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제-79화 (79/122)

#79

정우는 화면 위로 뜨는 몇 개의 메시지를 대충 보다가 손을 뻗어 휴대폰을 가까이 가져왔다. 그리고 문혁이라는 이름 밑으로 보이는 메시지를 소리 내어 읽었다.

“나올 수 있어? 우리 지금 모일 건데.”

소리 내어 읽는 정우를 본 하진이 손을 뻗어 보았지만, 정우는 하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휴대폰을 높게 들어 올렸다. 긴장한 건지 제 손가락을 두 개 먹어치운 하진의 아래가 더 조여들었다. 어쩐지 밀려드는 짜증에 정우는 무심한 목소리를 냈다.

“오늘 밤새자. 너랑 술 마시고 싶어.”

“…….”

“정문혁 왜 이래요? 왜 형한테 술 못 먹여서 안달이지.”

“그냥… 한 번도 같이 마셔보질 못해서… 여기 온 김에 마시자는 거겠지.”

“밤새 술 마시고 싶을 정도로 친했어요? 언제부터?”

“…활동 여러 번 겹쳤잖아.”

“형 계속 나랑 있었잖아요. 언제 정문혁이랑 그렇게 됐지.”

그렇게, 부분에 힘을 주어 말한 정우가 그대로 확 깊게 하진의 내부를 찔렀다. 그대로 고개를 젖힌 하진의 감긴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하진아.”

정우가 이름만 부르는 것에 젖혔던 고개를 바로 한 하진이 두 눈 가득 정우를 담았다. 여전히 문혁이 보낸 메시지를 읽고 있는 것뿐이지만, 정우의 목소리가 담아낸 제 이름은 순간 심장이 확 떨어질 만큼 떨리고, 좋았다.

“말해봐요. 그럴 시간도 없었는데 언제 친해진 건지.”

“…엄청 친하고 그런 건 아냐. 문혁이가 워낙 사교성이 좋아서 그렇지. 1위 발표할 때나, 리허설 때나… 복도 나갈 때나 뭐 그때마다…….”

“그때도 오늘처럼 위로받고 그랬어요?”

“…문혁이는 그냥… 아!”

정우의 손가락이 다시 거칠게 내벽을 문지르며 드나들기 시작하는 것에 하진은 고개를 저었다. 멀리 퍼지던 감각이 다시 그 손가락으로 몰려들어 온몸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하으… 응, 아!”

정문혁이 아니라 문혁이. 별것도 아닌데 자꾸만 심사가 뒤틀렸다. 정우는 눈썹을 일그러뜨리며 계속 진동이 오는 휴대폰을 아무렇게나 옆으로 던져 놓고, 하진의 목덜미로 얼굴을 파묻었다.

“흐읏, 아… 읏, 응!”

마디가 굵고 긴 손가락 두 개가 쉬지 않고 안을 푹푹 찌르고 들어오는 느낌에 하진은 마구 고개를 저으며, 정우의 목을 끌어안았다. 아랫배 아래에 고여만 있던 감각은 어느 순간, 아랫배를 물들이며 머리끝까지 확 퍼졌다. 굽어 있던 발끝이 쫙 펴지고, 겨우 다문 입술이 벌어졌다. 성기가 들어온 것도 아닌데, 벌써 사정감이 밀려들 정도였다.

“그, 그만… 아, 읏! 응! 흐으… 아!”

“위로도 받고 그랬냐고 물었잖아요.”

정우의 낮은 목소리와 멈추지 않는 손가락의 움직임에 하진이 헐떡이며 고개를 마구 저었다.

“그런 적… 읏, 하아… 없어…….”

듣고 싶던 방향의 대답을 들었지만, 정우의 움직임은 약해지지도 멈추지도 않았다. 하진은 결국 정우의 짧은 손톱과 그 단정한 손끝을 생각하며 사정했다. 납작한 아랫배가 확 당기며 허리가 위로 들렸다.

“하아……. 흐으… 아…….”

순식간에 몸을 휘감은 쾌감에 정우의 목을 끌어안은 채 몸을 떨던 하진이 팔에서 힘을 빼냈다. 침대 밑으로 확 빨려 들어가는 느낌과 함께 눈꺼풀 속 어둠이 빙빙 돌았다.

“눈 떠요, 형. 내 얼굴 보면서 하고 싶다며.”

“…….”

“그럼 눈 떠야지.”

얼굴 위로 내려앉는 목소리에 눈을 뜬 하진은 저를 보고 있는 정우의 얼굴을 가만히 눈에 담았다.

“지금부터 계속 봐요. 생각해 보니까 못 해줄 것도 없는 일이잖아요. 어차피 해달라는 거 다 해주는 마당에 이게 뭐라고.”

