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제-55화 (55/122)

#55

“내가 괜찮게 해줄게.”

떨리지만 분명한 목소리였다. 뒤에 있던 하진이 또다시 앞으로 와서 선 것을 본 정우가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네 기분이나 상황 같은 건… 자신 없지만, 다른 건 내가 괜찮게 해줄 수 있잖아.”

“형은 이제 이 상황을 즐기기 시작했나 봐요. 아니면 원래 이렇게 남들 눈 속여가면서 뒹구는 걸 좋아했어요? 나만 이제 안 거야?”

“…어떻게 생각해도 괜찮아. 난 다 괜찮아.”

전부 다 괜찮지 않은 사람과 전부 다 괜찮은 사람이 뭘 할 수 있을까. 정우는 그 뒤에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나 때문에 그런 거잖아.”

부정할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너무나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하진의 눈을 손으로 덮어 가린 채 서 있다가 생긴 일이었다. 믿을 수 없게도 그 기다란 속눈썹이 손가락을 간질이며 움직이는 순간 몸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그런 저를 느낀 건지 당황하던 하진의 움직임과 몸이 살짝 비벼지던 그 순간까지 모든 것이 정우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내가 해줄게.”

당당하지도 못하고, 대놓고 즐기자는 여유도 없으면서 할 말은 또 다 하고 있는 하진을 본 정우가 실소를 터뜨렸다.

“형이 나한테 대주는 거야 뭐 놀랄 일도 아니고, 나도 지금은 굳이 말릴 마음 없긴 한데… 내가 아직 때와 장소를 가리는 편이라.”

“…….”

“해성이 형이 날 찾는다면서요. 그거 알려주려고 날 찾았다며.”

그런데도 이러고 싶어요? 뒷말은 소리 내지 않았지만, 하진은 그 이상의 말을 들은 것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정우는 그런 하진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눈을 깊게 감았다가 떴다.

“…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래도 빨리 잘 해볼게.”

그리 크지 않은 목소리지만 워낙 복도가 조용해 귓가에 속삭이는 것처럼 아주 잘 들렸다. 정우는 혼잣말처럼 저에게 말하는 하진을 바라보다가 입을 벌렸다. 하지만 그 어떤 말도 소리 내지 못했다. 하진이 기대어 서 있던 비상구 문을 열고, 그 안으로 제 손을 잡아끌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하자는 거예요?”

“…….”

창이 하나도 없는 건지 아직도 비상구에서는 새로 지은 건물 특유의 냄새가 났다. 그리고 이쪽까지는 누가 잘 이용도 하지 않는 건지 숨만 쉬어도 그 소리가 극대화되어 들릴 정도로 조용하고, 어두웠다. 천장에는 가늘고 기다란 등이 두 개 달려 있는데, 아무래도 하나가 완전히 나가버린 것 같았다. 정우는 불이 들어오지 않는 전구를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내려 하진을 바라보았다. 침침함 속에서도 전혀 사그라지지 않는 묘한 의지를 가진 얼굴이 보였다.

“도대체 뭐 하자는…….”

의중을 떠볼 생각도 없었다. 이제 더는 떠보고, 돌려 말하고, 테스트할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대놓고 뭐 하자는 건지 물으려는 정우의 앞으로 하진이 쑥 내려갔다. 쓰러지기라도 한 건 아닌지 놀라 고개를 숙인 정우는 몸을 내려앉은 채 제 버클을 풀고 있는 하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뭐 하는 건지 굳이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너무나 잘 알 것 같기 때문이었다.

“내 생각보다 더 대단하네요.”

“…응?”

“이런 쪽으로는 내 상상을 초월해. 설마 이런 짓까지 할 수 있겠나 싶은 그 이상을 해요, 형은.”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 고요한 비상구 안으로 정우의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하진은 여러 벽에 부딪혀 결국 제 귀에 몇 번이고 들어오는 그 목소리를 들으며 떨리는 손으로 정우의 속옷 안에서 성기를 꺼냈다. 이 상황에서도 정우가 저 때문에 흥분했다는 사실에 심장이 마구 흔들렸다.

“…….”

하진은 이미 발기한 정우의 성기를 손에 쥔 채 살살 움직였다. 한참 위에 있는 곳에서 숨이 떨어져 내려왔다. 제가 손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반응하는 정우가 좋아 하진은 조금 더 빠르게 손을 움직이다가 입술을 귀두 끝으로 가져가 대었다.

“아….”

머리 위로 만족과 비슷한 소리가 떨어져 묻어왔다. 하진은 눈을 감고 입을 더 벌려 그 선단을 온전히 머금었다. 제 아래를 뚫고 들어올 때의 아픔을 알아서 그런 건지 자꾸 다리가 오므라들었다.

“흐읍…….”

