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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3)화 (3/102)
  • #003

    물론 오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가짜 희망을 붙잡아서라도 발버둥 치는 시도밖에 없었다.

    그가 착안한 공략은 단 한 가지. 그것이 아가미를 벌려 검은 안개를 들이마실 때, 야구 배트를 아가미에 밀어 넣는 것이었다.

    후우. 짧게 심호흡하며 결연한 의지를 다졌다.

    진정하자, 윤이겸.

    죽더라도 절대 혼자 죽으면 안 돼. 저 괴물과 함께. 적어도 치명타라도 남기고.

    그게 바로 기절한 남자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아드레날린이 과하게 분비되었다. 지금만큼은 제 목숨이 아닌 생판 모르는 타인을 위해 거룩하고도 숭고한 희생을 꾀할 수 있을 거란 착각이 들었다. 설사 피를 보더라도 과도하게 분비된 아드레날린 때문에 고통은 없지 않을까?

    이내 그것의 눈동자가 이겸을 찾기 위해 또르륵 굴러갔다. 시야가 어두운 탓에 이리저리 동공을 돌렸지만 이겸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겸은 야구 배트를 땅에 질질 끌며 소리를 내어 친히 자신의 위치를 알려 주었다.

    와라. 와서 입을 벌려. 그리고 다물어. 네 그 잘난 입이 다물어지는 순간, 약점인 아가미에 배트를 꽂아 넣어 줄 테니까.

    그것의 검은 눈동자가 곧 이겸을 쳐다봤다. 눈동자를 때려 볼까? 불현듯 이런 생각도 했지만 눈을 향해 팔을 뻗는 순간 그것이 입을 벌리면 물릴 게 분명했다.

    섣부른 시도는 하지 말고, 계획한 대로. 최선의 방법으로.

    곧장 그것이 다가와 이겸의 얼굴 앞에 재차 거대한 블랙홀을 드러냈고, 이번엔 내부를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그것의 혀. 아까 분명 혀가 입천장 위로 올라가고 닫혔던 것 같다. …그랬다고 믿자. 지금으로선 불확실한 정보도 기회로 붙잡아야 할 때였다.

    혀가 위로 올라갔다.

    …지금!

    이겸은 잽싸게 옆으로 굴렀다.

    하아…, 하.

    두 바퀴…, 아니 한 바퀴만 덜 굴렀어도 옆구리가 산 채로 뜯겨 나갔을 거다.

    조금 빨랐나? 전혀. 타이밍은 아까와 똑같았다. 오히려 아까보다 더 정확해졌다.

    학습. ‘그것’이 학습을 한 것이다. 첫 입질 때 이겸이 피했던 걸 토대로 이번에도 피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아채고는 대비한 것이다.

    이겸은 그것이 고통을 삼키기 위해 거대한 몸을 부르르 떠는 틈을 타 후들거리는 다리를 배트로 지탱하며 일어났다.

    …금붕어 기억 3초라며. 시발, 누가 그래. 이래서 항간에 떠도는 속설은 믿을 게 못 되었다.

    아, 쟤는 금붕어가 아닌가. 이젠 아무것도 모르겠다. 저 괴물이 왜 있는지. 물고기의 모습을 하고는 왜 육지에 있는지. 나는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저것을 여기서 안 죽이면 자신이 죽는다는 것과 몸을 부르르 떤 직후, 물고기가 바로 지금 아가미를 드러냈다는 것.

    이겸은 열린 아가미를 향해 섬광처럼 달렸다. 목숨을 담보로 얻은 천금 같은 기회였다.

    이 기회를 놓치면 언제 또 올지 모른다. 학습할 줄 아는 그것이 다음에는 입을 벌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혹은 그저 단순하게 거대한 손바닥으로 자신을 찍어 누른다면 반격할 기회조차 없었다.

    지금, 지금밖에 없었다.

    지금.

    어떤 방법으로 다가가 어떻게 쑤시고, 어느 방향으로 넣을지 그런 복잡한 건 일절 정해 두지 않았다.

    이겸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생각은 오직 단 하나였다.

    지금 당장 저것을 끝장내야 한다고.

