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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31)화 (31/102)
  • #031

    도현은 망설이지 않고 그의 목을 향해 검을 치켜들었다. 목 주변이 부식되어 썩어 문드러지고 있던 게 보였다. 검의 길이가 짧았던 게 한이었지.

    그렇다면…. 늘이면 그만. 그는 고통도 없는지 검날을 손으로 꽉 쥐고는 검날과 칼의 손잡이 부분을 분해했다. 피가 뚝뚝 흐르는 손으로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크리처의 경추로 검을 찔러 넣었다.

    “끼에에에엑-!!”

    하지만 크리처가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 이리저리 몸부림치는 탓에 그 위에서 떨어지지 않게 몸을 깊게 숙여 저항을 줄였다. 뒤를 돌아 상황을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제게 날아오는 공격은 믿음직한 이겸이 모두 막아 주고 있을 테니.

    여기까지 상황이 진척됐다면 곧 크리처의 행방이 묘연해질 테다.

    그렇겐 안 되지. 그 전에 끝낸다.

    서도현은 손잡이의 뒤꿈치로 크리처의 경추에 박힌 칼날을 꾸욱 눌렀다. 그러자 아까와는 다른 소리가 터져 나왔다. 명백히 급소를 공격당한 소리. 크리처의 행동이 멈추었다.

    크리처가 땅에 웅장한 소리를 내며 쓰러졌고, 도현은 몸을 급히 뒤로 뺐다. 아까 타격을 입은 위치였다. 그렇다면 그곳에 무언가가 있었다는 뜻. 팔을 뻗어 그것을 잡아챘다.

    사람의 다리를 만진 느낌이었다. 이내 손등에 보이지 않는 칼이 꽂혔다. 그렇다고 물러날 도현이 아니었다. 이 정도야 익숙한 고통이라고.

    그는 오히려 잘됐다며 스스로 자해라도 하듯 칼을 더 깊게 박았다. 손바닥이 관통되며 도현이 잡았던 투명한 무언가의 다리에도 칼이 꽂혔다.

    ‘잡았다!’

    하지만 실패는 거기서 비롯되었다. 머리로는 고통이 익숙하다 해도 그의 손은 관통된 탓에 저릿함이 찾아오며 손아귀에 힘이 빠졌다.

    손 틈새로 다리가 빠져나감과 동시에 달려가는 소리.

    서도현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누군가에게 미세한 분노를 표출했다. 거슬린다는 듯 제 오른 손등에 박힌 칼을 쑤욱 빼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섰다.

    ‘서도현!!! 네 왼쪽!’

    처음은 왼쪽. 그의 눈에 짙은 서리가 끼며 그대로 칼을 내리꽂았다.

    정답.

    어딜 찔렀는지 위치는 자세히 모르지만 찌르는 느낌은 있었다. 상대는 투명화 능력을 가진 것 같았다. 도현이 찔러 넣은 칼마저 투명해지며 사라졌다. 카멜레온 같은 능력이네.

    그다음은 어디지? 이번에도 f5에 b4인가? 그러기엔 상황이 조금 많이 바뀌었는데.

    전투에 있어 이겸은 참으로 듬직했다. 한번 경험하면 두 번째는 망설이는 법이 없었다.

    “c6의 a1.”

    이겸이 잔잔히 그의 위치를 공표했다.

    “c8의 f6.”

    “입구 막아!”

    도현의 외침과 함께 얼음 사용자가 건물 입구를 단단히 틀어막았고, 도현이 주워 던진 검은 정확한 궤도를 그리며 날아가 푹- 꽂혔다.

    “g8의 c4.”

    분명 다리에 부상을 입었을 텐데. 쥐새끼처럼 잘도 뛰어다녔다.

    이겸은 감고 있던 눈을 도사리며 재차 말했다. 체스보드를 언급할 필요도 없었다.

    “입구 앞!”

    동시에 와장창- 굉음이 일며 입구를 막고 있던 얼음 장벽이 맥없이 뚫려 기어코 적의 탈출을 허락하고야 말았다.

    도현은 숨을 내쉬며 호흡을 골랐다. 방금의 상황은 기억했고, 그대로만 다시 움직이면 놈이 도망치는 경로도 같을 거다.

    앞으로 두 번 남은 리셋. 능력을 많이 써 평소보다 숨이 거칠어지긴 했지만 못 할 것도 없었다.

