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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25)화 (25/102)

#025

지금 이게 뭔…. 아니 한 번 살렸다고? 그럼 방금… 방금 그게 진짜…. 혼돈에 휩싸인 이겸은 계속해서 제 심장 부근을 더듬었다.

믿기지가 않았다.

내 몸이 꼬챙이에 찔렸던 것도 진짜고, 경호원들이 튀어나온 것도 진짜라고? 문득 이겸의 시선이 오른쪽을 향했다.

비명을 질렀던 사람…. 자신 다음으로 죽은 두 번째 피해자.

그는 벽에 파묻힌 침입자, 그것, 그래, 크리처를 보며 겁에 질린 듯 비명을 내었다.

“…꺄아아아아악!”

동시에 이겸의 다리도 힘차게 움직였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빨리…!

달려 나간 이겸이 겁에 질린 사람과 함께 넘어지면서 기다랗게 늘어난 크리처의 팔을 아슬하게 피했다.

“가… 감사합… 지금, 무슨…. 크리처가… 왜, 왜….”

“상황은 나중에 파악해!”

“…네, 네!?”

얼굴이 퍼렇게 질린 채 부들부들 떨리는 몸으로 충격에 휩싸인 사람을 향해 이겸이 눈을 크게 부라렸다.

“일단 움직여!!!”

마치 그 말을 하면서 자신에게 세뇌라도 거는 것처럼 보였다.

“윤이겸!”

뒤에서 서도현의 불같은 고함이 터져 나왔다.

그는 화라도 난 건지, 언제나 머금고 있던 장난기 어린 미소 대신 평소 볼 수 없던 차가운 낯빛만이 존재했다. 이윽고 이겸에게 성큼 다가와 팔을 억세게 부여잡았다.

“함부로 몸 굴리지 마.”

어차피 다 못 살리니까.

이겸은 반박하기 위해 입술을 뗐지만 도로 다물 수밖에 없었다. 틀린 말이 없었다. 죄다 맞는 소리였다.

“전투 준비!!”

“전투 준비!”

경호실에서 나온 경호원들이 복창하며 열을 맞춰 공격을 가했다. 시끄러운 소란 사이로 서도현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난 내 사람만 살리면 돼. 그러니 너도 괜히 딴 사람 구하겠다고 목숨 날리지 마.”

이겸은 잠시간 침묵했다. 하지만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선 생각이란 것도 사치였다. 타인을 위한 숭고한 희생, 그딴 건 몰라. 그런 신념도 없어.

그렇다면 현재로서 나오는 답은 하나다.

비장하게 다짐하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의 긍정에 도현은 그제야 얼어붙은 표정을 풀며 피식 웃었다.

“말은 잘 들어서 좋네.”

그사이 타 길드원이 경호원을 붙잡고는 다급하게 말했다.

“입구…! 입구가 막혔어요!”

“크리처입니다! 뒤로 물러나세요!”

크리처가 왜 협회에? 이겸의 시선이 입구를 향했다. 검은 막으로 막혀 있어 통행이 통제됐다. 다들 어떻게든 능력을 퍼부어 봤으나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그걸 본 이겸은 의문을 가졌다. 검은 막은 뭐지? 그보다 저 크리처는 뭐야? 갑자기 나타난 거야? 왜? CA 지역이라면 협회가 알고 있을 텐데? 그 전에 길드도 알았을 텐데?

서도현과 함께 사냥했었던 ‘상’ 등급 크리처보다 훨씬 강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상’ 등급도 고작 두 명이서 잡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협회의 경호원이 모두 튀어나와 겨우겨우 크리처를 막기만 할 뿐. 애초에 크리처가 나타난 것도 웃겼다.

이겸은 이상함을 감지했다.

“서도현. 5분 안 지났으면 다시….”

“일단 지하로 내려가자.”

“뭐? 지하는 왜….”

이겸이 미처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서도현은 그를 이끌고 계단을 내려갔다.

협회의 지하에는 훈련실이 있었다. 때문에 타 길드의 전투 요원들이 언제나 즐비했다. 지상에서 크리처가 난동을 피우며 다른 헌터들에게 발이 묶여 있는 동안 지하의 헌터들은 태세를 갖춘다.

반격은 거기서부터였다.

“지원군을 불러와! 치료팀도 같이!”

크리처에 의해 팔 한 짝이 너덜너덜해진 어느 한 경호원이 필사적인 의지로 소리쳤다.

지상에선 한창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고, 이겸과 도현은 비상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갔다. 이겸은 아득히 멀어지는 경호원의 목소리를 들으며 도현을 불렀다. 걸음을 멈추고 소리쳤다.

“서도현…! 5분 안 지났으면 리셋인가 그거 있잖아! 되돌려서 입구가 막히기 전에 나가자고!”

“못 해.”

“…뭐?”

도현이 담담히 말했다.

“리셋한다 해도 입구는 이미 막혔고, 빠져나갈 틈은 없어. 그리고.”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

“난 현재 결과에 만족해. 리셋은 지금 없어.”

하루에 10번 쓸 수 있는 능력. 아낄 수 있으면 아껴 써야 했다. 도현은 윤이겸을 살려 낸 것으로 만족했다. 더는 그 전의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이겸은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결과에 만족한다고? 지상에선 사람이 죽어 가고 있는데, 무슨….

당연히 그들을 전부 살리자는 의견은 아니었다. 그러지 못할 거란 걸 알고 있기도 했고. 하지만 적어도 노력하는 것 정도는….

그런 이겸의 생각을 알았는지 서도현은 일단 현 상황에 집중하라며 주의를 주었다.

