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안에 있어? 하진아, 아님 정우가 있어?”
매니저 형의 목소리에 하진은 고개를 마구 저었다. 대답을 해야 하는데 입을 막은 손을 뗄 수가 없었다. 여전히 정우의 손가락이 안을 헤집고 있기 때문이었다.
“저 형이랑 안에 있어요.”
그래? 하고 별 의심 없는 목소리가 따라붙었다. 그건 너무나도 당연한 반응이었다. 자신이 케어하는 아이돌 그룹 멤버 둘이 샤워실에서 이런 짓을 하고 있을 거라는 상상은 아마 지창이 아니라 그 누구도 하지 못할 것이었다.
“형이 씻고 싶다고 해서요. 어지러워해서 제가 잡아 주려고 들어왔어요. 금방 나갈게요.”
“그랬어? 방에 없어서 놀랐네. 그래, 그럼. 저녁은?”
“아직 안 먹었어요.”
바깥까지 들려야 하는 정우의 목소리는 조금 커졌지만, 하진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하진은 매니저 형 말에 대답을 하면서도 제 안을 드나드는 정우의 손가락에 어쩔 줄을 몰랐다. 뿌리쳐야 하고, 이래서는 안 되는 걸 아는데 조금 전보다 더 커진 쾌감에 허리는 자꾸 비틀리고, 엉덩이가 뒤로 빠졌다.
“형, 밖에 매니저 형 있는 거 몰라요?”
“흐읏… 제발, 제발 정우야. 잘못했어, 내가, 내가 다 잘못했어…….”
“그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제 불쌍하지도 않아요.”
“으응… 읏, 더는, 더는 못 참겠어… 아, 흐으, 으응!”
하진은 그대로 다시 사정했다. 쾌감으로 통통해진 성기는 또다시 말간 물을 토해낸 다음에야 부피를 줄였다. 정우는 하진의 안에서 손가락을 빼내며 주저앉는 그 날갯죽지를 양손으로 잡았다. 이대로 넘어졌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럼 천천히 씻고 나와요. 방 정리는 내가 해둘 테니까.”
부드럽게 하진을 바닥으로 앉힌 정우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샤워 부스를 나갔다. 하진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 고개도 들지 못하고 숨을 헐떡였다. 벌어진 입술 사이에서 끈적한 침이 흘러 바닥으로 떨어졌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빠르게 뛰고, 아직 몸에 남은 쾌감까지 심장을 짓눌러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하진은 눈물까지 쏟아내며 한참이나 숨을 고르고 또 마음을 안정시켰다.
“…….”
가라앉지 않을 것만 같던 숨도, 몸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던 쾌감도 시간이 지나며 점점 그 흔적을 지워 갔다. 하진은 멍하니 젖은 바닥에 주저앉아 지친 눈만 감았다 뜨기를 반복했다. 욕실 바깥에서 내용을 알 수 없는 정우와 매니저 형의 대화 소리가 한 번씩 들려왔다. 꼭 저와는 동떨어진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인 것만 같아 낯설게 느껴졌다.
“…….”
하진은 그렇게 낯선 기분에 휩싸인 채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버텨냈다. 온도도 모를 물이 쏟아져 나오며 하진의 몸을 덮은 땀과 정우의 흔적을 지워냈다. 좋기만 하던 바디 워시 향도 잘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서서 거품을 내고, 그 거품을 씻어내는 행위만 반복할 뿐이었다.
갈아입을 옷을 가져왔어야 하는데 정우에게 이끌려 그냥 들어온 탓에 곤란하다고 느낀 순간, 하진은 세면대 옆에 놓인 옷들을 바라보았다. 저건 언제 가져다 둔 걸까. 다행이기도 하고, 정우의 흔적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뻐근해지기도 했다. 너무나도 생생한데, 또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기분이었다.
하진이 욕실을 나서자 소파에 앉아 있던 지창이 얼른 일어나 다가왔다. 걱정이 묻은 그 얼굴을 본 하진은 애써 미소를 지었다.
“하진아 괜찮아? 아까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해야지, 이 녀석아. 혼자 그렇게 참고 있어?”
“죄송해요, 형.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갑자기 좀 어지러워서 그랬어요. 저 원래 안 그러는 거 아시잖아요.”
“그래, 안 그러는 녀석이 그러니까 더 놀라지. 이제 정말 괜찮은 거 맞아? 아파 보이는데.”
“쉬었더니 그래도 괜찮아졌어요. 밤에 또 자고 하면… 내일은 멀쩡해질 거예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그럼 다행이고. 저녁 먹고, 푹 자. 내일도 컨디션 별로면 병원 가서 영양제 한 병 맞자.”