머리칼 사이로 파고드는 굵직한 손가락이 좋아서 하진은 정우의 것을 물면서도 흥분했다. 왜 물기만 했는데도 자꾸 다리 사이가 저릿해지는 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저 제 뒷머리를 누르는 정우의 악력에 이끌려 조금 더 입을 크게 벌릴 뿐이었다.

하진은 제 입속에서 더 흥분해 부피를 더해가는 정우의 성기를 담을 수 있을 만큼 가득 입에 담았다. 목구멍이 찔릴 것처럼 깊게 들어와 헛구역질이 날 것 같을 때마다 눈물과 함께 야릇한 감각이 아랫배를 타고 퍼져갔다. 정우의 성기를 입에 물 때까지만 해도 전혀 발기하지 않았던 성기가 자꾸만 움찔대며 몰려드는 감각을 머금기 시작했다. 하진은 정우의 것을 가득 문 채 어쩔 줄을 몰라 몸만 벌벌 떨었다.

“물기만 하고, 읏, 있을 거예요? 빨리, 끝내려면… 아, 움직여야 할 거 아냐.”

간헐적으로 끊기는 정우의 흥분한 목소리에 몸으로 열기가 확 돌았다. 정우의 손가락이 머리칼 사이를 파고들어 꽉 쥐고 뒤로 당겼다가 앞으로 확 누르는 것에 또다시 목구멍을 찔렸다.

하진은 헛구역질을 하며 그대로 성기를 뱉어내고 바닥으로 고개를 숙인 채 기침을 해댔다. 끈적끈적한 타액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찔린 것은 목구멍인데 꼭 아래를 찔린 것처럼 몸이 뜨거워졌다. 하진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 몸을 움츠렸다.

“다시.”

“…….”

고요한 공간에 떠도는 것 중 가장 무겁고 낮은 목소리였다. 하진은 눈물로 젖은 얼굴을 들어 다시 정우의 것을 쥐고 입에 물었다.

“혀 움직여 봐요.”

“…으응…….”

뒤처럼 아프지만 않다뿐이지 잔뜩 발기한 정우의 것은 입으로 물고 있는 것만으로도 턱이 빠질 것처럼 아팠다. 하진은 겨우 정우의 것을 문 채 혀를 움직였다. 열이 오른 기둥을 혀로 문지를 때마다 다리 사이가 움찔거려 자꾸만 몸에서 힘이 빠졌다.

정우가 그런 하진의 머리칼을 쥔 채 입속으로 더 깊게 성기를 처박았다가 빼내는 것을 반복했다. 하진은 눈도 뜨지 못한 채 그 움직임을 받아냈다. 정우의 뜨거운 것이 입안 점막을 문지르고 들어왔다가 나갈 때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좋아 견딜 수가 없었다.

“흣, 응… 으응, 흐읏!”

입안이 얼얼할 정도로 빠르게 파고들던 정우가 하진의 가장 깊은 곳을 찌른 채 움직임을 멈추며 사정했다. 축축하고 뜨겁게 제 성기로 달라붙는 하진의 입속 점막은 아래 그 작은 구멍 속 내벽과 닮아 있었다. 그 안에 넣기만 하면 기분이 좋아 정신이 다 나가버렸다. 정우는 제발 빼달라는 듯 제 다리를 힘없는 손으로 두드리는 하진을 보며 뒷머리를 누르고 있던 손을 떼어냈다. 막힌 숨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하진이 바닥으로 쓰러지듯 무너졌다.

“하아… 흑, 하으, 흐으…….”

쏟아지는 숨은 엉망이라는 말로도 표현하기 힘들 만큼 처참했다. 눈물과 타액이 동시에 바닥으로 떨어졌고, 턱과 입술, 목구멍이 전부 다 아팠다. 정우는 시선을 내리깔아 제 발밑에 엎드려 고개도 들지 못하는 하진을 보며 옷을 정리했다. 그리고 다리를 구부려 무너진 하진의 앞에 앉았다.

“이런 건 많이 안 해봤나 봐요.”

고개도 들지 못하는 하진의 헝클어진 뒷머리를 부드럽게 만져준 정우가 강제로 그 턱을 쥐어 들어 올렸다. 눈과 두 뺨은 눈물로 흠뻑 젖어 있고, 입술과 입가는 침과 제 정액으로 젖어 있었다.

“먹었어요?”

“…하아…… 하으, 아…….”

“더럽게.”

“……흐으….”

“그건 빼줄 수도 없겠네. 아래로 삼킨 건 이제 잘 빼줄 수 있는데.”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헐떡이는 하진을 본 정우가 턱을 쥐고 있던 손을 들어 젖은 하진의 눈가를 문질러 닦아주었다.

“…….”

“…….”

