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한 번 위기를 느끼며 켜진 생각의 불은 쉽게 꺼지지가 않았다. 차라리 하진처럼 기절해 잠들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정우는 땀과 체액으로 젖은 몸이 식을 때까지 움직이지도, 잠들지도 못했다.
“…….”
순식간에 온 감정을 뒤엎은 생소한 감정의 침입은 말도 안 되는 것들이었다. 산산조각이 나서 깨진 마음의 뾰족한 파편들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말할 수는 없었다. 이건 분명 어디서부터인지는 몰라도 잘못된 전달이었다.
하진은 원래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 팬들은 물론이고 하진을 하는 모든 사람은 하진을 사랑스럽다고 말했다. 착하고,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사람. 따뜻해서 그 웃는 얼굴을 보기만 해도 체온이 오르는 것 같다는 말들을 거침없이 표현했다. 하진은 그런 사람이었다. 사랑스럽다고 말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
제가 하진을 사랑스럽다고 느끼는 것 또한 별로 특별할 일도 또 이상할 일도 아닐 것이었다. 하진이 연습생이 되고, 하진과 친해지며 매일 생각하지 않았는가. 저렇게 사랑스러운 사람은 또 없을 것 같았다.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으면, 사람이 사랑으로 똘똘 뭉칠 수가 있나 싶었다. 팬들이 하는 말처럼 사랑이 사람이 되면 강하진일 거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하진은 모두에게 그런 사람이었다.
“…….”
그래, 내가 이상한 게 아니다. 정우는 내내 같은 생각을 반복했다. 세뇌이기도 하고, 자신을 안심시키는 일이기도 했다.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모두가 하는 생각을 너도 그 순간 한 것뿐이라고. 그건 전혀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
그럼 그들도 하진을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며 모두 키스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까. 자는 몸 안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고, 자면서도 느껴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보고 싶을까. 곤란해하면서도 제 자지에 잔뜩 느껴 결국 몸이 녹는 것을 허락하는 그 순간을 원할까?
말문이 막혔다. 당당히 답하던 전 질문과는 결이 달라졌다. 정우는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잠든 하진의 몸을 가득 끌어안으며 몸을 포갰다. 그리고 내내 성기를 머금고 있어 아직 닫히지 않은 구멍 안으로 귀두를 맞추었다.
“읏…….”
삽입은 어렵지 않았다. 내내 머물고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뿐이었다. 정우는 자면서도 작게 앓는 하진의 목소리를 담아내며 끝까지 성기를 밀어 넣었다. 완전히 겹쳐져 뒤엉킨 다리가 살짝 문질릴 때마다 몸에 열이 올랐다.
“아…….”
사정을 위한 삽입은 아니었다. 그저 이렇게 머물고 싶은 충동이었다. 정우는 온전히 그 안에 머문 뒤에야 눈을 감았다. 복잡한 생각, 말도 안 되는 행동이 흐릿해졌다. 더 생각한다고 어차피 달라질 일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정우는 작게 앓으며 제 품으로 안겨드는 하진을 끌어안으며 어깨 위에 얼굴을 묻었다.
“…….”
하진을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는 그 많은 사람 중 그 누구도 지금의 저 같은 일은 할 수 없을 것이었다. 강하진의 얼굴, 성격, 목소리, 눈동자 색과 단정한 손톱 모양, 웃을 때 휘어지는 눈과 기다란 속눈썹. 그런 것들은 똑같이 알고 있겠지만, 몇 번을 파고들어도 늘 뜨거운 이 깊은 곳의 느낌과 깊은 곳을 찔러줄 때마다 내지르는 신음 같은 것은 절대 알지 못할 것이었다.
“…….”
이건 저의 영역이었다. 이 닿음이 진짜든 가짜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더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정우는 세상 유일한 저의 뜨겁고 끈적한 그 영역 안에서 비로소 잠들 수 있었다.
***
새벽까지 한 번도 깨지 않고 깊게 잠들었던 하진은 몸을 움직이고 싶은데 움직일 수 없는 갑갑한 느낌에 눈을 떴다. 방 안은 깜깜하고, 고요했다. 적당히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느껴지지만, 동시에 따뜻함도 몸에 가득했다.
“…….”
