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8
“겸이 형! 감마 잡았다면서요!”
이겸은 축하한다며 제 뒤를 쫄래쫄래 쫓아오는 재우를 무시한 채 래터 사무실을 우악스레 뒤적였다.
“형, 형. 완전 멋져요. 신입이 ‘상’ 등급을 잡다니요.”
“…….”
“크리처 무섭다고 했으면서 크으…! 형이 감마 잡은 거 제가 동네방네 소문낼게요. 아. 이건 축하 선물이요.”
재우는 제 능력으로 예쁜 꽃을 피워 이겸에게 건넸다. 알록달록 눈이 따가웠다. 주야장천 사무실을 뒤적거리던 이겸은 물끄러미 꽃을 바라봤다. 그리고 시야에서 치웠다.
“됐고, 크리처 도감 어디 있어.”
“네? 크리처 도감이요?”
“내가 협회 직원한테 받은 건 ‘하’고. 상, 중도 있다며. 읽어 보게 줘 봐.”
재우는 눈을 깜박이며 도감의 근황을 알려 주었다.
“그거 얼마 전에 마스터가 버렸어요.”
“…뭐?”
이겸의 눈썹이 삐뚜름해졌다.
“왜?”
“…사무실에 놔두면 겸이 형이 볼 거라면서.”
이마에 핏줄이 섰다. 이게 진짜. 도현과 있으면 점점 성격이 나빠지는 것 같았다.
“읽는 것보단 직접 상대해 보며 깨닫는 게 좋대요.”
“그럴 거면 역사는 왜 배워?”
과거에 있었던 일을 토대로 실수하지 말라고 배우는 거지. 인류의 오답 노트.
서도현은 오답 노트 같은 건 집어치우고, 직접 틀려 보며 작성해라 이 뜻이었다. 어차피 시간이 돌아가면 실수도, 오답도 지워지니 직접 경험해 보는 게 낫다는 건가.
도현과 도아는 아직 출근하지 않았기에 이겸은 욕설을 눌러 삼키며 직접 전화를 걸기로 했다.
하지만 통화가 연결되는 일은 없었다.
“왜 전화했어?”
도현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며 물었다. 그 뒤로는 당연하게 도아가 따라왔다.
“겸이 오빠 안녕하세요. 점심 드셨어요? 샌드위치 사 왔는데 좀 드실래요?”
“내 것도 있어!?”
재우가 눈을 반짝이며 도아에게 다가갔다.
“원하는 거 골라 먹어.”
허겁지겁 종류별로 사 온 샌드위치를 뒤적이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이겸이 도현에게 물었다.
“도감 다 버렸다더라?”
“아, 그거?”
“아, 그거어?”
눈살을 찌푸리며 비꼬듯 도현의 말을 따라 했다.
“글로 읽는다고 뭐 되나? 백문이 불여일견인데.”
도현은 시간을 확인했다.
“오늘은 저녁에 CA 발생하니까 그전까진 좀 쉬어.”
어째 이겸이 가는 게 기정사실인 듯 말한다.
“나 안 갈 건데? 재우랑 도아 데리고 가든가.”
“또. 또 그런다, 또. 오빠도 이제 크리처 사냥에 익숙해져야죠.”
도아는 말 안 듣는 아이를 타이르듯 일렀다.
“애초에 나는 이런 거에 관심 없고, 그냥….”
“여기.”
“……?”
도현이 하얀색 종이를 내밀었다. 수표였다.
“저번에 잡았던 감마 수익이야.”
그때 크리처의 사체를 수거하는 운반 트럭이 와서 수습해 갔다. 그 부산물로 무기를 만든다더니 이게 그 부산물의 값어치를 매긴 값인 듯싶었다.
“크리처 등급이 높을수록 수익도 올라가.”
이겸이 입술을 벙긋거리며 도현이 준 수표를 받아 묵묵히 지갑에 넣었다.
“계좌 번호 알려 주면 다음부턴 바로 그쪽으로 넣어 줄게.”
“…….”
도현의 대처는 현명했다. 인간은 눈앞에 닥친 상황밖에 보지 못한다고, 손에 돈이 들어오니 이겸의 입이 꾹 다물렸다. 얌전히 종이와 볼펜을 꺼내 들어 계좌 번호를 적었다.
