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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8)화 (8/102)

#008

“나왔다.”

무기를 든 헌터의 말과 함께 이겸은 순간 사지가 떨리는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머리는 악어, 몸통은 말과 같이 네발 달린 크리처였다. 그게 입을 쩍 벌리니 문어와도 같은 8개의 촉수가 뻗어져 나왔다.

이겸은 황급히 뒤로 물러났지만 그보다 더 빨리 물러난 이가 있었으니.

“으아아앙악! 나, 난 못 봐요. 난 못 봅니다! 먼저 내려가 있을게요!”

“아니 저…!”

이겸은 부리나케 달려간 권상혁을 허망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어이가 없었다. 이런 상황이 익숙하지 않을 자신을 보듬어 달래야 할 이가 되레 성난 황소처럼 날뛰며 도망간다.

“괜찮아요, 이겸 씨! 저희 뒤에만 서 계세요.”

정작 이곳까지 끌고 와 저를 안내해 주고, 심지어 설명까지 해 준다고 자신만만하게 굴던 권상혁은 이미 도망가고 없고, 실로 믿음직스러운 건 협회 소속 헌터라 했던 이들이었다.

그럼에도 이겸은 은연중에도 공포감을 떨칠 수 없었다.

잡을 수… 있겠지? 잡을 수 있을 거야.

그간 헌터들이 크리처를 잡는 모습을 가끔가다 봐 오곤 했잖아. 비록 못 본 척했지만 실패 없이 잘 잡는 것 같았잖아. 이번에도 같을 거야.

이겸은 언제라도 도망칠 수 있도록 발의 무게를 뒤쪽으로 실으며 크리처와 헌터의 대치 상태를 살폈다.

이윽고 전투가 시작되고, 세 명으로 이루어진 팀은 차근차근 크리처를 격파해 나갔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전략이라도 짠 건지 한 사람이 촉수를 힘껏 잡으면 다른 한 사람이 검으로 자르고, 또 뒤에서는 원거리로 크리처의 눈을 향해 불을 쏘며 크리처가 근거리 두 명에 집중할 수 없게 시야를 방해했다.

그렇게 8개의 촉수를 자른 후 그들이 주의해야 할 건 악어처럼 거센 턱 힘과 한 번의 발길질로 사망에 이를 수 있는 말발굽이었다.

하나 그것 또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악어와도 같은 얼굴 쪽은 이미 불에 잔뜩 화상을 입고 짓눌려 제대로 된 힘을 낼 수 없었고 말발굽 쪽은 근거리 팀이 요리조리 피해 가며 힘줄을 끊어 크리처를 쓰러트렸다.

이후 아무 힘도 못 쓰는 크리처의 숨통을 끊는 일은 무척이나 쉬웠다.

이겸은 죽어 가는 괴생물체를 보자마자, 자신이 처음으로 죽였던 물고기 형태의 크리처가 떠올랐다.

혼자서 죽을힘을 다해 힘겹게 죽였던 그것이, 이곳에선 2차 각성한 사람들에게 힘도 못 쓰고 너무나도 쉽게 죽어 갔다. 그 사실이 뼈가 시리게 아프면서도 어쩌면 자신도 배우기만 하면 이런 게 가능하다는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다.

헌터 중 한 명이 땀을 닦으며 이겸에게 물었다.

“후우, 끝났습니다! 어떠세요? 좀 견학이 됐나요?”

그에 이겸은 스산하게 답했다.

“…일단은 권상혁 씨한테 데려다주세요.”

따질 건 따져야지.

***

“권상혁 씨.”

“아…그…, 끝났어요? 이만 출발할까요?”

권상혁은 볼펜 뒤꽁무니로 덥수룩한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대답했다.

“지금 장난치십니까? 사람을 설명도 없이 사지로 몰아넣고, 정작 자기는 내빼시겠다?”

“그…그런 게 아니잖아요! 저는 크리처 사냥하는 장면은 잔인해서 못 봐요. 그 뭐냐, 피? 피 공포증? 그런 거예요. 그리고 위험하지도 않아요. 보세요! 안전하게 사냥 끝내고 복귀했잖아요!”

눈을 질끈 감고 소리치던 권상혁은 이겸의 뒤에 선 헌터들을 그 증거로 가리켰다.

“아, 안전하니까 설명은 안 해 줘도 된다? 생명에 위협은 없으니까? 죄송한데요, 권상혁 씨. 혹시 한 대 쳐도 됩니까? 생명의 위협은 없게 조심히, 안전하게 때릴게요. 괜찮죠? 전 참고로 설명도 해 줬습니다.”

이 얼마나 친절해요. 그렇죠? 이겸에 주먹을 불끈 쥐고 다가감에 따라 권상혁은 주춤주춤 물러나기 바빴다.

