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제-113화 (113/122)

#113

“도착했습니다.”

“…….”

“손님? 다 왔어요.”

“아… 네.”

정신을 어디에 두고 있었던 건지 다 왔다는 말도 한 번에 듣지 못했다. 정우는 죄송하다고 말하며 카드를 꺼내 결제했다. 무심코 본 창밖으로 익숙하지는 않지만, 또 완전히 낯설다고는 할 수 없는 건물이 보였다.

택시에서 내린 정우는 그 건물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 안에 하진이 있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

말도 안 하고 여기까지 온 걸 하진이 싫어할 것 같아 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하진이 싫어하는 일만 해서 일이 이렇게 됐는데, 또 하진이 싫어할 것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게 싫었다. 저는 왜 이런 걸까. 정우는 한 걸음도 떼지 못하고 자책했다.

“…….”

그래도 확인해야 했다. 봐야만 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해도 좋았다. 그저 지금은 하진이 살아 있는 것을 봐야 했다. 정우는 용기를 내어 건물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기억하고 있는 집 앞으로 가 벨을 누르려던 정우는 너무 갑자기 찾아온 게 마음에 걸려 다시 하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하진은 끝내 받아주지 않았다. 이 굳게 닫힌 문 안에 있으면 좋을 텐데, 만약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는 어디로 가야 만날 수 있을까. 몇 번이나 ‘그다음’을 떠올리던 정우는 결국,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 괴로웠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벨을 누르는 일이 전부였다.

벨을 누르자 주변으로 소리가 번졌다. 곧 누구세요? 하는 소리가 인터폰으로 흘러나왔다. 정우는 그쪽으로 얼굴을 조금 가까이 기울였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저… 정우입니다. 하진이 형이랑 같은 그룹…….”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머, 정우야!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몇 년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멤버 부모님들과는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다. 콘서트 때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부모님들끼리도 좋은 친구가 되셨다는 말도 여러 번 들었었다. 그렇게 모두의 관계가 단단해지고 끈끈해졌는데, 저 하나 때문에 모든 게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났다. 정우는 열리는 문을 바라보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어머, 진짜 정우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하진을 그렇게 해놓고 하진의 어머니에게 잘 지내셨냐고 묻는 제가 가증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정우는 의례적인 인사를 건네면서도 제대로 하진 어머니의 눈을 바라보지 못했다.

“하진이 걱정해서 왔구나?”

“…아, 네. 형 집에 왔어요?”

“응. 아까 왔는데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계속 울기만 해서 겨우 진정시켰어.”

“…울었어요?”

마음이 아픈지 울었다는 대답을 또 못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어머니의 얼굴을 본 정우가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래도 하진이 여기 있고, 또 살아 있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들어와.”

“…아니에요. 형이 연락이 안 돼서 집에 갔는지 아니면 어디 간 건지 궁금해서 왔어요. 여기 있는 거 알았으니까 갈게요.”

“무슨 소리야.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면 아줌마가 섭섭하잖아. 들어와. 차 한잔하고 가. 아줌마가 정우 너한테 묻고 싶은 것도 있고 그래서 그래. 응?”

지창에게도 말하지 못했고, 실장에게도 말하지 못한 말들을 하진의 어머니에게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정우는 피하고 싶었지만,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 어머니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하진의 집은 하진을 닮아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이었다.

“하진이는 아마 잘 거야.”

혹시라도 방에 들려 하진이 깰까 싶어 소곤대는 어머니를 본 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커피 줄까? 차?”

“어머니 커피 좋아하시잖아요. 커피 주세요.”

“어머, 다정해라. 그걸 기억하고 있었어? 아, 거기 옆에 방이 하진이 아빠 서재거든. 거기 들어가 있을래? 거실이나 부엌에서 얘기하면 하진이 깰 것 같아서.”

“…네.”

정우는 하진의 어머니가 가리키는 쪽에 있는 방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이곳에서 티타임을 자주 가지시는지 분위기 있게 꾸며진 티테이블이 보였다. 정우는 온 벽을 가득 채운 책들을 둘러보며 자리에 앉았다. 하진과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심장이 뻐근해졌다.

