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제-76화 (76/122)

#76

방콕 출국 전날까지도 연습은 이어졌다. 다행히 인규의 목감기는 깨끗하게 나았고, 멤버들의 컨디션 또한 최상이었다. 리패키지 활동을 마친 후, 공식적으로 처음 서는 무대라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쉬어도 되는 전날까지도 연습에 매진했다.

“나 방콕은 처음 가 봐. 가보신 분?”

“난 어렸을 때, 부모님이랑 여행 갔던 적 있어.”

“오, 형. 역시 프로여행러.”

인규의 말에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해성이 장난스럽게 탄성을 내질렀다. 그 반응이 어이없고 웃겨서 소리 내어 웃은 인규가 속도가 줄어드는 것에 창밖을 내다보았다.

“벌써 다 왔네.”

“사람 좀 봐.”

밴이 서자 기자들과 팬들이 가까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하진은 경호원들이 다가와 밴 가까이로 달려드는 팬들을 막는 것을 보다가 안전벨트를 풀었다. 지창이 창밖을 한 번 보고 몸을 뒤로 돌려 멤버들을 바라보았다.

“내가 먼저 내려서 문 열어주면 그때부터 순서대로 내리고, 안으로 들어갈 거야. 다들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고.”

대답하는 멤버들을 본 지창이 먼저 밴에서 내리자, 팬들이 지창을 보고도 환호하며 소리를 질렀다. 지창을 향해서도 플래시가 터지는 것을 본 영우가 즐거운 듯 웃었다.

“저번에 보니까 지창이 형 직찍도 올라왔더라. 우리 지창이 하고 싶은 거 다 해, 나 미는 거 빼고 다 해, 이러면서.”

“형 완전 슈스 됐네.”

“사실 우리보다 형이 제일 바빠. 미팅도 하고, 약속도 많고. 형 아니면 우리 스케줄 생기지도 않는다.”

“인정.”

지창 얘기를 하며 웃는 순간 문이 열렸다. 정우는 코까지 가려주는 마스크를 위로 올린 채 밴에서 내렸다. 정우가 내리자 여기저기에서 셔터음이 울리고, 플래시가 터지기 시작했다. 기자들의 카메라와 웬만한 기자보다도 좋은 카메라와 렌즈를 가진 팬들이 경쟁하며 최대한 가까이 다가오려 애썼다.

“하진 오빠!”

“아프지 마세요!”

“오빠, 아프지 말아요!”

정우의 뒤로 하진의 모습이 보이자 여기저기에서 하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괜찮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일부러 마스크도 쓰지 않고 내린 하진은 팬들의 카메라를 다 봐주려고 애썼다. 저를 찍으려고 여기까지 오는데, 아무런 수확도 없이 돌아가면 무척 속상할 것 같기 때문이었다.

“오빠, 이거 비타민인데 드세요!”

“고마워요.”

“아프지 마세요, 오빠. 학생이라 돈 없어서 편지밖에 못 썼어요. 돈 많이 벌어서 오빠, 좋은 거 해드릴게요!”

경호원들 사이로 편지 든 손을 내민 채 따라오는 학생의 편지를 받은 하진이 고개를 살짝 기울여 그 틈 사이로 눈을 맞췄다.

“잘 읽을게요. 고마워요.”

미소 짓는 하진의 얼굴 위로 셔터음이 마구 쏟아졌다. 하진은 내내 팬들과 눈을 맞추며 안으로 들어갔다.

미리 온 다른 매니저가 수속을 마치고, 멤버들에게 여권과 티켓을 나눠주었다. 그래도 안으로 들어가야 조금은 버티지, 이대로는 사람에게 치여 사고가 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아포제뿐만 아니라 방콕으로 출국하는 다른 가수들도 많아서 더 그랬다.

티켓과 여권 확인을 하고 보안 검사를 하는 곳까지 들어간 뒤에야 셔터음이 멈추었다. 하진은 출국 심사를 마친 뒤, 면세구역으로 들어가 다른 멤버들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안에도 팬들 많네요.”

“아마 우리 타는 비행기 반도 넘게 다 팬들일걸.”

“어떻게 알고 올까요? 시간 같은 거.”

“다 아는 방법들이 있다던데. 공항 직원 통해서도 알고, 뭐 검색해서도 알 수 있고.”

“대단하네요.”

“그러게. 가자, 게이트로. 시간 얼마 안 남아서 굳이 라운지 갈 시간도 없을 것 같아.”

멤버들이 안으로 다 들어온 것을 본 영우가 하진의 어깨 위에 팔을 둘렀다. 그 순간에도 어디선가 분명한 셔터음이 들려왔다.

