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그렇게까지 엄청난 일을 저질러버렸다. 실수라는 말도 변명이 되지 않고, 미안하다는 말로 사과를 할 수도 없는 그런 일이었다. 무릎을 꿇고 빌어도 정우를 향해 품은 이 불순한 마음을 없던 일로 돌릴 수는 없었다. 이미 일은 벌어졌고, 시간을 멈출 수도 되돌릴 수도 없었다.
“…….”
어쩌지. 이제 정우 얼굴을 정말 어떻게 보지. 뺨이라도 때리지. 주먹이라도 날리지. 미친놈이라고 더럽다고, 꺼지라고 욕이라도 했으면, 차라리 마음이 편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정우는 저를 욕하지 않았다. 그저 속았다는 얼굴을 했을 뿐이었다. 그게 마음에 걸려 미칠 것 같았다. 그동안 다 잊은 척, 마음을 접은 척 정우를 대해 온 저의 모든 거짓된 시간들을 적나라하게 들켜버린 것이었다.
하진은 무릎에 파묻고 있던 고개를 들어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언젠가는 정우가 저 문을 열고 들어올 것이었다. 이제 어떻게 될까. 앞으로 어떤 시간이 이어질까. 정우와 다시 이야기는 나눌 수 있을까. 멤버로라도 지낼 수 있는 걸까.
이제 정말 어쩌지.
“…아…….”
하진은 절망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무너졌다. 그동안 붙든다고 붙들며 정우 앞에서 실수하지 않으려 노력했던 모든 것이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그 안에는 하진의 멘탈도 섞여 있었다. 평소에 멘탈이 약하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는데,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하진은 무너져 부서진 저의 모든 것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주워 담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저 그렇게 점점 작아지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
우스운 것은, 정말 참을 수 없게 한심한 것은 그래도 정우와 닿은 순간 자체를 부정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좋았다. 정우와 닿아서 너무 좋았다. 정우가 제 몸을 만져 주고, 혀를 문질러 준 게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니 정말 믿을 수 없이 좋았다.
제 혀를 빨고, 목덜미에 입술을 문지르던 그 느낌이 여전히 너무나도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서로 몸을 마주 대고 비비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정신없이 키스했다. 가슴 위로 정우가 얼굴을 묻었고, 혀가 유두 위를 문지르고 빨아올 때마다 너무 좋아서 미칠 것만 같았다.
“…미쳤어.”
미쳤다. 정말 미친놈이다. 이 와중에도 그 생각을 하고 있는 제가 혐오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저도 이런데, 정우는 이런 저를 얼마나 끔찍해할까. 당장이라도 더 문을 열고 들어와 침을 뱉는다고 해도 할 말이 없었다.
우리 막내, 우리 막내. 일부러 더 그렇게 부르며 지냈었다. 다시 형으로 돌아간 것처럼, 정말 나한테 제일 소중한 멤버인 것처럼 그렇게 정우를 대했었다. 그것까지 전부 거짓은 아니었다. 정우는 하진에게 가장 소중한 멤버이고, 동료가 맞았다. 하지만 거기에 사랑이라는 말이 붙어버렸을 뿐이었다.
잘 숨겼는데, 정우가 싫어하니까 티 내고 싶지 않아서 정말 많이 노력했는데, 제 앞에 있는 정우와 닿고 싶은 그 마음을 이기지 못해 여기까지 와 버렸다. 전부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
쉬려고 한 것도 아닌데 한숨이 연신 흘러나왔다. 어떤 쪽에서 바라보아도 할 말이 없었다. 정우가 아까 제 이야기를 들어 주려고 했어도, 저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변명조차 할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 하진은 완전히 밝아진 방 안에 어둠으로 머물렀다. 너무 놀라고 파사삭 다 부서져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일어날 수도 없고, 누울 수도 없고 정우가 나간 직후부터 지금까지 멍하니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
정우의 처분만을 기다리며 그냥 그렇게 가만히. 하진은 다시 넋이 나간 멍한 눈으로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문이 열리지 않기를 바랐다. 아니, 그래도 정우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사실은 지금까지도 꿈인 건 아닐까. 앞으로는 말도 안 되는 꿈도 꾸지 말라고, 저를 혼내는 게 아닐까. 하진은 손을 들어 세게 제 뺨을 꼬집었다. 아프지 않았다.
