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1)화 (1/102)
  • #001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였다. 그럴 터였다.

    여느 때와 같이 친구들과 놀다가 추위에 목을 재킷 안에 자라처럼 쑥 집어넣어 숨긴 채 걸어가는, 늦은 밤 집으로 향하는, 그런 평범한 하루.

    윤이겸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터덜터덜 걸었다. 걸음걸이에는 특유의 무심함과 무기력감이 동반되어 있었고, 내리깐 눈에는 날카로운 삼백안이 자리했다. 반항적이고도 나른한 인상이었다.

    권태로운 하품을 뱉으며 거리를 거니는, 남들과 다를 바 없는 하루, 무척이나 단조로운 일상.

    그래야만 했다.

    그래야만 했는데….

    윤이겸은 눈앞의 괴이한 현상에 어떠한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심지어 숨마저 곤히 죽인 채 상황을 관망하고 있었다.

    챱챱.

    어두운 밤, 좁은 골목길 그렇다 할 가로등도 없이 달빛만이 내려앉은 곳.

    챱챱챱.

    이겸은 제 뒤로 들려오는 소리에 순간적으로 몸을 확 틀었다. 눈에 잡히는 존재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분명 무언가가 존재했다. 틀림없다.

    귀를 갈기는 괴이한 소리와 함께 제 주변으로 이상한 발자국이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공포감이 화악 끼쳐 왔다.

    발자국이라고 해야 하나, 이건 마치….

    손, 손이었다.

    비도 오지 않았는데 축축하게 젖어 땅에 새겨진 손자국.

    걸을 때 생기는 발자취처럼 총총 손자국이 길을 따라 옹기종기 새겨져 있었다.

    ‘누가 손으로 걷기라도 한단 말이야?’

    이겸은 조금 더 자세히 살피기 위해 무릎을 굽혔다.

    작은 아이의 손자국이었다.

    아기가 기어간 건가. 그럴 가능성이 희미하게는 있었지만, 정말 그게 사실이라면 부자연스럽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만약 이 가정이 들어맞는다면….

    “학대?”

    곧장 떠오른 생각에 인상이 절로 굳었다.

    땅에서 기라고 시켰나?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땅에는 오직 손바닥 자국만 존재할 뿐 기어간 흔적이 없었다.

    기괴한 상황에 놀란 이겸이 서둘러 주변을 살폈다.

    챱챱챱.

    다시 한번 오싹하고 섬뜩한, 한편으로는 마치 어린아이가 첨벙첨벙 물장구를 치는 듯한 귀여운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의 주인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오싹함에 식은땀이 흘러나왔고 피부에 와 닿는 공기는 따갑게 느껴졌다.

    챱챱챱.

    ‘뒤…!’

    재빨리 등을 돌렸다.

    그러곤 맞닥뜨린 형체에 제 눈을 의심했다.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막 잠에서 깼을 때처럼 눈을 비비기도 했다.

    그럼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오색찬란한 물고기의 형체가.

    인적이 드문 어두운 길가. 이겸의 주먹만 한 그것은 스스로 빛을 발하는 중이었고, 배 부근에는 다리가 아닌 팔이 달려 있었다. 애초에 물고기에게 다리가 달려 있는 것도 어이가 없었지만 팔이라니. 괴이하기 짝이 없었다.

    챱챱챱.

    본디 물고기는 물에서 헤엄치는 생물이다. 하지만 저건 달랐다. 배에 달린 두 팔로 뒤뚱뒤뚱 몸을 움직이며 걷는다. 움직일 때마다 비늘들이 찬란하게 형형색색의 무지갯빛을 내뿜는 건 덤이었다.

    이겸은 침을 꿀꺽 삼키며 빠르게 그것의 정의를 내렸다.

    저건 물고기가 아닌 ‘어떤’ 것이었다. 지금껏 본 적 없는 생물체. 미지의 존재. 괴생명체.

    챱챱챱.

    지금껏 들려왔던 귀여운 소리는 ‘그것’이 걸을 때마다 나는 것이었다.

    문득 자신이 서 있던 시멘트 바닥 위가 온통 그것의 손자국이라는 걸 깨달았다. 사방이 손자국으로 덮여 있었다.

    ‘…언제.’

    제 몸집보다 몇 배나 작은 물고기 한 마리였다. 고작 한 마리. 한주먹거리. 그럼에도 이겸은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그 작은 존재감이 바닥에 정처 없이 찍힌 무수한 손자국만큼이나 거대하게 자신을 옥죄어 왔다.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서서히 뒤로 물러나며 이겸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지식을 바탕으로 어떻게든 ‘그것’을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몸에서 빛을 낸다. 저게 진짜 물고기인지 모르겠지만, 일부 심해어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었다. 눈이 멀었다는 것 또한 그중 하나였다.

    그렇다면 아직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 건 아닐까. 한 줌의 희망이 피어올랐다.

    이겸은 원체 말이 없고 조용한 성격이었다. 심지어 이곳에 오는 길은 내내 혼자였다. 별다른 혼잣말을 내뱉지도 않았다.

