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제-66화 (66/122)

#66

하진이 수면유도제를 복용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실장과 매니저의 귀에 가장 먼저 들어갔다. 아티스트를 보다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케어하기 위해서는 작은 변화라도 전부 알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하진은 그 소식을 들은 지창과 한참이나 미팅룸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창이 무척이나 걱정하며 하진을 챙겼지만, 하진은 그 무엇도 솔직히 말할 수 없었다.

스트레스에 이렇게 취약한 사람인 줄 저도 처음 알았어요. 웃으며 그 말을 하는 게 최선이었다. 정말 몰랐어요. 제가 이렇게 사랑에 휘둘리는 타입인지.

다행히 수면유도제를 먹은 뒤에는 편히 잠들 수 있었다. 이것도 효과가 없으면 어떻게 하지 무척 걱정을 하며 먹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이 나른해지며 머릿속이 몽롱해지는 느낌이 났다. 그리고 아주 깊은 잠에 빠졌다.

“호스티지 시작할 때, 무대 정중앙 3번 조명 하나만 켜고, 나머지는 다 꺼주세요. 원래 객석에서 무대로 라이트를 쏠 생각이었는데, 더 극적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자, 다시 갑니다. 정우랑 하진이 안무 완전히 끝날 때까지는 시각적으로 둘한테만 집중할 수 있게 할게요.”

리패키지 앨범 발매 바로 다음 날부터 시작될 아포제의 첫 번째 콘서트 준비도 이제 막바지였다. 지금 한 번 최종 리허설을 하고, 내일 아침 다시 한번 정말 마지막으로 점검을 하면 끝이었다.

“자, 갈게요.”

무대연출가인 주원의 지시에 따라 무대 조명이 모두 꺼졌다. 하진은 어둠 속 제 뒤에 밀착한 정우의 느낌에 작은 숨을 내쉬었다. 어두워서 그런 건지 꼭 세상에 정우와 저 둘만 남은 그런 기분이었다.

의 전주가 나오는 순간 빛이 아래로 뚝 떨어졌다. 오직 정우와 하진 두 사람만 비춘 빛에 주원이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조명 좋다. 훨씬 좋아. 이렇게 갈게요. 그리고 어디 보자.”

리허설을 할 때 보고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전부 체크해 둔 주원이 작은 수첩을 바라보았다. 하진은 그런 주원을 보며 얼른 정우에게서 몸을 떼어냈다.

“아, 피곤해. 눕고 싶은데 장난으로라도 누우면 진짜 기절할 것 같아서 눕지도 못하겠어.”

“나도. 아, 죽겠다. 팬분이 주신 공진단 먹었는데도 난 효과가 없어.”

“그거 먹어서 그만큼 버티는 거 아냐?”

“와, 이영우 지금 좀 천재 같았어.”

“나 원래 천재야.”

어떻게든 버티기 위해 애써 분위기를 좋게 만들며 장난치는 멤버들을 본 하진이 작게 웃었다. 그리고 다가오는 주원을 바라보았다.

최종 리허설은 새벽 두 시가 다 되어서야 끝이 났다. 멤버들은 늦은 시각까지 애써 준 스태프들에게 내내 인사를 하다가 공연장을 빠져나와 밴에 올랐다.

“지금 밖에 팬들 줄 섰다는데?”

“무슨 줄이요?”

“현판이랑 굿즈 줄.”

“현장 판매요? 티켓?”

“그런가 봐. 와, 이것도 밤새야 사는 거야? 힘들 텐데.”

의자 뒤로 몸을 기댄 하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팬들은 이렇게 힘든 것도 견디며 팀을 위해 노력하는데 도대체 저는 뭘 하는 사람인가 싶었다. 모든 것을 쏟아부어도 모자라는 지금, 정신 일부도 흔들리고, 마음도 조각나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이렇게 온전하지 않은 상태로 팬들 앞에서 공연하고, 멀쩡한 척을 해도 되는 걸까.

