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9)화 (9/102)

#009

“윤이겸 지원자님? 윤이겸 지원자님 안 계세요?”

“…….”

이겸은 꿋꿋이 대답하지 않고 버텼다.

마침내 참다못한 직원이 참가 서류를 보고 이겸의 얼굴을 확인할 때까지.

“여기 계셨네요. 얼른 들어가 보세요.”

“안 갑니다.”

“…예?”

“안 가요.”

이겸은 단호하게 말했다. 진도가 너무 빠르면 진도를 안 나가면 그만이다.

여기 있는 다른 사람들처럼 다들 들어가니까 나도? 라는 분위기에 휘말려 어쩔 수 없이 들어갈 만큼 주관이 흐릿한 사람이 아니었다.

“너무 겁먹지 않으셔도 돼요. 크리처 등급도 ‘하’이고, 목숨에 지장은 없습니다. 더불어 전문 헌터들의 보호 아래 안전하게 진행되는 테스트예요. 그저 실력만 잠깐 테스트할 뿐이에요.”

직원의 다독임에도 이겸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이겸의 옆 사람이 다음은 자기 차례임을 예상하고, 두려움에 다리를 덜덜 떨다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이겸은 시선을 개의치 않고 다시 한번 단호히 말했다.

“테스트. 안 받습니다.”

“네? 잠깐…! 윤이겸 씨? 윤이겸 씨? 어디 가세요?”

“…….”

이겸은 저를 붙잡는 직원을 무시하고 걸음을 나섰다.

대기실 문을 열고 나오니 테스트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는 권상혁이 보였다. 그가 활짝 웃으며 물었다.

“잘하고 오셨나요? 많이 떨진 않으셨고요? 많이 긴장하셨을 텐데 여기 따뜻한 커피 좀 드세요.”

“저기요. 혹시 미치셨습니까?”

“…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 상혁의 멍청한 얼굴에 이겸은 분노를 다스리기 위해 얼굴을 쓸어내렸다.

“하아, 그깟 설명해 주는 게 어렵습니까? 어려워요?”

권상혁이 기계처럼 몸을 삐거덕거리며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아뇨, 이겸 씨…. 그게 아니라 저는….”

“뭐야, 너 설명 제대로 안 해 준 거야? 그러다 감봉당한다.”

그들의 대화를 듣던 협회 소속 직원이 상혁을 나무랐다.

“이겸 씨. 저도 사정이….”

“사정? 무슨 사정이요. 제가 무슨 호구인 줄 아세요? 그쪽 사정을 왜 들어 줍니까? 나는 그쪽한테 엿 먹은 기억밖에 없는데.”

“크흠, 이겸 씨? 저는 신입 관리를 맡은 박우태라고 합니다. 권상혁 담당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셨다면, 앞으로 이쪽 번호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제가 이겸 씨를 담당해 드리겠습니다.”

박우태는 권상혁을 뱀눈으로 흘기며 이겸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이겸은 우물쭈물 입만 벙긋거리는 권상혁을 무시한 채 박우태의 명함을 받았다. 그러면서 시선은 상혁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앞으로 만날 일은 없었으면 하네요.”

“…….”

그러곤 유유히 협회를 나섰다.

이겸이 나선 후, 박우태가 상혁을 타박했다.

“너 그러다 진짜 좌천된다.”

각성자가 워낙 적은 탓에 한 달에 유일하게 한 번 있는 테스트가 바로 오늘이었다.

신입 관리 업무를 맡은 권상혁은 오늘 이겸의 테스트 시기를 놓치면 이번 달 실적은 없는 셈으로 보아도 무방했다. 더군다나 최근 실적을 쌓지 못하고 있어 그도 나름대로 다급했을 테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됐었다. 적어도 이겸과 달리 다른 신입들은 자신의 담당자에게서 대강의 설명은 듣고 테스트를 본 거였다.

사실 그걸 따지지 않더라도 원래도 일 처리가 미흡한 권상혁이었다. 그가 담당한 신입들의 불만 가득한 소리가 자주 터져 나오곤 했었다.

하필 권상혁이 담당자라니, 이겸은 운이 나쁜 축이었다.

권상혁의 이능력은 뛰어났다. ‘환각’이라는 좋은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크리처 사냥이 잔인하다는 이유만으로 월급도 적은 직책을 맡고 있는 그였지만, 그렇다고 이 직책도 그에게 어울리는 건 아니었다.