“겸이 형. 그럼 오늘 저랑 가실래요?”
재우에게 시선이 꽂혔다.
“도현이 형 부담스러우면 저랑 사냥 나가요!”
“너랑?”
“네!”
이겸은 재우와 도현 사이에 저울질을 했다. 재우의 능력은 꽃 피우는 능력, 도현은 시뮬레이션. 설령 다친다 해도 되돌릴 수 있었다.
누가 보아도 재우보단 도현이 나은 상황이었다.
“…아니, 괜찮을 것 같아.”
“와. 형 지금 제 능력 무시하는 거 맞죠. 그죠!?”
한 움큼 샌드위치를 베어 먹은 재우가 억울하다며 입 안의 내용물이 다 튀어라 소리쳤다.
“…딱히 그런 건 아닌데.”
“딱히 그런 게 아니에요? 맞잖아요! 전투에는 하등 쓸모도 없이 꽃만 예쁘게 피워 내는! 눈만 즐거운! 태평한 꽃꽂이 능력이라고 무시했잖아요! 제 능력이 꽃놀이할 때밖에 안 쓰인다고! 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잖아요!”
재우가 눈을 까뒤집었다. 곧 있으면 게거품도 물 기세였다. 너 평소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그렇게까진 말 안 했는데.”
이겸은 얼핏 광기가 엿보이는 재우에게서 주춤 뒤로 물러났다.
“다음 달에 있을 테스트 전까지는 실력을 키워 놔야죠. 저희 오빠랑 크리처 사냥하면서 익숙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도아는 그런 재우를 가볍게 무시했다.
“테스트 그냥 대충 보면 안 되나?”
이전에 봤던 지원자들처럼 중간에 뛰쳐나가면 안 되는 건가?
“무슨 소리예요! 오빠가 멋지게! 테스트 마치고 다른 길드들 코를 납작 눌러 줘야죠! 특히 그 예호! 예호 길드한테 지는 건 용납 못 해요.”
“예호?”
“네.”
며칠 전, 구멍이 숭숭 뚫린 채 집에 온 도현을 상기하며 도아는 분노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출장 힐러를 데려와 거금을 들여 치료했으니 망정이지.
“거기 길드 마스터가 저희 오빠를 반 죽여 놨다고요!”
이겸의 시선이 도현에게 향했다. 네가? 그렇게 묻는 눈빛이었다. 도현은 눈을 접으며 어깨를 으쓱일 뿐이다.
“그 예호라는 길드 마스터는 어떤 사람이야?”
“어떤 사람이긴요! 그냥 개새끼죠. 다음 달에 예호 신입도 헌터 테스트 본다던데 오빠가 그때 묵사발을 내 줘요!”
“와…. 그럼 다음 달에 예호 길드 마스터 볼 수 있는 거야?”
“음. VIP 방에 있어서 볼 수는 없겠지만… 운 좋으면 마주치려나? 왜요? 오빠도 막 래터가 당했다니까 화나죠? 좋아요. 그때 아주 본때를 보여 줘요.”
도아는 주먹을 불끈 쥐고 다짐했다. 그에 상반되게 이겸은 산뜻하게 중얼거렸다.
“아니, 그게 아니라. 선물이라도 준비해 가야겠네.”
저 자식을 반만 죽여 놓다니, 아깝다. 완전히 죽일 수는 없었나. 왜 하필 반만 죽여서는…. 쯧.
혀를 차는 소리가 사무실 내에 울려 퍼졌다. 도현의 눈꼬리가 잘게 휘었다.
“그럼 오늘도 구르러 가 볼까?”
***
해가 어둑어둑 진 저녁.
“왜 오늘은 두 건인데.”
일어설 기운도 없어 바닥에 주저앉은 이겸이 다리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아까의 일로 화가 났는지 도현은 감마를 사냥했을 때와 달리 이겸을 더 심하게 굴렸다. 감마 때도 심하긴 했지만, 이번엔 아예 혼자 잡으라며 내팽개쳐진 꼴이다. 등급이 ‘중’이어서 망정이지 ‘상’이었으면 몇 번은 죽고도 남았다.
여섯 번. 방금 크리처를 잡을 때 시뮬을 돌린 횟수였다.
