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다시 눈을 감았다가 떴을 때, 몸이 다시 돌려졌다. 하진은 눈을 뜬 채 제 몸 위로 올라오는 정우를 바라보았다. 키스하고 싶었다. 정우가 그냥 가만히 안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를 쓸어주고, 얼굴을 만져주고, 아무 말도 안 해도 좋으니 그냥 그렇게 가득 닿고 싶었다.
하지만 정우는 그 어떤 것도 해주지 않았다. 다시 하진의 다리를 벌렸고, 조금 전까지 들어가 있던 안으로 다시 파고들었다. 하진은 안에서 다시 크기를 키우며 단단해지는 성기의 느낌에 눈을 감았다. 정우의 얼굴이 내려와 하진의 솟은 유두를 혀끝으로 핥고, 머금었다. 그리고 손을 내려 반쯤 열기를 머금은 하진의 성기를 쥐고 만져주었다.
이제 무리였다. 무리인 것 같았다. 더 사정했다가는 정말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하진은 안 된다고 고개를 저었지만, 정우는 집요하게 하진의 성기를 만져주었다. 그리고 조금 전보다 더 빠르고 세게 안을 찌르며 자극했다.
“흐읏…! 아, 아! 아! 읏, 응!”
점점 느끼는 시간이 빨라졌다. 하진은 이제 정우의 숨결만 닿아도 쾌감이 느껴져 몸을 떨었다. 정액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할 정도의 말간 액이 또다시 터져 나왔다. 힘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하진의 몸이 정우의 거친 움직임에 치이고 또 치이며 마구 흔들렸다.
정우의 성기는 여전히 느낄 수밖에 없는 곳을 자극했다. 전립선 위를 짓뭉개고, 누른 채 놓아주지 않을 때마다 눈물이 줄줄 흘렀다. 하진은 힘이 하나도 없는 손을 겨우 들어 정우의 팔을 더듬었다. 또다시 멀어졌던 빗소리가 몸 위에 바로 떨어지는 것처럼 세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천둥이 모든 소리를 집어삼키는 그 순간, 정우는 하진의 몸 안에서 성기를 빼내며 사정했다. 그리고 그대로 추욱 늘어져 기절하듯 잠이 든 하진을 바라보았다.
“…….”
낮인지 밤인지 전혀 구분이 가지 않는 정체된 시간이 비로소 흐르기 시작했다. 정우는 땀과 정액, 그리고 눈물로 엉망이 된 채 잠이 든 하진을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티슈를 몇 장 뽑아 배와 허벅지 안쪽에 잔뜩 묻은 제 정액을 닦아주었다. 몸에 손을 댈 때마다 하진이 움찔거리는 게 느껴졌다. 정우는 그대로 젖은 티슈를 든 채 이불을 올려 하진의 몸을 덮어주었다.
“…….”
바지를 대충 올려 입고, 아까 제가 입으려다가 던졌던 티셔츠를 들고 방을 나온 정우는 젖은 티슈를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렸다. 그리고 차가운 물을 세게 틀어 손을 씻고, 얼굴에도 몇 번이나 끼얹었다.
턱 끝에 맺힌 차가운 물방울을 아무렇게나 손등으로 문질러 털고 수건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얇은 티셔츠를 입으며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거실과는 다르게 열기가 훅 끼쳤다. 정우는 그렇게 죽은 듯 잠이 든 하진을 보다가 제 침대에 벽을 보고 누웠다. 억지로라도 자고 싶은데 쉽게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
남자라는 말보다 강하진이라는 이름이 먼저 보이는 섹스였다. 그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며 불쾌감이 아니라 거센 쾌감에 파묻혔던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너뜨리려고 한 말에 마음이 더해졌을 줄은 몰랐다. 원하면 자주기는 하겠다고, 가장 가깝고 믿던 사이에서 섹스하게 되는 사이가 되는 게 얼마나 이상하고, 말도 안 되는 일인지 느껴보라고 한 그 말을 희망으로 받아들인 것 같아 곤란했다. 하진의 순진함, 그리고 쾌감을 향한 저의 충동까지 더해지며 모든 게 흐트러졌다. 정우는 자괴감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너무나도 쉽게 휩쓸렸고, 쾌감에 허우적댔다. 또다시 이런 상황이 온다고 해도 하진을 거부하고 밀어낼 자신이 솔직히 없었다. 저의 이런 애매함이 하진의 감정에 힘을 더 실어주는 건 아닐까. 더 휩쓸렸다가는 팀이 망가져 버릴 것 같았다. 아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이미 그런 전적을 가진 팀이 있지 않은가.
