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혀끝이 닿은 순간 생각은 전부 사라졌다. 하진은 손을 올려 정우의 얼굴을 만졌다. 손이 뺨을 만질 때마다 키스가 조금 더 급해지고, 깊어졌다.
하진은 제 혀끝을 집어삼키며 점점 제 쪽으로 몸을 붙여오는 정우를 밀어내지 않았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했던 키스인데도 꼭 처음 같았다. 정우와의 키스는 늘 이랬다. 어떤 상황에서 해도 모든 생각을 증발시키고, 몽롱하게만 만들었다. 하진은 그래서 정우와의 키스가 좋았다. 오로지 차정우만 보이는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하아…….”
혀가 풀리기가 무섭게 다시 엉켜 들었다. 새카만 머릿속으로 빨간 불이 켜졌다가 꺼지는 것을 반복했다. 하진은 정신없이 제 혀를 빨아들이는 정우의 혀를 문질렀다. 뒤엉킨 다리가 더 깊게 들어올 때마다 척추를 타고 찌릿한 감각이 마구 타고 올랐다.
“흣…!”
혀끝이 느릿하게 문질리고, 정우의 손이 등줄기를 따라 내려간 순간 하진은 신음을 터뜨렸다. 내내 참던 소리가 터진 순간 격렬히 움직이던 두 혀가 멈추었다. 하진은 내내 감고 있던 눈을 뜨며 몸을 일으켰다. 허리 위로 살짝 올라갔던 셔츠가 힘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
더듬대며 손을 움직여 휴대폰을 찾은 하진이 화면을 터치했다. 갑자기 밝은 불빛이 확 끼쳐 눈이 부시고 찡그려졌다. 얼마나 오래 잤던 건지 벌써 9시가 넘어 있었다. 점심을 먹고 방송들을 보다 한 세 시 반쯤 잤다고 해도 다섯 시간이 넘게 잔 것이었다.
“…아홉 시가 넘었어.”
“벌써요? 오래 잤네요. 세상모르고 잤어요.”
“…나도. 어… 불 켤게.”
“…네.”
하진은 침대에서 내려가 익숙하게 방 문까지 가 불을 켰다. 갑자기 불이 환하게 들어오자 눈이 부셔 다시 눈이 감겼다. 하진은 차마 침대에 아직 있는 정우를 돌아볼 자신이 없어 괜히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곧 침대에서 내려온 정우가 하진의 옆으로 다가왔다.
“얼굴 못 보겠어요?”
“어? 아… 그런 건 아닌데 좀…….”
“괜찮아요. 불 꺼졌을 때 일이잖아요. 지금은 불 켜졌고.”
“…….”
정우의 말에 고개를 돌린 하진이 저의 시선 앞에 선, 그새 또 조금 자란 정우를 바라보았다. 마냥 어른일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참 어렸고, 또 마냥 애인 줄 알았는데 또 조금은 자라 있었다.
“오늘 내가 너무 어색하게 굴었지. 내가 오라고 해놓고.”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요. 형이랑 나 사이에 그동안 한 번도 없었던 각자의 시간이 있었고, 그걸 지나서 이제 다시 천천히… 보기 시작한 건데 당연히 어색하죠. 잘 아는 사이지만, 그래도 많이 달라졌으니까요.”
“…며칠 만에 갑자기 이렇게 큰 거야? 또 어른 같아 보여.”
“그냥 형 마음이 편했으면 좋겠어요. 어색하면 어색한 대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으면 그냥 아무 말이나 서로 하기도 하고, 그 아무 말도 하기가 힘들면 잠깐 둘 다 조용해도 되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자연스럽게. 형 말처럼 저도 서두르지 않으려구요. 잘 안 되기는 하지만.”
씩 웃는 정우를 가만히 보던 하진이 손을 올려 자느라 살짝 헝클어진 정우의 머리칼을 슥슥 쓸어 주었다. 쓸기 좋게 다리를 살짝 구부리고 고개까지 숙여 대주는 정우를 본 하진이 작게 웃었다. 꼭 몸집은 큰데 아주 순한 대형견을 보는 것만 같았다.
“갈게요, 정말.”
“…응.”
“오늘은 안 내려와도 돼요.”
“왜? 같이 내려가.”
“가기 힘들어요. 자꾸 돌아서 오고 싶고. 엘리베이터 앞까지만요.”
“…그럴게.”
현관으로 나가 신발을 신은 정우가 슬리퍼를 신는 하진을 바라보았다. 현관 센서가 깜빡이며 밝은 빛이 흘렀다.
