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물속에 잠긴 것만 같았다. 하진은 정우를 붙잡지 않으면 밑도 끝도 없이 저 깊은 곳으로 가라앉을 사람처럼 굴었다. 얼굴을 보지 못해도 좋고, 아파도 좋다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대신 정우와는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바라는 것은 그것 하나뿐이었다.
입고 있던 옷이 벗겨지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동안에도 하진은 정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아니 떼지 못했다는 말이 더 맞았다. 정우와 섹스를 하는 시간 동안은 얼마든지 정우를 봐도 되고, 만져도 되는 시간이었다. 쳐다보는 게 죄가 되지 않고, 손을 대는 게 꿈이 아닌 이 시간을 단 1초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하진은 저를 보지 않는 정우의 얼굴을 내내 바라보았다.
“영화는 재밌었어요?”
“어? 아… 응. 재밌었어. 넌?”
“형 영화 안 봤잖아요.”
“…아… 그게…….”
“나도 재밌었는지 몰라요. 난 영화 안 보는 형만 봤거든.”
제 심장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곤죽이 되어 손으로 잡으면 전부 다 흘러내릴지도 몰랐다. 정우가 말을 할 때마다 곤두박질치는데 정상적인 모양을 하고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진은 저를 봤다는 정우의 그 말 하나로도 열렬한 사랑 고백을 받은 것처럼 기뻐했다.
“발정 난 형 구경하는 게 더 재밌거든. 영화에서 키스하면 형도 나랑 키스하는 상상하고 그랬어요? 둘이 자면 형도 나랑 자는 생각 하고?”
“…계속 그런 건… 아니야.”
“어쨌든 하긴 했다는 거네. 언제부터 그랬어요? 팝콘 먹으려다가 내 손이랑 닿았을 때? 아, 아니다. 잠 못 잔다고 그러면서 나한테 먼저 입 댔을 때부터 그랬겠네.”
정우의 손이 느릿하게 하진의 허리를 쥐며 위로 올라갔다. 볼 때마다, 이렇게 만질 때마다 더 말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덕분에 화면에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아름답게 나오지만, 솔직히 매번 이렇게 마른 걸 확인할 때마다 걱정이 되기도 했다.
“뭐야, 그 전부터 그랬어요?”
“…나 매일 그래.”
“…….”
“너랑 안 하는 시간은 내내… 그래.”
“이제 부끄럽지도 않은가 봐요. 아무렇지도 않게 하네, 그런 말을.”
부끄러움, 자존심. 이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정우와 같이 있을 수만 있다면, 어떤 취급을 당해도 좋았다. 하진은 몸에 닿는 정우의 손에 어깨를 움찔 떨었다.
“빨리해 줄까요?”
“…응. 빨리해 줘.”
뭐지. 정우는 미묘하게 달라진 하진의 상태를 바라보았다. 분명 달라졌다. 붉어지던 귀 끝과 떨리던 눈동자 같은 것들이 사라졌다. 더욱 수치스럽게 만들기 위해 한 제 말을 너무나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정말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어쩔 줄 몰라 몸을 비틀지도 않았다.
빨리해 달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고, 눈을 피하지도 않는 하진은 분명 달라져 있었다. 저에게 초점이 맞는 눈동자도, 또 제 몸에 닿은 손도 모두 전과는 달랐다.
「손도 잡고, 네가 먼저 키스도 해줄 거고… 너도 설레고, 행복하겠지……. 그때가 되면 정말 나 같은 건…… 봐주지도 않을 거야. 신경도 안 쓰겠지……. 화도 안 낼 거고, 관심이 사라질 거야.」
멘탈이 완전히 무너진 것 같았다.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기는 할까. 이런 말을 할 거라고 생각하며 말하는 게 아니라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그런 얼굴이었다. 강하진의 진심. 정우는 무너져 줄줄 흘러내리는 하진의 감정을 매끄러운 눈동자로 담아냈다.
“…….”
반짝이던 눈빛이 더는 반짝이지 않고, 환히 웃던 그 얼굴이 더는 전처럼 밝은 웃음을 보이지 않았다. 서서히 변하고 있던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한순간에 모든 게 흘러내릴 줄은 몰랐다. 이 순간에도 저를 애타는 시선으로 보는 하진을 이해할 수 없었다. 미워해야지. 싫어해야지. 원망해야지. 매달릴 게 아니라 증오해야지. 연민은 이해할 수 없는 화살이 되어 하진을 향했다.
“아흣!”
정우의 얼굴이 하진의 가슴 위로 내려갔다. 혀끝으로 납작한 유두 위를 문지른 순간 하진의 허리가 비틀리기 시작했다. 걸리는 게 하나 없던 혀끝에 톡 튀어나온 작은 돌기가 닿아 움직였다. 정우는 그 주변을 빙빙 돌리듯 핥다가 입속으로 집어삼키듯 세게 빨아들였다. 금세 달아오른 하진의 숨이 머리 위로 떠 올랐다.
“소리 내지 말아요. 낼 거면 아예 거실 가서 하고.”
