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제-43화 (43/122)

#43

“하진아. 강하진!”

“네?”

강하진이라는 이름이 조금 크게 울린 뒤에야 하진은 고개를 들었다. 창백한 얼굴 위로 미팅 룸의 할로겐 조명 빛이 쏟아졌다.

“하진이 너 얼굴이 왜 그래. 어디 아파?”

“그러게요. 하진 씨, 몸 안 좋아요? 식은땀 좀 봐.”

여기저기에서 이름이 불리고 목소리가 쏟아지는 것에 하진은 고개를 푹 숙였다. 무서웠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 알려질 것 같아서, 제가 그 정도로 어마어마한 짓을 한 것 같아서 무서워 견딜 수가 없었다.

“안 되겠다. 숙소 가서 좀 쉬어야겠다. 무리해서 그런가 봐. 죄송합니다. 나중에 다시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저야 괜찮아요. 오늘 정식 미팅도 아니고, 제가 부탁드려서 잠깐 시간 내주신 건데요, 뭐. 얼른 가보세요.”

“네, 그럼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지창은 얼른 하진에게 다가와 팔을 잡아 일으켰다. 하진은 지금 이 상황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받아들이지 못했다.

「도대체 어디서 흥분한 거지.」

인간도 아니라는 듯 저를 바라보던 정우의 가라앉은 시선.

「왜요. 또 흥분했어?」

경멸이 묻은 목소리. 머릿속을 넘실대다가 이내 확 모든 것을 덮어버린 정우의 목소리에 또다시 힘이 쭉 빠졌다.

“얘 언제부터 이랬어? 아침에 괜찮았잖아. 정우야, 하진이 좀. 차 빨리 대라고 해야겠다.”

그대로 정우가 위태로이 기울어지는 하진을 품에 안았다. 하진은 두 눈을 감은 채 숨을 헐떡였다.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어 답답했다. 아주 먼 곳에서 매니저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가 사라졌다.

“그러게 왜.”

그리고 아주 가까운 곳에서 정우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이 또한 착각일까.

“감당도 못 할 짓을 해.”

아니, 착각이 아니었다. 하진은 귓가로 파고드는 아주 작지만 분명한 목소리에 몸을 떼어내려 애썼다. 하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저를 잡으면서 확 찍어 누르는 그 힘에 도저히 몸을 뗄 수가 없었다.

“훈이가 지금 바로 뒷문에 차 댄다니까 내려가자! 다 내려올 건 없고, 보자. 누가 하진이 좀 봐줄래. 내가 오후에 너희 섭외 미팅이 두 건이나 더 있어서.”

“제가 형이랑 있을게요.”

“어, 그래. 그럼 정우만 같이 가고, 너희는 걱정 말고 연습해. 오늘 뭐 할 거 많잖아.”

지창은 리얼리티 작가에게 다시 한번 묵례를 한 뒤에 정우와 함께 미팅 룸을 나섰다. 그리고 서둘러 아래로 내려갔다.

“잠깐만. 차 바로 앞까지 오면 타자. 팬들 눈에 보여 좋을 거 없어. 말 잘못 퍼지면 골치 아파져.”

뒷문으로 가 차가 오는 것을 본 지창이 먼저 나가 밴 문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정우가 나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 주었다. 정우는 단단히 부축하고 나온 하진을 밴에 먼저 잘 태워 주었다.

“자, 얼른 타.”

그런 하진의 옆에 오른 정우는 그대로 축 늘어진 하진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정신을 못 차릴 만큼, 맥이 풀릴 만큼 충격이었던 걸까. 안 그래도 하얀 얼굴이 더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정우야. 하진이가 뭐 스트레스 심하게 받는 일 있었어?”

조수석에 탄 채로 몸을 돌려 묻는 지창을 본 정우가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형이 말한 건 없는데, 앨범 때문에 스트레스 받은 거 아닐까요. 밤에도 노래 듣고, 분석하고 하느라 잠도 잘 못 잤거든요.”

“그랬어? 아니, 이런 경우가 종종 있어. 너무 스트레스 받으면 이렇게 확 갑자기 맥이 풀려서 애들이 쓰러지더라고. 일단 가서 물수건으로 땀이랑 좀 닦아주고, 물 좀 먹이고. 옆에 좀 있어주라. 미팅 취소하기가 어려운 거라.”