이겸은 그 여섯 번 동안 사람이 이렇게 다쳐도 죽지 않는구나, 를 경험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더군다나 지금 이 상태에서 한 마리를 더 잡자고? 정신이 너덜너덜해 지쳐 쓰러질 판이었다.
“이번에 나타날 크리처는 ‘하’ 등급이야.”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라며 말하는 서도현이지만, 딱히 감흥이 생기지는 않았다.
몇 분이 흘렀을까.
크리처가 이겸의 앞에 나타나고,
“뀨우?”
“…….”
이겸이 지금껏 경험한 크리처답지 않게 무척이나 귀여운 생김새였다. 흔히 너튜브에 올라오는 반려견, 반려묘, 그 외 동물들보다 훨씬 귀여운 크리처.
사슴 같은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병아리 솜털처럼 뽀송한 노란 털, 머리 위에 난 아기자기한 초록 잎 새싹까지.
귀엽지 않은 구석이 없었다. 이겸은 그 외형에 저도 모르게 마음 한구석 긴장을 내려놓았다. 징그럽고, 흉포한 크리처들만 마주치던 와중에 뀨? 하며 당장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촉촉한 눈으로 저를 올려다보는 크리처였다.
이 정도 외양이라면 블러드 헌터들이 왜 크리처를 숭배하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아니, 숭배보단 귀여운 건가.
그때 크리처가 제 작은 팔을 날개처럼 팔랑이며 올망한 눈을 힘껏 감은 채 하늘 높이 날아오르려 애썼다. 그 모습이 어찌나 갸륵하고 애처로운지 이겸은 저도 모르게 나뭇가지라도 된 것처럼 팔을 뻗어 크리처가 쉴 자리를 친히 마련해 주었다. 곧장 팔뚝에 내려앉은 크리처는 겨우 날아왔다는 달성감에 “퓨우-.”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조심해. 그래 보여도 크리처니까.”
“이렇게 귀여운…. 응?”
도현의 주의에도 크리처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이겸은 갑자기 화상처럼 화끈한 통증이 이는 제 팔을 확인했다.
“걔는 온몸이 다 독으로 이루어졌거든.”
“…악!”
짧은 비명을 지른 이겸이 급하게 팔을 허공으로 휘적거렸다. 크리처에게 쉴 곳을 마련해 주기 위해 순순히 제 팔을 내밀었을 때와 천차만별인 행동이었다. 마치 한 마리의 파리를 쫓아내는 양 급히 크리처를 물리쳤다.
그리고 고통은 또 한 번 터져 나왔다. 심통이 바짝 오른 크리처가 입에서 무언가를 쏘아 낸 것이다.
“윽!”
그걸 정면으로 맞은 이겸은 화끈거리는 얼굴을 부여잡았다.
피부에 심한 화상을 입기라도 한 것 같았다. 따갑기도 하고, 간지럽기도 하고, 얼핏 재채기가 나올 것도 같았다. 눈과 코, 입, 피부. 모든 곳에서 체내로 들어오는 독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이겸은 도현을 부르며 다급하게 외쳤다.
“리셋! 리셋해!”
“글쎄. 그 정도 고통은 익숙해져야 하지 않을까.”
도현은 제 일이 아니라는 듯 태연히 입가에 통쾌한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어찌 보면 이 상황을 기다린 걸지도 몰랐다.
“죽지는 않으니까 좀 참아 봐.”
“못 참아!”
고통은 극심해져만 가고 도현은 리셋할 마음도 없어 보이고, 이겸은 될 대로 되란 식으로 도현에게 팔을 뻗어 이곳저곳 독을 묻혔다. 그럼에도 그는 신음 한번 내뱉지 않고 웃어넘겼다.
“이 정도 고통쯤이야.”
내가 고통받더라도 남이 고통받으면 참을 수 있다 이건가?
하지만 이겸은 아니었다. 도현을 걷어차고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리셋을 외쳤다. 피부가 썩어 들어가는 기분이다.
이내 5분을 알려 주는 알람이 울리고….
시간이 돌아가 이겸을 괴롭혔던 고통이 사라졌다.
“뀨우?”
“…….”
“…뀩!”
이겸은 제게 날아오려는 크리처를 일말의 망설임 없이 걷어찼다. 참으로 매정한 발길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