정우는 억지로 잠을 청하며 감고 있던 눈을 떠 어둠 속에서 헝클어진 채 잠이 든 하진을 바라보았다. 요란한 빗소리 속, 위로처럼 내려앉은 유일한 고요함에 낮은 숨이 길게 흘러나왔다.
성기를 꽉 조이던 좁은 내부의 느낌도, 처음으로 맛보는 쾌감에 흐트러졌던 이성과 휘말린 충동도 모두 차분히 가라앉았다. 들끓던 모든 것들이 거센 빗소리에 씻겨 파묻혔다.
정우는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가 뜨며 다시 한번 잠든 하진의 고요한 얼굴을 눈에 깊게 담았다. 하진의 숨소리가 멀어지고 빗소리가 기이할 정도로 가까워졌다. 모든 시간과 순간을 모호하게 만드는 어둡고 밝은 그 시커먼 빗소리가.
***
하진은 중간에 몇 번이나 잠에서 깼지만, 방 안이 어둡고 조용해 다시 잠이 들었다. 꼭 잠에 발목을 잡힌 것 같았다. 그래서 네 번째로 잠에서 깼을 때는 더 자고 싶은 마음을 뒤로한 채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아…….”
어쩐지 몸이 무거웠다. 하진은 덮고 있던 이불이 몸에서 떨어지자 조금 서늘한 기분에 고개를 내렸다.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잠들기 전의 일이 떠올랐다.
“…….”
정우와 잤다. 섹스했다. 정말 해버렸다. 하진은 이불 위에 놓인 두 손을 마주 잡았다. 그리고 입술을 깨물다가 기척에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든 정우를 바라보았다.
“…여기서 자도 되는데…….”
제가 너무 가운데에서 혼자 편하게 잔 걸까. 하긴 180cm가 넘는 두 남자가 한 침대에서 편하게 자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정자세로 누워 자라면 못 잘 것도 없지만, 이렇게 저처럼 한 명이 가운데에서 자고 있으면 옆에 누울 자리가 충분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하진은 정우가 가고 싶어서 간 게 아니라, 누울 곳이 없어서, 저를 편하게 자도록 배려해 준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일단 옷을 입어야 할 것 같았다. 하진은 바닥에 떨어진 제 셔츠와 침대 발 쪽에 구겨져 있는 바지와 속옷을 어둠 속에서 찾아냈다. 옷을 집어 들자 정우가 제 옷을 벗기던 게 떠올랐다. 하진은 갑자기 귓가가 확 달아오름을 느끼며 얼른 티셔츠와 바지, 속옷을 한데 뭉쳐 놓았다. 그리고 일어나 이불을 어깨에 둘렀다.
어차피 밖에는 아무도 없고, 정우도 자고 있어서 욕실까지만 벗은 채 빨리 가도 되겠지만,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유난이라고, 이상하다고 손가락질을 당해도 어쩔 수 없었다. 하진은 두꺼운 이불을 어깨에 걸쳐 앞을 여민 뒤에 서랍에서 갈아입을 옷들을 꺼냈다. 그리고 왼쪽 팔에는 정우가 벗긴 제 옷들을 뭉쳐둔 것을 들고, 오른쪽 팔에는 새로 갈아입을 옷들을 뭉친 것을 들었다.
