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하진은 정우의 것을 꽉 조여 문 채로 완전히 납작하게 엎드렸다. 그런 하진의 몸을 따라 제 몸을 내린 정우가 반쯤 빠진 성기를 다시 끝까지 밀어 넣었다.
“아아…….”
이제는 아픔조차 없었다. 하진은 온전히 들어찬 쾌감에 눈을 감고 정우의 존재를 잔뜩 머금었다. 그리고 다시 거칠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정우를 느끼며 치이고 또 치였다.
“흐으, 읏… 하으, 잘못, 잘못했어… 내가… 으응, 아… 잘못했어…….”
이 거친 움직임 하나만으로도 잘못했다는 말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퍽퍽 살이 부딪치는 소리와 한 번씩 목덜미 위로 쏟아지는 덥혀진 숨이 하진의 쾌감을 더욱 부추겼다. 정말 더는 버티지 못할 만큼 힘든데, 또 머리 안을 전부 태워버리듯 맴도는 쾌감은 거부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진은 등 위로 닿아 오는 정우의 체온에 긴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또다시 사정했다. 이제 정우가 내벽을 스치기만 해도 사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우는 한참을 거칠게 파고들다가 성기를 빼내 하진의 매끈한 허리 위로 사정했다. 정액이 등허리를 타고 흘러내려 엉덩이 위까지 엉망으로 만들었다. 땀에 젖은 머리를 아무렇게나 넘긴 정우가 그대로 엎드려 까무룩 잠이 든 하진을 바라보다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티슈를 뽑아 성기를 대충 닦고, 바지를 입었다. 극렬한 쾌감의 맛을 본 뒤라고 하기에는 어쩐지 기분이 더러웠다.
“…씨발, 진짜.”
평소 하지도 않는 욕을 낮게 뱉어낸 정우가 그대로 방을 나서며 불을 껐다. 그리고 순식간에 새까매져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방 안을 돌아보았다. 하진이 어디에 있는지 머리는 알고 있지만, 눈으로는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웠다. 정우는 그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기 전에 얼른 방을 나섰다. 그리고 닫힌 문을 돌아보지 않았다.
동료, 형, 동생, 친구. 다정하고 따뜻한 이름들이 문에 가로막혀 정우를 따라 나오지 못한 채 어그러졌다. 다시는 그 어떤 이름도 가질 수 없을 것처럼, 처참히.
***
묵직한 머리가 가위눌린 것처럼 아파 왔다. 눈을 뜨니 온통 어둠이었다. 이곳이 침대라는 건 알 수 있었지만, 왜 여기 누워 있는지는 빠르게 떠오르지 않았다.
“…….”
잠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눈을 감은 하진은 곧 이곳에서 정우와 또 섹스했던 것을 떠올렸다. 내내 울었고, 빌었고, 쾌감에 발버둥 친 자신이 떠오른 순간, 다시 또 눈을 꽉 감았다. 굳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다른 기억들마저 머리와 마음을 뒤덮으며 마구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난 이제 형 말 안 들어줄 거예요.」
그 말 하나로 모든 게 설명됐다.
「말해도 듣지를 않으니까.」
거칠기만 했던 움직임, 제 얼굴을 보지 않던 눈. 간절히 바랐지만 한 번도 닿지 않던 입술.
「형도 나 속이고 계속 형 마음대로 하니까, 나도 이제 내 마음대로 하려구요.」
차갑고 그 무엇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은 목소리를 떠올리기만 해도 몸에 한기가 퍼져 나갔다. 하진은 몸을 웅크리며 손을 움직였다. 손에 닿는 것은 옷이 아니라 피부였다. 하진은 그제야 제가 옷을 제대로 입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
여기는 숙소였다. 언제 매니저 형과 멤버들이 올지 모른다는 말이었다. 하진은 놀라 몸을 일으켜 세웠다. 너무 갑자기 움직여 그런지 어둠 속 눈앞이 핑 돌았다. 속이 메슥거리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몸을 타고 차가운 기운이 한 줄기 확 돌더니 식은땀이 다시 쏟아졌다. 하진은 버티고 앉아 있는 것도 할 수 없어 그대로 다시 몸을 기울였다. 베개에 머리가 닿는 순간, 심장이 꼭 머릿속으로 옮겨간 것처럼 쿵쿵대기 시작했다.