“…….”
그래서 하진은 다시 손을 들어 제 뺨을 세게 때렸다. 마찰하는 큰 소리와 함께 아픔이 번졌다. 하진은 울음 같은 실소를 터뜨렸다.
“…진짜 아니네.”
이거 정말 꿈 아니구나. 하진은 그렇게 빨갛게 붓고 열이 오르는 뺨도 알지 못한 채 다시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저 문을 열고 들어온 정우가 저에게 처분을 내릴 때까지 그렇게, 고요히.
***
정우는 씻고만 왔다고 말하기에는 꽤 긴 시간이 지난 뒤에야 방으로 돌아왔다. 하진은 그때까지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침대에 앉아 있었다. 방으로 들어와 그런 하진을 한 번 본 정우가 반쯤 마른 머리칼을 수건으로 대충 털며 거울을 보았다.
“씻어요. 사실 나보다 형이 더 씻고 싶었을 텐데.”
“…정우야.”
“옷 정도는 갈아입었을 줄 알았는데.”
“…어? 아…….”
정액이 말라붙은 니트를 그대로 입고 있는 제가 이상해 보인 모양이었다. 아니, 당연히 혐오스럽게 보일 것이었다. 하진은 그 부분이 보이지 않도록 괜히 니트를 구겨 쥐었다.
“…정신이 없어서… 미안해.”
“나한테 입힌 것도 아닌데, 뭐 나한테 미안할 건 없어요. 형이 찝찝할 것 같아서.”
얼마나 바보 같아 보일까. 아니, 바보라는 말도 아까웠다. 차라리 바보라는 그 말을 듣고 끝날 수 있는 일이라면 좋을 것 같았다. 하진은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힘이 빠진 몸 안에 수치심이 가득 찼다. 고개를 들 수가 없고, 정우를 바라볼 수가 없었다. 하진은 서랍을 열어 아무 옷이나 꺼내 들었다.
“앉아 봐요. 형.”
“…일단 좀 씻고 올게.”
“씻기 전에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씻으면서 또 돌파구를 찾고, 지금 형 얼굴에 묻은 수치심 같은 것도 다 씻어버리면, 또 난 속아야 하잖아요.”
“…….”
“내가 형을 워낙 좋아하니까 한 번까지는 어떻게 참아 보겠는데, 두 번은 좀 그래요. 같은 사람한테 두 번이나 같은 걸로 속는 거 생각만 해도 기분 더럽잖아.”
“…….”
아니라고, 다시는 그럴 일 없을 거라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하진은 죄인처럼 갈아입을 티셔츠를 든 채 다시 침대로 와 앉았다. 정우가 맞은편 침대에 앉자 익숙한 바디 워시 향이 확 닿아왔다.
“잘도 속였어요. 불시에 떠봐도 잘 넘어가고 어떻게 여기까지 왔네요.”
“…….”
“오늘도 잘 넘어갔으면 좋았잖아요. 하던 대로 연기 잘했으면 오늘도 무사히 넘어갔을 텐데 왜 그랬어요.”
“…미안해.”
“아니, 난 이제 형이 미안하다고 하는 거 안 믿을래. 말로만 그러잖아. 뭐가 미안해요. 나한테 키스한 거? 꿈이라고 착각하고 매달린 거? 아니, 지금까지 내 앞에서 연기한 거?”
“…전부 다 미안해. 정우야, 정말 내가 다 잘못했어.”
“네. 그럼 그 사과는 받을게요. 그런데 어쩌지.”
어쩌지. 그 말 뒤에 이어지는 말이 없었다. 하진은 바닥을 보고 있던 시선을 들어 올려 정우를 바라보았다. 저에게 닿는 노골적인 시선에 머리가 다 지끈거렸다.
“달라지는 게 없네.”
“…….”