“조심할게.”
“문이라도 잠가야 할 것 같은데… 갔다 오면 마음이 변할 것 같아서 그래요.”
“…그냥, 그냥 해 줘. 내가 조용히 할게.”
하진은 필사적이었다. 지금 당장 섹스하지 않으면 죽어버릴 사람처럼 굴었다. 정우는 그런 하진의 바지와 속옷을 한 번에 아래로 벗겨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맨몸이 되었는데도 하진은 몸을 가리려고 들지 않았다. 전과는 분명 달랐다.
더 깊은 생각을 했다가는 또다시 연민이 감정을 물들일 것만 같았다. 정우는 그대로 다시 고개를 내려 하진의 유두를 괴롭혔다. 끈질기게 입술로 물고 혀를 움직이며 자극했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살짝 흥분을 머금은 성기를 쥐고 살살 돌리듯 손을 움직이자 밭은 숨이 터져 나왔다. 실핏줄이 보이는 얇은 눈꺼풀이 내리 감겨 떨릴 때마다 손이 조금 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흐읏… 아…….”
소리를 내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는지 하진은 내내 신음을 참았다. 입술을 깨물기도 하고, 어쩔 줄 모르며 소리를 삼키고 몸을 떨어댔다. 도저히 견디지 못할 정도로 자극이 세지면, 미처 삼키지 못한 신음이 숨과 뒤섞여 쏟아졌다.
“아…….”
다리가 벌어지고 깊은 곳으로 손가락이 파고드는 느낌에 하진의 눈이 더 깊게 감겼다. 아픈 것 같기도 한데, 솔직히 아프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았다. 드디어 정우가 제 몸을 만져준다는 그 사실이 모든 것을 뒤덮었다. 손가락이 두 개가 좁은 내부를 휘저으며 넓힐 때마다 하진은 어쩔 줄을 모르고 몸을 떨었다.
“벌써 이렇게 물어대면 힘 빠지잖아요.”
정우는 제 두 손가락을 놓아주지 않는 하진의 다리 사이를 내려 보았다. 손가락이 하진의 몸 안으로 들어가 물려 있는 것을 보니 아랫배가 확 조여들었다.
“아무거나 물면 다 좋아요?”
“아니… 아니야.”
수치를 주려고 일부러 한 말에도 하진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정우에게 헤퍼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남자면 다 되는 게 아니라 너라서 좋아하는 거라고, 네가 아니면 그 누구에게도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없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그런 거 아니야…….”
“알았어요. 그만 말해도 돼.”
정우는 하진의 안으로 깊게 넣었던 손가락을 빼내며, 제 트레이닝 팬츠를 내렸다. 그런 정우를 물끄러미 본 하진이 몸을 일으켜 앉았다.
“…해줄게.”
“굳이 안 해도 되는데.”
“…내가 잘 못 해서… 별로야?”
굳이 하진이 입으로 하지 않아도 충분히 발기할 수 있을 정도의 열기를 머금고 있었지만, 정우는 하진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기로 했다. 그대로 몸의 방향을 바꿔 침대 헤드에 기댄 정우가 제 다리 사이로 몸을 납작 엎드리는 하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제 성기를 꺼내 어설픈 손놀림으로 만지고, 눈치를 보며 입에 넣는 그 모든 행동이 하진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저를 좋아하는 그 부분이 아니라, 제가 정말 인간적으로 좋아하던 그 반짝이던 하진이 이런 짓을 하고 있다는 그 자체로 배신감이 들었다. 꼭 크리스마스트리 가장 꼭대기에 달린 가장 예쁘게 빛나던 별이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버린 것 같았다.
“아…….”
크지 않은 입이 벌어져 벅찬 듯 성기를 입에 물었다. 입을 벌리면 눈이 감겼다. 얇은 눈꺼풀이 떨리고, 혀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불규칙하게 기둥을 스치며 움직였다. 정우는 인상을 쓰며 손을 내려 하진의 머리칼을 가득 움켜쥐었다.
“하려면, 아… 제대로 해요. 더 깊게 물고, 혀도 움직이고.”
입에 물고만 있는데도 온 감각이 몰려들었다. 하진은 제 입에 물고 있기 벅찰 만큼 커지는 정우의 것을 겨우 물고 버텼다. 턱이 아프고, 침도 삼킬 수 없어 자꾸만 고여 들었다. 흐르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삼키려고 입을 움직일 때마다 머리칼을 쥔 정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상하게도 머리칼을 세게 쥘 때마다 다리 사이가 저릿거렸다. 원래 다 그런 걸까. 하진은 목구멍이 찔릴 만큼 더 가득 정우의 것을 깊게 물었다.
“흐으… 읍…….”
뜨겁고 단단한 기둥을 혀로 문지르고, 얼굴을 앞뒤로 움직여 빨기 시작했다. 정우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다. 기분이 좋아지면,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세 번도 해줄 것이었다. 또 더 기분이 좋아지면 키스를 해줄지도 몰랐다. 하진은 그렇게 고개를 더욱 깊이 정우의 성기 위로 처박았다. 목구멍이 찔릴 때마다 헛구역질이 날 것 같아 눈물이 고였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하으… 으응…….”
