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4)화 (4/102)

#004

‘집에 가면 또 괴물 같은 거 있는 건 아니겠지?’

괜히 심장이 떨려 왔다. 역시 편의점으로 돌아갈까. 조금 진상 짓이지만 알바생과 함께 밤을 새울까. 하지만 편의점까지 돌아가는 길도 무서웠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303호에 다다랐을 무렵, 순간 사나운 맹수를 만난 것처럼 몸이 움찔거렸다.

“안녕.”

낯선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뚝- 뚝-.

이겸은 목소리의 주인을 찾을 새도 없이 시선을 내려 제 가슴을 쳐다봤다. 피가 고이고 있었다. 아니, 그보다 손이… 낯선 손에 가슴을 꿰뚫렸다.

“커헉… 컥!”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볼이 닿았다. 이내 흘러나온 따뜻한 피가 바닥을 적시며 차가운 볼에도 온기를 더했다.

아… 이대로 죽는구나.

고통에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눈동자를 굴려 범인의 인상을 살필 뿐이었다.

흑발의 남자. 귀엔 피어싱. 손수건에 손을 닦자 하얀 천이 붉게 물들었다. 그의 옆엔 후드를 깊게 눌러쓴 키 작은 한 사람이 더 있었다. 남잔지 여잔지도 불분명했다.

두 명….

둘의 대화 소리가 이겸의 귓가에 들려왔다.

“몇 분이야?”

“3분 지났어요. 지금….”

“두 번째.”

“…근데 저분 저희 쳐다보고 있는데요?”

“알아. 4분 지나면 말해 줘. 리셋할게.”

그는 구두 굽 소리를 내며 천천히 다가왔다. 흑발의 미남자가 이겸을 내려다보며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였다.

“안녕.”

***

이겸이 303호에 다다랐을 무렵, 순간 몸이 사나운 맹수를 마주친 것처럼 움찔거렸다. 무의식적으로 앞으로 미끄러지듯 뛰었다.

“안녕.”

낯선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뚝- 뚝-.

이겸은 천천히 동공을 아래로 내렸다. 배에서 피가 울컥울컥 차오르고 있었다. 아니, 그보다 손이… 낯선 손이 제 배를 꿰뚫었다.

“아쉽다. 이번엔 배였는데.”

이겸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볼에는 차가운 시멘트 바닥이 느껴졌다. 이내 흘러나온 따뜻한 피가 바닥을 적시며 손에 끈적하게 묻는 감각이 느껴졌다.

배 속의 창자들이 서로 엉겨 붙어 꼬이며 저를 꽉 조이는 감각이었다. 연신 찾아오는 고통에 그 어떤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그보다 이번엔 배였다니…, 무슨 뜻이지.

저를 죽인 사람이 한 명이 아닌지 둘의 목소리가 귓가에 선명히 들려왔다.

“몇 분?”

“2분 지났어요. 지금….”

“세 번째야.”

“아하.”

“…다른 말은?”

“네? 무슨 말이요?”

이겸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구두 굽 소리를 들었다. 손발에 피가 빠져나가 차가워지는 기분이었다.

‘…추운 건 딱 질색인데.’

이대로 죽는 건가. 아직 못 해 본 것도 많은데. 어떤 개새끼가 감히 날 죽였을까, 확인하기 위해 자꾸만 감기려는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렸다.

제게 시선을 맞추고자 자세를 낮춘 남자의 얼굴에 달빛이 내려앉아 또렷이 보였다.

가지런히 정리된 검은 머리카락, 언뜻 무정하게도 느껴지는 깊고 어두운 동공. 그의 눈은 꼭 아까 마주친 괴상한 물고기의 눈과 닮아 있었다.

그는 피가 묻은 손을 뻗어 이겸의 볼을 쓰다듬었다.

소름 끼칠 만큼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방금까지 체내를 순회하던 피가 묻어 그런 건지, 원래부터 손이 따뜻한 건지, 인제 와서 궁금하지는 않았다.

손가락 틈새로 자신을 안타깝다는 듯 쳐다보는 그의 눈이 드러났다.

동정하는 건가. 자기가 죽여 놓고?