    언제나 계획을 짜고 행동하는 이겸에게 있어서 거의 최초로 몸이 먼저 움직인 사건일 테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위급한 순간엔 언제나 이성보다 본능이 먼저였다.

    왜, 그럴 때 있잖은가.

    저도 모르게 뜨거운 것에 접촉하면 바로 신체를 떼어 낼 때, 무릎 아래를 치면 발이 저절로 들릴 때.

    흔히들 무조건 반사라고 말한다.

    이것은 인간 누구나 가지고 있는 선천적인 특성이며, 신체가 위험한 순간에 자신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일어난다. 신경이 대뇌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보다 민첩한 반응을 낼 수 있고, 갑작스러운 위험에 닥쳤을 때, 신속한 대처가 가능하다.

    지금 이겸의 상태가 그랬다.

    대뇌, 즉 생각을 거치지 않고도 어떻게 움직이고, 달리고, 피해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신체가 정답을 안다는 듯 저절로 움직였다. 마치 온몸이 이 험난한 전투를 이기기 위해 기계처럼 움직이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았다.

    처넣어. 야구 배트를 저 아가미 속으로 처넣어. 지금 당장.

    온몸의 척수 신경에 스파크가 튄 듯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움직이며 눈앞의 목표물을 향해 가볍고, 또 빠르게 달려갔다.

    아드레날린이 과도하게 분비되어 이런 힘이 생긴 걸까? 그걸로는 설명이 불가능했다.

    알 수 없는 미지의 힘에 의존해 움직이는, 그런 기분이었다.

    머릿속에 안개가 낀 듯 멍했다.

    아무 생각 하지 말고 그냥 신체가 이끄는 대로 따라 움직이라는 듯. 그것이 본능이고 곧 살 방법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았다.

    따르기로 했다.

    단숨에 아가미 속으로 야구 배트를 꽂아 넣었다.

    끼에에에에엑-!

    검은 안개를 흡수하며 입질의 고통을 삼키고 있던 그것은 이물질이 아가미로 침투하자마자 괴상한 소음을 내었다. 비명이라 하기도, 목청으로 소리 내는 것도 아닌 마치 온몸으로 고통을 표출해 내는 것 같았다.

    이겸은 엉덩이를 땅에 찧은 채 눈앞에서 펼쳐지는 기묘하고, 이상하고, 괴이함의 총집합인 말로를 멍청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방금 나… 숨은 쉬고 있었나?’

    콜록, 콜록. 참았던 호흡을 내뱉자 와락 기침이 터져 나왔다.

    “윽.”

    그리고 잠시 멈췄던 생각과 산소들이 뇌 속에 들어온 여파로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지만 눈살을 찌푸리는 와중에도 절대 완전히 감지는 않았다.

    단 한 순간이라도 눈을 떼면 안 됐다. 그것이 죽는 것을 끝까지 확인해야 했다. 마지막 장면까지. 두 눈 똑똑히.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최후를 맞이하는지 두렵지만 지켜보기로 했다. 혹시 모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이것이 다시 살아나 복수를 위해 저를 죽이러 올지도.

    고통에 몸부림치던 그것은 아가미에 박힌 야구 배트를 빼내기라도 하려는 건지 벽에 몸을 비비며 스스로를 상처 입혔다.

    그러다 몸을 지탱하고 있던 손을 들어 아가미를 헤집기도 했다. 한 손이 들리자 남은 한 손으로 땅을 짚으며 육중한 무게를 지탱하기 힘들었는지 옆으로 갸우뚱 쓰러졌다. 또 한 번 굉음이 일었다.

    학습 능력은 있지만 그다지 지능이 높아 보이진 않았다.

    그럼에도 그것은 팔딱팔딱 뛰어오르며 아가미를 헤집다가 이내 포기하고는 약점을 숨기려 들었다. 물론 그것마저 배트에 막혀 쉽지 않았다.

    그러곤 서서히, 아주 서서히 죽어 갔다.

    이겸은 벽에 기대어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닦았다.

    나, 아가미까지 대체 어떻게 뛰어올랐었지.

    아가미는 제 키의 1.5배는 높은 곳에 있었다. 공략할 곳이 저기밖에 없어 일단 해 보자 싶었지만, 사실 거의 반 포기 상태에 가까웠다.