“…….”

정우는 여전히 똑같았다.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해달라고 해서, 이 말이 늘 먼저였다. 이 닿음, 열기, 섹스와 이렇게 되어버린 상황 같은 게 결국은 다 저의 탓이라 말하고 있었다. 딱히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제가 정우를 좋아해서 시작된 일이 맞으니까. 하지만 매번 이렇게 확인을 받을 때마다 마음이 조각나는 것 또한 막을 수 없었다.

“…그만할래.”

제가 원하지 않는 순간 끝나는 것이었다. 정우와 저의 관계는 딱 그런 관계였다. 하진은 가라앉은 마음을 애써 숨기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놓인 티슈를 몇 장 뽑아 허벅지와 배에 잔뜩 튄 정액을 닦아냈다.

“또 왜 그래요?”

“…….”

“이해가 안 돼. 형이 원하는 거 해주잖아요. 얼굴 보면서 하고 싶다며. 그래서 얼굴 보게 해준다잖아요.”

“…무려 얼굴까지 보게 해준다니 고마운데, 오늘은 그만하고 싶어.”

침대에서 일어나 속옷과 바지를 아무렇게나 입고 끌어올린 하진이 자리를 벗어났다. 그런 하진을 보던 정우가 거칠게 머리를 쓸어올리고 일어나 하진에게 빠르게 다가가 그 앞을 막아섰다.

“보게 해준다고 말해서 그래요?”

“…….”

“왜 갑자기 내 말에 그렇게 다 일일이 의미를 부여해서 해석해요? 그냥 하던 대로 해요. 굳이 그렇게 비꼬아서 들을 필요 없잖아.”

“…오늘은 해줄 필요 없어. 나 너랑 섹스하려고 좋아하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

왜 이렇게까지 진심을 곡해해서 듣는 건지 묻고 싶었다.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거냐고, 그게 아니라면 기어이 마음을 짓밟아 조각내고 싶어서 그러는 거냐고 묻고 싶었다.

“……내가 왜 죽고 싶었는지 알아? 나 때문이야.”

“…….”

“…왜 나는 이 정도밖에 안 돼서 네 사랑을 못 받나, 내가 싫었어. 더는 매달릴 자신도 없고,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네가 날 혐오스럽게 보는 그 시선을 더는 견딜 수가 없었어.”

“…….”

“정우 네가 병원에 와서 연애해 준다고 할 때… 나 솔직히 좋았어. 내 목숨으로 너 협박한 것 같았는데 그래도 좋았어. 네가 해준다잖아, 나랑.”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정말 울고 싶지 않았는데 눈동자가 뜨거워졌다. 연애라는 이름이 생겨나면 어떻게든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하진을 슬프게 만들었다.

“…….”

잠시 말을 멈춘 하진이 제 앞에 선 정우를 바라보았다. 꼭 길을 잃어버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어린아이 같은 표정이었다. 이쪽으로 갈 수도 없고, 저쪽으로 갈 수도 없는 그런 표정.

“듣기 싫지.”

“…….”

“…네가 나한테 듣고 싶은 말은 뭐야?”

“…….”

“제발 해줘, 네 맘대로 해도 돼, 아파도 돼… 이런 말들? 섹스는 그 순간에 너도 즐길 수 있는 거라 참아보겠는데, 이렇게 내가 속에 있는 말 할 때는 참기 싫지? 내가 왜 저딴 말까지 듣고 있어야 하나 싶지. 해달라고 매달릴 때는 언제고, 왜 알아서 해준다는데 이러나 그게 이해가 안 가지?”

기어이 뺨을 적시며 눈물이 흘러내렸다. 정우는 하진의 얼굴 위로 내리는 비를 바라보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꼭 제가 뭔가 아주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하던 대로 하라고 했지……. 왜 내가 전처럼 안 굴고, 네 말에 의미 부여하고 너 짜증 나는 거 알면서도 이렇게 말하는지 알아?”

“…….”

“…진짜 아니라는 거 아는데, 그래도 난 너랑 혼자 연애하고 있어서 그래.”

정우는 하진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외롭고 쓸쓸한 모든 것들이 그 표정에 들어 있었다. 울고 싶어 우는 게 아니라 울지 않으려고 해도 울 수밖에 없는 상황처럼 보였다. 지친 것 같기도 하고, 아픈 것 같기도 했다.

“…구질구질하지.”

“…….”

“미안해.”

“…….”

“…나 원래 이렇게 한심하잖아.”

애써 씩 웃은 하진이 손으로 아무렇게나 눈물을 닦아냈다. 도저히 웃을 수 없을 것 같은데 웃는 하진을 본 정우의 미간이 구겨졌다.

“…….”

