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연습과 시간은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는 트레이너의 말처럼 결코 완성되지 않을 것 같던 안무도 몸에 제법 익숙해졌다. 늘 꼬이던 동선도 더 이상 꼬이지 않게 되었고, 같은 곳에서 실수를 하던 해성도 더 이상 실수하지 않게 되었다.
“좋아! 잘했어! 실수 한 번도 안 보였어. 잘했어, 대단해.”
2주 동안 틈만 나면 스텝 밟는 것을 연습하고, 촬영을 해가며 노력한 보람이 있었다. 트레이너가 계속 극찬을 해주는 것에 기분이 좋아진 멤버들이 그제야 심각한 표정을 풀고 웃었다. 하진은 웃으며 다가오는 멤버들과 돌아가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마지막으로 정우와 양손을 짝 소리가 나게 마주하고 떼려는 순간, 정우의 손가락이 구부러지며 하진의 손가락 사이로 맞물렸다.
“…….”
하진의 손가락보다 조금 더 마디가 굵고 긴 손가락이 그대로 꽉 맞물렸다가 빠져나갔다. 하진은 손가락 사이를 스치며 빠져나가는 정우의 느낌에 빈 두 손을 붙잡았다. 별것도 아닌데 괜히 귓가가 화끈거렸다.
“아, 대박이다. 이게 되긴 되네?”
“카타르시스 대박. 소름 끼쳤어, 진짜.”
서로의 팔을 막 문지르며 좋아하는 해성과 영우를 보며 다가온 트레이너가 하진에게 기다란 천으로 묶은 것 같은 안대를 건네주었다.
“자, 이제 안무 숙지는 완벽하게 된 것 같으니까 디테일 살려볼게. 잘 알겠지만, 아무리 잘 춰도 디테일을 못 살리면 심심해 보이고, 잘 못 해도 디테일을 잘 살리면 훨씬 무대가 풍부해 보여. 가사, 춤 스토리 잘 생각하면서 해보자. 하진이 그거 쓰고, 도입 시작해볼게.”
하진은 트레이너가 내민 안대를 썼다. 까만 천 안에 부드럽게 늘어나는 밴드가 들어 있어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았다. 그리고 선명하지는 않지만, 위험하지 않을 만큼은 앞이 어느 정도 보였다. 눈을 가려 전혀 안 보이는 줄 알고 앞으로 다가온 해성이 메롱 혀를 내미는 것도 다 보일 정도였다.
“형, 다 보이거든요.”
“헐! 그래? 안 보일 거 같이 생겼는데.”
신기한 눈으로 해성이 이리저리 안대를 살피는 동안 트레이너는 정우를 하진의 뒤에 세웠다. 하진은 제 등 뒤에 선 정우의 온기가 느껴지는 것에 입술을 꾹 다물었다.
“도입 안무 들어갈 때, 하진이가 의자에 앉았다가 서서 이제 내 눈을 가린 밤, 거기까지 하면 정우가 뒤에서 이 끈 풀고, 주머니에 넣으면 돼. 그리고 내 눈을 가린 너, 부분에서 정우가 오른손을 앞으로 해서, 이렇게.”
트레이너가 정우의 오른손을 잡아 앞으로 가져왔다. 하진은 제 눈 위를 덮으며 닿아 오는 손에 숨을 흐읍 들이마셨다. 예고도 없이 닿아 마구 뛰는 마음을 어떻게 누를 수도 없었다.
“하진이 눈 위를 덮어주는 거야. 그리고 하진이가 정우 손을 잡고, 눈앞에서 치우면서 동선 바꾸면 돼. 자, 하진아. 정우 손 잡아서 옆으로 확 치워 봐.”
“…네.”
하진은 제 눈 위를 덮은 정우의 손을 잡아 떼어냈다. 그 모습을 본 트레이너가 뭔가 부족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지금은 눈 가리고 있는 게 좋아서 그냥 있고 싶은데, 내가 떼어내라니까 어쩔 수 없이 떼어내는 것 같아 보여. 조금 더 매몰차게. 더 이상 네가 만든 어둠 속에 갇혀 있지 않을 거야! 하는 것처럼. 자, 정우 다시 가리고.”
