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32)화 (32/102)

#032

“…왜 집으로 안 태워 주고?”

도현의 차를 얻어 타고 도착한 곳은 래터의 사무실이었다. 당연히 자신의 자취방으로 데려다줄 것이라 여겼던 이겸은, 내내 잠을 청한 덕분에 뻐근해진 눈을 문질렀다. 물론 한숨 자고 일어나니 연신 시큰거리던 눈의 고통이 줄어들기는 했다.

도현은 이겸과 눈을 맞추며 싱긋 웃었다.

“이런 날에 혼자 있으면 무섭잖아.”

“…씻고 바로 자고 싶은데.”

“여기도 침대 있어. 어설프지만 샤워 시설도 마련돼 있고.”

“…….”

“내가 무서워. 그러니까 같이 있자.”

제 어깨를 잡아 사무실로 이끄는 서도현의 보챔에 이겸은 어쩔 수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면서도 투덜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씻고 싶은데.”

“응. 씻어.”

“수건도 없는데.”

“있어.”

“옷 없는데.”

“내 거 줄게.”

…속옷은 어떡하려고. 차마 그거까지 묻진 않기로 했다.

다행히 씻고 나오니 서도현이 근처 편의점에서 속옷을 사 왔는지 수건, 옷가지와 함께 태그도 떼지 않은 속옷이 앞에 놓여 있었다.

옷을 챙겨 입은 이겸이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나왔다. 이번 달 CA 지역으로 선정된 곳들을 살피고 있던 도현이 말을 걸었다.

“피곤할 텐데 한숨 자.”

그에 귀여운 캐릭터 이불이 있는 도아의 침대로 가 몸을 뉘었다. 도현은 가만히 그의 모습을 지켜보다 한마디 덧붙였다.

“머리 안 말려?”

“피곤해. 자는 게 먼저야.”

자고 일어나면 말라 있겠지. 그렇게 중얼거린 이겸은 살며시 눈을 감았다.

오늘 내가 몇 번이나 죽었더라. 실질적으론 두 번. 그럼에도 죽음이란 공포는 매서우리만치 가깝게 느껴졌다. 같은 상황만 반복하다 보니 머리가 어떻게 되기라도 한 것 같았다. 서도현은 싸울 때마다 항상 이 기분이 드는 건가? 그보다 쟤는 잠도 안 오나? 그렇게 전투를 하고도?

그때 뚜벅뚜벅. 제게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우악스레 몸을 일으키는 손길에 하는 수 없이 상체를 일으키며 흐리멍덩하게 눈을 떴다.

“왜 자꾸. 피곤하다고.”

“머리 말려 줄게. 젖은 머리로 자면 도아한테 혼나. 그거 도아 베개거든.”

“…너는 안 자?”

“잤으면 좋겠어?”

“아니. 침대 좁아.”

소파에서 잘 거라는 생각은 안 하나 봐. 그는 웃으며 대꾸하고는 드라이어를 찾아 코드를 연결한 후 이겸의 머리카락을 말려 주었다. 이겸은 따스한 바람을 맞으며 고개를 푹 숙인 채 눈을 감았다.

테스트를 보러 갔다가 우연히 사건에 휘말리게 되어 다사다난한 하루였다. 와중에 2차 각성도 해 버렸다. 하루가 너무나도 스펙타클했다.

도현도 그걸 알았는지 장난스레 말했다.

“우리 겸이가 보스 몹을 잡아 버렸네.”

“잡은 것도 아니지. 네가 잡았고 하나는 도망쳤잖아.”

“한 마리는 죽였잖아.”

“그래도 찝찝해.”

그렇게 대화하던 중 도현은 노곤한 피로가 찾아와 꾸벅꾸벅거리는 이겸의 뒤통수와 옷깃 사이로 드러나는 하얀 목을 쳐다봤다. 원래는 손만 닿아도 화들짝 놀라거나 으르렁대던 이겸이었는데 오늘 한 전투에서 조금이라도 마음을 연 건지 제게 편히 젖은 머리칼을 맡긴 채였다.

자신만 보면 등허리를 둥글게 바짝 세운 채 하악질을 하는 고양이가 어느 날 꾹꾹이는 아니더라도 제 품에서 골골대는 느낌이었다.

문득 도현이 시선을 옮기자, 이불 위 이겸의 손가락에 끼워진 래터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싫어하는 티를 내더니 가만 보면 빼놓지 않고 꾸준히 잘 끼고 다니는 게 귀엽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최소로 줄인 드라이어의 바람 소리가 들려오며 검은 머리카락이 휘날려 앙증맞은 귀가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겸아.”

