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제-19화 (19/122)

#19

아포제의 두 번째 미니앨범 <오버테이크>의 선주문이 70만 장을 돌파했다는 기사가 아침부터 쏟아졌다. 팬들은 물론이고 멤버들도 연습실로 가는 차 안에서 그 기사를 확인했다. 이미 들어 알고 있던 일이지만, 이렇게 기사로 난 걸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책임감에 어깨가 무거워지기도 했다.

“아… 어제까지는 괜찮았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막 떨려요. 형들은 안 떨리세요?”

하진이 뒤를 돌아보며 묻는 것에 해성은 손을 펼쳐 제 가슴 위를 탁 소리가 나게 덮었다.

“미치겠다, 나도. 앨범 열 장쯤 내고 나면 좀 괜찮아지나?”

“전 그때도 떨릴 것 같아요.”

손을 뻗은 해성이 하진의 손을 잡고 막 흔들었다. 영우가 얼른 둘이 장난치는 것을 동영상으로 찍었다.

“조해성 씨, 언제부터 나잇값을 못 하기 시작하셨습니까?”

영우가 까불며 장난스럽게 시비를 걸어오는 것에 해성이 기꺼이 응하며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화면 가득 해성의 이목구비가 차는 것을 본 영우가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눈을 가렸다. 그런 둘을 보고 웃은 하진이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그때 정우의 손이 다가와 의자를 짚은 하진의 손을 잡아 가져갔다. 하진의 입술에 걸려 있던 웃음이 사라지고, 불쑥 긴장이 몸을 가득 휘감았다.

“이 손 맞나. 전에 긁혔었잖아요.”

“아… 어, 거기 맞아. 다 나았어.”

가까이에서 정말 다 사라지고 없는지 여기저기 살핀 뒤에야 정우는 하진의 손을 놓아주었다. 하진은 괜히 정우가 잡은 손을 다른 손으로 감싼 채 만지작거렸다. 단순한 걱정일 뿐이었다. 멤버들을 잘 살피고 챙기는 막내의 따뜻한 관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진은 학습하는 것처럼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외워야 했다. 아무 의미도 없는 행동일 뿐이라고, 이런 상황에서 절대 흔들리면 안 된다고.

소속사 사옥에 도착했을 때, 하진은 턱에 걸쳐놓았던 마스크를 올리고, 모자를 뒤집어썼다. 오는 내내 마스크를 쓰고 있던 정우가 먼저 차에서 내려 하진을 바라보았다. 먼저 들어가도 되는데 정우는 늘 하진을 기다렸다. 기다리고 있는 팬들에게 미안해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또 거는 말을 다 들어주려는 하진을 데리고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하진은 모자와 마스크 사이로 보이는 또렷한 정우의 눈을 마주하며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서둘러 뒷문으로 들어갔다.

“어제 세주 선배님 만나서 잠깐 얘기했는데, 선배님도 나한테 그러시더라. 집 앞이나 여기 소속사 앞이나 공개한 적 없는 장소에 있는 팬들한테는 잘해줘서 좋을 게 없다고.”

“세주 선배를 언제 만났어요? 어제 형이랑 쭉 같이 있었는데.”

세주 선배의 말에 맞장구를 칠 줄 알았는데 돌아온 답은 하진이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하진은 마스크를 턱으로 끌어내렸다.

“아, 나 잠깐 녹음실 갔었잖아. 거기서 만났어. 프로듀서님이랑 친해서 놀러 왔다고 하시던데.”

“형도 친해요?”

“응?”

“형도 유세주 그 선배랑 친하냐구요.”

“…뭐 친하고 안 친하고 할 그런 정도도 아닌 것 같은데. 그냥 이런저런 조언해 주셔서 듣고 왔어.”

정우는 느릿하게 마스크를 끌어 내리며 하진을 바라보았다. 모자챙 밑으로 생긴 그늘 속 두 눈이 바라보기 부끄러울 만큼 깊었다.

“소문이 별로 안 좋아요. 그 선배. 공식적으로 터졌던 사건만 봐도 알잖아요. 매번 술 마시고 사고 치는 거.”

“…그건 그렇지. 술 진짜 좋아하시는 것 같기는 하더라. 나한테도 같이 술 마시자고 전화번호 달라고 하시더라고.”

