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제-13화 (13/122)

#13

데뷔 미니앨범 활동이 끝나고 휴식은 딱 사흘뿐이었다. 부모님과 식사를 하기도 하고, 쉬기도 했지만 멤버들은 고작 사흘을 쉬는 것뿐인데도 불안해했다. 데뷔 직전까지 쉬는 순간이 거의 없이 달려왔기 때문이었다. 결승점을 향해 가속도가 붙어 달리고 있는데, 잠시 서서 사흘을 쉬라니 당연히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는 부모님과 식사를 또 하루는 종일 게임을 하거나 늘어지게 잠을 잤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 날에는 멤버가 전부 거실에 모여 데뷔 미니앨범 활동에 대한 이야기와 내일부터 준비할 두 번째 미니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 같이 모여 일 얘기를 하니 한결 마음이 편했다.

“무대는 회사에서도 모니터하고 분석하셨는데 고칠 부분 없다고 하셨어. 그런데 우리가 아직 익숙하지가 못해서 짧은 인터뷰 부분에서 너무 긴장한 게 보이더라고. 뭐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자기 전에라도 둘둘 연습 한 번씩 더 하면 좋을 것 같아. 나올 수 있는 질문들 뭐 대부분 비슷하니까.”

“이영우 진짜 웃기지 않았어요? 영우 씨, 이번 타이틀곡의 킬링파트라는 랩 한 번만 보여주세요! 네! 그럼 제가 타이틀곡 루프탑의 래, 래래래, 랩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해성은 목을 가다듬고 음악방송 MC의 목소리를 발랄하게 따라 하다가 이내 영우의 긴장한 목소리를 흉내 냈다. 로봇처럼 굳어서는 더듬기까지 하며 똑같이 따라 하자 큰 웃음이 터졌다. 아예 바닥에 드러누워 웃는 해성을 본 영우가 발을 뻗어 그 엉덩이를 뻥 찼다. 아프다고 엉덩이를 문질문질 하면서도 웃느라 울기까지 하는 해성에 한참이나 더 웃음이 이어졌다.

“내일부터 또 엄청 바쁠 거야. 서로 믿고 잘해 나가자. 그런데 하진이는 어디 아픈 거 아니야? 안색이 안 좋은데.”

“아… 아니에요. 저 푹 자고, 잘 먹고 잘 쉬었는데요. 너무 자서 아직도 잠이 덜 깬 걸 거예요.”

“그래? 그럼 다행이고. 정우가 형 잘 챙겨줘.”

그럼요. 우리 형 제가 안 챙기면 누가 챙겨요. 정우의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대답이 울렸다. 하진은 그 목소리에 심장이 또다시 삐걱대는 것을 느꼈다. 우리 형. 정우의 목소리로 듣는 우리 형이라는 말에 마음 안으로 선이 또 한 줄 그어졌다. 하진은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죄책감. 정우에게 진정한 의미의 ‘우리 형’이 되어 주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자책이었다.

정상 속의 비정상 같았다. 모두가 너무나도 똑바로 서 있는데 저만 비틀거리고 있었다. 정우뿐만 아니라 다른 멤버들의 얼굴도 똑바로 보기 힘들었다.

“그럼 오늘은 다들 가서 알아서 쉬고, 이따 저녁이나 맛있는 거 먹자. 지창이 형 허락도 받았어. 마음껏 시켜 먹어도 된다고.”

“진짜요? 그 형이 그럴 사람이 아닌데. 식단 조절하라고 얼마나 무섭게 굴었는데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최후의 만찬을 즐기라던데.”

“와… 무섭다, 무서워. 뭐 우린 말 잘 들으니까 즐기라면 즐겨야죠.”

영우의 말에 멤버들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우와 해성이 벌써부터 저녁에 뭘 시킬지 배달 앱을 열어 보는 것을 보며 하진은 방으로 들어갔다. 어디에서 오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두통이 머리 안을 마구 두드렸다.

“하아…….”

긴 숨이 흘러나왔다. 하진은 무너지듯 몸을 늘어뜨렸다. 침대에 벽을 보고 누워 눈을 감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어제 잘 못 자는 것 같던데.”

“…그냥. 너무 피곤해도 잠이 잘 안 오잖아.”

