화 (33/102)

#033

협회 습격 사건이 벌어진 지 며칠이 흐른 어느 평화로운 오후였다.

최근 이겸에겐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유리잔에 담긴 물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고개를 기울였다.

2차 각성 능력.

‘이걸 어따 쓰냐.’

협회에서 싸울 때는 우연히 스프링클러가 터져 도움이 됐다지만, 앞으로의 전투에서도 스프링클러가 있을 거란 장담도 못 하고, 여러모로 난감한 능력이었다.

어쩌면 재우보다 더 쓸모없는 능력 아닐까.

이겸은 앞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차근차근 계획했다. 일단 헌터 테스트를 보고 등록은 마쳤고, 래터에 입단도 했다. 다음은 협회에서 상, 중, 하로 나누어진 등급 테스트를 본다고 했지만 그건 무기한 연기되고 말았다.

아직 협회의 부서진 건물 수복이 끝나지 않은 탓이었다. 인터넷이나 뉴스에서는 협회 건물의 원인이 싱크홀이라 떠들어 댔다.

퍽!

“윽.”

순간 이겸의 뒤통수로 물병이 날아와 꽂혔다.

“어라, 좀 셌나?”

“어, 좀 많이 아프네.”

“죄송해요. 뭔가 저만 일하고 형은 놀길래 감정이 실렸나 봐요.”

그 말을 하면서 재우는 또다시 물병을 집어 던졌다. 이겸은 제 얼굴을 향해 일직선으로 곧장 날아오는 물병을 잡아챘다.

“와! 이번엔 잡으셨네요.”

“…대놓고 던지는 건 무효잖아.”

“헤헤. 죄송해요.”

사과는 하는데 실실 웃기나 하고, 어째 반성하는 기미가 전혀 없었다. 이겸은 묵묵히 물병을 소파 아래에 세워 두었다.

또 물병이 날아오고, 획 하니 몸을 틀어 피했다. 그걸 본 재우는 뭔가 기록이라도 하듯 중얼거렸다.

“세 번 중 한 번 성공….”

이겸은 얼얼한 뒤통수를 문지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런 적이 처음은 아닌지라 제게 날아온 물병들을 익숙하게 줄 세워 정리했다.

이래 보여도 이건 폭력이 아닌 엄연한 훈련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망할 훈련은 협회 습격 다음 날부터 시작되었다.

‘물이 네 시야라면 눈을 감고 있든, 뜨고 있든 상관없이 언제든 볼 수 있게 해.’

서도현은 그렇게 말하며 훈련 시작을 알렸다.

사무실에 있는 동안 누구든 이겸이 방심한 틈을 타 물병을 던지면 되는 아주 간단한 방식이었다. 그걸 이겸이 피하면 된다. 위험 감지도 예민해지고, 능력 발동 시간도 줄일 수 있으니 취지는 좋았다.

그래, 취지만.

‘악!’

‘죄송해요. 저는 그냥 제 침대에 허락 없이 누워 계시길래.’

다들 말에 숨겨진 가시가 있었다.

심지어 어떨 때는 물병 뚜껑이 제대로 안 닫혔는지 물을 뒤집어쓴 적도 있었다. 물론 사과는 받긴 했지만… 혹시 나 미움받고 있나? 일부러는 아니겠지? 이런저런 의심도 들었다.

이쯤 되니 훈련을 빙자한 폭력이 아닌가 싶었다. 좀 더 다른 방식의 훈련은 없는지 서도현에게 물어봐야….

휘익-. 탁!

“오오! 형 잡으셨어요! 네 번 중에 두 번. 대략 33% 확률이 50%로 올랐네요!”

짜증 나는 건, 몇 주간 주야장천 이 짓만 반복한 탓에 반응이 빨라진 것 같기도 했다. 훈련의 성과가 있다는 소리였다. 훈련을 그만두자 말하기엔 조금 섣부른가.

도현과 도아는 아직 사무실에 도착하지 않았고, 이겸은 의자에 앉아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던 재우에게 물었다.

“재우야, 자경단이 뭐야?”

지난번, 사건이 있고 나서 협회에서 사람들이 떠드는 걸 대충 들었다.

“블러드 헌터 잡는 헌터들이요.”

“블러드 헌터?”

그간 크리처 세계에 발을 들인 지 얼마 안 돼 딱 한 번 만나 본 게 전부였다. 그동안 다른 일들로 바쁘고 해서 생각할 틈도 없었는데 협회에서 벌어진 사건이 블러드 헌터의 습격에 의한 거라니 알아둬서 나쁠 건 없다 여겼다.

어디 자료 같은 건 없나?

“길드와는 또 다른 단체인데, 마스터도 옛날엔 자경단 소속이었어요.”

“…서도현이?”

“네.”

‘손 턴 지가 언젠데.’

그때 했던 말의 뜻이 이거였나.

그보다 걔는 언제부터 헌터였던 거지? 지금 18살인 재우랑 도아도 헌터니까 서도현도 대충 18살 때부터 시작했나? 그럼 그 나이 때부터 크리처 사냥하고, 블러드 헌터 잡고 그런 건가? 안 무섭나?