“…….”

가식. 전부 가식이었다. 지금 저는 그 무엇에도 힘을 쏟을 수가 없었다. 매일 몸 안을 채우고 있던 것들이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수면유도제를 다 먹고 나면 혼자서도 잠들 수 있을까.

하진은 모두가 잠든 밴 안에서도 내내 맴도는 생각들과 함께 잠들 수 없었다.

***

콘서트 성료 기사가 SNS로 공유되기 시작했다. 아포제 공식 계정 관리자는 SNS에 오르는 아포제와 콘서트에 대한 공유 수와 새로 올라온 대기실 단체 사진이 리트윗되는 시간과 수를 기록했다. 얼마 지나지도 않아 한국 실시간 공유는 물론이고 전 세계 공유까지 1위에 오르는 것을 본 뒤에야 새로운 사진을 게재했다.

사흘 동안 이어진 콘서트가 끝났음에도 멤버들은 쉬지 못했다. 바로 리패키지 활동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미 모든 음원 차트 1위를 차지했고, 인기 있는 프로그램들과 행사에서 아포제에게 러브콜을 보내왔다. 이 상태에서 휴식을 취한다는 건 누가 봐도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하진이는 살이 더 빠진 것 같아. 요즘 다이어트 해?”

“아니요. 다이어트 할 시간도 없어요. 또 저 보는 사람마다 말랐다고 걱정하셔서… 딱 오 킬로그램 정도만 찌우려고 노력 중이에요.”

“그래, 찌워야겠다. 보기 나쁜 게 아니라 진짜 툭 치면 부러질 것 같아. 걱정돼서 그래.”

“많이 먹고 잘 해볼게요.”

하진은 머리를 만져주는 디자이너를 보며 작게 웃었다. 걱정이 되어 하는 말인 것도 알고, 제 살이 더 빠졌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보는 사람마다 이렇게 걱정을 하고 같은 말을 건네니 조금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좋은 말도 여러 번 들으면 지치는데, 아픈 거 아니냐, 걱정된다 이런 부정적인 말을 계속 들으니 꼭 엄청나게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기분이었다.

“정우 씨, 잠깐만 시간 내줄래요?”

어쩐지 무거운 눈꺼풀을 느릿하게 내리감았다가 뜬 순간 정우를 부르는 목소리에 하진의 시선이 닿았다. 아래층에 일이 있어 내려갔던 원장이 정우에게 은밀히 손짓하는 게 보였다.

“무슨 일인데요?”

“잠깐이면 돼요. 나 좀 살려줘.”

정우를 데리고 네일 케어를 하는 쪽으로 데려가는 원장을 본 하진이 제 뒤에 다시 와서 서는 디자이너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 있어요?”

하진의 물음에 잠시 원장이 간 쪽 눈치를 본 디자이너가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현이진 씨 왔거든.”

“…네?”

“이진 씨가 정우 팬인 건 알지? 올 때마다 차정우, 차정우 노래를 하는데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어서 아쉬워했거든. 근데 오늘 딱 겹친 거야, 시간이.”

“…….”

“듣자 하니 그 매니저가 아포제 샵 오는 시간 좀 알려달라고 그렇게 조른 모양이더라고.”

“…네.”

“둘이 비주얼만 보면 어울리기는 하는데, 아무래도 벌써 연애하는 건 아포제한테 타격이 크지? 아닌가, 벌써 다들 몰래 하고 그래?”

“…아니요. 안 그래요.”

그러지 말고 솔직히 말해보라고 장난을 치는 디자이너에게 어색하게 웃은 하진이 정우가 간 쪽을 다시 바라보았다. 정우가 현이진과 단둘이 만나는 것을 떠올리자 마음이 확 조여들었다. 당장이라도 가서 정우를 데리고 나오고 싶을 만큼 싫었다.

“…….”