대포라고 불리는 길고 큰 렌즈를 단 카메라가 무겁지도 않은지, 팬들은 한시도 카메라를 내리지 않고 아포제를 찍어댔다. 무빙워크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도, 게이트 앞에 잠시 앉아 있을 때에도, 또 비행기에 올라 좌석을 찾아 앉는 중에도 앞에서 대놓고 사진을 찍어 조금 민망할 정도였다.

“아니, 몰래 찍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면전에 카메라 대고 찍지. 난 하래도 못할 것 같은데.”

비즈니스석에 와서는 대놓고 하진의 앞에 서서 사진을 찍는 한 팬을 본 정우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 앞을 막고 섰다.

“자리로 가세요.”

정우에게 가로막히자 살짝 기분 나쁜 얼굴을 한 팬이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하지 않는 태도에 해성이 뒤를 돌아보며 고개를 저었다.

“대박이다. 그래도 그동안은 미안한 얼굴이라도 하던데. 정우 너 이제 성격 대박이라고 소문 퍼진다.”

“상관없어요. 저런 사람들한테 성격 좋아서 뭐 하겠어요.”

“와, 명언이다.”

다시 오지 않는지 확인이라도 하는 듯 이코노미 구역을 한 번 본 정우가 하진의 옆 빈자리로 앉았다.

“…고마워.”

“뭐 그런 거로 인사를 해요.”

연습실에서 살짝 언쟁 아닌 언쟁이 있던 이후로 정우와는 사실 조금 거리가 있는 상태였다. 곡 연습을 하느라 계속 같이 있고, 이야기를 나누기는 했지만, 딱 일에 대한 것 거기까지였다. 그 이후의 시간에는 이도 저도 아닌 시간을 보냈었다. 그래서 솔직히 정우가 제 일에 이렇게 나서준 게 더 고맙고, 한편으로는 미안했다.

하진은 물론이고 멤버들은 이륙을 준비 중이라고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잠이 들었다. 그리고 약 여섯 시간 동안 비행을 하고 내릴 때까지 그 누구도 깨지 않았다. 이제 내려야 하니 일어나서 정신 좀 차리라고 지창이 한 명씩 깨운 뒤에야 일어나 잠이 묻은 눈을 끔뻑댔다.

“와, 나 비행기 탄 이후로 기억이 없어.”

“저도요. 진짜 깊이 잤나 봐요. 하나도 안 피곤한 걸 보면.”

“나도 지금 완전 쌩쌩해. 아, 모자는 써야겠다. 머리 다 눌렸어.”

눌린 머리를 거울로 확인하고 기겁한 해성이 얼른 가방에 넣었던 모자를 꺼내 푹 눌러썼다. 그런 해성을 보던 하진 역시 챙겨온 모자를 썼다. 작은 얼굴을 챙 그림자가 뒤덮었다.

***

“얘들아, 지금 밖에 장난 아니라고 하거든. 경호원 풀 수 있는 만큼 다 풀었는데도 온 사람들이 작심하고 밀면 다 무너질 정도래. 공항에서도 인력 최대로 풀었고, 경찰까지 왔다는데도 사람 굉장히 많다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절대 서로 떨어지지 말고.”

입국 심사를 하고 나가기 전 단단히 주의하는 지창은 비장하기까지 했다. 멤버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지창을 따라 게이트를 나섰다. 문이 열리는 순간 펼쳐진 광경은 정말 입이 쩍 벌어질 만큼 대단했다.

공항이 진짜 무너질 만큼 큰 함성이 들렸다. 비명과 뒤섞인 함성에 아주 가까운 곳에서 말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게이트 밖에 대기하고 있던 현지 인력들이 아포제를 에워싸고, 차가 있는 곳까지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조심해요, 형.”

“응, 너도 조심… 아!”

경호원 옆에서 조심조심 걷지만, 여기저기에서 다가오는 손에 몸이 다 휘청였다. 하진의 팔을 잡거나, 옷자락을 잡아당길 때마다 하진의 몸이 기울었다. 정우는 그런 하진의 뒤에 버틴 채 그 몸을 단단히 잡아 앞으로 갈 수 있게 도와주었다.

“하진이 타, 이제! 자, 하진이 타고, 정우 빨리!”

차에 타기까지는 거의 삼십 분이 걸렸다. 마지막으로 정우가 차에 오르자 경호원들이 몰려드는 사람들을 밀며 문을 닫았다. 정우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와… 나 이렇게 사람 많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

“나도. 와, 진짜 대단하다.”

가까이 다가온 팬들이 차를 두드리고, 경호원들은 그런 팬들을 밀며 소동이 일어났다. 그제야 차에 오른 지창이 넋이 나간 훈을 보며 핸들을 두드렸다.