유리문을 덜컹이는 바람 소리,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 탓에 수증기가 이는 화장실, 전기장판이 켜진 침대 위, 미용실 가운이라도 된 듯 목 끝까지 푹 덮어쓴 이불.

머리칼이 어느 정도 다 마르자 도현은 열이 오른 드라이어를 끄고 벽에 머리를 기댄 채 곤히 졸고 있는 이겸의 귀를 만지작거렸다. 정확히는 자신이 피어싱을 뚫은 곳과 같은 위치인 귓바퀴를 문질렀다.

정적을 뚫고 그의 목소리가 자장가처럼 나지막이 들려왔다. 왜 그 말을 했는지는 그 자신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여기 뚫으면 예쁘겠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

“오빠!”

“형!”

학교를 마치고 뒤늦게 소식을 접한 도아와 재우가 래터 사무실 문을 벌컥 열고 소리쳤다. 도현은 소파 너머에서 조용히 입술 위로 검지를 가져다 댔다.

서도아는 침대 위에 곤히 잠들어 있는 이겸을 힐끔 보고는 울상인 얼굴로 성큼성큼 소파로 다가가 도현의 얼굴을 샅샅이 훑었다.

“협회에 크리처 출몰했다며! 오빠들 다친 곳은 없어?”

“멀쩡해.”

“형, 괜찮으세요? 겸이 형은 언제부터 잤어요? 아니, 기절한 건가? 그러게 우리가 학교만 안 갔으면 같이 협회도 갔을 테고, 싸우는 것도 같이했을 텐데!”

“겸이 자고 있으니까 조용히 하자.”

도현은 시끌벅적해진 분위기에 읽고 있던 책을 덮고 치웠다.

마침 이겸이 소란 탓에 부스스 이불을 뒤집어쓰고 상체를 일으켰다. 그러곤 자다 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시끄러….”

“겸이 형! 괜찮아요? 다친 곳은? 없어요? 무사하죠?”

“치료받았어. 문이나 제대로 닫고 들어와.”

문을 박차고 들어온 탓에 그나마 찬 바람을 막아 주던 유리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이겸의 명령에 냉큼 문을 닫고 온 도아는 침대에 걸터앉은 후 이겸의 두 볼을 꾹 눌러 붙잡았다.

으우…? 꾹 눌러 볼록 튀어나온 입술이 이상한 효과음을 내었다. 도아는 개의치 않고 이겸의 좌, 우, 위, 아래 얼굴을 꼼꼼히 살폈다.

“세상에. 우리 잘생긴 오빠 얼굴이 홀쭉이가 되었네!”

“아니… 구러케까지눈….”

제 친오빠인 서도현을 살필 때와는 천차만별인 반응이었다. 당황한 이겸이 변명하듯 말했지만 힘이 어찌나 센지 볼이 눌려 어설픈 발음이 튀어나왔다.

“이것 봐! 여기 목에 긁힌 건 뭐야! 협회에서 치료 제대로 안 해 줘요? 내가 가서 확 따져?”

“어디. 긁혔어? 못 봤는데.”

도아의 말에 서도현이 벌떡 일어나 이겸에게 다가왔다. 그다지 큰 상처는 아니고 놔두면 자연스레 아물 상처였지만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언제 난 거지?

“어쩐지 샤워할 때 따갑더라니.”

도아의 억센 손아귀에서 겨우 풀려난 이겸이 긁힌 목을 주무르며 시선을 회피했다. 그러다 홀로 코코아를 타 먹으려던 재우를 발견했다.

“재우야. 내 것도 좀 타 줘.”

그리 말하고는 다시 이불을 푹 덮어써 베개에 머리를 뉘었다.

“오빠 그거 제 베개예요. 이불도 제 거고.”

“…나 아픈데.”

이겸은 베개에 얼굴을 비비적거리며 도아를 올망졸망 올려다봤다. 그녀가 얼이 빠진 낯을 했다.

“와, 아까는 괜찮다면서. 다 큰 성인 남자가 애교 부리네.”

도아의 손길은 무의식적으로 이겸의 이불을 끌어 올려 더욱 푹 덮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감탄은 또 한 번 터져 나왔다. 이겸이 재차 밀려오는 졸음을 참기 위해 눈을 가늘게 뜨고 얕게 하품할 때였다.

“오. 갓 태어난 새끼 고양이 같네. 오빠 얼굴은 진짜 봐 줄 만하네요.”