머릿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뜨거워지며 몸속에 있는 모든 것이 타들어 가며 쪼그라드는 그런 기분이었다.

“…….”

싫어. 정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그 사람이 정우를 만나는 것도, 정우가 그 사람을 눈에 담고,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전부 다 싫어.

“다 됐다. 아, 진짜 머리가 하진이 얼굴 덕 본다. 어쩜 뭘 어떻게 해도 이렇게 다 잘 어울려. 머리 만질 맛 난다니까. 요즘 일반 고객들도 강하진 머리 해주세요, 하고 사진 많이 가져오셔. 그때마다 내가 으쓱한다니까.”

“…네. 다행이네요.”

디자이너의 말에 대답은 하지만, 온 신경은 보이지도 않는 정우와 현이진에게 쏠려 있었다. 하진은 제 어깨를 감싼 것들을 다 치우고, 스펀지로 부드럽게 목에 붙은 머리카락을 털어주는 디자이너를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커피 좀 마실게요.”

“내가 가져다줄게.”

“아니에요. 바쁘시잖아요. 영우 형 차례기도 하고……. 제가 가져다 마실게요.”

“그럴래? 역시 착해. 우리 맛있는 커피랑 티 새로 들여놨으니까 마음껏 마셔. 저기 네일 케어 옆에 들어가면 있어.”

“…네.”

앉아 졸고 있는 영우의 뒤로 가 서는 디자이너를 본 하진이 조용한 네일 케어샵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희가 이 층을 단체로 쓰는 시간에는 다른 연예인들, 특히 여자 연예인들은 예약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만에 하나라도 샵에서 친분을 다져 가까워지는 그런 일을 방지하고자 함이었다. 만약 지창이 있었다면, 현이진이 정우를 찾아도 절대 만나지 못하게 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창은 요즘 저희보다도 더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워낙 러브콜을 보내는 프로그램과 행사가 많아 틈만 나면 미팅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

하진은 지창이 없는 것을 아쉬워하며 정우가 들어간 네일샵 쪽 휴게실 앞으로 다가갔다. 닫힌 문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리 크지 않은 소리라 잘 들리지 않았다.

“…….”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말을 엿들으러 온 거야?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하고, 정우가 다른 사람과 있는 게 질투가 나서 이제 정말 밑바닥까지 보이기로 한 거야? 네 밑바닥은 어디야? 강하진. 도대체 어디까지 망가질 거야.

스스로를 탓하는 마음과 동시에 그래도 정우가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게 죽기보다 싫다는 생각이 일었다. 미친 척을 하고 이 문을 열고 정우를 데리고 나오고 싶었다. 하진은 문손잡이를 꽉 쥐었다.

“아…….”

힘도 주지 않았는데 문이 벌컥 열렸다. 하진은 놀라 뒤로 물러섰다. 편해 보이지 않는 표정을 한 현이진이 그런 하진과 눈을 맞췄다. 그리고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뒤 서둘러 계단을 내려갔다. 멀어지는 발소리를 듣던 하진이 휴게실 안으로 시선을 옮겼다.

“…….”

“…….”

정우와 눈이 마주친 순간 하진은 생각하는 것을 멈추었다. 더 이상 생각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그대로 휴게실 안으로 들어간 하진이 문 닫히는 소리와 동시에 정우의 얼굴을 잡아 키스했다.

“지금 뭐 하는…!”

“나랑, 나랑도 해.”

둘이 이 안에서 이런 짓을 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반쯤 미친 머릿속은 계속 불안함을 조성했다. 저렇게 예쁜 사람이 좋아한다고 하면 정우가 당연히 흔들릴 것 같았다. 한 번은 거절하고, 두 번은 거절해도, 세 번, 네 번 이어지고 만남이 잦아지다 보면 결국 그 마음에 손을 내밀 것만 같았다.