“코코아 타 줄까요? 형 좋아하잖아요.”

“…아니야. 괜찮아. 그냥 눈 감고 있으면, 잠 올 거야.”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진은 감고 있던 눈을 떠 벽을 바라보았다. 마지막 저의 대답이 너무 선을 긋는 것처럼 들린 건 아닐까. 대답이 벽에 부딪혀 정우에게 닿지 못하고 다시 저에게 돌아온 것 같았다.

“그렇게 잠도 못 자고 괴로워하라고 한 말 아니에요.”

“…….”

“난 형이랑 잘 지내고 싶어요. 그것만 알아주세요.”

“…알아. 내가 잘못했다는 거. 노력하고 있어. 그 과정이라고 생각해 주라. 어제 아침에 말하고… 하루 지났을 뿐이잖아. 이해해 줘. 너한테 들켰다는 거, 네가 결국 알아버렸다는 거… 그게 너무 창피해서 널 보기가… 힘들어. 내일은 더 괜찮아질 거야. 그러니까… 이해해 줘. 미안해.”

한마디를 뱉을 때마다 심장이 잘려 나가는 느낌이었다. 정우에게 당당하지 못하고, 사과해야 할 마음이었다. 왜 이런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도 않는 걸까.

그동안 누군가를 깊게 좋아한 적도, 그런 사랑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이라는 것을 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럴 여유가 없기도 했고, 별로 관심이 없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 걸까. 관심이 없었어서? 경험도 없고, 너무 무지한 상태에서 감정이 생기면 이렇게 바보 같아지는 걸까. 이럴 때에는 누구에게 뭘 물어야 할까. 다들 혼자 견디고, 혼자 포기하고, 혼자 이겨내는 걸까.

“난 거실에 있을게요. 푹 자요.”

어깨 위로 이불이 덮였다. 하진은 제 어깨 위로 이불을 올려주고 살짝 토닥여주는 그 손길에 입술을 꽉 깨물었다. 빛이 들어와 하진의 잠을 방해하지 않도록 블라인드를 제대로 치고, 암막 커튼까지 닫아준 정우가 깜깜해진 방을 나섰다.

하진은 문이 닫히는 소리에 그제야 이불 위로 얼굴을 파묻었다. 사라져야 할 감정은 이 순간에도 몸집을 키우고 있었다. 정우가 좋았다. 저 다정한 손길이, 그래도 따뜻한 저 목소리가.

“…….”

곧 문밖에서 들려오는 멤버들과 정우의 목소리가 하진의 귓가를 어지럽혔다. 하진은 감고 있던 눈을 떠 어둠 속에서 멍하니 들려오는 소리들을 응시했다.

멤버들과 정우. 저는 언제부터 멤버들과 정우를 분리하고 있었던 걸까. 정우도 멤버들 중 하나인데, 왜 분리한 걸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까지 온 줄은 몰랐다. 그저 지나가는 감정이라고 생각했고, 친절하고 다정한 상대에게 느낄 수 있는 당연한 감정이 심화된 것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멤버들과 정우라니. 하진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스스로에게 어이가 없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헛웃음에 물기가 묻어났다. 하진은 결국 잠들지 못했다.

***

두 번째 미니앨범 타이틀곡은 만장일치로 결정되었다. 멤버들은 물론이고 스태프들까지 모두 <오버테이크>라는 곡을 최고로 꼽았다. 중독성 있는 비트와 후렴구는 물론이고, 깔린 음들 하나하나까지 얼마나 섬세하고 세련됐는지 처음 듣는데도 아, 이 곡이다 할 정도로 느낌이 확 오는 곡이었다.

멤버들은 녹음을 위해 종일 곡을 흥얼거리며 익혔고, 안무팀은 곡과 어울리는 안무를 만들었다. 곡의 기승전결이 뚜렷하고, 강렬한 특징을 살려 무대에서 확 시선을 끌 수 있는 안무가 완성되었다.

“대박, 형 하루 만에요?”

“아니, 노래 듣는데 막 떠오르는 거야. 이게 자주 오는 게 아닌데, 와. 너희 이번에도 대박 날 것 같아.”

“형, 지금 얼굴 장난 아니에요. 다크서클이 완전…….”