이내 이겸은 생각을 달리했다. 이겸의 시야를 가린 그의 손가락이 움직이면서 전혀 다른 장면을 보여 줬기 때문이었다. 틈새로 보인 그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가 있었다.

“거의 피할 뻔했어. 너 감이 좋구나. 다음에는 좀 더 힘내 봐.”

이겸은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열리지 않는 입술을 달싹였다.

“너…도….”

“응?”

너도 그것과 한패야? 그 물고기와?

미처 마지막 말을 끝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4분 지났어요. 5분 되기 30초 전.”

***

“…이… 쿨럭…!”

303호에 다다른 이겸의 몸이 앞으로 넘어졌다. 배에서 흘러나온 따뜻한 피가 바닥을 적시며 손을 축이는 감각이 느껴졌다.

“4분 되면 말해.”

“네. 근데 지금….”

“쉬이. 조용히 해야지.”

이겸은 대화 소리와 함께 자신에게 다가오는 구두 굽 소리를 들었다. 배 속의 창자들이 불에 지져진 듯 고통을 호소하며 저를 꽉 조였다. 고통에 그 어떤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두 명인가.’

이겸은 자꾸만 감기려는 눈꺼풀에 힘을 주며 제게 다가와 자세를 낮추는 남자를 뜬 눈으로 직시했다. 죽어도 범인의 얼굴은 알고 죽어야겠다는 독기 어린 마음이었다.

“있잖아. 아까 무슨 말 하려고 했어?”

이내 남자의 시선이 이겸에게 맞춰지며 달빛이 내려앉자 그의 얼굴이 또렷하게 드러났다.

선이 가늘지만 힘이 느껴지는 날렵한 눈매에 잘 뻗은 콧날, 원래 그렇게 생겨 먹은 건지 살짝 위를 향해 있는 입꼬리까지.

턱 끝까지 내린 검은 마스크엔 어렴풋이 피가 튀어 있었다. 어떤 도구도 없이 맨손으로 제 몸을 관통할 때 튄 피 같았다. 장기는 물론 갈비뼈도 있을 텐데, 그 단단한 걸 단숨에….

이 사람도 아까 그 괴물 같은 물고기와 한패인 걸까. ‘그것’을 죽인 복수를 제게 하는 걸까.

부서진 갈비뼈 조각들이 장기를 콕콕 쑤시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장기 통째로 관통된 걸 수도 있었다.

이번 죽음은 어쩐지 두렵지가 않았다. 많이 죽어 봐서 그런가.

…이번 죽음? 많이 죽어? 내가 무슨 생각을…. 죽을 때가 다 되면 사람이 미친다더니 딱 그 짝이었다.

“응? 알려 줘. 내가 궁금한 건 못 참아서.”

이상한 소리만 해 대는 남자에 이겸은 배 속 창자부터 힘을 끌어모아 침을 퉤, 뱉었다.

침인지, 가래인지, 피인지 모를 타액이 남자에게 닿지도 못하고 힘없이 떨어졌다.

“조… 까.”

혀가 굳어 발음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이겸은 그렇게 서서히 식어 가는 체온을 느끼며 눈을 감고 찾아오는 죽음을 기다렸다.

“…4분 지났어요. 아직이에요? 몇 번짼데요?”

이겸의 모습에 서늘하게 굳어 버린 남자는 검지와 엄지를 마찰시켜 딱! 소리를 내었다.

***

‘집에 가면 또 괴물 같은 거 있는 건 아니겠지?’

괜히 심장이 떨려 왔다. 역시 편의점으로 돌아갈까. 조금 진상 짓이지만 알바생과 함께 밤을 새울까. 하지만 편의점까지 돌아가는 길도 무서웠다.

이겸이 301호, 302호를 지나 303호에 도달하기 전, 걸음이 우뚝 섰다.

‘안 되겠다. 역시 편의점에 들러야겠어.’

아무래도 혼자 있는 건 무서웠다. 그리고 어딘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편의점에 가서 라면이나 먹으며 밤이라도 새우든가 해야지.

이겸은 일단 나가자며 발걸음을 돌렸다.

그의 등 뒤에서 두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는데요?”

“그럴 리가 없는데.”