“말로 사과한다고 달라질 게 하나도 없는 일이에요. 형도 알잖아요. 형이 나한테 키스했고, 내가 형을 만졌어요. 미안해, 아, 괜찮아요. 이런 말로 없던 일이 돼요?”
전부 다 맞는 말이었다. 이제 1년. 보통 아이돌이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활동을 하는 것을 따져 봤을 때 9년을 더 같이 활동을 해야 했다. 물론 3, 4년 차가 되면 같이 살지 않고, 숙소를 나가 혼자 살기도 하지만,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좋든 싫든 정우와 같은 집에 살아야 했다.
“…내가 방 바꿔 달라고 형들한테 말할게. 너 불편하게 안 하고…….”
“뭐라고 말할 건데요.”
“그건…….”
“정우랑 하마터면 섹스까지 할 뻔했다고?”
정우의 입에서 나오는 섹스라는 말에 하진이 눈을 꽉 감았다. 그 말에 크게 반응하는 제가 너무 우스웠다. 그렇게 혼자 상상해 놓고, 꿈에서 뒤엉켜 놓고 왜 정우의 목소리로 듣는 그 말에는 이렇게 미칠 것 같은 걸까.
“고개 들어요.”
“…….”
“나 보라고.”
낮고 단호한 목소리였다. 하진은 정우의 목소리를 거역하지 못하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 마주친 시선에 심장이 꽉 조여들었다. 이런 최악의 순간에도 마음은 정우를 향하고 있었다.
“난 우리 팀 망가지는 거 보고 싶지 않아요. 방 바꿔 달라고 하면 형들이 물을 거고, 어떻게 둘러댄다고 해도 형들이 바보도 아닌데 믿겠어요? 당연히 싸웠다고 생각할 거고, 그때부터 우리 눈치를 보겠죠. 형이랑 나는 방까지 따로 쓰니 마주쳐도 점점 더 모른 척할 거고, 필요할 때만 사이좋은 척, 아무 일도 없었던 척 연기하게 될 거고.”
“…….”
“결국 전부 불편해질 거예요. 몇 년 못 가겠지. 팀워크가 깨진 팀이 뭐 얼마나 오래 가겠어요.”
“…….”
정우의 말이 다 맞았다. 단 하나도 틀린 부분이 없었다. 인규와 영우, 그리고 해성이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설마 이런 성적인 접촉이 있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하겠지만, 저와 정우의 사이에 분명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 정도는 자연스럽게 눈치챌 것이었다. 결국 매니저 형들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될 거고, 팀은 그렇게 가라앉을 것이었다.
“형은 계속 그 연기 해요.”
“…어?”
“어제까지 하던 그거. 날 친동생처럼 좋아하고, 챙겨 주는 착한 형. 그 연기요. 계속 하던 거니까 어려울 거 없잖아요. 형들도 또 팬들도 다 속아줄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예요. 형은 나랑 이 방 계속 쓸 거고, 나도 형한테 하던 대로 할 거예요. 옆에 붙어 있을 거고, 끌어안을 거고, 세상에서 형을 제일 좋아할 거예요. 그래야 아무도 모르잖아.”
“…그럼 용서해 주는 거야? 나 정말 이제 안 그럴게. 정우 네가 불편하지 않게 이제 진짜…….”
정우는 고개를 저었다. 하진은 말을 끝맺지도 못한 채 다시 멍하니 정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형이랑 나는 달라졌어요. 어떻게 전으로 돌아가겠어요. 그런 짓까지 했는데.”
“그럼 계속… 연기하라는 건 무슨 말이야?”
“다른 사람 눈만 속이라구요. 난 이제 형한테 안 속으니까.”
“…미안한데 그게 무슨 말이 잘 모르겠어.”
하진의 말에 정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하진이 앉은 옆으로 와 앉았다. 하진은 바디 워시 향이 확 가까이에서 닿아오는 것에 입술을 꾹 깨물었다. 가깝게 앉아 팔이 닿아 문질렸다. 하진은 옆으로 조금 움직여 몸을 떼었다. 정우가 다시 그런 하진에게 확 가까이 다가가 몸을 밀착했다. 그리고 그대로 하진의 턱을 잡아 돌려 그 입술을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