손을 들어 더듬더듬 저와 닿아 있는 정우를 만진 하진이 잠시 숨 쉬는 것을 잊었다. 몸이 마주 닿은 채 같이 자고 있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인데, 몸이 연결되어 있는 것만 같은 느낌에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
아니, 저의 착각일지도 몰랐다. 밤부터 내내 정우와 몇 번인지 셀 수도 없을 정도로 섹스했던 것이 떠올랐다. 나중에는 정우의 손이 몸에 닿기만 해도 말간 물을 쏟아낼 정도로 흥분했었다. 또 정우가 내내 성기 끝만 만지는 바람에 정액이 아닌 물을 잔뜩 쏟아냈던 기억도 났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귓가가 달아오르고, 또 동시에 아랫배가 당겼다. 하진은 손을 내려 이물감이 드는 입구 쪽을 만져보았다.
“…아…….”
설마 했는데 정말 정우의 성기가 안에 들어와 있었다. 분명 마지막에는 성기를 마주 대고 몸을 맞댄 채 서로 만지고 비비며 사정을 했었는데, 어떻게 된 건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그 뒤에도 계속했는데, 제가 잠이 들었다거나 힘들어 기억을 하지 못하는 걸까. 하진은 어쩔 줄을 모른 채 입술을 꾹꾹 깨물었다. 어느새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잠든 정우의 얼굴을 담아냈다.
“…….”
정우는 섹스 후에 늘 자신의 침대로 갔었다.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그렇게 섹스가 끝나면 바로 자리를 떴다.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었지만, 그런 것까지 바랄 수는 없는 처지였기에 서운한 마음을 가지는 것도 죄책감이 들었었다.
그런데 지금 그랬던 정우가 제 앞에 잠들어 있었다. 그것도 저와 아직 이어진 채로. 하진은 꿈인가 싶어 뺨을 살짝 꼬집었다. 선명하게 느낌이 나는 것을 보면 꿈은 아닌 것 같았다.
“…정우야.”
하도 비명 같은 신음을 질러대서 그런지 목소리가 형편없었다. 하진은 목을 가다듬고 다시 정우의 이름을 나지막이 소리 내었다.
“너한테 사랑받는다는 거… 이런 기분일까? 네가 나한테서 나가기 싫어서, 나랑 계속 한 몸으로 같이 있고 싶어서 이렇게 잠들었다고 생각하고 싶어.”
네가 나랑 떨어지는 게 싫어서, 우리 뒤섞인 체온이 다시 둘로 나뉘는 게 싫어서 이러는 것만 같아.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
“…아니라는 거 아는데…….”
기대하는 방법도 잊었는데.
“…꼭 네가 날 사랑하는 것 같아. 그래서 떨려.”
하진은 아직도 힘이 다 들어가지 않는 손을 들어 정우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다른 사람 만나러 나가지 말라고 한 것도… 네가 나랑 있고 싶어서 그랬던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나 너무… 뻔뻔한 거지?”
뻔뻔해도 좋았다. 어차피 혼자 이렇게 생각하다가 끝날 일이 아닌가. 하진은 정우가 잠든 이 시간 동안만이라도 잔뜩 멋대로 생각하고 싶었다.
“…정우야.”
“…….”
하진의 손길에 정우의 눈꺼풀이 움찔거렸다. 그 듣기 좋은 목소리가 정우를 향할 때부터 감긴 눈 속 눈동자가 하진을 향하기 시작했다. 정우는 제 머리칼을 쓰다듬는 그 손길을 느끼며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아직 눈을 뜨고 싶지는 않았다.
“……사랑해.”
“…….”
“나… 너 진짜 사랑해…….”
“…….”
“…지금 아니면 말 못 해볼 것 같아서… 그냥 할래.”
산산조각이 나 사라진 줄 알았던 심장이 또다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정우는 숨 쉬는 것도 잊은 채 물기에 젖어가는 하진의 목소리에 모든 것을 멈추었다.
“…사랑해.”
“…….”
“사랑해… 정우야…….”
“…….”
“…미안해.”
사랑한다는 말의 맺음은 사과였다. 뻔뻔하냐고 물어놓고 또다시 가장 낮은 곳에서 겨우 작은 목소리를 내었다.
미안하지만, 사랑한다는 뻔뻔함이 아니라 사랑해서 미안하다는 사과였다. 미안하다는 말을 처음 들은 것도 아닌데, 마음이…… 아팠다. 마음먹고 흔들리지 않기로 했던 전과는 분명히 뭔가가 달랐다. 그 단단한 마음 중심에 있던 것들이 깨져버려서 그런 걸까. 중심축을 잃은 마음은 감정을 여기저기 쏟아내며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불편했다. 또다시 쏟아진 하진의 고백도, 그 고백의 맺음이 미안하다는 말이라는 것도, 눈을 떠서 매몰차게 굴지 못하고 결국 이렇게 내내 자는 척을 하고 있는 자신도 모두 불편했다. 그래서 정우는 잠시 훌쩍이던 하진의 소리가 잦아들고, 완벽한 고요가 찾아들도록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지금 저에게 가장 크게 불편한 것은 중심축을 잃은 제 마음이라는 것을 알기에.