“줬어요?”

“…응. 싫다고 할 상황이 아니었어.”

정우가 짧게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멤버들과 매니저가 다 같이 탔기 때문에 더 이상 그 이야기는 오가지 않았다. 하진은 어쩐지 심각해 보이는 정우를 흘끗 바라보았다.

어제의 별로 좋지 않은 기억이 하진의 머리 안을 두드렸다. 징그럽게 얼굴과 몸을 훑던 시선. 실수인 것처럼 손가락을 잡았다가 놓던 그 불쾌한 체온. 잘 휘둘리는 편이냐면서 묻던 그 시선도 싫었다. 휘둘린다는 그 말로 희롱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하진은 고개를 저어 생각을 흩트렸다. 단 한 순간도 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자자, 정식으로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은 오늘이 끝이라고 보면 돼. 내일은 샵도 가야 되고, 내일 밤부터 사녹 있는 거 알지? 두 곡이나 하고, 또 들어왔다가 본방 리허설도 가야 되고 해서 바쁘니까 오늘 제대로 끝내자. 안무 영상도 오늘 찍으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연습실로 들어간 하진은 박수를 치고 말을 전달하는 인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멤버들과 함께 크게 소리 높여 대답했다. 연습실이 쩌렁쩌렁 울리는 큰 소리에 매니저가 웃으며 연습실을 나섰다. 하진은 스트레칭을 하며 여전히 조용한 정우를 거울 속으로 바라보았다. 연락처를 알려 준 게 그렇게 한심한 일이었던 걸까.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자, 그럼 서브타이틀부터 타이틀까지 쭉 이어서 갈게.”

멤버들이 대형을 맞추어 섰다. 하진의 옆으로 가던 정우가 작은 목소리를 냈다. 하진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고 은밀한 목소리였다.

“연락 와도 받지 말아요.”

“응?”

하진은 정우를 바라보았다. 정우는 다리를 살짝 벌리고 선 채 하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쓰고 있던 마스크를 턱까지 내리고 다시 입술을 움직였다. 소리는 나지 않지만, 입 모양은 너무나도 분명하게 그 말을 전해주었다.

전화 받지 마.

하진은 또다시 무너지고 싶어 통째로 흔들리는 마음을 꽉 눌렀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서브타이틀곡 반주에 맞춰 팔을 움직이고, 고개를 기울였다. 날마다 밤새 연습한 곡이라 이제 곡이 나오기만 해도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그리고 머리 안으로는 정우의 말을 떨치려고 애썼다.

무슨 의미일까. 그런 생각은, 또 그런 해석은 하지 않기로 했다. 아무 의미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세상에 알려지기를 질이 안 좋게 알려진 선배와 엮이지 않았으면 좋겠는 멤버의 걱정. 딱 그것일 것이었다. 하진은 최대한 침착하게 마음을 누르고, 익숙한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정우의 말이 옅어지고, 들어도 질리지 않는 음악이 짙어졌다. 하진은 빠르게 바뀌는 동선을 따라 움직이며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았다.

잘하고 있다. 더 깊게 알려고 하지 않고, 그 말의 의미를 파헤쳐 말도 안 되는 희망을 가지려고 하지 않아 정말 다행이었다. 여전히 피나는 노력에 따른 연기일 뿐이고, 마음은 하나도 사라지지 않았지만, 숨길 수 있어 좋았다. 더는 정우를 힘들게 하지 않아 정말… 좋았다. 그래서 하진은 자꾸만 마음에 떠오르는 정우의 입 모양을 외면하고, 또 했다. 그게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기에.

***

초동 55만 장, 컴백 무대와 동시에 1위, 일곱 개의 음원 사이트 차트 올 킬, 오프라인 매장에 아포제 앨범을 사기 위해 100미터 이상 줄을 서 있는 팬들. 아포제가 컴백한 그 주의 이슈였다. SNS에 노출되는 아포제와 멤버들 이름의 트래픽 양도 압도적이었으며, 팬사인회 공지에 앨범 판매량 또한 전날 대비 50%가 늘어났다.