“이, 일단! 일단 협회로 다시 가시죠. 다시 가서 설명을… 하하. 저희 말로 할까요? 대화로! 대화로!”

이 사람이 보자 보자 하니까! 이겸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저희 오늘 처음 만났잖아요! 네? 네? 예의! 예의를 지킵시다!”

“먼저 예의 없게 군 건 그쪽이거든요.”

“큼! 크흠, 크흠흠. 다음부턴 사전에 꼭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네, 꼭 부탁드립니다.”

진짜 콱 쥐어박을 수도 없고. 이겸은 쥐었던 주먹을 풀고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크리처를 사냥한 헌터들은 타고 왔던 다른 차량으로 이동하고, 이겸과 상혁은 협회로 복귀했다.

운전 중인 상혁은 이겸에게 한 책자를 주었다.

“크리처 도감인데, 읽어 보시면 도움이 될 거예요.”

“도감이요?”

“네. 안내 지침서 같은 거니까 이겸 씨 드릴게요. 집에 가져가셔서 찬찬히 읽어 보세요.”

“…감사합니다.”

조수석에 앉은 이겸은 협회 도착 전까지 할 일도 없는 김에 책자를 읽으려 했지만, 상혁이 입을 열었다.

“방금 보셨던 팀은 최근 이루어진 신생 팀인데 크리처를 물리치는 속도도 빠르고, 공격력과 방어력의 조화도 좋은 덕에 부상도 적어 유망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겸 씨가 협회로 들어오면 저 팀에 배정되겠네요.”

“…….”

들어간다는 소리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김칫국을 마시고 있었다.

“저는 아직 들어갈….”

“꿈만 같죠?”

불쑥 권상혁이 말을 가로챘다.

“네?”

“그렇잖아요. 평생을 현실 속에 살아왔는데 그 뒷면에선 이런 마법과도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니, 놀랍죠?”

“뭐… 그렇네요.”

“현실과 비현실. 특히 1차 각성을 하기 전이나 하고 난 초반엔 그 괴리가 더 심하거든요. 그래서 크리처를 볼 수 있지만 1차 각성도 하지 않은 사람에겐 또 다른 말로 ‘꿈을 꾸고 있다.’라고 표현합니다. 다른 말로는 약에 취해 있다고 하죠. 환각제 같은 그런 유의.”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안 가는 몽롱한 상태. 딱 그거거든요.

‘언제 깰지도 모를 꿈에서 사는 건 너도 답답하잖아? 걱정 마. 내가 금방 깨워 줄게.’

서도현이 5회차일 때 자신에게 한 말이었다. 그게 1차 각성을 도와주겠다는 소리였나.

“이겸 씨는 운이 나빴어요. 하필 래터의 구역에서 발견돼서.”

“래터란 건…, 서도현 길드를 말하는 거죠?”

서도현이 준 명함에 적혀 있던 이름을 토대로 이겸이 물었다.

“네. 몇 년 전 만들어진 신생 길드인데 빠르게 성장하고 있거든요. 근데 그게 좀 악명 위주라…. 하여튼 조언해 드리자면 래터는 최대한 피하시는 게 좋아요.”

…이미 거하게 걸렸는데요. 그리고 몇 번이나 걔 손에 죽기도 했고요. 이보다 더한 악몽이 있을까 싶었다.

“다른 길드에서 컴플레인이 자주 들어와 협회에서도 래터 구역에 자주 정찰을 나가곤 하는데, 그것도 한두 번이어야지 어휴…. 저도 지칩니다. 지쳐요!”

왜 일에 대한 투정을 자신한테 푸는지 모르겠다.

“아! 그래도 그날 이겸 씨를 발견한 건 잘된 일이죠. 딱 봐도 각성자라는 느낌이 빡! 왔다니까요.”

“느낌이요?”

“네. 래터를 감시하고 있었는데 그분들이 이겸 씨를 쫓아가잖아요. 뭔가 느낌이 쎄하다 했죠. 하하! 혹시 가입 권유라도 받았어요?”

상혁이 장난스레 물어 왔다.

“받긴 했는데….”

끼이이익-. 이겸의 대답과 동시에 급브레이크가 밟혔다. 깜짝 놀란 이겸이 한마디 하려 했지만 눈알이 튀어나올 듯 크게 부라린 상혁의 얼굴에 할 말이 쏙 들어갔다.

“받았다고요? 안 돼요! 절대 안 돼요! 래터만은 절대 안 돼요!”

“…왜요?”

어차피 살인자 집단에 들어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상혁이 이리 말하니 그 이유가 무엇인지 내심 궁금하긴 했다.

“어… 어음.”

상혁이 말을 더듬었다.

“왜요?”