정우의 손이 다시 하진의 눈 위를 폭 감싸듯 덮어 왔다. 옆에서 그 연습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하던 해성이 웃으며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정우 손이 큰 거야, 하진이 얼굴이 작은 거야? 눈만 가렸는데 얼굴이 거의 다 가려졌어.”
안대로 눈을 가렸을 때에는 희미하게나마 바깥을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전혀 볼 수가 없었다. 가사처럼 정말 정우의 손이 만든 어둠 속에 갇혀버린 것 같았다. 그리고 트레이너가 말했던 것처럼 이 손을 떼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다. 그런 저의 마음을 들킨 것만 같아 긴장감에 심장이 확 조여들었다.
“자, 다시 한번 가자. 내 눈을 가린 너!”
하진은 정우의 손을 잡아 조금 매몰차다 싶을 정도로 확 밀어냈다. 안무의 일부분일 뿐이고, 이런 것으로 기분이 상할 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괜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좋아! 그렇게만 하면 돼. 자, 몇 번 더 맞춰 봐. 그리고 해성이랑 영우. 둘이 랩 번갈아 가면서 할 때, 그때 디테일이 진짜 중요해. 랩 부분이 곡을 고조시키고 살리기도 하지만, 또 아, 갑자기 왜 랩이 튀어나와 할 수도 있거든. 잘 알 거야. 그 부분에서 둘이 제스처를 잘 정해서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자, 인규 가운데 서고.”
트레이너가 랩 쪽을 설명하기 시작하는 것을 본 하진이 숨을 가다듬었다. 정우는 그런 하진을 보며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눈 위를 덮었다.
“이렇게 가리면 아무것도 안 보이죠.”
“…응. 하나도 안 보여. 캄캄해.”
저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는데, 정우는 그런 저를 다 보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괜히 마음이 이상했다. 하진은 겨우 웃으며 정우의 손을 잡아 옆으로 확 밀어냈다. 갑자기 떨어져 나가며 들어온 빛에 잠시 눈앞이 흐릿해졌다.
“이 정도로 하면 될까?”
“조금 더 세게요. 더 확 해도 되는데.”
“무대에서는 그렇게 할게.”
“지금은 못 하겠어요?”
이렇게 한 번씩 대놓고 노골적인 질문과 마주할 때가 있었다. 하진은 대답 대신 장난스럽게 웃으며 정우의 손을 잡아 올렸다.
“할 수 있거든. 다시 해 봐.”
하진의 눈 위로 다시 정우의 손이 닿았다. 꼭 다시는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 깊게 달라붙는 느낌에 하진은 잠시 몸을 휘청거렸다.
“조심해요. 넘어져. 잡아줄게요.”
팔 하나가 그대로 허리를 끌어안는 느낌이 났다. 하진은 괜찮다고 말하며 허리에 둘러진 정우의 팔을 잡았지만, 정우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두 눈이 가려져 앞이 전혀 보이지 않은 상태로 정우와 닿아있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밀착된 몸의 온기와 뒤에서 허리를 끌어안은 팔의 힘, 그리고 시야를 뒤덮은 손까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자꾸 숨이 가빠지고, 몸이 뜨거워졌다.
“뿌리쳐야지.”
“정우야, 잠깐… 잠깐만 나, 나 좀 놔주면…….”
“할 수 있다고 했잖아요.”
뿌리칠 수가 없었다. 숨기고 있던 것들이 전부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오는 것만 같았다.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과 동시에 정우와 더 붙어 있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 흘러내려 몸을 적셨다. 정우의 손에 갇혀 꼼짝도 할 수 없는 이 상황에 흥분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진은 허리를 더 꽉 조이는 정우의 팔에 입술을 꾹 깨물며 하얗게 질린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지금 머금을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하여 제 눈을 가린 정우의 손을 떼어냈다. 그 순간 허리에 감겨 있던 팔도 스르륵 풀어졌다.