“이제 아홉 번 남았네요.”
“…응.”
열 번 중에 한 번의 만남이 이렇게 끝났다. 남은 아홉 번이 지나면 어떻게 될까. 하진은 문을 열고 나가 올라오는 엘리베이터를 바라보았다. 정우가 곧 열리는 문을 한 번 보고 하진을 돌아보았다.
“전화할게요, 형.”
“응. 조심해서 가.”
“네. 갈게요.”
하진은 엘리베이터에 타는 정우를 바라보았다. 1층 버튼을 누르고 고개를 든 정우와 눈이 마주쳤다. 저를 보는 정우와 문이 닫힐 때까지 눈을 맞춘 하진은 그 시선이 사라진 뒤에야 화끈대는 뺨을 감싸 쥐었다. 내내 달뜬 분위기 속에서 긴장을 해서 그런지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문을 닫고 그 문에 기대 깊게 숨을 내쉬자 몸에서 힘이 이상할 만큼 쭉 빠져나갔다.
“…….”
감은 눈 속에서 정우의 얼굴이 일렁거렸다. 어둠 속에서 맞물린 입술의 감촉이 아직도 생생했다. 입술에 남은 열기가 하진의 머리끝까지 찌릿하게 만들었다. 그러려고 집으로 오라던 건 아닌데, 정말 아닌데 순간 뒤엉킬 땐 아무것도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때 갑자기 벨이 울렸다. 놀란 하진이 문에 기대고 있던 등을 떼며 뒤돌았다. 부모님은 분명 내일 저녁에나 오신다고 했는데, 누구일까. 하진은 누구세요, 물으며 문을 살짝 열었다.
“……정우야.”
그리고 눈앞에 선 정우를 바라보았다. 놀란 하진의 얼굴을 본 정우가 문을 잡아 조금 더 열며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이제 여덟 번 남았어요.”
그대로 정우가 성큼 크게 다가와 하진의 얼굴을 두 손으로 쥐며 입술을 머금었다. 조금 이른 두 번째 방문이었다.
***
현관에서 방까지 어떻게 갔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하진은 침대에 뒷머리가 닿으며 떨어진 정우의 얼굴을 잡아 다시 입술을 머금었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뜨겁게 혀가 뒤엉켰다. 올바른 판단 같은 것은 사라지고 없었다.
달뜬 몸에서 나는 열이 옷 위로도 뜨겁게 느껴졌다.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는 옷을 벗으면서도 정신없이 입술을 찾아들었다.
“흣…!”
티셔츠를 벗고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가슴 위로 정우의 얼굴이 내려온 순간 하진은 허리를 크게 들썩였다. 혀가 유두 위에 닿는 순간 눈이 감겼다. 흥분해 솟은 것이 정우의 혀끝에 닿아 움직일 때마다 우는 것 같은 소리가 짧게 흘렀다. 하진은 손등으로 입술 위를 꾹 누른 채 신음을 억눌렀다.
맛있는 것을 먹는 것처럼 하진의 유두를 혀끝으로 굴리고 쪽쪽 소리가 나게 빨던 정우가 고개를 들어 입을 막고 있는 하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보이는 하진의 손바닥에 입술을 묻었다.
“가리지 말아요, 형.”
“…….”
“다 보고 싶어요.”
천천히 하진의 손을 잡아 내린 정우가 온전히 드러나는 하진의 얼굴을 꼼꼼히 눈에 담았다.
“예뻐요, 형.”
“…….”
마주친 시선이 마구 떨렸다. 하진은 저를 내려 보는 정우를 눈에 담다가 그 떨림이 너무 무거워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마자 맞물리는 입술 사이로 혀가 정신없이 다시 엉켜 들었다. 그대로 정우의 목에 팔을 두른 하진이 입술을 더 크게 벌려 정우의 혀를 마주 문질렀다.
“으응…….”
앓는 소리가 날 때마다 숨이 가빠졌다. 티셔츠가 떨어진 옆으로 하진의 바지가 힘없이 떨어졌다. 정우는 무릎까지 내려간 하진의 속옷을 발목까지 끌어 내리다가 못 참겠다는 듯 다리 사이로 손을 가져갔다. 손이 닿았을 뿐인데 잔뜩 엉망으로 흐트러진 숨소리가 신음과 뒤섞여 울렸다.
“하으… 아…….”