    “겸아, 다시….”

    재차 리셋을 하려던 그는 눈을 뜬 윤이겸을 보고 말을 멈추었다. 이겸이 쓰라린 안구를 손등으로 꾸욱 지압했다.

    “어, 리셋해.”

    “…윤이겸.”

    도현이 팔을 뻗어 이겸의 얼굴을 제게 끌어와 그의 눈 상태를 확인했다. 핏줄이란 핏줄은 다 터져 흰자위가 이제 붉은 자에 가까웠다. 자신이 눈앞에 있는데도 이겸의 검은 동공은 대상을 찾지 못하고 잘게 진동했다.

    “너 눈이.”

    이겸은 껄끄럽다며 도현의 가슴팍을 밀쳤다.

    “리셋하면 원래대로 돌아와. 다음엔 더 잘 브리핑할 테니까….”

    “그만하자.”

    “…뭐?”

    “그만하자고.”

    도현은 큰 손으로 이겸의 눈을 덮었다.

    “이제 보지 마.”

    “다 잡아 놓고 무슨 소리야. 다음번엔 분명히…!”

    “괜찮아. 이제 보지 마. 안 그래도 돼.”

    도현으로서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다 잡은 생선을 목전에 두고 놓아주는 꼴이었다. 몇 번의 리셋 기회를 남기고도 그는 결단을 내렸다.

    처음으로 내린 결단이었다. 혼자였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이겸이 래터가 아닌, 타인이었다면 그의 실명을 방관하고서라도 놈을 잡았을 테다. 도현은 크나큰 기회를 놓치는 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으니까.

    그는 다시금 능력 사용을 시도하는 이겸의 어깨에 제 이마를 기댔다. 나른한 숨을 들이쉼과 함께 심심한 말을 건넸다.

    “겸아.”

    이겸에게서 제 과거의 모습을 비추어 보는 걸지도 몰랐다. 반복을 통해 완벽하기를 바랐고 완벽함을 이루었다. 그 후에 찾아드는 공허함.

    “우리 그만 쉴까.”

    그것은 마치. 차마 어릴 적 자신에게 해 주지 못했던, 일종의 위로나 다름없었다.

    사상 초유의 협회 습격 사건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

    하아….

    이겸은 벽에 등을 기댄 채 아무 곳에나 자리 잡고 털썩 주저앉았다. 더 이상 서 있을 힘이 남아나질 않았다.

    헌터에는 헌터의 지침이 있는 건지 사상자가 많이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119나 112는 부르지 않았다.

    이겸은 한편에 놓인 뮤턴트 크리처의 사체를 확인했다. 도현이 크리처의 숨통을 끊었다. 하지만 다른 하나는 끝내 놓치고 말았다.

    씁쓸한 전투였고, 찜찜한 승리였다.

    전투가 끝나고 몇몇은 머리끝까지 흰 천을 덮어쓰기도, 몇몇은 힐러에게 치유를 받기도 했다.

    이겸과 도현 역시 힐러에게 간단한 치료를 받았다. 가시에 베인 손은 몰라보게 아물었다. 병원에 간다면 필시 꿰매야 할 상처였지만 힐러가 몇 분간 기운을 불어 넣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도현은 손이 아예 관통된 거라 며칠 두고 봐야 하는 상처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겸은 능력의 후유증으로 눈알이 시큰거리는 고통에 그냥 감기로 했다. 시각이 멀어지니 청각에 모든 신경이 집중되었다.

    전투가 끝나니 하나둘 입이 풀리는 모양인지 얼 타던 사람들도 방금 제 기술 어땠냐고 능청 떨기 바빴다. 그때 저 멀리서 다른 헌터들의 속닥임이 들려왔다.

    “있잖아. 래터 신입… 이제 막 1차 각성 했다고 하지 않았어?”

    “어. 오늘 헌터 테스트 봤대. 싸우다 2차 각성 한 건가? 근데 무슨 능력이지? 눈 감고 있던데… 천리안? 뭐 그런 건가.”

    “근데 래터는 왜 신입도 잘 싸우냐….”

    “그러니까. 근데 인성은 좀…, 나 저분이 던진 물건 맞고 넘어졌잖아.”

    “너 안 넘어졌으면 그때 크리처한테 죽었어.”