“네. 걱정 마세요.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드릴게요.”

“그래. 내가 정우 너는 믿지. 아, 걱정이네. 제일 씩씩하던 녀석이 저러니까.”

정우는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의자에 아무렇게나 기대어 눈도 뜨지 못하는 하진을 바라보았다. 단 한 번도 시선을 떼지 않았다. 저렇게 무너진 걸 보니 안쓰럽다가도 저렇게 버티지도 못할 거면서 일을 여기까지 끌고 온 하진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자, 같이 올라가자. 훈아, 차 돌려서 1층 가 있어. 나 1층으로 나갈 테니까. 뮤직티비 본사로 갈 거야.”

숙소 지하 주차장에서 먼저 내린 지창이 하진을 조심스럽게 잡아 차에서 내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정우와 단단히 붙든 채 숙소로 올랐다.

방으로 들어가 하진을 침대에 눕힌 뒤에도 지창은 정우에게 몇 번이나 하진을 부탁하고 또 부탁했다. 정우는 그런 지창을 안심시키며 배웅했다. 문이 닫힌 그 순간까지 걱정 가득한 매니저의 얼굴을 보니 어쩐지 마음이 좋지 않았다. 지창의 걱정에 저도 한몫을 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정우는 작게 숨을 뱉은 뒤 다시 방으로 들어가 제 침대에 걸터앉았다.

“아파요?”

그리 고르지 못한 하진의 숨소리가 울렸다. 정우는 그 마른 몸을 바라보다가 몸을 일으켜 방을 나섰다. 그리고 욕실로 들어가 지창이 말한 것처럼 물수건을 만들었다. 새 수건을 하나 꺼내 차가운 물에 적신 뒤 꽉 비틀어 짜는 정우의 손등에 힘줄이 도드라졌다.

“형.”

하진을 부르며 방으로 들어간 정우가 불을 켰다. 블라인드가 쳐져 있어 어두운 방 안으로 빛이 확 퍼진 순간 정우는 미간을 살짝 구겼다. 그리고 하진의 침대에 걸터앉아 땀으로 젖은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자위하다 들킨 게 그렇게 충격이었어요?”

차가운 수건이 하진의 목덜미에 닿았다. 차가움에 놀란 건지 하진이 숨을 무너질 것처럼 와르르 쏟아내며 어깨를 움츠렸다. 정우는 그런 하진을 보며 천천히 수건을 옆으로 움직였다.

“하아…….”

감긴 얇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그 끝에 매달린 기다란 속눈썹도 어쩔 줄을 모르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정우는 땀으로 젖은 하진의 앞머리를 살짝 만져주었다. 그리고 촉촉해진 뺨도 손끝으로 느릿하게 쓸어내렸다.

“아파도 흥분은 하나 봐요.”

정우는 그대로 수건을 내려 하진의 티셔츠 아래로 집어넣었다. 차가운 수건이 열이 오른 피부, 그것도 배 위로 닿는 순간 하진이 놀라 몸을 떨며 눈을 떴다. 그리고 무심한 시선으로 저를 바라보는 정우를 바라보았다.

“눈 떴네.”

가까이 앉아 있는 정우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하진이 확 몸을 일으켰다. 너무 빨리 몸을 일으켜 머리 안이 마구 흔들렸다. 하진은 얼른 제 옷 속으로 들어간 정우의 손을 빼냈다.

“매니저 형이 닦아주래요.”

“…괜찮아.”

“형은 뭐 매번 괜찮고, 미안하고 그래요?”

“…….”

“다시 물을게요. 자위하다가 나한테 들킨 게 그렇게 아플 만큼 충격이었어요?”

정우의 입에서 나온 자위라는 말에 하진은 고개를 푹 숙였다. 수치심에 눈동자가 확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자업자득이라지만 정우에게 직접 그 말을 들으니 정말 이대로 이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형은 꼭 저지르고 후회하더라. 하긴 형이 뭐든 도전하는 걸 좋아하고, 안 될 것 같아도 일단 해보고 그런 성격이기는 하지. 나도 형 그런 성격이 좋았어요. 다들 안 될 거라고 하는데 될지도 모르잖아? 하면서 열심히 하는 형이.”