손끝으로 묻는 그 눈물의 느낌은 결코 낯선 것이 아니었다. 전에도 몇 번 느낀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정말 울 줄 몰랐고, 그다음은 울리고 싶어 울렸었다. 그리고 또 그다음은……. 내내 이런 상황이었다. 정우는 손끝에 묻은 하진의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가만히 침침한 조명 속 젖은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런 상황에서조차 예쁜 그 얼굴에 실소조차 터지지 않았다. 정우는 그 얼굴에서 시선을 조금 내리며 젖은 얼굴을 손으로 닦아주었다.

“내가, 하아… 내가 할게…….”

정우는 그대로 손을 거두고 몸을 일으켰다.

“괜찮아지면 와요. 형들한테는 대충 말할 테니까.”

“…응. 고마워.”

고맙다고? 정우의 짜증 섞인 시선이 여전히 제대로 들지 못하는 하진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고맙다고? 어떻게 고맙다는 말을 할 수 있지. 도대체 어떻게? 더 있다가는 머저리 같은 소리 좀 집어치우라고 또 화를 내버릴 것 같아 정우는 그대로 문을 확 열고 나왔다. 다행히 복도는 비어 있었고, 대기실 쪽에서 한 번씩 웃는 소리가 바깥으로 흘러나올 뿐이었다.

“…….”

심호흡한 정우가 대기실로 향했다. 걸음은 앞으로 움직이는데 신경은 자꾸만 뒤에 머물러 곤란했다.

“야, 정우야! 어디 갔다가 오는 거야? 아니, 하진이는 또 어디 갔어? 바통터치를 하나. 하나 오면 하나 없어지고.”

“아, 하진이 형 스태프 한 분이랑 얘기하던데요.”

“그래? 뭐 문제 있나.”

“심각한 건 아닌 것 같았어요.”

“그럼 다행이고. 피자 먹어. 맛있다. 며칠 만에 기름 냄새 맡으니까 눈이 막 돌아. 아, 우리 하진이도 먹여야 되는데. 이거 하진이가 좋아하는 거잖아. 포테이토.”

“…금방 올 거예요. 전 손만 씻고 올게요.”

정우는 문가에서 멤버들에게 웃으며 대기실 앞에 있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차가운 물을 틀어 몇 번이나 손을 씻었다. 씻고 또 씻어내도 손끝에 묻은 하진의 눈물이 아직도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씨발.”

신경질적으로 욕을 내뱉은 정우가 페이퍼타월을 뽑아 손을 닦아냈다. 그리고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다가 몇 장 더 뽑아 들었다.

바닥에 주저앉아 고개도 들지 못하던 그 얼굴이 떠오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엉망으로 젖은 얼굴을 닦으려면 이게 필요할 것 같았다. 그 상태로 대기실에 바로 오지도 못할 거고, 복도로 나오지도 못할 것 같아 자꾸 마음이 쓰였다. 정우는 그렇게 손에 몇 장의 페이퍼타월을 든 채 조용한 복도를 걸었다. 그리고 굳게 닫힌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을 거라 생각한 하진이 없었다. 정우는 물소리가 나는 먼 곳의 화장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손에 쥔 페이퍼타월을 아무렇게나 구겼다. 도대체 이걸 들고 여기 왜 온 건가 싶었다.

하진이 없는 게 어쩌면 다행일지도 몰랐다. 아니, 다행이었다.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그런 짓을 하고 나가 버린 주제에 얼굴을 닦으라고 이걸 뽑아 다시 온 제가 우스워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진의 얼굴을 보고도 터지지 않던 실소가 그제야 흘러나왔다.

***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모두 대기실에 앉아 피자를 먹었다. 하진은 모두가 아는 그 강하진이 되어 내내 웃었고, 또 맛있게 먹으며 멤버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정우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정우는 그런 하진을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한편 대단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아마 제가 하진의 위치였다면, 절대 저를 그렇게 만든 상대 앞에서 웃으며 평소처럼 대하지 못할 것 같기 때문이었다.

메이크업을 지워내고 숙소로 가는 밴 안에서 정우를 뺀 모두가 잠들었다. 내내 창밖만 보고 있던 정우는 차에 타자마자 잠든 하진을 거의 내릴 때가 되어서야 한 번 겨우 바라보았다. 고맙다고 말하던 그 목소리가 귓가에 달라붙어 사라지지를 않았다. 정말 세상 둘도 없는 쓰레기가 된 기분이었다. 아니, 확인받은 것 같았다.

“자자, 다 피곤해서 어째. 들어가서 오늘 편히 푹 자. 내일은 일부러 오후 연습으로 잡았으니까 자고 싶은 만큼 다 푹 자도 돼.”

밴에서 내려 엘리베이터에 타는 순간에도 제대로 눈을 뜨지 못하는 멤버들을 본 지창이 안쓰럽다는 듯 등을 두드려주었다. 정우는 그 벽에 기대어 서서 내내 눈을 비비는 하진을 흘끔 바라보았다. 잔뜩 젖어 있던 그 얼굴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말간 얼굴에 이상한 죄책감이 손끝에서부터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 죄책감은 한동안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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