정우의 손이 성기를 감싼 순간 하진은 고개를 저었다. 부정의 의미가 아니었다. 저도 모르게 도리질이 쳐질 만큼 갑자기 퍼지는 감각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하진은 정우가 성기를 쥐고 문지르고 흔들어 주는 감각을 그대로 느끼며 어쩔 줄을 몰랐다. 세워진 무릎이 미끌리고 또 미끌렸다. 정우는 점점 숨이 가빠지는 하진의 얼굴을 보며 엄지손가락으로 하진의 젖은 귀두를 느릿하게 문질렀다.
“기분 좋아요?”
“하아… 응, 흐으, 으응… 아… 좋아……. 그런데 거기만, 흣, 자꾸 거기만 그렇게 하지… 마아…….”
애원하듯 말끝을 길게 늘어뜨리는 하진을 황홀하다는 얼굴로 내려 본 정우가 애를 태우듯 하진의 귀두를 누르며 살살 문질렀다. 다른 곳도 아니고 계속 거기만 문지르는 것에 하진이 고개를 저었다. 저번에도 이런 적이 있어서 정우가 뭘 하려고 하는지 알 것만 같았다.
귀두가 쓰리듯 아프다가 감각이 없어지고, 갑자기 확 날카로운 쾌감이 잔뜩 달라붙는 그 느낌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몸이 내 몸이 아닌 것처럼 잔뜩 이상하면서도 움직임이 멈추면 싫을 것 같은 묘한 기분. 하진은 귀두가 쓸린 것처럼 살짝 아픈 느낌에 다시 고개를 저었다.
“형은 이렇게 늘 예뻤어요. 한순간도 예쁘지 않았던 적이 없어요.”
눈을 감고 잔뜩 느끼는 하진의 얼굴을 내려 보던 정우가 못 참겠다는 듯 입술을 찾아들었다. 하진은 위와 아래에서 동시에 쏟아지는 쾌감에 몸을 덜덜 떨었다. 쓰린 것처럼 아프던 귀두는 이제 감각이 닳아 없어진 것처럼 멍하게 느껴졌다. 하진은 그 뒤에 찾아올 큰 쾌감을 기다리면서도 또 무섭기도 한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잠, 잠깐… 잠깐만, 아…… 하읏, 나…… 흣!”
집요하게 선단만 만져대는 손길에 감각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하진은 마구 고개를 저었다.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강한 쾌감이 밀려들 거라는 것을 알기에 몸에 힘이 들어갔지만, 정우가 손끝을 움직이는 순간 허무할 만큼 빠르게 힘이 다시 쭉 빠졌다. 하진은 꼼짝도 하지 못한 채 겨우 고개만 저어댔다.
“더는, 이제, 이제 더는…… 으응, 무서워… 그만, 흐으, 응, 아아… 하읏!”
무섭다고 겨우 달뜬 숨과 함께 말하며 고개를 젓는 하진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로 정우는 조금 더 집요하게 손을 움직였다. 귀두를 동그랗게 문지르며 움직이던 손끝이 입구를 확 막았다가 문지르며 떼는 그 순간 하진의 허리가 확 들렸다. 그리고 맑은 물이 확 뿜어져 나왔다.
우는 것 같기도 하고 비명 같기도 한 소리였다. 하진은 높은 소리를 내뱉으며 몸을 지배한 쾌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 번 맑은 물이 터져 나온 뒤에도 정우의 끊이지 않는 집요한 손길에 계속 물이 줄줄 흘렀다. 하진은 눈도 뜨지 못한 채 몸을 떨었다. 손만 닿아도 절정에 오른 것처럼 계속 쾌감이 머리끝까지 치고 올랐다.
힘든데 기분이 좋아서 멈추고 싶지 않았다. 정신이 나가버린 것만 같았다. 하진은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손을 들어 정우의 팔을 잡아 가까이로 당겼다. 별로 힘을 주지 않았는데도 하진의 뜻을 이해한 정우가 확 가까이로 다가와 입술을 겹쳤다. 그 뜨거운 혀끝을 굴리며 하진은 안으로 파고드는 것에 눈을 질끈 감았다.
“으응… 흐읏…….”
입구를 늘리듯 안으로 파고든 두 개의 손가락이 느릿하게 돌아갔다. 살짝 걸치듯 들어왔다가 안으로 점점 깊게 들어와 찌르는 순간 눈물이 흘렀다. 허벅지 안쪽이 떨리고 몇 번이나 쏟아내 힘을 잃었던 성기가 다시 붉게 달아올랐다. 하진은 고개를 저으며 정우를 붙잡았다.