    손을 위로 쭉 뻗고 겨우 점프해야 닿을 거리인데 어떻게 야구 배트를 넣어…. 하다못해 던져서 넣자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방금 전. 분명 눈앞에, 제 팔 밑에 아가미가 있었다.

    나 의외로 점프력이 좋았나…. 그건 아닌데.

    그러고 보면 달라진 점이 또 하나 있었다. 검은 안개가 옅어졌다. 아가미로 빨아들여서 그런 건지. 모든 것이 미궁이었다.

    미지의 괴생명체.

    그것은 끝까지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

    “저기요.”

    “…….”

    “저기요.”

    이겸은 자신이 뼈 빠지게 몸을 굴려 그것을 쓰러트릴 동안 기절한 듯 잠이나 청하는 남성의 양 뺨을 찰싹찰싹 때렸다.

    내가 그쪽 목숨을 구해 줬어요. 얼른 일어나 봐요.

    물고기 괴물의 시체를 뒤로하고, 기절한 사람을 깨우는 데 집중했다. 의도적으로 정신을 다른 곳에 둔 것이다.

    아직도 이 모든 게 꿈인가 의심스러웠지만, 남성의 뺨을 때릴 때 제 손바닥도 쓰라렸기에 현실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꿈보다 더 꿈 같은 일들이었음을.

    그건 이 남성도 마찬가지겠지. 통화를 하다 웬 괴생명체에 잡혀갔고, 기절했다가 다시 일어나니 어떤 사람이 제 뺨을 때리고 있다면 누구나 꿈이라고 생각할 거다.

    눈을 뜨니 낯선 곳이었습니다.

    이 한 문장으로 남성의 당황을 설명할 수 있었다.

    “아, 눈 떴다. 저기요. 방금 무슨 일 있었는지 아세요? 제가 그쪽 살렸어요.”

    남성이 게슴츠레 눈을 떴을 때, 이겸은 그가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방금 전 일어났던 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설명했다.

    부디 자신과 같은 경험을 했다고, 그렇게 말해 주면 그래도 동지가 생긴 기분이 들 것만 같았다. 혼자만 이 기묘한 상황을 경험한 게 아니라는 위로가 될 법했다.

    하지만 세상은 야속했다.

    남성은 초점이 없는 동공으로 몸을 일으켜 비틀비틀 걸어 나갔다. 의식이 없는 사람 같았다.

    “저기요.”

    이겸이 그의 눈앞에서 손을 흔들어 봤지만 동공은 따라오질 않았다.

    뭐지?

    얌전히 그의 뒤를 따라 이동했다. 그는 아까 그것을 걷어찬 장소에 우뚝 서더니 휴대폰을 꺼내 들어 귓가에 가져다 댔다. 이겸은 뒤에서 그 모든 행동들을 눈여겨보았다.

    “네가 쏘는 거 맞지? 야, 왜 대답이 없냐. 아 이 새끼 끊었네.”

    …마치 방금 전 경험했던 사건들이 기억 안 난다는 양 행동한다.

    “씁, 이상하다. 왜 이렇게 뺨이 따갑지.”

    중얼거리며 저 멀리 사라지는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인어 공주가 이런 심정이었을까. 내가 구해 줬다고. 내가 널 살렸다고. 당장이라도 가서 따지고 싶은 기분이었다.

    왜 기억을 못 해. 널 살렸다고.

    이 모든 게 거짓말 같았다. 구해 줬더니 알지도 못하고. 감사 인사도 못 받고. 나는 정말 의미 있는 일을 한 건가? 난 목숨까지 걸었는데?

    이겸은 미친 사람처럼 제 머리칼을 마구 헤집었다.

    허무했다.

    지나가다 똥을 밟아도 이토록 불쾌하진 않을 것이다. 아니, 똥 같은 단어로는 현재 제 기분의 더러움을 털끝도 표현하지 못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진정이 됐다. 그제야 풀어졌던 겉옷의 지퍼를 단단히 올리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추워.’

    땀이 식고 나니 잊고 있던 추위가 느껴졌다.

    구해 준 남성이 사라지자 다시금 공포감이 밀려왔다.