빨리 씻고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안에 있는 정우의 것도 빼내야 하고, 시트도 갈아야 하는데 도저히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 곤란했다. 하진은 몇 번이나 침대를 짚고 일어나려 노력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쓰러져 버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방문이 열렸다. 어둠만이 내려앉아 있던 방 안으로 거실의 불빛이 흘러 들어왔다. 하진은 웅크리고 있던 몸을 풀며 그쪽을 바라보았다. 그와 거의 동시에 불이 탁 켜졌다.
“매니저 형 30분 뒤에 도착한다고 전화 왔어요.”
“…….”
“형 어떤지 물어서 힘들어하다가 자고 있다고 했어요.”
“…….”
정우의 눈이 불빛 아래 그대로 노출된 하진의 몸에 닿았다. 살짝 걷어진 티셔츠 아래로 보이는 허리 위에는 제 정액이 그대로 묻은 채 말라 있었고, 속옷과 바지 역시 제가 던진 그 자리에 그대로 떨어져 있었다.
“오자마자 방에 들어올 텐데 그대로 있어도 괜찮겠어요?”
고개를 저은 하진이 다시 겨우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저 머리를 들어 앉았을 뿐인데 또다시 어지럼증이 밀려들었다.
“누가 봐도 섹스하고 쓰러져 잔 사람처럼 보여요, 지금.”
“…씻어야지. 씻을 거야. 걱정 마. 형 오기 전에 다 할게.”
평소라면 30분이라는 시간이 충분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하진은 서두르지 않으면 정말 이 꼴을 매니저 형에게 들킬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에 무리해서 몸을 일으켰다. 바닥에 닿는 두 발이 꼭 제 몸의 일부가 아닌 것처럼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하진은 겨우 몸을 세운 채 힘없는 걸음을 옮겼다. 다리 사이로 몸 안에 있던 것이 흘러내리는 느낌이 났다.
“벌써 5분 지났어요. 길 안 막히면 더 빨리 올지도 모르고. 알잖아요. 지창이 형 항상 넉넉잡아 시간 말하는 거. 5분이면 될 일도 15분은 걸릴 거라 그러고. 거의 다 왔을지도 모르겠네.”
“…….”
정우의 말이 맞았다. 지창이 30분 뒤에 도착한다고 말했으면 20분, 아니 10분 뒤에 도착을 할 가능성도 있었다. 마음은 급한데 몸도 정신도 따라주지 않아 미칠 것만 같았다. 하진은 문에 기대어 선 정우를 바라보았다.
“…나 좀 도와주면 안 될까?”
“뭘 도와주는데요.”
“씻는 건 내가 할게. 시트만 좀… 세탁기 돌려 줄래? 부탁할게.”
“그거야 금방 하는 거고, 빨리 씻을 수 있겠어요?”
“…해 볼게. 정리만 빨리하면… 금방 할 수 있을 거야.”
“정리?”
“…그게…… 안에 있는 걸… 빼야 해서.”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를 들은 정우가 아, 소리를 내며 하진의 셔츠가 가린 다리 사이 쪽을 한 번 무표정하게 바라보았다. 저야 금방 씻어내면 됐지만, 하진은 아닐 것이었다.
다시 한번 시간을 확인한 정우가 그대로 하진의 팔을 잡아 욕실로 향했다. 그리고 샤워 부스 안으로 하진을 밀어 넣었다. 하진은 그런 정우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나가야 옷을 벗고 어떻게 씻을 시도를 할 텐데 왜 안 나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해 줄게요.”
“…응? 뭘?”
소매를 걷어 올리는 정우를 본 하진이 눈을 크게 떴다. 정우는 그대로 샤워 부스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놀란 하진이 어지러운 것도 잊은 채 고개를 저었다.
“내가, 내가 할게.”
“형 곧 오는데 언제 해요. 제대로 서지도 못하면서.”
“아니야, 그래도 정우야… 싫어…….”
“다음부터는 밖에다 해야겠어요. 콘돔을 사든지.”
다시 말리기도 전에 정우의 손가락이 아래에 닿았다. 그리고 뭐라 더 말리기도 전에 안으로 파고들었다. 정우의 성기가 가득 내내 차 있던 곳으로 다시 손가락이 들어가자 하진의 허리가 확 펴졌다.
“…흐읏…….”