그들이 지하로 내려가니 지상의 소란에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올라오려 하고 있었다. 갑작스레 통신은 안 되고 위층에선 굉음이 발생하고.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훈련실에서 연마하다 나온 협회 소속 헌터와 타 길드원들의 무슨 소란이냐는 질문으로 웅성웅성했다. 총대를 메고 올라가 보려던 한 사람이 마침 아래로 내려온 이겸과 도현에게 물었다.

“어… 위에서 무슨 일 났습니까?”

도현은 빠르게 상황을 알려 주었다.

“크리처 습격. 입구는 누군가에게 막혀 탈출은 불가한 상황이야. 블러드 헌터의 짓으로 의심되고 현재로선 싸우는 수밖에 없다.”

장내가 술렁였다.

“블러드 헌터? 크리처는 또 뭐고? CA 지역도 아닌데 여길 왜 나타나?”

“크리처가 나타났다고? 협회에? 여태 그랬듯 그냥 사냥하면 안 돼?”

“사냥? 장난해? 너 블러드 헌터가 뭔지 몰라?”

각성한 지 얼마 안 되어 블러드 헌터 존재가 가늠이 안 되는 자, 선배들에게 대충은 들었던 자, 익히 알고 있는 자. 간혹 자신이 직접 확인해 봐야 믿겠다는 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건 이겸 역시 마찬가지였다. 블러드 헌터? 크리처를 숭배하는 집단? 그게 왜? 지금 크리처가 나타난 것과 무슨 관련이 있는데? 이건 평소 보던 크리처와 뭐가 다르고?

방금 제 심장이 꿰뚫리기는 했지만 정신을 차리면 판도가 다르지 않을까? 이겸은 여태껏 상대했던 크리처와 지금의 크리처가 무슨 차이를 갖는지 알지 못했다.

“변종이야.”

도현의 눈에 서늘함이 감돌았다.

크리처에겐 다양한 종이 있다. 그만큼 도감도 있는 거고. 블러드 헌터는 CA 지역에서 나타난 크리처들을 데려와 교배를 시킨다. 크리처와 크리처의 장점이 합쳐져 만들어진 2세. 대표적인 예로 말과 당나귀를 교배해 태어난 노새가 있다.

크리처를 상, 중, 하로 분류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등급별로 실력 차가 크니까. 하는 죽어도 중을 못 이기고, 중은 죽어도 상을 못 이긴다.

그럼 상과 상의 장점들을 합치기 위해 교배하면? 그렇게 태어난 게 현재 나타난 그것이었다.

돌연변이(뮤턴트).

다수의 크리처를 위한 소수의 희생.

크리처를 사냥하는 인간들은 모두 적. 그들을 말살해라. 어차피 돌연변이라 수명이 짧다. 그렇다면 심지가 짧은 만큼 활활 불타 헌터들에게 화상을 입혀라.

뮤턴트 크리처가 자주 발생하는 건 아니다. 블러드 헌터들도 언제나 CA 지역을 지키고 있는 헌터들 탓에 크리처를 데려오기 힘들고, 크리처들 간에 교배를 시키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몇 년에 한 번 성공할까 말까 할 정도로.

가장 최근 뮤턴트 크리처가 나타난 건 5년 전이었다.

그때 블러드 헌터는 최대의 적이었다. 그들은 자경단의 기지에 뮤턴트 크리처를 풀었다.

길드 헌터들끼리 팀을 이루어 안전하게 CA 지역 크리처를 사냥하는 게 아니라 주로 블러드 헌터를 추적하는 일이 전문인 자경단들은 언제나 생과 사를 오가는 전투를 했다. 그리고 그만큼 전투에 능숙했다. 그런 그들 사이에서도 피해가 컸는데, 지금은 협회라니. 통신은 안 되고, 입구는 막혔고, 자경단의 지원 요청도 불가능했다.

5년 전 그 사건의 피해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헌터들은 지상에 올라가 경호원들을 도와 뮤턴트 크리처를 처치하자고 쉽사리 입을 뗄 수 없었다.

그중 몇몇은 희망 어린 눈으로 도현을 흘겨보다 말문을 텄다.

“그래도 여기 인원도 많고, 그쪽은 뮤턴트 크리처와 싸운 경험도 있을 텐데 작전은 있나요?”

“작전?”

도현의 시선이 질문을 꺼낸 자에게 향했다. 그러곤 스산하게 말했다.

“글쎄. 각자도생도 작전이라면 작전이겠지.”

실전 상황. 타인의 목숨을 신경 써 줄 여유는 없었다. 제 한 몸 사리는 데 급급할 뿐.

도현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살아서 나갈 거다. 이겸과 같이.

슬쩍 뒤돌아 영문을 모르겠다며 눈동자를 굴리고 있는 이겸을 쳐다봤다. 그는 크리처에게 뚫린 기억이 트라우마로 박힌 건지 무의식적으로 손을 올리며 제 관통되었던 부위를 문지르고 있었다.

도현은 이겸의 손을 잡아 내렸다.

“넌 살 거야. 너는 살아.”

그는 주문을 걸듯 이겸을 진정시켰다. 이겸은 이런 상황에서도 그 소리냐며 기운 없이 웃어 보였다. 아직도 상처 난 부위가 쓰라린 것 같았다. 화를 낼 기운도 없었다.

“무슨 수로.”

서도현은 눈매를 가늘게 접었다. 마치 세상의 비밀을 알려 주듯 나긋하고 조용한 목소리였다.

“나는 언제나 살아남았지.”

지금도, 5년 전 그때도.

오늘은 너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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