“하아, 난 나름 열심히 설명해 줬는데. 왜 다들 내 마음을 몰라줄까.”

“쯧, 그런 걸 일머리 없다고 하는 거야.”

박우태가 혀를 차며 답했다. 정말로 자신이 뭘 잘못한지 모르는 건가? 뭐 상관없다. 일머리 없는 권상혁 덕분에 자신만 또 한 번 실적을 쌓게 되었으니 좋을 따름이었다.

***

“다음 지원자는?”

“글쎄. 무서워서 오줌이라도 지린 거 아니야?”

“설마.”

길드 마스터들이 모인 방.

한쪽 면으로만 보이는 유리로 지원자들을 관찰하고 있던 그들은 질 낮은 농담을 하며 키득키득 웃었다. 그사이 래터의 길드 마스터 서도현은 묵묵히 지원 서류를 확인했다.

다음 지원자.

윤이겸.

본 적 있는 얼굴이다.

그때 그날. 제 능력을 간파했던 이.

그런 적은 생전 처음이었고, 뭐하면 제 길드에 데려와 엘리트 코스로 잘 키워 줄 마음도 있었다. 때문에 명함도 남긴 거였는데.

‘협회에 연락했었나.’

하긴, 자신을 죽였던 사람한테 연락하는 멍청이도 없으니까.

무심한 손길로 지원 서류를 덮은 도현은 이겸이 테스트실에 나타나길 기다렸다. 잔뜩 겁에 질려 테스트실을 박차고 나가는 지원자들을 보며 길드 마스터들이 낄낄대던 와중에도 무료한 기색을 유지하던 그의 눈에 조금의 흥미가 서렸다.

지난번 맞았던 뺨을 어루만졌다.

‘어떻게 나오려나.’

크리처의 등급은 ‘하’. 이겸이 정신만 차린다면 크리처를 물리치는 것도 어렵지 않을 일일 테다.

“윤이겸 지원자는 사정이 있어 불참입니다. 다음 지원자 바로 모시겠습니다.”

지원자를 불러내던 직원은 테스트실, 그리고 길드 마스터가 모인 룸과 연결된 마이크 스위치를 켜고 말했다. 그에 예호의 길드 마스터 김이성이 마이크를 들어 화답했다.

“왜요? 오줌이라도 지렸답니까?”

그에 다시 한번 방 안에 낄낄거리는 비웃음들이 가득 찼다.

“…다음 지원자 모시겠습니다.”

오로지 협회에서만 이뤄지는 헌터 테스트. 원래는 지원자들의 실력을 살피고 등급을 매기는 테스트였다. 상위 길드의 특권으로 눈여겨볼 만한 지원자가 있을 경우 스카우트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이런 룸을 따로 마련한 것이었다. 일명 VIP 방.

하지만 최근 들어 그 의미가 변질되고 말았다.

당황하지 않고 크리처를 처리하는 침착한 지원자도 있었지만 그것은 아주 소수, 겁에 질려 오들오들 떨고만 나오는 지원자가 대다수였다. 그런 이들을 비웃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화제의 장처럼 변질되고 만 것이다.

상위 길드라고 우대를 해 주니까, 그게 권리인 줄 알고 다들 가슴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하하! 다음 지원자는 또 어떤 개그를 보여 주려나.”

“저기요.”

도현은 예호의 길드 마스터 김이성을 불렀다.

“음?”

이 룸에 들어오고 처음으로 입술을 열었다. 그리고 화사하게 미소 지었다.

“그쪽이 하도 짖어 대서 제 귀가 너무 따갑거든요. 그러니 좀 닥쳐 주시겠어요?”

“…….”

훅 들어온 공격에 김이성이 입을 달싹이고 말을 잇지 못하자 서도현은 그제야 상쾌해졌다며 귀를 후볐다.

“아,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어이, 말이 좀 심하지 않은가? 물론 우리가 지원자를 놀려 댄 게 거슬렸단 건 아는데….”

“지원자요?”

“그래. 우리도 말이 좀 심하긴 했지만, 그래도 사람 면전에 대고 짖는다니, 닥치라니….”

도현은 정말로 영문을 모르겠다며 순진한 척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는 그냥 개소리가 들려서 닥치라고 말한 거뿐인데요. 뭐가 잘못됐나요?”

청해의 마스터 서규원이 몸을 일으켰다.

“보자 보자 하니까 선을 넘으시네. 그래도 우리가 이쪽 업계에서 선배인….”