***
커튼을 치고 자지 않아 해가 뜨는 순간부터 방 안이 몹시 밝아졌다. 그 밝음에 다시 눈을 뜬 하진이 여전히 맞물린 아래에 정우를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도 잘 보이던 그 얼굴은 새로 뜬 햇살 속에서는 더욱더 선명하게 보였다.
“…….”
아무래도 불편할 것 같았다. 정우가 이대로 깨면 눈이 마주칠 거고, 어색해질 것 같아 먼저 자리에서 벗어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하진은 살짝 정우의 성기를 빼내기 위해 몸을 위로 움직였다.
“아…….”
아침이라 그런지 발기한 정우의 성기가 내벽을 쓸며 조금씩 나갈 때마다 묘한 감각이 몰려들었다. 하진은 저 역시 아침이라 밀려드는 야릇한 감각들에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이대로 빠져나가게 해야 하는데 자꾸만 몸을 반대로 내려 깊게 맞물리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미쳤나 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 이런 상황에. 하진은 자신을 책망하며 다시 원래대로 성기를 빼내려고 천천히 움직였다. 그 순간 잠결에 몸을 움직인 정우 덕분에 성기가 깊게 파고들었다. 하진은 눈을 감으며 신음하지 않으려 입술을 꽉 아프게 깨물었다.
“흐읏…….”
꽉 깨문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신음에 머릿속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이미 맛본 감각을 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하진은 스스로 몸을 느릿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우의 성기에서 반쯤 빠져나갔다가 푹 찔리도록 몸을 내릴 때마다 감은 눈 속 어둠이 하얗게 바랬다.
“아……. 좋아….”
저의 이런 모습을 정우가 볼까 무서웠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하진은 마주 닿은 정우의 배에 통통해진 귀두 끝을 비비며,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눈을 감고 잔뜩 느끼느라 저의 움직임에 정우의 움직임이 섞였다는 것도 쉽게 깨닫지 못했다.
“…으응…….”
살짝만 움직여도 성기가 끝까지 들어와 가장 잘 느끼는 깊은 곳을 짓눌렀다. 정우의 선단이 그 위를 누르며 문질러줄 때마다 기분이 좋아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진은 잠든 정우를 상대로 제가 몰래 하고 있던 중이라는 것도 잊고, 정우를 가득 끌어안았다. 어느새 움직임은 정우의 거친 움직임으로 변해 있었다.
“아! 흐으, 응! 아아…!”
“강하진 너 뺄 생각도 없었지.”
“아니… 아니야, 으응! 빼려고… 하앗!”
“거짓말하지 마. 이래서 오늘 공연이나 하겠어요? 무대 하다가 박히고 싶어질 거 아니야.”
“그런 거… 하으! 아니…… 으응!”
거친 정우의 움직임에 마구 흔들리던 하진이 먼저 사정했다. 몇 번 더 질척이는 안으로 퍽퍽 과격하게 박아 넣은 정우가 사정하며 더 깊게 귀두를 처박았다. 하진이 정우의 어깨를 가득 끌어안은 채 소리도 내지 못하고 바들바들 몸을 떨었다.
“하아…….”
둘의 긴 숨이 뒤섞였다. 정우는 잔뜩 끝까지 사정한 뒤에야 하진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하진은 몸을 가득 채우고 있던 것이 사라지자 허전한 느낌에 다리를 오므렸다. 엉켜 있던 다리가 비로소 제자리를 찾아 움직였다. 정우는 몸을 세워 앉으며 휴대폰을 집어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십 분만 쉬고 같이 씻어요.”
“……어?”
“형 안에 정리해야 될 거 아니에요. 해줄게요.”
“…아니야. 내가 할게.”
“오래 걸리잖아요. 한 시간 있으면, 지창이 형한테 조식 먹으러 내려오라고 연락 올 텐데 안에 넣고 내려갈 거예요? 안 내려가면 걱정할 텐데.”
“…내가 빨리할게.”
“빼주기만 할 테니까 그렇게 해요. 처음 해주는 것도 아닌데.”
정우의 말처럼 처음은 아니지만, 그래도 무척이나 부끄러운 일이었다. 하진은 괜히 다리를 오므렸다. 정액이 흘러내려 그런 건지, 묻어서 그런 건지 허벅지 사이가 미끌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