“으음, 길드 전투력은 상위권에 들어서 해야 하는 일은 많은데 워낙 사람이 없는 탓에 맡아야 하는 업무가 많을걸요? 아마 많이 굴러야 할 거예요. 그리고 거기 길드 마스터인 서도현이란 분은 여러 곳에 미움받고 있어서… 들어가 봤자 좋은 꼴 못 볼 거예요.”

“…예를 들어?”

“다른 길드한테 시비가 털린다거나, 시비를 턴다거나, 시비를 턴다거나?”

이겸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알았다. 서도현의 성질머리가 고약해 다른 길드에게 항상 시비를 털고 다닌다는 소리이군.

하긴, 처음 만난 자신에게도 시비랄까, 그보다 더한 짓을 해서 혐오감을 불러일으켰으니 안 봐도 뻔한 일이었다.

“그렇군요.”

이겸은 손에 쥔 크리처 도감 책자를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혹시 그… 저와 처음 만났을 때 다른 사람은 발견 못 했나요? 크리처에게 잡혀갔다가 기절해 있던 사람인데 아무 기억도 못 하는 것 같아서요.”

심지어 각성 안 한 사람은 크리처에게 영향을 안 받는다고 권상혁이 알려 줬다. 그럼 그 사람은 뭐지? 이겸이 고개를 갸웃했다.

“네? 그런 적이 있었어요?”

권상혁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네. 그분은 어떻게 된 건지….”

“흐음, 래터가 그분 인적 사항을 신고했다면 아마 상부에 각성 예정자로 분류가 들어갔을 거예요.”

“각성 예정자요?”

크리처를 볼 수 있는 눈을 뜨기 전에 그 영향을 받은 타입. 필히 각성 예정자였다. 인적 사항이 확인되면 협회가 그자를 지켜보다가 크리처를 보는 눈이 트이면 권상혁처럼 신입 관리 직책을 맡은 협회 소속 사람이 그를 찾아갈 것이다.

“아아, 그런가요.”

이겸은 권상혁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지금 협회 가서 뭐 합니까? 오늘은 조금 피곤한데 괜찮으시면 내일 제가 다시….”

“아아, 간단한 테스트만 받고 갈 거니 잠깐이면 돼요!”

“테스트요?”

“네, 가 보시면 알 겁니다.”

이겸의 눈이 게슴츠레 뜨였다.

이 사람이 또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을까 염려되었다. 어떻게 만난 지 고작 하루도 안 되어서 이렇게 사람을 불신하게 만들 수 있지? 이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었다.

신입 관리 직책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리 믿음이 없어도 되나?

어설프고, 덤벙대고, 야무지지 못하고, 설명도 자세한 것 같으면서 정작 중요한 설명들은 전혀 안 해 주는 것 같고.

이겸의 얼굴에 불신이 가득한 걸 확인한 상혁이 땀을 삐질 흘렸다.

“진짜 간단한 테스트예요. 1분도 안 돼서 끝날 수도 있고.”

“무슨 테스트길래 1분도 안 돼서 끝이 나요? 그게 테스트예요?”

상혁이 모호하게 웃음을 흘리며 답했다.

“뭐든 이겸 씨 하기 나름이죠. 아! 혹시 증명사진 있어요? 없더라도 괜찮아요. 거기서 찍으면 되거든요.”

테스트를 받으러 가는 사람이나, 테스트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 모두 이겸과 같이 1차 각성을 막 마친 이들이었다.

“으… 으아아아악!”

한 사람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테스트실을 박차고 나왔다. 그 광경을 유리창으로 확인한 이겸은 기어코 험한 말을 뱉었다.

“…이게 미쳤나.”

물론 대상의 주체는 권상혁이었다.

간단히 신상 정보 등록을 마치고, 상혁이 테스트 대기실로 안내해 준 후 부리나케 자리를 뜬 이유가 있었다.

그래, 1분도 안 돼서 끝나긴 하겠네.

모든 건 마음먹기에 따라 달렸으니까 1분이 걸리든 10분이 걸리든 가령 1시간이 걸릴 수도 있는 테스트였다.

“나, 난 못 해! 난 못 해!”

다음 타자로 들어갔던 사람이 전의 사람과 똑같은 행태로 문을 박차고 나왔다. 그에 직원이 그를 불렀다.

“다음, 윤이겸 지원자님 들어오세요.”

“…….”

“윤이겸 지원자님?”

크리처 사냥을 구경하고 협회에 왔더니, 이번에는 크리처 사냥에 나서라고? 고작 실력 테스트를 하겠다고?

심지어 이 모든 건 고작 몇 시간 만에 벌어진 일이다.

이겸은 아직 크리처 세계조차 소화해 내지 못한 햇병아리였다.

그는 허망한 표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진도가 너무 빠른 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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