그렇게 양팔 가득 옷들을 들고, 또 두꺼운 이불까지 걸친 채 방 밖으로 나간 하진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괜히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욕실 앞에 이불과 아까 입었던 옷들을 내려놓고 얼른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변태들은 도대체 어떻게 옷도 안 입고 밖을 다닐 수 있는 걸까. 방에서 욕실까지 이불을 두르고 와도 이렇게 떨리고, 죄책감이 드는데. 하진은 이상한 생각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았다.
“이게 뭐야…….”
머리도 헝클어져 있고, 바보 같은 얼굴이었다. 자고 일어나서 그런 걸까. 눈도 조금 부은 것 같았다. 정우가 아까 제 이런 모습을 본 걸까. 못생긴 모습을 봤다고 생각하니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그렇지만 아까는 어쩔 수가 없었다. 저절로 막 고개가 저어지고, 여기저기 문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정말 견딜 수가 없었다.
그만큼… 좋았다.
“…….”
그동안 정우를 생각하며 한 자위는 진짜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쾌감은 진짜 정우와 한 섹스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했다. 아프기도 정말 아팠지만, 지나고 나니 아픈 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정우가 예민한 얼굴로 저를 내려 보면서 뜨거운 숨을 내뱉고, 몸을 움직이던 것만 떠올랐다. 분명 내 몸인데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흥분했었다.
“아…….”
하진은 갑자기 허벅지 안쪽으로 무언가가 주르륵 흘러내리는 느낌에 고개를 내려 손을 가져갔다. 이게 뭐지? 하고 묻혀서 본 순간 정액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우가 제 안에 여러 번 사정한 것도 확 떠올랐다.
하진은 밀려드는 뜨거움에 입술을 감쳐문 채 얼른 샤워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따뜻한 물을 틀어 몸을 적셨다.
안에 든 것들을 빼야 할 것 같기는 한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난감했다. 하진은 섰다가 앉았다가 반복했다. 그러다가 결국 손가락을 넣어 빼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
스스로 안에 손가락을 넣는다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정우가 제 안으로 손가락을 넣었던 느낌이 떠올라 더욱 적극적으로 처리하기가 어려웠다. 하진은 한참 만에 겨우 손가락 한 마디를 넣어 안에 든 것을 긁어내었다.
한 시간이 넘도록 아래를 정리한 하진이 겨우 몸을 씻어냈다. 빼야 할 것 같아서 하기는 했는데, 다시 하라고 하면 솔직히 못 할 것 같았다. 그만큼 힘들기도 하고 기분도 이상했다.
샤워 부스 안에서 너무 오래 있었던 건지 조금 어지러웠다. 하진은 얼른 가지고 들어온 옷을 입고 바깥으로 나갔다. 거실의 공기가 시원하게 달라붙었다. 수증기가 가득한 습한 곳에서 나온 것만으로도 살 것 같았다.
하진은 수건으로 젖은 머리칼을 문지르며 시간을 확인했다. 분명 낮이었는데 벌써 저녁이 되어 있었다.
“…배고프다.”
아침에 시리얼을 먹은 것 외에 종일 먹은 게 하나도 없었다. 하진은 밀려드는 허기에 조용한 방을 한 번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가가 열린 문 안을 살짝 바라보았다. 정우의 침대에 불빛이 켜져 있었다. 깨서 휴대폰을 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정우야. 일어났어? 저녁 먹어야지.”
하진은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했다. 엄청난 일을 저질렀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색해지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달라지고 싶지도 않았다.
정우와 저는 어찌 되었든 아포제라는 그룹의 멤버였다. 관계가 틀어져서 쉽게 안 보고 말아도 될 그런 사이가 아니라는 말이었다. 사적인 감정 전에 공적인 관계로 단단히 먼저 묶여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하진은 모든 것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제가 더 잘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진은 작게 심호흡을 하고 들어가 침대에 누운 정우를 장난스럽게 잡아 일으켰다. 늘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