“선배? 아아, 저승에선 선배 대접 해 드릴 수 있는데. 먼저 가실래요? 뭐하면 제가 보내 드릴게요. 후배 된 도리로서.”

말을 싹둑 자른 도현이 방긋 눈을 접었다.

더는 지원자에게 눈길이 쏟아지지 않았다. 화제의 장이 서도현의 시비로 인해 순식간에 싸움의 장으로 바뀌었다. 김이성이 셔츠 소매를 올려 접었다. 힘줄이 잔뜩 고인 단단한 팔뚝이 존재를 과시했다.

“유언은 다 지껄였고?”

“유언? 죽일 실력은 되시는가 모르겠네.”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는 도현에 김이성이 무작정 돌진했다.

콰앙-!

커다란 소리와 함께 서도현의 얼굴 바로 옆에 주먹이 꽂혔다. 벽에서 후두둑, 벽돌 가루가 떨어졌다.

눈 하나 꿈쩍이지 않던 도현이 검지로 그의 주먹을 슬쩍 밀었다. 이내 약 올리듯 말했다.

“이거 봐. 못 죽이잖아.”

“…너 같은 새끼는 한주먹거리도 안 돼. 못 죽이는 게 아니라 살려 두는 거야. 감사해라.”

“그것참….”

그때 김이성의 발치에 뚝, 뚝 핏방울이 떨어졌다.

“황공하네요?”

그의 허벅지엔 작은 단검이 박혀 있었다.

‘…언제?’

도현은 제 걸 마저 회수해 가겠다는 듯 박힌 단검을 쑥 빼낸 후, 묻은 피를 김이성의 셔츠에 박박 닦아 냈다. 제 앞에 서 있는 김이성을 마치 사람이 아닌 검 닦이로 쓰는 모양새였다. 위압감 가득한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김이성에도 전혀 상관치 않았다.

김이성의 입꼬리가 비실 올라갔다.

“바보 같은 놈. 그새 내 능력을 잊은 거냐?”

반사.

맞은 공격을 그대로 돌려준다.

더군다나 김이성은 반사, 그리고 회복이란 이능력을 가지고 있는 복수 능력자였다. 그 능력이 지금의 ‘예호’ 길드 마스터 김이성을 만들었다.

김이성의 허벅지 상처가 아물기 시작하고, 도현의 허벅지에 서서히 피가 고였다.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던 도현이 쥐고 있던 검 손잡이로 관자놀이를 긁었다.

“아, 잊고 있었네. 이런 능력이었지?”

“알면 얌전히….”

“죄송해요. 너무 별거 아닌 능력이라 기억할 필요가 없었네요.”

도현의 검이 또다시 매서운 속도로 휘둘러졌다.

김이성을 찌르고, 회복하면 또 찌르고, 반사당하고, 또 반사당해 그로 인해 제 몸이 피로 물들 때까지. 후에는 김이성이 지쳐 회복 능력을 쓰지 못할 때까지.

“크윽.”

이어 김이성이 고통에 신음을 흘릴 때까지.

타 길드 마스터들이 그 모습에 침음을 삼켰다.

‘이게 무슨….’

그에게서 일종의 광기가 엿보였다. 자신이 설령 상처 입더라도 남에게 상처를 주면 된다는 무책임할 정도로 안일한 마음가짐. 그리고 그와 상반된 고된 고통을 참아 내는 강인한 정신력.

제 몸을 상처 입히는 걸 마다하지 않고, 남을 상처 입힌다. 심지어 김이성의 능력으로 인해 서도현이 더 많은 상처를 입었다. 그럼에도 그는 검을 든 손을 멈추지 않았다.

김이성이 나직한 신음을 터트렸지만, 도현은 고통도 없는지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보다 못한 다른 이가 나섰다.

“그만…, 그만하죠. 우선 두, 두 분 다 힐러에게 치료를 받고….”

도현의 움직임이 멎었다. 그의 온몸이 피로 젖어 있었다. 그럼에도 한 치의 비틀거림도 없이 올곧게 섰다.

김이성이 육중한 몸을 휘청거리며 의자에 쓰러지듯 기대앉았다. 후욱, 후욱. 고통에 아린 호흡을 뱉었다.

쨍그랑. 날붙이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하아, 그러게. 왜 덤비고 지랄이세요.”

그는 피 묻은 손으로 제 머리를 쓸어 넘겼다. 머리칼이 피로 물들었다. 그 모습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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