“아! 혹시 아직 시작 안 했어요?”

후드를 깊게 눌러쓴 키 작은 남자, 차재우가 묻자 흑발의 미남자가 작게 혀를 차며 대답했다.

“아니, 하던 중.”

“진행 중이라고요? 근데 왜…!”

능력 발동 중 대상이 자리를 이탈한 건 처음이었다. 뭐가 달라진 거지? 어찌 된 영문인지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일이 예정대로 흘러가지 않자 언짢은 기분이 들었다.

서도현은 이겸이 사라진 자리만 빤히 응시했다. 곤란하다며 제 귀를 만지작거리면서 손에 걸리는 피어싱을 괴롭힐 뿐이었다.

“어떡하죠? 쫓아갈까요?”

차재우가 도현에게 물었다. 그는 잠시 고민하던 끝에 입술을 뗐다.

“따라가자.”

“1,500원입니다.”

“여기요.”

라면을 구매한 이겸은 편의점 한구석에서 포장지를 깐 후, 용기에 뜨거운 물을 담았다.

‘아… 졸려.’

잊고 있던 잠이 찾아왔지만 혼자 집에 있는 건 무서운 탓에 겨우겨우 버티며 착석했다. 그래도 라면이 들어가면 조금 잠이 깨겠지.

이겸은 3분을 기다리며 근처에 사는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늦은 새벽이지만 원체 올빼미형인 친구들이었다.

“하아….”

모든 게 꿈이라면 지금쯤 따뜻한 이불 안에서 발 뻗고 자고 있을 텐데.

이곳저곳 문자를 보내 놓은 후에 나무젓가락을 뜯어 잘 익은 면을 휘저었다.

‘이거 먹고 커피도 마셔야겠다.’

후후 불며 탱글탱글한 면을 입가에 가져다 댈 무렵, 한 남자가 이겸의 앞에 착석했다.

“안녕하세요.”

갑자기 들려온 인사에 이겸은 고개를 올려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

덥수룩한 검은 머리칼, 만면에 걸치고 있는 어색한 웃음, 꺼벙하게 걸친 안경테까지.

이겸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새벽이기도 했고 자신 빼고 손님은 없었기에 다른 좌석들도 많이 남아 있었다.

굳이 내 앞에…?

“…….”

“흠흠!”

그는 머쓱한 듯 잠시 헛기침을 하더니 제 상체를 덮고도 남을 큰 가방 안을 뒤적이며 무언가를 열심히 찾았다.

“우선 저는…. 으앗!”

할 말이 있으면 사람 얼굴이라도 쳐다보고 하지, 가방 안에 얼굴을 파묻다 흘러내린 틈 사이로 물건이 와르르 쏟아졌다.

수첩과 필기구, 그 외 잡다한 물품들.

“자, 잠시만요.”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주워 담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이겸은 컵라면을 들고 조용히 다른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본디 미친 사람과는 상종하지 않았다.

“아, 찾았다! 저는 이런 사람…! 어?”

남자가 구깃한 명함을 찾아 이겸에게 주려고 했을 때는 이미 자리를 뜨고 없는 상태였다.

이겸은 최대한 그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묵묵히 라면을 흡입했다.

‘최대한 빨리 먹고 가자.’

뭔 새벽에 미친 사람을 다 마주치네.

술 냄새는 안 나는데.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새벽에 괜한 시비에 휩싸이기도 싫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남자는 이겸을 굳이 굳이 따라와 다시 그의 앞에 착석했다.

뭐야 이 새끼. 이쯤 되니 이겸도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이번에는 피하지 않고 그를 마주 봤다.

“누구세요. 저 아세요?”

“아!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이겸은 그가 내미는 명함을 빤히 바라봤다.

이름, 권상혁. 전화번호, 010-XXXX-XXXX. 그게 전부인, 명함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종이였다.

“하는 일이 워낙 은밀하다 보니 직업을 쉽게 밝힐 수 없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

머리를 긁적이던 권상혁이 갑자기 진지한 눈빛을 지었다.

“혹, 최근에 이상한 것이 보이거나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진 않았나요?”

이겸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었다.

요즘 사이비 새끼들은 명함도 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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