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제-10화 (10/122)

#10

벌써 6개월이라는 시간을 함께 살며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하고 당연해진 일이었다. 하진은 정우의 식탁에 앉아 시리얼을 헤집으며, 지난날들을 떠올렸다. 그때는 정말 마냥 즐겁고 좋았었다. 저에게 불순한 감정이 하나도 없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형, 눅눅해져요.”

“어? 아… 응.”

눅눅해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하진이 한 숟가락도 먹지 않고 상념에 잠긴 것에 정우는 가만히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무슨 걱정이 있는 걸까. 분명 뭔가 있는 것 같은데 괜찮은 척을 하고 말을 해주지 않아 답답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마다 말을 할 수 없는 사정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굳이 캐묻지 않기로 했다.

정우는 다 먹은 하진의 시리얼 볼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하진이 하기 전에 얼른 설거지를 했다. 그냥 먼저 가도 되는데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하진은 꼭 옆으로 와 같이 있어 주었다.

정우는 그런 다정한 하진이 좋았다. 도전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런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정우는 그런 하진과 이렇게 같은 팀에서 같이 꿈꿀 수 있고, 이룰 수 있다는 게 너무나도 좋았다.

“여기.”

싱크대 옆에 서 있던 하진이 사라졌다 했더니 입에 칫솔을 문 채 다시 다가왔다. 손에는 치약이 묻은 정우의 칫솔이 들려 있었다.

“빨리 양치하고 자야겠어. 갑자기 막 졸려.”

칫솔을 입에 문 채로 불분명한 발음을 하는 하진을 보던 정우가 웃으며 머리칼을 헝클였다. 그 행동에 하진이 형한테 장난치지 말라는 듯 정우의 단단한 배를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우리 형 재워줘야겠다. 아까처럼 악몽 꾸면 안 되잖아요.”

“악몽? 아…….”

그거 악몽 아닌데. 하진은 입속에 맴도는 말을 소리 내지 않았다. 잠시 잊고 있던 꿈과 욕실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하진은 혀끝이 얼얼해지는 것도 모른 채 멍하니 칫솔을 움직였다. 잊을 수도 없고, 떠올릴 수도 없었다. 또다시 파고드는 괴로움에 머리 안이 복잡해졌다.

양치질을 하고 방으로 돌아오니 벌써 새벽 3시가 넘어 있었다. 10시에 출발을 하면 된다고 했으니 평소에 비해 잘 수 있는 시간은 많아 별로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하진은 침대에 누워 이불을 끌어 올렸다. 벽을 보고 눕는데, 등 뒤에서 정우의 목소리가 닿아 왔다.

“언젠가부터 형 늘 벽 보고 자는 거 알아요?”

“응?”

하진은 정우 쪽으로 몸을 돌리며 대답했다. 어둠 속이지만 정우가 저를 보고 있다는 게 느껴져 마음이 화끈거렸다.

“전에는 안 그랬는데.”

“그런 것도 다 보고 있었어?”

“그럼요. 난 형에 대한 거 다 알아요.”

아니. 정우 너는 몰라. 몰라야만 해. 절대 알면 안 돼. 그렇게 됐어. 막아 보려고 했는데, 시작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그 끝이 어디인지도 몰라서 막을 수가 없었어.

“손.”

하진은 정우의 말에 손을 뻗었다. 어둠 속에서 손이 스쳤다. 잘 보이지 않아 엇갈렸던 손이 정확하게 닿은 순간 하진은 눈을 감았다. 정우는 하진을 달래 주듯 또 위로해 주듯 손을 잡고 흔들어 주었다.

“정우 너는 가끔 나를 막내로 생각하는 것 같아.”

“이제 알았어요? 형이 나보다 더 귀엽잖아요. 막내는 원래 좀 귀여운 맛이 있어야 되는데.”

“너도 귀엽거든.”

“다 형보고 귀엽다던데요? 강하진 쳐 봐요. 강하진 귀여워. 강아지 같아. 난리도 아닌데.”

“그래도 이 형 눈에는 우리 막내가 제일 귀여워.”

일부러 막내라고 불렀다. 우리 막내. 팀의 막내. 아포제의 멤버. 하진은 정우를 철저히 일적으로 보려고 노력했다.

“고생 많았어요. 그동안.”