…존대해 주는 건 고마운데, 어째 워딩이 좀 그렇지 않나? 이럴 거면 그냥 반말해도 되는데. 이겸은 도아를 무시하기 위해 이불을 머리끝까지 푹 뒤집어썼다.

“저희 둘이 학교에서 소식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도아의 걱정과 함께 그때 침대 끝 쪽의 쿠션이 꺼지는 감각이 느껴지며 재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 여기요. 그러니까. 완전 깜짝 놀랐잖아요. 이놈의 학교 자퇴하든지 해야지.”

이야기가 왜 그렇게 흐르지? 결국 이겸은 몇 분도 채 안 돼 누워 있던 몸을 일으키고 재우를 타박하듯 그의 이마에 가볍게 딱밤을 때렸다. 이후 여유롭게 코코아를 받아 마셨다.

이윽고 재우가 침대 안쪽까지 들어가고 도아의 옆에 도현이 걸터앉았다. 싱글 사이즈의 작은 침대 위에 네 명이 오손도손 앉아 있는 꼴이었다.

“좁잖아. 다 내려가.”

“내 사무실인데 왜.”

“제 침댄데 제가 왜요.”

“저… 전, 그냥 있을래요. 코코아도 타 드렸잖아요.”

어법만 다르지 하는 내용은 똑 닮은 남매와 뻘쭘하게 제 권리를 호소하는 재우였다.

“그보다 형! 거기서 무슨 일 있었는지 말해 줘요! 게다가 뮤턴트 크리처라면서요!”

“별거 없었어. 도중에 겸이가 2차 각성하고 크리처 물리친 게 다야.”

“각성? 오빠 각성했어요? 능력은요?”

이겸은 걱정 반, 호기심 반의 눈으로 초롱초롱하게 올려다보는 아이들에게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그래서 내가 가시를 맨손으로 잡고….”

“히익, 그걸 잡았어요?”

“어디 봐요.”

“치료받아서 다 나았어.”

재우와 도아는 이겸의 손바닥을 확인했다. 이겸은 그들이 보기 쉽게 손을 쫙 펴 주며 자신보다 서도현의 손 상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협회 힐러들은 상처 하나도 제대로 치료 못 해?”

“우리 말고도 심각한 부상자는 많았으니까. 이 정도 상처야….”

도아의 타박에 도현이 붕대를 감은 손으로 주먹을 쥐어 보였다.

“뭔 짓이야. 덧나고 싶어?”

이겸이 기겁을 하며 그를 말렸다. 그 사이로 재우가 이겸을 작게 불렀다.

“겸이 형, 겸이 형. 그래서 2차 능력은 뭐예요?”

“그러게. 나도 궁금하네 겸아. 정확한 능력이 뭐야?”

이겸은 입술을 늘어트렸다. 헌터 간에도 서로의 능력을 캐묻지 않는 게 예의의자 이 바닥의 불문율이라고 권상혁에게 들었었다.

그 때문에 지금 저를 보는 세 개의 시선을 느끼자니 살짝 망설여졌다. 헌터들은 자신의 능력을 일부러 드러내지 않는다지만, 다른 헌터들에게 제 능력을 꼭꼭 숨기는 서도현도 래터 길드원에게는 시원하게 까기도 했고…. 이내 숨겨 봤자 뭐 어쩔 건가 싶은 마음에 이겸은 훌훌 털어놓기로 했다.

“물이야.”

“물이요? 막 물 조종하고 그런 건가?”

“물이 있는 곳 어디든 내 시야가 닿는 것 같아. 근데 하고 나면 눈이 좀 따갑네.”

“지금은 괜찮아요?”

자고 일어나니 괜찮아진 것 같다는 이겸의 말에 도아는 바로 테스트를 해 보겠다며 한쪽 편에 구비해 둔 생수 묶음의 앞에 쪼그려 앉아 이겸에게 보이지 않는 위치에서 다섯 손가락을 쫙 폈다.

“이거 몇 개예요?”

이겸은 눈을 감았다. 우선 주변 물건들의 위치와 사무실의 공간 같은 걸 상상한 후에 도아 쪽을 보려 노력했다.

솜털이 바짝 곤두서는 전투 상황이 아닌 생명의 위협도 없고, 마음 편안한 한적한 사무실이다 보니 아까만큼 스피드가 빠르지 않았다. 혹은 능력을 과도하게 쓴 탓에 느려진 걸 수도 있었다.

“오빠, 저 손에 쥐 날 것 같아요. 아직 멀었어요?”