“빨리…….”
“지금 하면 아파요.”
“…괜찮아. 빨리…….”
보채는 소리가 자꾸 흘렀다. 그런 하진을 본 정우가 고개를 숙여 하진의 뺨에 깊게 입 맞췄다.
“아프면 말해요.”
섹스 중 다정한 정우의 목소리는 정말 낯선 것이었다. 대부분 예민한 얼굴을 했었고, 오로지 쾌감만을 위한 행위였었다. 하진 역시 그것을 알고 있었고, 그걸 말리거나 원망하지 않았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정우와 닿을 수 있어 그 모든 시간들이 결국은 다 좋기만 했었다.
“…정우야.”
“네.”
“……네가 다정해서 좋아.”
배려받고 있었다. 쾌감이 전부가 아니라 분명 그 안에 따뜻함이 있었다. 눈을 맞추고, 틈만 나면 입술을 마주하며 충분히 서로에게 닿았다.
“전에도 너랑 닿으면 좋았는데, 지금은 더 좋아. 네가 계속 키스도 해 주고… 얼굴도 보고.”
“안 하고, 안 보고는 못 견디겠어요.”
“…….”
“다정해서 하는 게 아니라 형을 좋아해서 하는 거예요. 형을 사랑하니까. 안 보면 못 견디겠으니까.”
“…나도 그랬어.”
“…….”
“네가 자꾸 전에 내가 생각한 말들을 해. 널 사랑하면서 혼자 했던 생각을 네가 말로 해. 똑같이 해. 그래서 진심일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헷갈렸어.”
“…….”
“그건… 사랑해야만 알 수 있는 건데 네가 알고 있는 게 이상하잖아.”
그래서 굳게 마음먹다가도 흔들리고 무너지고 했었다. 사랑하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을 해야만 앓는 그 증상들을 정우가 그대로 소리 내는 게 이상해서.
“형이… 날 믿지 못하는 게 당연해요. 나라도 절대 못 믿을 거예요. 어떻게 믿어요. 날 사랑하는 걸 알면서, 뻔히 다 알면서 내가 필요한 것만 골라서 이용하고, 그 감정은 싸그리 무시하고 짓밟았는데.”
“…….”
“그런 놈을 어떻게 믿어.”
목소리가 여전히 다정했다. 하진은 손을 들어 울 것 같은 정우의 눈가를 부드럽게 문질렀다.
“내가 미리 닦았으니까 울지 마.”
“…안 울게요.”
고개를 끄덕이는 정우를 본 하진이 작게 입을 열었다.
“키스해 줘.”
대답 대신 미소 지은 정우가 그대로 그 어떤 머뭇댐도 없이 하진의 입술을 찾아들었다. 하진은 부드럽게 닿아 문질리는 혀를 느끼며 손을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정우의 버클을 풀었다. 보면서 하는 게 아니라 지퍼가 잘 내려가지 않아 당황한 손끝을 쥔 정우가 하진의 손 위를 덮고 오므리며 지퍼를 내렸다. 하진은 그대로 정우의 속옷 위로 단단히 발기한 성기를 살짝 문질렀다.
“아…….”
살짝 닿고 문지르기만 했는데도 터지는 숨에 하진은 조금 더 대담히 정우의 성기를 만져 주었다. 속옷 바깥으로 크고 단단한 것을 꺼내 기둥을 쓸고, 정우가 했던 것처럼 귀두를 문지르다가 미끌대며 나오는 프리컴을 묻혀 완전히 세웠다. 정우는 아래에서 느껴지는 하진의 손이 만들어내는 쾌감에 내내 억눌린 숨을 내뱉다가 못 참겠다는 듯 하진의 다리 사이로 파고들었다.
“하으…! 아…….”
잔뜩 발기해 더 커진 성기가 겨우 손가락 두 개로 풀어둔 입구로 들어가는 순간 하진은 고개를 뒤로 젖혔다. 오랜만에 하는 섹스이기도 하고, 또 정우의 것이 워낙 커서 몇 배로 더 아프게 느껴졌다. 하지만 좁은 곳으로 파고들어 아랫배가 꽉 차는 느낌은 텅 빈 머릿속과 마음을 같이 채우기 시작했다. 멈추고 싶지도 않고, 아프다는 말로 이 모든 감각을 표현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프지, 않아요? 아, 형 안 너무… 좁아서… 아….”
“좋아, 기분… 기분 좋아… 하으, 으응!”