“…네.”
“죽 먹을래? 너 속 아픈 거 아니라 죽 안 먹어도 된다고 하는데도, 어디든 아프면 무조건 죽 먹는 거라고 훈이가 하도 난리를 쳐서 일단 죽도 사 왔거든.”
훈이한테 아주 질렸다는 듯 말하는 지창을 보며 하진이 웃었다. 그리고 지창을 따라 식탁으로 가 앉았다.
“죽 조금만 먹을게요. 가볍게 먹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래. 컨디션 안 좋으면 체하기도 쉽지. 아직 뜨거우니까 덜어줄게. 정우야, 너는? 죽 넉넉하게 사 왔는데, 이거 먹을래? 아니면 샐러드 먹을 거야?”
정우의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졌다. 하진은 고개를 돌려 침대 시트와 이불을 안고 나오는 정우를 바라보았다. 저 뭉쳐진 것을 펴보면 제가 쏟아낸 것들이 잔뜩 묻어 있을 것이었다. 입술이 마르고, 괜히 지창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저도 죽 주세요.”
“침대 시트는 왜?”
“아, 형이 땀을 많이 흘렸다고 갈고 싶어 해서요.”
“그래? 그래도 진짜 하진이는 정우밖에 없네. 친동생도 저렇게는 못 할 거야.”
지창의 말에 하진은 소리 없이 작게 웃음 지었다. 지창이 오기 전까지, 아니, 온 뒤에도 정우와 붙어 했던 그 모든 행동들이 머리 안을 뒤흔들었다.
“자, 이거 먹고 따뜻한 차도 한잔 마시고, 푹 쉬어.”
“네. 고맙습니다, 형.”
“난 회사 가서 인규랑 애들 좀 보고 이따 데려올게. 정우랑 있을 수 있지?”
“…그럼요. 저 때문에 괜히 죄송해요. 형 바쁘신데.”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하는 일이 이거고, 당연히 너희 챙겨야지. 그럼 먹고 쉬어.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콜하고.”
“네, 가세요, 형.”
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지창이 나가고 난 뒤에야 하진은 편히 내쉬지 못하던 숨을 쏟아냈다. 도대체 이게 뭔가 싶을 정도로 참담한 마음이었다.
“형은 갔어요?”
“…응.”
“먹어요. 먹어야 내일은 또 괜찮아지지.”
“…아까 왜 그랬어? 매니저 형이 문이라도 열었으면 어쩔 뻔했어?”
원망하는 것 같은 하진의 목소리에 정우가 의자를 빼내어 앉았다. 그리고 하진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들키면 얼마나 엿 같은 상황이 되는지 알려 주고 싶어서요.”
“…….”
“무섭기는 했어요? 의외네. 좋아 죽으려고 하는 것 같던데.”
“…정우야.”
“내 이름 부르지 말아요. 난 이제 형 목소리로 내 이름 들으면, 자위하는 형만 생각나거든. 부르고 싶으면, 섹스할 때나 불러요.”
“…….”
“이제 형 노력 같은 건 필요 없고,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해요. 형은 발정 났으니까 내가 시간 날 때마다 박아주려고 노력은 할게요. 안 해줬다가 또 방송 나가서 질질 흘려대면 큰일이잖아.”
“…차정우. 너 말을 그렇게밖에 못해?”
하진의 가라앉은 목소리에 정우의 입가에 묻은 옅은 웃음이 사라졌다. 아니, 그것은 인내심이기도 하고, 조금 남은 배려이기도 했다.
“강하진.”
“…….”
“잘 들어.”
“…….”
“나를 좋아하든 말든 그딴 건 이제 관심 없어. 그만하려고 해도 안 된다며. 안 되는데 어쩌겠어. 내가 이해해야지.”
“…….”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던 저와 정우의 사이에 무언가 아주 딱딱하고, 불투명한 것이 쌓이기 시작했다. 하진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정우를 바라보았다.
“내가 그래도 형을 너무 많이 좋아해서, 상처 주기 싫어서 지금까지 많이 참고, 누르고, 기회도 줬던 건데… 그랬더니 형 나한테 어떻게 했어요?”
“…….”
“내가 아니라 다른 멤버가 보고 따라 올라갔으면 어떻게 됐을까.”
“…….”
“내 이름 부르면서 자위하는 형 목소리를 들은 거야. 그럼 어떻게 될까요. 처음에는 믿을 수가 없으니까 눈치 보면서 숨기겠지. 사람이니까 어색해질 거야. 그렇게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그 팀이 얼마나 갈 것 같아요? 전에도 이런 거 한 번 물은 적 있는 것 같은데.”