“새벽 4시 반에 내가 완성 안무 찍어 둔 거 보면 더 대박일 거다.”

안무가인 원영은 다크서클이 짙은 얼굴로 USB를 연결했다. 곧 연습실 커다란 스크린으로 원영이 녹화한 화면이 떠올랐다.

해성은 안무를 보는 3분 24초 동안 내내 대박을 외쳐댔다. 그만큼 곡과 아주 잘 어울렸고, 빈틈이 없었다. 도대체 어디서 쉬어야 되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안무가 촘촘했다.

“한 달 동안 이게 가능해요? 동선도 장난 아니고, 숨 쉴 틈이 없는 것 같은데요.”

“나도 하는데 이십 대 초반 쌩쌩한 너희가 왜 못해? 일주일 마스터 코스로 갈 거니까 각오 단단히 해두고. 서브타이틀 안무는 호연이가 알려줄 거야. 자, 바로 시작하자. 시간 없어. 한 달 남았다, 너희.”

한 달이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어 모두가 앉아 있던 바닥에서 일어나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하진은 팔과 어깨를 느릿하게 돌려 풀었다. 그리고 저의 앞에 선 정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한 달 동안은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바쁠 것이었다. 내내 연습실, 녹음실에서 살게 될 거고, 자연스럽게 감정도 누그러질 것이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정우에게 전부 들켜버린 이상 이제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끝내자. 하진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단호히 마음을 먹었다. 팀을 위해, 그리고 저를 위해서도 끝내는 게 맞았다. 제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정우와도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고, 지금 이 일도 그냥 해프닝처럼 웃으면서 말할 날이 분명 올 것이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다리를 쭉 폈다가 바로 선 하진이 거울을 바라보았다. 정우와 거울 속에서 눈이 마주쳤다. 피하고 싶었지만, 오해받고 싶지 않아 살짝 미소 지었다. 정우가 그런 하진을 보며 따라 웃음 지었다. 하진은 울렁이기 시작한 마음을 외면하며 짧게 숨을 내뱉었다. 그렇게 모든 것이 제자리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역시 마음먹으면 안 될 일이 없었다. 안무를 익히고, 날마다 녹음을 하느라 바쁜 날이 이어졌다. 자연스럽게 정우에 대한 마음으로 아파할 시간이 줄어들었고, 하진은 마음먹은 것처럼 아주 잘 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정우가 저를 빤히 바라보거나, 스킨십을 할 때면 심장이 쿵 떨어지기도 했지만, 그것을 티 내지 않는 방법을 배웠다. 허둥대지도 않고, 티가 나게 피하지도 않았다. 하진은 제가 달라지고 있음을, 아니 처음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분명 좋은 일이었다.

“자, 하진이 녹음하자.”

하진은 제 이름을 부르는 작곡가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최상의 녹음 컨디션을 유지하려고 멤버들은 내내 종일 따뜻한 물을 마셨다. 타이트한 안무연습에 지쳐 죽을 것 같아도 차가운 물 대신 따뜻한 물을 마셨다. 지창이 독한 놈들이라고 웃을 정도였다. 하진은 그 덕분에 아주 좋은 컨디션을 만들 수 있었다.

녹음 부스 안으로 들어간 하진이 헤드폰을 쓰고, 악보대 위에 제 파트가 표시된 종이를 놓았다. 어디에서 어떻게 강약 조절을 해야 할지 전부 표시를 해놔서 종이가 알록달록했다.

“자, 목 풀고.”

“네.”

하진은 아- 아- 소리를 내며 목을 풀었다. 그리고 준비가 됐다는 신호를 보냈다.

“자, 그럼 오버테이크 뒷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속도를- 거기부터 갈게. 앞에 녹음한 정우 파트부터 틀어줄 테니까 맞춰서 들어가자.”

아직 신인이라 이런 녹음을 해본 경험이 많이 없어 그런지 굉장히 친절하고 자세하게 안내를 해주었다. 선배들 말로는 나중에는 각자 스케줄이 바빠 시간이 날 때 한 명씩 와서 녹음을 마치고 간다고 했다. 아마 정규 3집 정도만 되어도 그렇게 될 거라는 말에 벌써부터 기분이 이상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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