내벽을 쓸며 들어가 깊은 곳에 닿은 순간 하진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랫배가 꽉 찬 게 아니라 정말 온몸이 정우로 꽉 찬 것만 같았다. 이렇게 배려 가득하고 키스가 넘치는 섹스라니. 늘 바랐지만, 감히 실현될 거라고 구체적으로 상상해 보지도 못한 것이었다.
다시 입술이 맞물렸다. 아래도 위도 전부 빈틈 하나 없이 단단히 맞물려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진은 정우의 목을 끌어안은 채 위아래로 정신없이 흔들렸다. 안에서 더 커진 성기가 잔뜩 자극점을 찔러댈 때면 신음보다 눈물이 더 먼저 터졌다. 제 눈물을 핥고 입술과 뺨, 목덜미에 내내 입 맞추며 움직이는 정우를 눈에 담고 싶어 간신히 눈을 떴다가도 결국, 까무러칠 만큼 강하게 찍어누르는 쾌감에 눈을 감아야만 했다.
하진은 몇 번이고 사정했다. 벗지 않은 정우의 셔츠를 엉망으로 만들었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몇 번이고 사정해도 전혀 몸이 식지를 않았다. 몇 번이고 입술을 마주한 채로 몸이 맞물렸다. 무자비하게 치고 내려오는 쾌감에 나중에는 정우와 혀끝만 살살 문질러도 정액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말간 물이 흐를 정도로 흥분해 버렸다.
“하아…….”
땀에 잔뜩 젖은 채 침대 아래로 푹 꺼지는 느낌을 받은 하진이 몸을 움츠렸다. 정우가 그런 하진을 보며 이불을 당겨 몸 위로 덮었다. 흥분이 조금 가시고 오한이 밀려드는지 하진의 얼굴이 조금 창백해졌다.
“사랑하는 사람이랑 닿는 게 이런 거였구나.”
정우는 땀에 젖은 하진의 앞머리를 부드럽게 쓸며 작게 속삭였다.
“죄책감이 들지도 않고, 끝났으니까 빨리 벗어나서 이 상황을 피하고, 외면하고 싶어지지도 않고… 그냥 좋은 거.”
“…….”
“같이 있다는 거 자체로 좋아서 계속 얼굴을 볼 수밖에 없는 거.”
“…….”
“마음이 넘쳐서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자꾸 소리 낼 수밖에 없는 거였어요.”
하진은 잠이 묻은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떴다. 이제는 정말 정우의 사랑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저건 사랑하지 않으면 정말… 정말로 알 수 없는 게 맞으니까.
“고마워하지도 않고 면박이나 주는 나한테… 왜 형은 자꾸 말할까 궁금했는데 이런 거였어요.”
“…….”
“말할 수밖에 없는 거구나.”
“…….”
“이렇게 좋아서 미치겠는데… 어떻게 말을 안 해.”
차정우가 저를 사랑하고 있다. 하진은 희미하게 빛나던 그 말을, 너무 쉽게 믿었다가 더 큰 상처를 받을까 두려워 일부러 저 멀리 밀어놓고 보지 않으려 애쓰던 그 말과 마주했다.
차정우와 사랑. 그 두 가지가 저에게 동시에 닿을 날이 올 거라고 감히 떠올리지도 못했었는데, 이제는 마구 넘쳐 두 손을 적시고, 온몸을 뒤덮고, 마음까지 잠겨버렸다.
“…그럼 해 줘.”
“…….”
“하고 싶은 만큼 계속.”
“…….”
“백 번, 천 번… 너를 보면 사랑만 떠오르게 계속.”
한 번도 어긋난 적이 없는 것처럼 마주친 눈동자는 어느새 너무 당연한 닿음이 되어 있었다. 하진은 계절을 잊은 그 다정하고 따뜻한 눈동자 속에 머무는 저를 바라보았다. 더는 몸을 움츠리지 않는 강하진이라는 그 이름을.
“…사랑해요, 형.”
“…….”
“사랑해요.”
“…….”
“하루 종일 이 말만 해도 모자랄 만큼… 사랑해요.”
따뜻하게 몸을 덮어오는 체온, 몇 시인지 알 수도 없고, 도대체 바깥이 어떤 날씨인지 알 수도 없는 모든 것이 멈춘 순간. 유일하게 흐르는 끝없는 사랑의 속삭임에 하진은 몇 번이고 그 사랑을 따라 웃음 지었다. 남은 여덟 번의 만남 후에는 어떤 모습으로 마주하고 있을까. 그 상상 속에 눈물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