“…….”
“결국 유세주처럼 되고 싶어요?”
“…뭐?”
“그렇게 미친 듯 잘 되던 그룹이 왜 그렇게 갑자기 망했는지 형도 알잖아요.”
얼마 전 혼자 유세주를 떠올리며 두려워했던 적이 있었다. 그 팀이 어떻게 흔들리기 시작했는지, 또 어떻게 무너졌는지 그 처참한 과정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참담한 결과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우에게 듣는 유세주의 이름이 더욱 두려웠다.
“시작이 뭐였을 것 같아요? 술? 사고 친 거? 아니요. 남자요. 유세주 남자 만나다가 들켰잖아요. 오해다, 아니다 계속 해명했는데 그걸 누가 믿어줬어요? 유세주 그 와중에도 남자 만나고 다녔고, 그래서 어떻게 됐는지는 형도 알 거야.”
당연히 알고 있었다. 잘나가던 그룹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팀의 센터였던 유세주가 양성애자라는 말이 퍼진 뒤로 그가 멤버들과 웃으며 서 있기만 해도 그 관계를 의심하며 루머를 퍼뜨렸다. 결국 최고의 아이돌 그룹이었던 유세주의 그룹은 게이 그룹이라는 말을 들으며, 활동을 중단했다.
“난 솔직히 그 선배가 진짜 남자를 좋아했는지 아닌지 몰라요. 관심도 없고. 그런데 소문이라는 게 그래. 아니어도 그렇게 한 번 퍼지면 막을 수가 없어요.”
“…….”
“그런데 형은 나를 좋아한다며. 확실하지도 않은 그 선배도 그렇게 됐는데, 확실한 형은 정말 잘 해낼 마음이 있기는 해요?”
“…….”
“형이 나를 좋아하든 말든 그건 형 마음이고, 그래, 나도 형 좋아하지. 형처럼 착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는데 좋게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럴 수도 있지, 그냥 넘어갈 수도 있어요. 우리가 이 팀에서 만나지 않았으면 그랬을 거예요. 그런데 형.”
“…….”
“우린 팀이에요. 형 하나가 흔들리면, 우리도 다 흔들려요. 형이 노출되면, 형만 망가지는 게 아니라고. 우리 다 휩쓸려 가요. 다시 시작? 말이 쉽지. 문제 생긴 아이돌 그룹 중에 다시 잘 된 그룹 본 적 있어요?”
정우는 말을 쏟아내다가 잠시 눈을 감고 깊은 숨을 내쉬었다. 하진은 겨우 고개를 들어 그런 정우를 바라보았다. 우습게도 반박할 수 있는 말이 하나도 없었다.
“팀 기어이 망치고 싶은 게 아니라면, 내 말 들어요.”
“…….”
“형 나 좋아한다며.”
“…….”
“날 좋아하면, 나를 위한 일을 해요. 내가 원하는 거.”
“…….”
지금까지 정우에게 들었던 그 어떤 말보다도 무거웠다. 강하진이 차정우를 사랑해 버린 그 감정이 이렇게도 위험하고, 이렇게도 팀을 위태롭게 만드는 감정일 줄은 몰랐었다.
떨리고 설레며 간지럽기도 하고, 또 때로는 너무 아파 슬프기도 했던 그 사랑이 제가 속한 그룹에게는 흉기 같은 감정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 사랑에 잠겨 한 번도 제대로 보지 못한 적나라한 현실과 마주해 버린 지금, 하진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정우를 좋아하면, 정우를 위한 일을 하는 게 맞았다. 정우가 원하는 것, 정우가 하라는 것을 해야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건, 사랑이 아니니까. 해본 적은 없어도 그건 알 수 있었다.
“…말해 줘. 뭐든… 할게.”
“형 자리 똑바로 지켜요. 아포제 강하진 역할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흔들리지 말고 해내요. 우린 아무 일도 없는 거예요. 여전히 가장 친한 멤버고, 룸메이트고, 서로 없어서는 안 될 그런 사이인 거야. 남들 눈에는.”
“…….”
“나랑 얼굴이라도 보고 싶으면 팀 흔들릴 짓 하지 말아요. 자 줄게요. 형이 원하면 다 해 준다니까. 그러니까 제발 남들 눈에 이상하게 보일 일 하지 말아요. 나 이 팀 망가지면, 형 다시는 안 봐. 평생 원망할 거고, 형 얼굴 떠올리고 싶지도 않을 거야.”
하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더 무너질 게 있을 리가 없는데 자꾸만 머릿속과 마음 안에서 요란히도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