“아…….”
너무 오래 어둠 속에 있어 그런 건지 순간 머리 안이 핑 돌았다. 똑바로 서지 못하고 휘청거리는 하진을 단단히 잡아 부축한 정우가 그 얼굴을 마주했다.
“괜찮아요, 형?”
“…어, 어, 괜찮아. 눈을 너무 오래 가려서 그런가 봐.”
“장난이 너무 심했어요. 미안해요.”
“아니야, 아니야! 왜 사과를 해. 연습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아, 나 화장실 좀 갔다 올게.”
사과하는 정우와 더 마주하고 있을 자신이 없었다. 하진은 두 손을 휘휘 저으며 괜찮다고 몇 번이나 더 말한 뒤에야 연습실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그리고 복도 끝까지 달려가 비상구 문을 열었다.
“…….”
연습실이 있는 이 층에도 당연히 화장실이 크게 있지만, 그곳에 갈 수가 없었다. 언제 누가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하진은 힘든 줄도 모르고 서둘러 두 층을 올랐다. 그리고 비상구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원래 사무실이 있던 층이지만, 연습실과 사무실을 완전히 분리하기 위해 지난달 완전히 반대 구역으로 전부 옮겨 지금은 비어 있었다. 하진은 조용한 주변을 살피다가 화장실로 들어갔다. 4월부터 연습실로 바꾸는 공사를 한다고 했으니 아마 누구도 이 층에는 오지 않을 것이었다.
하진은 텅 비어 있는 칸들을 보다가 아무 곳에나 들어가 문을 잠갔다. 완전히 고립되듯 갇힌 뒤에야 숨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진짜 왜 이래.”
자책하는 말이 저절로 흘렀다. 그것은 흐느낌 같기도 하고, 한탄 같기도 했다. 하진은 벽에 기댄 채 발기해 버린 성기의 느낌에 눈을 깊게 감았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지내려고 노력했는데, 정우의 조금 짙은 손길 한 번에 이렇게 되어 버렸다.
하진은 눈을 감은 채 몇 번이나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을 반복했다. 제발 이대로 가라앉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며칠이라도 잘 참아온 날들을 헛수고로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뿌리쳐야지.」
눈을 감은 하진의 귓가로 정우의 목소리가 다시 닿아 왔다. 아니, 닿아 오는 것 같았다. 한 팔로 제 허리를 꽉 끌어안은 채, 다른 한 손으로는 시야를 차단한 정우의 체온이 닿아오는 것만 같았다.
“하아…….”
결국 트레이닝팬츠가 조금 내려갔다. 바지 안으로 손을 넣어 만지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러다가 속옷과 바지에 묻기라도 한다면 수습하기 더 어려워질 것이었다. 갈아입을 옷이 연습실 락커에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가지러 가는 것도 힘들고, 또 왜 갈아입는지 물어올 멤버들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하진은 휴지를 충분히 당겨 뜯었다. 그리고 속옷까지 조금 내린 뒤 반쯤 발기한 성기를 휴지로 감싸 쥐었다.
“흣…….”
참으려고 해도 짓눌린 입술 사이로 물기 젖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누가 들어올 가능성이 낮은 곳이지만, 그래도 이런 소리는 내고 싶지 않았다. 하진은 자꾸만 흘러나오는 신음에 티셔츠를 올려 입에 물었다. 그리고 빨리 끝내기 위해 성기를 쥔 손을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움직임이 빨라질수록 하진의 흐릿한 근육이 잡힌 납작한 배가 아래로 당겨졌다. 꼭 정우가 뒤에 서서 만져주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한 팔로 단단히 끌어안고, 자주 그러는 것처럼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성기를 만져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눈 위를 덮어오던 뜨거운 손. 밀착하던 몸. 정우의 팔과 손에 갇혀 꼼짝달싹도 할 수 없던 그 단단한 순간.
“흐으…….”
하진은 고개를 저었다. 입에 문 티셔츠 끝자락이 조금씩 젖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