“…….”

“그런데 그게 내 일이 되니까 생각이 좀 달라지네.”

“…….”

“진짜 답이 없다. 알아서 잘 한다고 빌어서 한 번 더 봐줬더니 또 이래. 그 말 한지 얼마나 됐다고.”

어이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화가 난 것 같기도 한 목소리였다. 하진은 벽 쪽으로 몸을 웅크린 채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내가 손만 대도 그렇게 못 참겠어요?”

“…….”

“그럼 그냥 해달라고 하라니까요.”

젖은 수건을 아무렇게나 바닥으로 던진 정우가 손을 뻗어 벽에 기댄 하진을 확 잡아당겼다.

“정우야…….”

“해줄게요. 주기적으로 해줘야 또 한동안 잠잠할 것 같으니까.”

“아니야, 안 그래도 돼. 그게 아니라…….”

“아예 날짜를 정할까요? 이 주에 한 번? 아, 너무 텀이 긴가. 일주일? 사흘? 형이 정해요.”

정우가 그대로 하진의 어깨를 눌러 뒤로 눕혔다. 하진은 뒷머리가 침대에 닿는 순간 너무 놀라 고개를 저었지만, 정우는 그런 하진의 말을 들어주지 않은 채, 그대로 몸 위로 올랐다.

“어차피 한 번 한 거 두 번, 세 번 못할 것도 없지.”

“…그러지 마…….”

“왜요. 내 이름 부르면서 했잖아요. 그래서 내가 직접 해준다는데 왜 하지 말라 그러지. 이해가 안 되는데.”

얼굴 위로 드리워진 정우의 그림자가 유독 짙었다. 하진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부드러운 색의 머리칼이 시트 위로 흐트러졌다. 정우가 무심한 시선으로 흐트러지는 하진의 머리칼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정우야.”

“자꾸 이름 부르지 말아요. 형이 내 이름 부르면서 하던 거 생각나서 나도 꼴리잖아.”

더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는 듯 정우가 하진의 티셔츠 아래로 손을 집어넣었다. 불쑥 들어온 손이 피부에 닿는 느낌에 하진은 입술을 깨물었다. 요령이 없는 손이 다정하지 않게 움직이는데도 몸이 움찔대기 시작했다. 하진은 이런 상황에서도 흥분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시트를 꽉 쥐며 정우의 손길을 외면하려 애썼다. 하지만 애초에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혼자 무슨 생각 하면서 했어요?”

“흣…! 제발, 그만…… 하읏!”

그만하라고 말을 맺기도 전에 정우의 짧은 손톱이 하진의 유두 위를 긁어내렸다. 반쯤 솟았던 유두가 완전히 솟으며 하진의 허리가 비틀렸다. 정우는 손끝에 걸리기 시작한 유두를 짓눌렀다. 그 순간 하진의 숨이 탁 터져 나왔다.

“전에도 여기 만져 주니까 좋아했지, 참.”

“하으… 으응, 읏…….”

“빨아 주니까 더 좋아했던 것 같은데.”

그대로 하진의 티셔츠를 위로 확 들어 올린 정우가 가슴 위로 얼굴을 묻었다. 뜨거운 입속으로 유두가 빨려 들어갔다. 축축하고 말캉한 것이 유두 위를 짓뭉개고 돌려 문지르는 것에 하진은 고개를 마구 저었다.

안 되는데, 정말 안 되는데 도저히 이 쾌감을 뿌리칠 자신이 없었다. 하진은 고요한 방 안에 울리는 쪽쪽 빠는 소리에 몸을 마구 비틀었다. 그 소리 하나만으로도 아랫배가 확 당기고, 다리 사이가 간지러웠다.

“흐으, 으응!”

한참이나 하진의 유두를 빨던 정우가 혀끝으로 잔뜩 흥분해 솟은 주변을 느릿하게 문질렀다. 정우의 어깨를 밀어내기 위해 닿았던 손은 어느새 정우의 어깨를 꽉 붙잡고 있었다. 밀어낼 힘도, 의지도 없었다. 처음부터 정우의 손길을 뿌리칠 강한 마음을 가진 적이 없는 것 같았다. 하진은 폐허가 된 저의 밑바닥으로 밀려드는 쾌감을 향해 입을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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