눈물이 눈동자를 매끄럽게 만들고 뚝뚝 떨어질 때마다 야릇한 감각이 온몸을 휘감았다. 정우의 잔뜩 열이 오른 귀두가 목구멍을 확확 쑤셔댈 때마다 하진의 다리 사이로 열이 몰렸다. 정우의 손이 한 번 닿지도 않았는데 단단해진 성기 끝에 말간 액체가 맺혔다. 하진은 눈물과 프리컴을 줄줄 쏟아내며 정우의 것을 머금었다.
“읏… 아…….”
아름답고, 처참했다. 꼭 짓이겨져 주변을 온통 새빨갛게 만든 꽃잎 같았다. 그 결과는 처참한데, 아름답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그런 말도 안 되는 모습이었다. 정우는 잘하지 못하면서도 필사적으로 해내려 애쓰는 하진을 보며 그대로 사정했다.
“흣!”
목구멍이 너무 깊게 찔려 얼굴을 뒤로 빼낸 하진의 입술과 얼굴 위로 말간 정액이 여기저기 묻어났다. 하진은 젖은 얼굴로 고개를 숙인 채 입을 틀어막고 콜록댔다. 콜록대는 소리를 듣고 매니저 형이나 다른 멤버가 오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형 꼴이 지금 어떤 줄 알아요?”
“…….”
“난 이제 형이 좀 불쌍해요.”
“…….”
“구질구질해. 무슨 사랑이 이래.”
고개를 들어 저를 보는 하진의 눈동자는 여전히 반짝이지 않았다. 꼭 비 오기 전 먹구름으로 뒤덮인 하늘 같았다. 곧 비가 쏟아지겠구나,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아주 흐리고, 어두운 그런 하늘. 정우는 비가 올 것을 알면서도 손을 내밀었다. 이 손 하나로 비를 막을 수는 없겠지만, 하진의 기분을 조금 나아지게는 해줄 수 있었다.
“정우야.”
“…….”
“…구질구질해도 상관없어. 그게 뭐 어때서…….”
“…….”
“그래서 네가 나랑… 이렇게 같이 있어 주잖아. 나랑 자 주잖아…….”
“…….”
“…나 하나도 안 불쌍해……. 좋아. 그러니까 계속해 줘. 네 맘대로 다 해도 돼. 난 네가 뭘 해도… 좋아.”
젖은 얼굴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하진은 정우를 붙잡았다. 아니, 잡는다는 말보다 얹었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미약한 힘이었다. 정우는 참담하고 아름다운 그 얼굴을 바라보다가 그대로 하진의 몸을 돌려 엎드리게 만들었다.
애초에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연민도 가질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저는 가뿐히 이 상황을 즐기고, 간단히 잊으면 됐다.
“흐읏!”
“소리 죽여요.”
정우는 그대로 하진의 허리를 잡고 안으로 들어갔다. 하진의 허리가 움찔대며 팽팽히 펴지는 것을 볼 때마다 피가 몰렸다. 너무 좁아 힘을 빼도 꽉 조이는 그 내부를 뚫고 들어가는 느낌이 좋았다. 자존심도 없이 저에게 제발 해달라고 매달리는 하진에게 고맙다고 말할 사람은 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짜릿한 감각이었다.
“영우 형이 형 걱정해요. 그 형이 눈치 빠르잖아요. 형 이상한 거 알아버린 이상 왜 이상해졌는지 아는 것도 어렵지 않을 거야.”
“흐윽… 아, 내가, 내가 더 조심… 읏…….”
“이제 형은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형도 형 컨트롤 못 하잖아.”
깊게 한 번에 확 치고 들어오는 정우의 느낌에 하진이 시트 위로 얼굴을 파묻었다. 이미 구겨진 시트를 두 손으로 꽉 쥔 채 바들바들 떨리는 몸을 겨우 지탱하면서도 밀려드는 쾌감에 눈도 뜰 수 없었다. 이 순간을 얼마나 원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었다. 몸 안에 차정우가 가득한 이 순간이 떠올라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잠든 정우의 몸 위로 올라가 스스로 앉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였다.
“맞아… 하으, 나, 나 이제… 으응, 아무것도… 못, 못 해… 아, 좋아…….”
“좋아? 넣어 주기만 해도 벌써 좋아요?”
“응… 좋아, 으응, 너무… 하으, 너무 좋아…….”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하진은 제가 가지고 있던 감정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온통 차버린 쾌감과 마주했다. 상황도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하진은 깊게 움직이기 시작한 정우를 위해 몸을 움직였다. 정우가 박아 올 때면 엉덩이를 뒤로 빼고, 정우가 빠져나가면 저도 몸을 앞으로 움직였다. 서로 몸을 움직여 더 강한 마찰이 일 때마다 머리끝까지 쾌감이 찌릿대며 차올랐다. 내내 죽어있던 세포가 하나둘 살아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