“호텔로 가자. 조심하고.”

“네.”

그 어떤 자잘한 사고도 일어나서는 안 되기에 차는 무척 조심스럽게 공항을 빠져나갔다. 지창이 다시 뒤를 돌며 멤버들을 살폈다.

“호텔도 아마 사람 많을 거야. 이 정도는 아니지만, 조심해.”

지창의 말대로 호텔 앞에도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아포제 플래카드를 만들어 든 사람들도 많고, 멤버들의 얼굴과 이름을 붙인 큰 부채를 든 사람들도 있었다. 멤버들은 차에서 내려 그 팬들에게 손을 한 번씩 흔들며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안에는 그렇게 사람들이 몰려 있지 않았다.

지창이 체크인을 하는 동안 하진은 해성과 같이 사진을 찍었다. 둘만 보이던 화면 안에 인규가 반쪽 나타나고, 밑에서는 영우의 눈이 나타났다. 결국 정우까지 당겨 다 같이 사진을 찍고, SNS 공식계정에 올리자, 일 분도 지나지 않아 만 건도 넘게 리트윗이 되었다.

“대박, 막 올라간다.”

“밑에 숫자 바뀌는 것 좀 봐. 나 전에 이거 알림 안 껐다가 배터리 나간 적 있는데.”

“아, 맞아. 너 그때 방전됐지.”

알림이 쏟아지며, 배터리가 나갔던 이야기를 하는 그때 지창이 룸 카드를 들고 다가왔다.

“키 하나씩 받고, 둘둘 룸메 하는 대로 쓰자. 편하게. 인규는 오늘도 자유. 난 훈이랑 쓸 거니까.”

인규가 승자의 제스처를 취하자 웃은 지창이 따로 실어온 캐리어를 한 곳에 밀어주었다.

“각자 올라가서 쉬고, 리허설은 여기 시간 네 시부터고 우리는 다섯 시까지 가기로 했어. 뭐 그렇게 멀지 않으니까 출발 전에 톡 보낼게. 로비로 바로 내려오면 돼. 그리고 그전에는 되도록 밖에 나가지 말고. 너희도 상황 봐서 알지. 단독 행동할 상황 아니야. 필요하면 이따 밤에 자유시간 줄 테니까 그때 나가고. 자, 그럼 올라가서 쉬어. 아, 아무나 문 열어주면 안 된다. 여기서 묵는 팬들도 많아.”

숨도 쉬지 않고 빠르게 말하는 지창의 주의사항을 들은 멤버들이 각자 캐리어를 끌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같은 층이기는 한데 방은 각각 떨어져 있었다.

“그럼 이따 봐. 쉬어라.”

“형도 쉬세요.”

8층에서 내려 형들과 반대쪽으로 가며 손을 흔든 하진이 복도 끝쪽에 있는 방 앞으로 서서 정우를 바라보았다. 정우가 앞으로 다가와 손에 든 카드키를 대자 노란 불이 반짝였다.

“와, 방 좋다. 전망도 좋고.”

컨디션이 굉장히 좋은 방이었다. 향긋한 향도 나고, 앞으로 탁 트인 전망에 속이 다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캐리어를 세운 하진이 얼른 창으로 가 바깥을 내다보았다.

“꼭 여행 온 기분이야.”

“여행이라고 생각하면 되죠.”

“그런가?”

창밖을 한참이나 보던 하진이 캐리어를 한쪽으로 넘어지지 않게 당겨 잘 세우고 욕실로 들어갔다. 욕실도 욕조와 샤워실이 따로 다 분리가 되어 있고, 세면대도 넓어 굉장히 좋았다.

“머리 좀 봐.”

쓰고 있던 캡을 벗어 옆으로 놓은 하진이 차분해진 머리칼을 손으로 흩트렸다. 적당히 보기 좋게 만져진 뒤에야 시선을 뗀 하진이 차가운 물로 손을 씻었다.

“정우야, 너도 오면서 계속…….”

수건에 손을 닦고 나가려 몸을 돌린 순간 정우와 마주쳤다. 하진은 안으로 들어오려던 정우와 마주한 채 소리 내던 말을 완성하지 못했다.

“…드, 들어가.”

하진은 정우가 욕실로 들어갈 수 있도록 오른쪽으로 살짝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정우도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또 정확하게 마주한 시선에 공기가 묘해졌다. 하진은 살짝 시선을 내리며 왼쪽으로 움직였다. 정우도 왼쪽으로 발을 옮겼다.

“…….”

“…….”

세 번이나 정확하게 몸이 마주한 순간, 하진은 내리깔았던 시선을 들어 저를 보고 있는 정우와 시선을 마주했다. 시선이 뒤엉키는 순간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입술이 맞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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