정우의 손가락 두 개가 안으로 들어가 내벽을 긁어내듯 움직였다. 하진은 절대 소리 내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버티고 또 버텼다. 하지만 정우의 손가락이 움직이는 느낌에 몸이 자꾸만 뜨거워졌다. 깊게 들어와 안에 든 것을 몰아내듯 확 빼내며 내벽을 문지를 때마다 불필요한 감각들이 달라붙었다.
“상황이고 뭐고 형은 넣어 주기만 하면 다 좋은가 봐요.”
“…아니, 읏… 그런 거 아니야…….”
“아닌데 목소리가 왜 그래.”
“…….”
“형은 흥분하면 그런 목소리가 나오는구나.”
몸이 점점 달아올랐다. 짧은 손톱이 내벽을 느릿하게 긁어내리고, 완전히 빠졌다가 단숨에 다시 파고들 때마다 미칠 것 같았다. 정우의 말처럼 이런 상황에서도 쾌감에 헐떡이는 제가 한심하고, 혐오스러웠다.
“다 된 것 같은데.”
정우는 제 손을 적실 만큼 많이 나온 정액을 바라보며 인상을 썼다. 그리고 얼른 샤워기를 빼내 물을 틀었다. 손에 묻은 정액이 전부 씻겨 나가고, 바닥에 떨어진 것도 전부 수챗구멍으로 빨려 들어간 뒤에야 묘한 불쾌감이 가셨다.
“씻겨도 줄까요?”
“아니, 아니야. 내가 할 수 있어…….”
하진은 어떻게든 달아올라 버린 숨을 누르려 애썼다. 목소리가 흥분한 것 같다던 정우의 말에 이상하지 않은 목소리를 내려고도 노력했다. 솔직히 하진은 지금 제가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래요, 그럼.”
하진의 허리에 닿아 있던 정우의 손이 떨어졌다. 살짝 문질리며 떨어지는 순간 하진의 몸이 움찔거렸다. 정우는 제 손이 닿아 있지 않아도 계속 움찔대는 하진의 허리를 내려 보았다.
“…저기…… 정우야.”
당연히 저를 두고 나갈 줄 알았는데 그 자리에 그냥 서 있는 정우의 느낌에 하진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마주치는 시선에 나가 달라는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자꾸 찔려 주저앉고, 작아졌다. 앞으로 그 어떤 말도 정우에게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진짜 흥분했어요? 안에 든 내 정액 빼주는데 그걸로 흥분한 거야?”
“…아니야, 그런…… 하읏!”
그대로 정우의 손가락이 다시 하진의 구멍 안으로 파고들었다. 정우는 그대로 안으로 밀어 넣은 두 손가락을 확확 올려 내벽을 문지르고, 깊은 곳을 찌르기 시작했다. 하진의 몸이 무너지듯 앞으로 기울어졌다. 겨우 벽을 잡고 선 채 확 몸을 타고 오르는 쾌감에 마구 고개를 저었다.
“아, 읏! 응, 으응, 아, 아!”
푹푹 안을 찌를 때마다 신음이 짧게 튀었다. 정우가 샤워기를 틀었을 때 물이 튀어 젖은 셔츠가 피부에 달라붙는 느낌조차 그 쾌감을 극대화시켰다. 하진은 군데군데 젖어 살짝 몸에 달라붙은 티셔츠 위로 닿아 오는 정우의 손길에 크게 숨을 쏟아냈다. 유두와 깊은 곳을 동시에 자극당해 미칠 것 같았다.
“하으, 응, 흣, 흐으… 정우야, 제발… 아! 으응!”
사정감이 밀려들었다. 하진은 샤워 부스 안으로 울리는 제 헐떡임에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소리를 내고 싶지 않아 입술을 미친 듯 깨물어도 결국 정우의 손길에 무너지고 또 무너졌다.
그때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먼저 들은 하진이 놀라 숨을 멈추었다. 정우는 바깥에서 들리는 지창의 목소리에 작게 곤란한 숨을 내뱉었다.
“빠, 빨리 빼…….”
하진은 정우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정우는 그런 하진의 목소리를 들으며 다시 손가락을 깊게 콱 쑤셔 넣었다.
“흐윽……!”
울음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길게 흘렀다. 하진은 벽을 짚고 있던 손을 떼어 제 입을 틀어막았다. 멀어졌던 지창의 발소리가 다시 가까워진 그때, 문 바로 바깥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