“오래 기다렸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정한 목소리와 함께 하진의 어머니가 들어와 맞은 편에 자리 잡았다. 정우는 제 앞으로 놓이는 예쁜 커피잔을 바라보았다.

“올 줄 알았으면 쿠키라도 구울걸.”

“괜찮아요. 제가 갑자기 온 건데요.”

“우리 정우는 더 잘생겨졌네. 활동도 많고 힘들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라 즐겁게 하고 있어요. 형들이 많이 도와주고, 배려도 해 주고 해서 전 편해요.”

“어쩜 이렇게 속도 깊어. 우리 하진이가 이러니까 널 그렇게 의지하고 좋아하지.”

“…….”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하진의 어머니가 정우에게 예쁜 티 푸드를 권했다. 정우는 사양하지 않고 작고 달콤한 쿠키를 들어 입에 넣었다.

“지금이야 말이지만, 하진이가 연예인 한다고 했을 때 얼마나 놀랐는데. 대학 들어간다고 오리엔테이션 다녀온 애가 그 유명한 소속사에서 자기 보고 싶어 했다고 하는데- 처음에는 사기인 줄 알았어.”

“생각해 본 적 없는 쪽이라 더 그러셨을 것 같아요.”

“그럼. 생각도 안 해 봤지. 애가 갑자기 또 아이돌을 한다는 거야.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지. 그때부터 하진이가 매일 네 얘기 했었어. 정우라고 자기보다 어린데 너무 멋있다고, 그런 사람이랑 한번 같이 해보고 싶다고.”

“…….”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면 우리 애가 저러나 싶었는데, 나중에 정우 너 보고 나니까 우리 하진이가 왜 널 좋아하는지 알겠더라. 늘 고맙게 생각해. 이렇게 지금도 우리 하진이 찾아와 주고 아줌마가 정말 너무 고마워.”

말문이 막혔다. 정우는 이 자리에서 제가 소멸하여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아들을 저렇게 아프게 만들었다고 혼이 나도 모자랄 상황에 고맙다는 말이라니, 이건 정말 견디기가 힘들었다.

“아니에요. 제가, 제가 형이 있어서 버텼어요. 정말 밝았고, 같이 있기만 해도… 보기만 해도 너무 에너지가 되는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제가 더 큰 도움 받았어요. 그랬는데… 제가 형을 아프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하진이랑 싸웠어?”

“…제가 잘못해서 형이 저한테 실망했고, 지쳐버렸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어머니.”

“그랬구나. 그래서 하진이가 말도 안 하고 저러고 있나 보다. 말해 줘서 고마워. 하진이가 통 말을 안 하니까 아줌마가 알 길이 없었거든.”

자꾸 고맙다는 말이 들려올 때마다 정우는 점점 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향이 좋은 커피도, 보기에도 예쁜 쿠키도 손도 대지 못했다.

“하진이 보고 가면 좋을 텐데.”

“…다음에 또 올게요. 형이 저 왔던 거 모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지금 봐서 형 기분만 더 안 좋을 거고…….”

“도대체 뭘 얼마나 잘못했다고 이래. 우리 하진이가 그렇게 속 좁은 애는 아닌데.”

“…제가 많이 잘못했어요. 아주 많이요.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연신 사과하는 정우를 따라 일어난 하진의 어머니가 정우의 등을 두드리고,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정우는 이 와중에도 따뜻한 손길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때 방문이 열렸다.

“엄마, 여기 있어요?”

“…….”

“…….”

문이 열린 순간 정우는 하진과 눈이 마주쳤다.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곳에 선 정우를 본 하진의 눈이 커졌다. 정우는 많이 운 것 같아 보이는 하진의 불그레한 눈가를 바라보았다.

“…형.”

“…….”

하진은 그대로 뒤돌았다. 정우가 얼른 그런 하진의 뒤를 따라 걸었다. 거실을 가로질러 방으로 가는 하진의 뒷모습을 따라간 정우가 문이 닫히기 전에 손잡이를 잡아 힘을 주어 문을 열었다.