    ‘아 씨, 뒤따라갈 걸 그랬나.’

    조금이라도 빨리 소름 끼치는 이 장소를 벗어나기 위해 걸음을 서둘렀다. 종지에는 뛰는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

    어쩌다 보니 길목의 편의점도 깜빡하고 집 앞에 도착했다. 아까 전 자신이 서 있던 전봇대가 시야로 들어섰다.

    진짜… 야구 배트 버린 사람 나한테 잡히기만 해.

    쓸모없는 용기를 심어 준 쓰레기 불법 투기범을 신고할 것을 꼭꼭 다짐하며 제집, 아파트 안으로 들어섰다. 층수가 얼마 안 되는 아파트라 엘리베이터도 없었다. 오늘따라 계단이 무섭게만 느껴졌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편의점에 갈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계단을 하나하나 오르고 있을 때, 이겸의 몸이 멈칫했다. 자신의 크나큰 실수를 깨달았다.

    ‘개멍청이…. 경찰은 뒀다 어디 쓰냐.’

    바보같이 112에 신고하면 될 걸 생사를 오가며 괴물과 맞서 싸우고 나서야 생각났다. 정신머리가 없어 벌어진 자신의 실책이 뼈저리게 아팠다.

    이겸은 주머니 속 휴대폰을 매만졌다.

    ‘그래도 신고는 해 볼까….’

    해서 어쩔 건데. 괴물은 자신이 해치웠고, 기억하는 사람도 저뿐인 것 같았다. 장난 전화라고 의심받지는 않을까.

    이겸은 고개를 저으며 다시 계단을 올랐다.

    301호, 302호… 쭉쭉 지나 304호가 이겸의 집이었다.

    걸어 나가며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제게 나타난다면 꼭 경찰에 신고하기로 다짐하며 방금 전을 되새겼다.

    ‘집에 가면 또 괴물 같은 거 있는 건 아니겠지?’

    괜히 심장이 떨려 왔다. 역시 편의점으로 돌아갈까. 조금 진상 짓이지만 알바생과 함께 밤을 새울까. 하지만 편의점까지 돌아가는 길조차도 무서웠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겁쟁이가 된 기분이었다. 이겸이 옆집인 303호에 다다랐을 무렵,

    “안녕.”

    낯선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뚝- 뚝-.

    그리고 붉은 피가 이겸의 몸을 타고 흘러 바닥에 떨어졌다.

    “이… 무슨….”

    뒤를 돌아볼 새도, 뭐라 말할 새도 없었다.

    이겸은 시선을 아래로 내려 제 가슴팍을 내려다봤다. 출처도 알 수 없는 손이,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도 모르는 손 하나가 제 가슴에 꽂혀 자리 잡고 있었다.

    아, 가슴에서 튀어나왔구나.

    난 가슴을 꿰뚫린 거구나.

    “커헉… 컥!”

    이겸의 몸이 맥없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볼이 닿았다. 가슴에선 울컥울컥 피가 차올랐다. 관통된 부위가 불에 타 화상이라도 입은 것처럼 지독히도 고통스러웠다.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초원에 사는 작은 초식 동물이 제 몸을 찢어 죽일 맹수를 만난 듯 본능적인 공포가 뇌를 지배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따뜻한 물기가 뺨을 타고 흘러내려 바닥을 적셨다. 피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 그 둘 다일 수도 있었다.

    이겸은 힘겹게 눈동자를 굴려 흐릿하게라도 범인의 인상을 살폈다.

    흑발의 남자였고, 귀엔 여러 가지 피어싱이 반짝이고 있었다. 손수건에 붉은 손을 닦는 걸로 봐선 분명 저 자식이 범인이었다. 그리고 그의 옆엔 후드를 깊게 눌러쓴 키 작은 한 사람이 더 있었다.

    저를 죽인 이는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었다. 둘은 태연하게 대화를 나눴다.

    “몇 분이야?”

    “이제 2분 지났어요. 지금 몇 번째예요?”

    “첫 번째.”

    “…근데 저분 저희 쳐다보고 있는데요?”

    후드를 쓴 사람의 말에 흑발의 미남자가 이겸을 내려다봤다. 그는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붉은 입술을 열었다.

    “리셋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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