번화가 거리에 걸어둔 아포제 멤버들의 현수막을 떼어가다가 잡힌 팬도 있었고, 얼굴만 보고 좋아하는 빠순이가 한심하다며 악플을 다는 기사 댓글은 1분도 되지 않아 블라인드 처리가 되었다. 그렇게 아포제는 두 번째 미니앨범까지 메가 히트를 치며 최고의 보이그룹으로 자리를 잡았다.

5월과 6월 두 달을 풀로 활동하며, 서브타이틀곡까지 음원 차트 1위를 차지한 아포제는 더 이상 적수가 없다는 평을 받았다. 한영엔터테인먼트의 아이돌 계보가 무리 없이 이어졌으며, 역시 한국의 아이돌은 한영엔터테인먼트가 쥐고 있다는 평들이 이어졌다.

아포제는 그렇게 6월 말 두 번째 미니앨범 활동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쉬지도 못하고 곧바로 쐐기를 박기 위해 세 번째 미니앨범 작업에 들어갔다. 10월 말에 컴백을 해서 11월과 12월 활동을 하고 시상식에 나가는 플랜이었다.

그사이 비는 여름 시즌에는 팬사인회와 기습 음원 발표를 해, 비는 공간이 없게 만들었다. 아포제가 정식 활동을 하지 않는 그사이에 많은 남자 아이돌 그룹이 활동을 시작했지만, 아포제의 기록을 반도 쫓아가지 못했다.

10월 30일 발매 된 세 번째 미니앨범 <블랑쉐>는 초동 70만 장을 기록했다. 공백이라고 하기에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아포제의 시상식 전 앨범 발매를 기다린 팬들의 공격적인 구입으로 기록한 수치였다.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한 퍼포먼스에 극찬이 이어졌고, 겨울의 쨍함과 포근함을 동시에 잡은 앨범이라는 좋은 평이 이어졌다.

12월 중순부터 시작된 각 음원 사이트의 시상식은 물론 연말 공중파 시상식까지 아포제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신인상을 휩쓸었다. 그리고 신인상과 동시에 인기상과 본상까지 획득하며, 자연스럽게 세대교체를 이루어냈다.

대중들은 체감 인기, 음원, 음반 판매량 모두 아포제가 월등히 높은데, 신인이라는 이유로 대상을 주지 않은 것에 대해 불만을 표출했다. 1월 1일 발간 된 스포츠신문 메인에도 ‘완벽한 세대교체’, ‘더는 상대가 없다.’라는 타이틀이 크게 붙었다. 아포제는 신인이라는 이름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와, 벌써 다음 달이면 우리 데뷔 1주년이에요. 시간 진짜 빠르다.”

“그러게. 언제 1년 지났어? 대박이다. 이러다가 정신 차려보면 6년 지나 있고, 7년 지나 있을 것 같아서 좀 가끔 무서워.”

하진은 무섭다는 해성의 말에 잠시 그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늘 유쾌하고 즐거운 해성의 입에서 무섭다는 말을 듣는 것은 처음이라 기분이 이상했다. 그 마음이 뭔지 충분히 공감하기에 더 그랬다.

“지금이 너무 좋아서 그런 거 아닐까요? 왜… 너무 좋으면, 이렇게 좋아도 되나? 싶잖아요. 호사다마라는 말도 있고.”

진지한 얼굴로 보던 해성이 이내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말간 하진의 얼굴을 보며 머리를 마구 헝클였다.

“역시 우리 팀의 자부심 한국대 아이돌.”

“들어가기만 어떻게 들어가고, 제대로 다니지도 못했는데요. 뭘.”

“어떻게 들어갔어? 나도 좀 알려주라. 난 왜 어떻게 못 들어가지.”

웃으면서 분위기를 즐겁게 만든 해성이 제가 헝클여 부스스해진 하진의 머리칼을 다시 부드럽게 정리해 주었다.

“하진이 너는 뭐 힘든 거 없어?”

“저요?”

힘든 거라는 말에 가장 먼저 정우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진은 소리 내지도 않았는데 아프게 꽉 조이는 마음을 꾹 눌렀다. 작년 하반기를 정신없이 바쁘게 보내서 좀 나아진 줄 알았는데, 한 번씩 이렇게 떠오를 때마다 전혀 달라진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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