“나가.”

“…갈게요. 갈 거예요. 그런데 형. 아니죠. 형, 그만두는 거는 아닌 거 맞죠?”

“너랑 지금 얘기하기 싫어. 가. 여기는 왜 왔어?”

정우에게 등을 보이고 있던 하진이 뒤돌아 정우를 바라보았다. 하진이 여기 있다는 걸 알았고, 이렇게 살아 움직이는 것을 봤으니 침착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정우는 하진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아니라고… 해요. 그만두는 거 아니죠? 네?”

“…가.”

“안 할게요. 형이 하지 말라는 거, 전부… 전부 관둘게요. 형이 하라는 대로 다 할게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형….”

“…쉬고 싶어. 나 도망친 거야. 집으로 도망쳤는데 여기서도… 똑같이 고민하고, 속상하고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그러기 싫어.”

“내가 잘못했어요. 다, 다 잘못했어요. 형 아프게 한 것도 잘못했고… 하지 말라는데 계속한 것도… 말하지 말라는데 나 편하자고 다 말한 것도… 다, 다 내 잘못이에요. 안 할게요. 방도 내가 나갈게요. 형 혼자 써요.”

목소리가 떨리고 자꾸만 끊겼다. 정우는 지친 듯 눈을 감는 하진을 바라보았다. 초점이 마구 흔들리는 마음을 따라 움직여 하진이 여러 명으로 보였다.

“…가. 더 이상 할 말 없어. 실장님이랑 다 얘기했고, 그대로 할 거야.”

“형, 제발… 제발요.”

“갑자기 또 팀이 중요해졌어? 왜 그렇게 멋대로야? 팀 생각하느라 내 생각은 안 했으면서, 이제는 내 생각하느라 팀 생각을 못 하다가… 또 팀이야?”

“아니, 아니에요. 그래서가 아니야. 팀 때문이 아니에요.”

“그럼?”

“…형을 다시 못 볼까 봐 너무 무서웠어요. 이대로 사라질까 봐…….”

제대로 말하고 싶었는데 자꾸만 목소리가 떨리고 우는 것 같은 소리가 나왔다. 정우는 마구 흔들리는 모든 것들을 누르려 애썼지만, 그 어느 하나도 쉽게 멈추지 않았다.

“밖에 엄마 있어.”

“…….”

“…가, 제발. 너랑 할 말은 다 했고, 들을 말도 다 들은 것 같고… 이제 좀 혼자 있고 싶어.”

팀에서 나가는 게 아니라고, 다시 돌아올 거라고, 지금 기사들은 다 거짓이라고 그냥 조금 쉬는 것뿐이라고… 그중 하나라도 하진에게 듣고 싶었다. 하지만 하진은 그 어떤 말도 정우에게 하지 않았다. 그리고 더 이상 바라보지도 않았다.

정우는 눈을 감은 하진을 조금 멍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뒤돌아 하진의 방을 나섰다. 그리고 서재에서 나오는 하진의 어머니를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오늘 갑자기 찾아와서 정말 죄송합니다. 또 형 힘들게 한 것도 정말 죄송합니다.”

몇 번이나 고개 숙여 사과하는 정우를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보던 하진의 어머니가 얼른 그 손을 잡고 등을 두드려 주었다.

“어떡해, 하진이랑 못 풀고 가서.”

“…제가 더 잘해야죠.”

“조심해서 가. 그리고 또 와. 알았지? 하진이한테는 아줌마가 잘 얘기해 볼게.”

“…네. 오늘 반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에 뵐게요. 나오지 마세요. 형 혼자 있잖아요.”

“그래. 그럼 아줌마 멀리 안 나갈게. 꼭 또 와.”

“…네.”

정우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올라 한 번 더 하진의 어머니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리고 문이 닫히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

문이 닫히는 것과 동시에 내리감긴 눈에서 어쩔 줄 모르겠는 감정들이 마구 쏟아졌다. 정우는 그렇게 1층을 누르는 것도 잊은 채 쏟아지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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