    ‘아직 발견되지 않았을 수도 있어.’

    야트막한 희망을 품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읏!”

    순간 그것이 몸통을 갸우뚱하며 한 걸음 성큼 다가와 이겸을 놀랬다. 하마터면 스텝이 꼬일 뻔했다.

    ‘그것’이 거대한 입을 쩍 벌리니 날카롭고 긴 이빨이 드러났다. 몸집은 왜소해도 자신을 찢어발기기엔 충분해 보였다. 손가락이라도 물렸다간 작은 생채기로는 안 끝난다. 잘릴 각오를 해야 한단 게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지금 당장 죽는다 해도 저런 괴상한 물고기에게 당하는 건 사양이었다.

    챱챱챱.

    이겸이 뒤로 물러나는 속도보다, ‘그것’이 다가오는 게 훨씬 빨랐다.

    ‘어쩌지, 차라리 달릴까.’

    뒤도 돌아보지 않고 힘차게 내달리면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 저것이 달리는 모습을 보진 못했지만, 팔 두 개로 뒤뚱뒤뚱 쫓아오기에는 무리일 수도 있었다.

    아니,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얼마 보지 않았음에도 저 괴상한 물고기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존재 같았다.

    사실 눈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일종의 장난이 아닐까? 어느 순간 훌쩍 다가와 저를 집어삼키지 않을까?

    크기가 작다지만 미지에서 오는 공포는 강렬했다. 알 수 없는 존재를 마주쳤을 때에 오는 본능적인 거부감.

    숨이 떨려 왔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이겸이 이런저런 가늠을 하고 있을 때 ‘그것’의 움직임이 멎었다. 배에 달린 두 팔을 이용해 뒤뚱뒤뚱 방향을 틀어 제 오른쪽을 빤히 쳐다본다.

    그사이 조심히 뒤로 가면서도 끊임없이 생각했다.

    ‘뭐지?’

    ‘그것’이 멈춘 방향에는 아주 작은 샛길이 있었다. 이겸도 자주 이용하는 곳이었으나, 오늘따라 안개가 자욱이 껴 입구가 흐린 탓에 자세히 보이질 않았다.

    “이번에도 탈락했어. 응. 술이나 마실까?”

    그때 샛길에서 한 남성이 통화를 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이겸은 제 여린 볼살을 깨물었다.

    ‘시끄럽게 소리 내면….’

    챱챱챱.

    ‘그것’이 남성에게 다가간다.

    “아니, 서류는 통과했는데 면접에서…, 응. 네가 쏘는 거지?”

    말려야 하나? 하지만 어떻게? 그럼 지켜봐? 저 남자는? 머릿속에 수많은 문장들이 떠올랐지만 그 어떤 것도 쉬이 실천할 수 없었다.

    순간 ‘그것’이 남성을 향해 다가가며 작은 입을 쩍 벌렸다.

    챱…!

    그리고 그것이 남성의 발에 차여 힘없이 나가떨어진 것도 한순간이었다. 이겸은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봤다.

    ‘…어라?’

    생각보다 약한 건가? 아무렇지 않게 그것을 찬 남성은 아직 존재를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았다. 무게가 가벼워서 못 느꼈나?

    ‘아니면 보이지 않는 건가?’

    “아니. 응? 돌멩이를 찼나? 아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서 네가 산다고? 나야 고맙지. 응, 꼭 취직해서 갚을게.”

    …챱챱챱.

    ‘그것’은 엉성하게 일어나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고는 남성이 나왔던 안개가 자욱한 샛길로 도망치듯 들어갔다.

    이겸은 온몸에 한껏 주었던 긴장을 풀었다.

    ‘뭐야, 이렇게 끝난 거야?’

    허무할 지경이었다. 처음부터 발로 차면 되었을걸, 괜히 주의를 기울였나 싶기도 했다.

    “하!”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자신이 겨우 저런 거에 소스라치게 놀랐단 사실이 한심했다.

    한시라도 빨리 집에 가서 방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제대로 정리해야겠다, 다짐하며 걸음을 돌렸다. 어서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역시 편의점에 들를까.

    이건 그저 태평한 생각이 아니라,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만나 진정하고 싶은 욕구에서 왔다. 이겸은 아까와 달리 비교적 산뜻한 마음으로 편의점으로 향했다. 발의 보폭이 빠르고, 넓어진 건 어쩔 수 없었다.

    콰앙-!

    그때 고막이 찢어질 듯한 소리와 함께,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깊게 울렸다.

    “뭐…!”

    뒤를 돌아본 후에는 다리에 힘이 풀려 땅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귀에서 삐- 하는 이명이 울리는 게 꼭 위험을 경고하는 것 같았다.

    전화를 하던 남성이 있던 자리에는 뿌옇게 먼지가 일었고 이겸의 몸집만큼이나 거대한 손자국만이 시멘트 바닥에 깊게 파여 있었다.

    그것은 기절한 남성을 검은 안개가 가득한 샛길로 던진 후, 유유히 걸어 들어갔다.

    더는 주먹만 한 물고기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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