“이제 오늘이네.”

“네. 아, 형 2월 말쯤 들어왔었는데 또 2월이네요.”

“솔직히 나 처음 봤을 때 어땠어? 다른 사람들은 나 다 모른 척하고 그랬잖아.”

“오 실장님이 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갔다가 캐스팅해 왔다는 말은 들어서 알고 있었거든요. 워낙 소문이 빠르니까. 아니, 얼마나 눈에 뜨이면 그 와중에도 캐스팅을 해오나 궁금했는데, 얼굴 보자마자 바로 납득했어요. 아, 이건 진짜다.”

감탄을 섞어 말하는 정우의 말투에 하진이 소리 내어 웃었다. 그렇게 먼 일도 아닌데, 꽤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처음 정우를 봤던 그 순간만큼은 아주 선명했다. 어떻게 잊을 수가 있을까.

“태어나서 너처럼 잘생긴 사람은 처음 봤어. 아니, 잘생겼다는 말로 표현이 안 돼. 좀 충격적일 정도였으니까.”

“형이 처음에 나를 너무 좋게 봐줬네.”

“아니야. 어떻게 이렇게 생긴 사람이 있나 싶었다니까. 거기에 착해서 말도 걸어 주지, 다 도와주지.”

내가 너를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었겠어. 어쩌면 그때부터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시작점이 어디인지 감도 못 잡는 걸까? 하진은 여전히 잡고 있던 손을 슬쩍 먼저 놓았다. 그리고 심장이 옮겨간 것처럼 두근대는 손을 이불 안으로 쏙 넣었다. 어둠에 익숙해진 두 눈이 정우의 얼굴을 정확하게 담아냈다.

“자야겠다. 졸려.”

“잘 자요, 형.”

“…응. 너도 잘 자.”

하진은 다시 벽을 보고 누울까 하다가 그냥 정우를 본 채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아도 어둠 속에서 닿아 오는 시선이 느껴졌다. 아까 가위에 눌린 저를 보며 정우가 악몽이라 말하는 게 다행이었다. 악몽이 아니라 네가 나를 만져주는 꿈이라는 것을 알면 너는 어떤 얼굴을 할까. 그래서 결국 너를 떠올리며 스스로 내 몸을 만진 나를 알면, 너는 그때도 나를 보고 웃어줄 수 있을까.

나에게는 악몽이 아닌데, 너에게는 악몽이 될 거야.

“…….”

눈꺼풀에 덮인 눈동자가 뜨거워졌다. 하진은 몸을 웅크리며 이불 위로 얼굴을 파묻었다. 유난히 긴 밤이었다.

***

오후 6시 아포제의 첫 번째 미니앨범 가 음원 사이트에 등장했다.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한 것은 물론이고, 아포제의 쇼케이스를 생중계해 주는 사이트에는 이미 몇십만 명의 팬들이 접속해 있었다. 뮤직비디오가 반복해서 돌아가고, 세계 각국의 언어로 아포제에 대한 이야기가 올라왔다. 그 뜨거운 관심에 대한 기사는 새로고침을 할 때마다 몇 페이지를 밀려나며 올라오기 시작했다.

8시에 시작하는 쇼케이스를 위해 6시 반부터 팬들의 입장이 시작되었다. 티켓팅에 성공을 한 사람들도 또 음반을 사거나 프로모션에 참여하여 당첨이 되어 온 사람들도 즐거운 얼굴로 자신의 자리를 찾아 앉았다.

신인의 데뷔 쇼케이스치고는 규모가 큰 편임에도 빈자리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공연장이 꽉꽉 차는 동안 멤버들은 대기실에서 벌벌 떨고 있었다. 영우와 해성은 미리 준비해 온 청심환을 하나씩 돌렸고, 평소라면 그런 행동을 웃어넘길 멤버들도 긴장이 가득한 얼굴로 하나씩 나누어 먹었다.

“자, 무대 뒤 대기해 주세요. 5분 남았습니다.”

심장이 미친 듯 뛰었다. 하진은 이어마이크를 하고, 멤버들과 함께 쇼케이스 무대 뒤로 이동했다. 스태프가 와서 폭죽이 터지면, 불이 밝아질 거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그대로 리허설을 했던 거라 무슨 말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자자, 모여 봐.”