“일하라고 앉혀 놨건만, 놀고 있었어?”

종이 가방에 한가득 짐을 챙겨 온 도현이 유리문을 열고 들어오며 말했다. 떠드는 소리가 밖에까지 들린 건가. 그 뒤로 빼꼼 도아가 물병을 던졌다.

“겸이 오빠! 받아요!”

“말하고 던지면 당연히 받지.”

“이건 훈련이 아니라 인사죠, 인사.”

언제부터 인사가 이리 난폭해졌지. 이겸은 오늘만 벌써 다섯 번째의 물병을 적립했다.

도현은 챙겨 온 물건을 내려놓았다. 짐이 넘치게 담긴 탓에 종이 가방들이 부스럭 소리를 내며 하나같이 입구를 벌려 댔다. 재우는 얼굴을 들이밀어 내용물을 확인하고 해맑게 미소 지었다.

“이거 제가 제일 좋아하는 컵밥이네요! 그리고 이것도!”

사무실에 있을 때 먹을 인스턴트 음식들과 각종 주전부리의 보급이었다.

“아이스크림도 있네.”

“아이스크림 좋아해?”

이겸이 아이스크림 포장지를 까자 도현이 불쑥 물었다. 그럭저럭, 이라고 답하며 한 입 베어 물었다.

도현은 종이 가방을 뒤적거려 맨 아래 깔린 물병을 잡아 꺼냈다. 그러곤 이겸의 머리에 툭 가져다 대었다.

“눈치 못 챘어?”

“…숨겨 왔냐?”

“응.”

위협이 있었으면 반응했을 거야. 이겸은 변명하듯 툴툴거리며 아이스크림 나무 막대를 잇새로 갉작였다.

그때 도현이 이겸의 눈가로 손을 뻗었다.

“속눈썹.”

“아.”

지난 사건을 통해 도현과 이겸은 서로에게 아주 조금 유해졌다.

이겸은 제 눈가를 벅벅 문질렀다. 원래라면 말로 알려 주면 되지 굳이 만지냐고, 속된 말로 지랄발광을 했을 텐데 지금은 묵묵히 아이스크림만 먹을 뿐이다.

관계에 진전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도현은 자꾸만 그걸 확인하려 들었다.

처음은 어깨동무였다. 그 후에는 목뒤도 슬쩍 스치듯 만져 보고 머리도 쓰다듬어 보고 이내 얼굴 쪽으로 올라오고 이겸의 귀를 지압하듯 문질문질했다.

번거롭다며 손을 쳐 내긴 해도 이전만큼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도현은 그 변화가 기꺼워 자꾸만 다가갔다.

그러다 일정 선을 넘으면….

탁.

“그만 좀 해.”

이겸은 서도현이 만졌던 제 귀를 소독이라도 하듯 꾹꾹 눌러 문질렀다. 마치 얼굴, 등, 허리는 허락해 주는데 배와 꼬리는 절대 만지지 못하게 제 딴에는 작은 송곳니를 매섭게 드러내는 고양이 같았다.

“두 분 친해지셨네요.”

재우가 과자를 우물거리며 스쳐 가듯 말했다.

“그래 보여?”

“어떻게 그런 생각을….”

예쁜 웃음을 짓는 도현과 반대로 잔뜩 충격을 받은 이겸이 중얼거렸다. 재우가 언급하고 나서야 지금껏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확실히 서도현을 대하는 게 많이 부드러워지긴 했지만 그게 친해 보이는 수준인가?

타인과 친해지는 방법은 몇 가지 있다.

서로의 취향과 성격이 맞는다.

둘만의 비밀을 공유한다.

속마음을 시원하게 터놓는다.

취향과 성격은 모르겠지만, 이겸과 도현은 오직 서로만이 기억할 수 있는, 잊힌 세계를 공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속마음이라 하긴 뭐하지만 따지고 보면 도현이 무얼 할 때마다 이겸은 마음속 깊이 우러나온 욕설을 서슴없이 해 주었다.

그렇게 보면 친하다고 볼 수도 있었다.

현재 이겸은 애매한 상태였다.

언젠가 이겸은 지칠 것이다. 서도현이 있는 한, 그가 능력을 남발하는 한 지칠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도현은 추후에 이겸의 유일한 이해자가 될 것이다.

독이자 약.

나중에 이겸이 힘들어질 때, 잊힌 세계 탓에 혼란스러워할 때, 모든 걸 기억하고 있는 이는 가족도, 강태하도, 차재우도, 서도아도,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서도현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도현에게 있어 이겸도 마찬가지였다.

서로가 서로의 이해자.

그게 현재 상태였다.

서도현을 앞에 두고, 가까이 다가설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상태.

이걸 이제야 깨달아 버린 이겸은, 시선을 돌려 제 옆의 도현을 바라봤다. 그는 이겸을 마주 보고 입매를 가느다랗게 늘어트렸다.

그 웃음에서 짐작했다. 확신했다.

서도현은 진즉에 이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걸.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