5분이 넘게 흐르고 나서야 이겸은 정답을 맞혔다.

“5?”

“오! 맞혔어요. 찍은 건 아니죠? 그럼 이건요?”

“…손 하트는 왜 하는 거야.”

“와, 신기하다.”

손을 움직이는 족족 맞추는 게 신기해 물 앞에서 이리저리 손장난을 치던 도아는 퍼뜩 스치는 생각에 울상을 지었다.

“나 앞으로 여기서 샤워 못 하겠다.”

이겸의 고운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감겼던 눈을 번쩍 뜨고는 생수 앞에 앉아 있는 도아를 보고 호언장담했다.

“그딴 변태 짓 안 하니까 걱정 마.”

“혹시 모르잖아요. 초반이라 능력 제어 못 할 수도 있고.”

“겸아, 아까 싸울 때도 생각했는데, 발동 시간이 좀 걸린다.”

도아의 말을 빠르게 잘라 낸 도현은 버릇처럼 시계를 살폈다. 능력이 시간과 연관이 있다 보니 특별히 중요한 일이 없더라도 일단은 시계부터 확인하게 되었다.

“몇 분 걸렸는데?”

“5분 32초.”

“근데 나 아까는 빠르게 발동했는데.”

“아니. 느려.”

그의 단호한 말에 이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때는 능력을 발동하는데 1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그게 느리다고?

하지만 억울함을 호소하려 벙긋거렸던 입술은 도현이 덧붙인 말에 꾹 다물리고 말았다.

“1:1 전투 상황이라면, 발동 전에 이미 죽었어.”

“…그럼 얼마나 빨라야 하는데.”

“위험을 인지한 즉시? 그 전이면 더 좋고.”

그게 가능한가. 위험을 어떻게 알고 미리 능력을 발동시켜. 그걸 알면 거의 미래 예측 수준 아닌가? 인간의 영역이야?

이겸이 말없이 입술을 비죽 내밀자 도현은 왜 그리 쉽게 포기하냐며 김빠진 웃음소리를 내었다.

“왜. 너 감 좋잖아. 할 수 있어.”

“아니, 그래도 그건….”

불현듯 어떤 순간이 이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다. 도현은 그 전부터 이상함을 감지했다. 지진이 나거나 해일이 불어 닥쳤을 때, 자연재해가 발생하기 전 동물들의 전조 증상 같은, 도현의 촉은 짐승의 본능, 직감 그 무언가와 비슷했다.

이겸은 제 가슴팍에 손을 올렸다. 크리처에 의해 이곳이 관통되었을 때, 도현은 이미 능력을 발동 중이었다. 그게 아니었으면 자신은 진작에….

그걸 떠올리자니 위험을 인지한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실감이 났다. 찾아오는 섬뜩함에 빠른 손길로 제 가슴을 더듬었다. 도현은 그런 그를 힐끔 보고는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재우가 활기차게 말문을 텄다.

“겸이 형 2차 각성도 했고, 특별한 날인데 저희 회식이라도 해요! 고기! 소고기 먹으러 가요!”

“뭐? 난 파스타 먹고 싶은데. 겸이 오빠는요?”

“아무거나.”

이겸은 먹던 코코아 컵을 서도현에게 건넨 후, 눈짓으로 옆 선반에 놓으라 시킨 뒤 다시금 이불 속으로 꼼지락 들어가 몸을 눕혔다. 도현의 말대로 다 같이 사무실에 모여 있으니 직전의 두려움이 생각나지 않기도 했고, 몸이 노곤해졌다.

“이 형 되게 눕는 거 좋아하네. 그만 일어나요-. 밥 먹으러 가야죠. 마스터가 사 주신대요!”

“그러고 보면 오빠 첫날도 제 침대에서 졸고 있었죠.”

“이참에 침대나 하나 더 살까?”

도현은 이겸의 상처 난 목 주변을 갉작이며 중얼거렸다. 이겸은 간지럽다는 듯 까칠한 삵처럼 그의 손을 탁! 치고는 이불을 코끝까지 올려 썼다.

“뭔 침대야. 지금도 사무실 좁아터졌건만.”

회식 메뉴를 정한다며 아웅다웅하는 도아와 재우의 말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처음에 마냥 무섭고, 낯설고, 어렵기만 했던 서도현도, 래터도, 헌터 세계도 점차 적응하며 이 상황들이 조금은 익숙해지는 것도 같았다.

더럽고, 좁아터졌다 여기는 사무실이 지금은 아늑하고 따스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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