    “아니… 그건 아는데, 말로 하면 어디 덧나나.”

    따지고 보면 그들에게 이겸은 전투에 들어가자마자 능력을 발동시킨 후, 유려한 몸놀림으로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구해 주고 마지막엔 도현을 도와 크리처의 공격을 막기도 했고, 투명화 능력으로 추정되는 적을 끝까지 뒤쫓기도 했었다.

    괴물 신입을 들였다는 말에 이겸의 입가에 허무한 미소가 피어났다. 신입도 잘 싸운다고? 너희도 똑같은 상황을 몇 번이나 겪어 봐라. 그럴 수밖에 없을 거다.

    도현은 치료를 받은 후, 손에 붕대를 감은 채 태웅과 짤막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뒤 이겸에게 다가와 장난스레 물었다.

    “생존한 소감은 어때?”

    “지금 장난이 나와? 우리는 살았다지만 다른 사람이 죽었는데….”

    이겸이 따끔거리는 눈을 뒤로하고 살며시 뜸과 동시에 곧장 도현의 큰 손이 눈을 감으라는 듯 얼굴을 덮어 왔다. 그 손길이 못내 간지러웠던 이겸은 괜히 툴툴거렸다.

    도현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이겸의 팔을 잡아 일으켜 제 코트를 둘러 주었다. 이겸이 벽에 등을 기댄 채 가만히 눈을 감고 서 있으니 그는 마치 아기 새를 돌보는 어미 새처럼 코트 단추도 손수 잠가 주었다.

    물에 옷은 쫄딱 젖고, 이곳저곳 베이고, 피에도 물든 탓에 이겸의 옷은 넝마가 된 상태였다.

    반면 도현의 옷은 크리처의 부산물로 특수 제작한 아이템인지 뭔지의 능력으로 전투 흔적 하나 없이 말끔한 상태였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전투를 한다면 서도현과 같은 옷은 필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옷들은 얼마 하냐?”

    “이거? 하나 사 줄까?”

    “그럼 좋지.”

    공짜로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서도현은 거기에 말을 더 얹었다.

    “다음에 같이 사러 가자.”

    이겸은 앞이 보이지 않는 게 답답해 다시금 슬며시 눈을 떠 도현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미미하게 입꼬리를 평소보다 더 올리고 있었다.

    “맘대로.”

    지쳐 그런지 이겸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육체는 겨우 10분 남짓한 시간을 싸웠다지만 정신적 피로감은 어마했다. 자꾸만 감기려는 눈꺼풀을 최대한 참으며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불쑥, 시야에 서도현의 얼굴이 가득 들어찼다.

    “눈 감으라니까?”

    이겸은 떨어지라며 그의 얼굴을 밀어 대고는 제 눈을 꾹꾹 눌렀다.

    “안 보이니 답답해서 그래.”

    도현이 말갛게 웃어 보였다.

    “걱정 마. 내가 있잖아.”

    “하아, 네가 있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

    “안내해 줄게. 계단이면 계단이 있다, 사람이면 사람이 있다. 모조리 말해 줄 테니까.”

    그에 이겸이 될 대로 되란 식으로 눈을 감았다. 도현은 마지막 단추까지 꼼꼼히 잠그고는 이겸을 부축했다.

    “가시려고요?”

    경호실장에게 흰 천을 직접 덮어 준 후, 붉어진 눈시울을 감추지 못한 태웅이 그들을 불렀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협회장님 오실 텐데…. A에게도 기별을 넣었습니다. 오신답니다.”

    “그럼 더욱 가야지.”

    서도현의 비꼼에 최태웅은 입을 달싹였다. 블러드 헌터의 습격, 서도현, 자경단. 그리고 자경단의 리더 A.

    “혹 이 사건에 대해 짚이는 게 있으신가요.”

    도현은 획하니 등을 돌리고는 이겸을 부축해 걸음을 나섰다. 태웅은 도현의 등에 대고 외쳤다.

    “혹 짚이는 게 있다면! 연락 부탁드립니다. 사소한 거라도 좋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최태웅의 외침에 도현의 걸음이 멎었다. 손등으로 눈을 지압하던 이겸은 멈춘 걸음에 게슴츠레 눈을 떠 그를 바라봤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을 텐데, 왠지 표정이 유독 서늘하게 느껴졌다.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손 턴 지가 언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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