하진은 그렇게 정우를 지나쳐 욕실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고, 안에서 세면대 물소리가 들렸다. 한참이나 그 소리가 이어지는 동안 침대에 놓인 하진의 휴대폰 진동도 울려댔다. 정우는 내내 그 자리에 선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

씻고 나온 하진이 침대에 놓인 휴대폰을 들어 무언가를 확인했다. 굳이 뭘 확인하는지 보지 않아도 문혁의 메시지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정우는 침묵을 지킨 채 하진을 바라보았다.

“애들이 자꾸 부르는데 나 잠깐만 다녀올게. 여기까지 와서 나만 안 나가기도 좀 그래.”

“…….”

“늦진 않을 거야. 술 마실 것도 아니고 그냥… 얼굴만 보이고 올게.”

여전히 욕실 앞 벽에 기대어 서서 아무 말도 없이 저를 바라보는 정우를 본 하진이 어색하게 그 앞으로 다가갔다.

“…갔다 올게. 쉬고 있어.”

겨우 말한 하진이 아무렇게나 바닥에 벗겨진 운동화를 신고, 침대 위에 놓인 모자와 마스크를 집어 들었다.

“…….”

“…….”

눈이 마주쳤지만, 정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진은 먼저 시선을 내리며 그 옆을 지났다. 그렇게 문손잡이를 눌러 문을 연 순간 뒤로 빠르게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아…!”

뒤를 돌아보려고 마음을 먹기도 전에 몸이 돌려졌다. 살짝 열린 문은 하진의 등에 닿아 눌리며 다시 완벽히 맞물려 닫혔다. 하진은 제 턱을 쥐고 거칠게 파고든 정우의 혀를 그제야 느끼고 어깨를 밀어냈지만, 정우는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흣… 응, 흐…… 으응…….”

입술이 완전히 맞물리고, 혀가 엉켜 들었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타액이 질척이는 소리와 함께 목으로 흘러들었다. 정우는 하진의 입술을 전부 물어뜯고, 입속을 엉망으로 만들 것처럼 키스했다. 하진은 문과 정우의 몸 사이에 완벽히 갇힌 채 겨우 정우를 받아들였다. 혀가 문질리고, 빨릴 때마다 마주 닿은 몸 안에서 심장이 쿵쿵 요란히도 뛰었다.

“하으… 하아…….”

숨을 도저히 쉴 수 없어 정우의 어깨를 두드리자 그 극한의 경계에서 입술이 떨어졌다. 하진은 흠뻑 젖은 입술을 벌려 엉망으로 흐트러진 숨을 마구 쏟아냈다. 그런 하진의 얼굴을 본 정우가 다시 턱을 쥔 채 그 입속으로 혀를 밀어 넣었다. 흐트러진 숨과 함께 혀끝이 문질릴 때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쾌감이 여기저기에서 터졌다.

“…으응…….”

하진은 눈도 뜨지 못한 채 젖은 혀끝이 문질리는 감각에 집중했다. 참으려고 해도 목을 타고 간지러운 소리가 흐르고, 다리가 오므라들었다. 마주한 얼굴 사이에 맴도는 뜨거운 숨과 뒤섞인 공기와 눈을 뜨면 너무 가까워 초점이 맞지 않는 정우의 얼굴이 자꾸만 몸에 힘을 빼앗아갔다. 제 턱을 쥔 손도, 넘어지지 않게 하려고 허리를 감싼 팔도 모두 꼭 저를 원하고 있는 것 같아 또다시 착각일 것을 알면서도 기대하게 됐다.

“아…….”

혀끝을 문지르는 것만으로도 사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진은 달아오르는 몸을 어쩌지 못한 채 정우를 붙잡았다. 정우의 입술이 그대로 하진의 혀끝을 빨아주고, 젖은 턱을 한 번 물었다. 다른 생각은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 그저 하진을 이 방 밖으로 나가게 만들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 단지 그것 하나뿐이었다.

“…하아…… 으응…….”

정우의 입술이 귓불을 머금고, 혀끝으로 귓바퀴를 살살 문질러주자 울음 섞인 보채는 것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정우는 더 야릇하게 하진의 귀를 혀로 만져주었다. 온몸에 힘이 쭉 빠져 온전히 저에게 기댈 수밖에 없을 때까지 그 귓불을 깨물다가 입술을 모아 간지러운 소리가 나게 입을 맞추어 주었다.

하진은 그대로 정우에게 몸을 기대었다. 그제야 집요하게 괴롭히던 귀에서 입술을 뗀 정우가 살짝 풀린 하진의 눈을 마주했다.

“가지 마.”

“…….”

“나랑 있어.”

하진의 고개가 힘없이 끄덕여지기도 전에 입술이 다시 맞물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