정우는 착하니까. 처음 들어와 누구도 손 내밀어 주지 않던 저에게도 먼저 다가와 웃어주던 그런 따뜻한 사람이니까. 그래서 하진은 정신없이 정우에게 먼저 매달리고 키스했다. 정우가 그런 하진의 어깨를 잡아 벽으로 확 밀어냈다.

“미쳤어?”

“…그래…….”

“…….”

“…내가 어떻게 안 미쳐……. 네가 현이진이랑 있는데… 현이진이 너 보러 왔다는데…….”

“형 진짜 제정신 아니구나.”

맞는 말이라 반박을 할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하진은 얼굴이 흠뻑 젖는 것에 불쾌함을 느끼며 다시 정우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내가 더 싫어졌어?”

“…….”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면, 좋아해 줄 수 있어?”

“강하진.”

“나 이제 별로야?”

요즘 하진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잘 몰랐다. 그냥 입술이 열리고, 소리가 나오면 끝이었다. 그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정우에게 어떻게 닿는지 거기까지 파악을 할 힘이 없었다.

“…살이 너무 빠져서 그런가? 나 잘 먹을게.”

“…….”

“…너도 내 얼굴 좋다고 했잖아.”

“그래. 예뻤지. 예뻤어요. 노래할 때도 반짝거리고, 잘 추지도 못하는 춤 배우면서도 반짝반짝하고, 내가 부르면 보는 눈, 얼굴, 목소리, 표정, 웃음 다 예뻤어요. 형 같은 사람이 아이돌 하는 거구나 할 정도로.”

“…….”

“그런데 지금 형 어떤 줄 알아? 반짝거리지가 않아. 내가 알던 강하진 모습이 남아 있지가 않다고.”

정우의 말에 하진이 힘없이 실소를 터뜨렸다.

“…빛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

“이제 네가 나를… 봐주지 않는데.”

“…….”

“너한테 잘 보이고 싶었어. 너한테 잘한다고, 열심히 했다고… 칭찬받고 싶었어. 너랑 또 연습하려면 내가 더 노력해야 하니까 미친 듯 연습했어. 너랑 데뷔하고 싶었고, 너랑…….”

“…….”

“…키스하고 싶었어. 거기부터 잘못된 거겠지.”

하진의 어깨를 꽉 누르고 있던 정우가 손을 확 놓으며 몸을 뒤로 움직였다. 더는 이런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누구든 좋아하려고 노력해 봐야지, 안 되겠다.”

“…뭐?”

정우는 여전히 울고 있는 하진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내가 가만히 있기만 해도 형한테 여지를 주는 거잖아요. 형 그렇게 느끼는 거잖아, 지금.”

“…….”

“덕분에 연애할 맘 생겼어요. 나도 제대로 된 사랑 좀 주고받고 하면 좋겠네.”

“…….”

“걱정 마요. 진짜 못 참겠을 때 자줄 수도 있으니까. 미리 사귈 사람한테 말을 해야 하나. 멤버 형 하나 가끔 달래 줄 일이 있을 수도 있다고.”

“…그러지 마…….”

하진은 애원했다. 정말 이대로 정우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될 것만 같아 겁이 나 미칠 것 같았다. 눈동자가 흔들리고 몸이 벌벌 떨렸다.

“…그러지 마, 정우야…….”

“형 만져주자고 평생 누굴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잖아요. 형을 사랑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말하지 마… 죽을 거 같아.”

숨이 막혔다. 가슴이 턱 막혀 당장이라도 죽을 것만 같았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정우를 보는 상상만 해도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죽고 싶어.”

“…….”

“네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생각만 해도… 죽고 싶어. 정말 죽고 싶어…….”

“죽어요, 그럼.”

정우의 목소리가 하진의 체온을 뒤덮었다. 피가 전부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하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정우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귀가 멍하니 멀어지고, 입 모양만 겨우 읽을 수 있는 상태로 또다시 이어지는 그 모양을 바라보았다.

죽어요. 라는 그 소리 없는 모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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