3분 남았다는 스태프의 말을 들은 인규가 얼른 멤버들을 불러 세웠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하진은 제 손 위로 정우의 손이 덮이는 것에 입술을 한 번 감쳐물었다.

“연습한 그대로만 하자. 최종 리허설 완벽했고, 우리 오늘 더 잘할 수 있어. 서로를 믿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자. 그리고 잘하자. 아포제 파이팅!”

“파이팅!”

1분 전입니다! 스태프의 말과 함께 각자의 자리로 가 섰다. 하진은 제 옆으로 선 정우를 바라보았다. 정우가 그런 하진을 보며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두근거림이 마음을 뒤덮었다.

“30초 전입니다.”

달리고 달려 여기까지 왔다. 남보다 짧은 시간을 달렸을지도 모르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몇 배로 빠르게 달려 지금 이곳까지 도착했다. 하진은 후회하지 않았다. 저의 선택과 도전을. 그리고 시작될 저의 새로운 세계를.

어둡던 무대에 조명이 확 켜졌다. 팬들의 함성 소리가 들려왔고, 폭죽과 불꽃이 터졌다. 그동안 그렇게도 연습했던 인트로가 흘러나오며 멤버들이 선 곳의 불이 하나씩 켜졌다. 하진은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하진은 데뷔했다. 정우에 대한 그 어떤 감정도 정리하지 못한 채, 무섭고 외로운 마음을 숨기며, 가장 밝은 이 무대에서.

***

쇼케이스가 진행되는 동안 생중계를 하는 곳에 전 세계의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접속을 했다. 7시 3위로 진입을 한 타이틀곡은 8시에 음원 차트 1위로 올라섰고, 멤버들은 그 소식을 쇼케이스 도중 진행자로부터 전해 들었다.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던 인규가 울먹였고, 가장 먼저 눈물을 쏟아낸 사람은 영우였다. 해성은 그런 영우를 놀리다가 같이 눈물을 흘렸다. 하진 역시 자꾸만 나는 눈물을 손으로 꾹꾹 찍어냈다. 눈물을 말리려 하늘을 보기도 하고, 손부채질을 하기도 했지만, 1위라는 기쁨과 무게가 자꾸만 눈물을 만들어냈다.

쇼케이스는 그 어떤 실수도 없이 멋지게 마무리되었다. 관심도나 팬들이 들어온 수만 봐도 대성공이었다. 기자들은 ‘대형 남자 아이돌의 데뷔’라는 타이틀로 아포제를 집중 조명했다. 타이틀곡 <루프탑>은 세련된 멜로디와 중독성 있는 후렴구로 쇼케이스가 모두 끝날 때까지도 1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인규는 결국 10시 차트를 확인하자마자 다시 눈물을 쏟아냈다.

“형 정말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하진은 우느라 고개도 들지 못하는 인규를 안았다. 인규가 그런 하진의 등을 안고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6년이라는 시간은 인규에게 어떤 시간이었을까. 하진은 감히 그 기다림의 느낌을 다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번도 울지 않고 늘 단단히 버티던 인규가 눈물을 쏟아내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다 너희가 잘해 준 덕분이야.”

“무슨 말씀이세요. 형이 잘 이끌어 준 덕분이죠. 힘들어도 형 믿고 여기까지 왔어요. 앞으로 더 잘할게요.”

“고맙다, 정말 고마워.”

인규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하진의 등을 한 번 꽉 끌어안았다. 그리고 울며 달려드는 해성과 영우를 가득 끌어안았다. 하진은 끌어안고 우는 형들을 보며 눈을 세게 감았다가 떴다. 그때 목덜미로 따뜻함이 닿았다. 하진은 순간 놀라 고개를 돌렸다.

“…….”

“…….”

입술이 닿을 만큼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에 정우의 얼굴이 있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정우가 제 어깨에 턱을 올리려고 고개를 숙인 순간과 마주한 모양이었다. 하진은 숨을 쉬는 것도 잊은 채 정우를 바라보았다. 시선이 뒤섞였다. 부모님들과 스태프들이 가득한 대기실 안 소음이 전부 사라졌다. 겨우 눌러 맞춰 둔 심장이 다시 덜컹이며 요란하게 흔들렸다. 제가 존재하는 세상에 정우만 남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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