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제-9화 (9/122)

#09

정우가 해성과 그러고 있는 게 싫은 것이 아니었다. 질투를 해서 해성이 미운 건 더더욱 아니었다. 정우의 손길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 안에 가득했다. 저 크고 따뜻한 손이 저를 안고 위로해 줄 때의 느낌을 알기에 또다시 느끼고 싶었다.

울지 말라고 뺨을 감싸고, 어깨를 쥐고, 피곤해 낮게 잠긴 목소리를 귓가에 속삭이며 허리를 끌어안던 그 손이 저에게 닿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게 전부였다. 하진은 제가 완전히 미쳤다고 생각하며 턱까지 내렸던 마스크를 위로 끌어올렸다.

리허설은 새벽까지 계속되었다. 쇼케이스는 서브타이틀곡 무대를 시작으로 팀 인사, 멤버 개인의 인사, 토크의 순서로 100분 동안 이어질 예정이었다. 데뷔 전 이야기와 곡 이야기, 앞으로의 포부 같은 토크가 끝나면, 수록곡 두 곡의 무대를 한 뒤, 타이틀곡 뮤직비디오가 나오는 동안 의상을 갈아입고 나와 타이틀곡 무대를 하면 끝이었다.

“아포제 멤버들, 내일 오전 11시에 최종 리허설 한 번만 더 하겠습니다. 11시까지 준비 마쳐 주세요.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쇼케이스 연출가가 무대 위로 올라와 공지를 전달했다. 멤버들은 얼른 모자와 마스크를 벗고 연출가와 스태프들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지창을 따라 무대 뒤로 내려왔다.

“드디어 내일이네. 내가 아이돌 데뷔 전담은 처음이라 그런지 엄청 떨린다. 나도 이런데 너희는 오죽할까. 그동안 정말 한순간도 설렁대지 않고 최선 다했으니까 좋은 결과 있을 거야. 벌써 반응도 좋잖아. 앞으로 같이 잘 해보자.”

지창은 멤버들의 어깨를 한 명씩 두드리며 진심을 전해주었다. 하진은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아 눈을 크게 떴다. 눈이라도 부으면 큰일이었다. 앞으로 내내 그래야겠지만, 세상에 처음으로 움직이는 실물을 보이는 내일, 그 어느 때보다도 완벽하고 싶었다. 그래서 울지 않으려 꾹 참았다.

평소라면 숙소로 돌아가는 차 안에 오르자마자 전부 잠이 들 텐데, 오늘은 누구도 잠들지 않았다. 떠드는 소리도, 노래를 흥얼거리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 비현실적이지만 당장 내일로 다가온 현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각자의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하진 역시 짙게 선팅이 된 창밖의 어둠을 바라보았다. 너무 어두워 바깥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시선을 잡고 있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숙소에 도착해 들어가면서도 평소와 다르게 대화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그저 푹 쉬라는 말이 서로를 향한 말의 전부였다. 다들 두려울 정도의 긴장과 설렘에 많은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 말로도 충분히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형 저 먼저 씻을게요.”

“응, 알았어.”

숙소로 돌아가 품이 큰 후드를 벗어 내려놓는 하진의 뒤로 정우가 움직였다. 욕실이 두 개라 다섯 명의 멤버가 욕실을 가지고 다투거나 오래 기다려야 하는 일은 없었다. 이쪽 욕실은 대부분 하진과 정우가, 또 저쪽 방 쪽에 있는 욕실은 인규와 해성 그리고 영우가 주로 썼다.

하진은 정우가 씻는 동안 침대에 걸터앉아 있다가 뒤로 몸을 기울였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입고 있는 티셔츠 밑으로 자연스럽게 손이 들어오는 느낌이 났다. 하진은 움직이지 않는 몸에 달아오른 숨을 내뱉었다. 가위에 눌린 것 같았다.

꿈일까. 이렇게 깨어버린 정신으로 꿈에 갇혀버린 걸까. 하진은 제 몸을 매만지는 손길에 고개를 저었다. 어둠 속으로 정우의 얼굴이 보였다. 순식간의 저의 몸 위를 덮고, 고개를 내린 정우가 그대로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마른 입술이 목덜미에서 벌어졌다. 그리고 혀가 나와 목덜미를 부드럽게 핥았다. 하진은 고개를 저었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흐읏…….”

다물렸던 입술이 벌어지며 작고 가느다란 신음이 흘렀다. 정우의 손이 허리 부근을 매만지다가 조금 더 위로 올라왔다. 안 돼, 머리 안으로 떠오른 말은 소리로 맺히지 못했다. 입술이 맞물렸기 때문이었다.

매끄럽게 혀가 문질렸다. 어설프게 숨을 쉴 때마다 정우에게서 나는 좋은 향이 몸속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다. 하진은 제 혀를 빨아주며, 유두를 손끝으로 집어 매만지는 손길에 정신도 차리지 못하고 무너졌다.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아는데 너무 좋아 견딜 수가 없었다. 밀어내려고 해도 압도적인 그 힘을 밀어낼 수 없었다. 그렇게 유두를 만지던 손이 트레이닝팬츠 안으로 확 들어와 성기를 쥔 순간.

“형, 하진이 형, 형!”

하진은 눈을 떴다. 그리고 저를 바라보고 있는 정우와 눈이 마주쳤다. 젖은 머리칼과 같이 쓰는 바디워시 향이 확 끼쳤다.

“악몽 꿨어요? 가위눌렸나. 땀 좀 봐요.”

정우의 손이 하진의 이마에 닿았다. 정우의 그 손끝이 닿은 순간 하진은 어깨를 움츠렸다. 몸이 달아올라 있었다. 믿을 수 없게도 정우의 손이 닿자마자 다리 사이가 저릿거렸다. 하진은 몸을 일으키며 다리를 오므렸다. 타이트한 팬츠가 아니라 다행이었다.

“그, 그런가? 깨워 줘서 고, 고마워. 나, 나도 빨리 씻고 올게!”

하진은 애써 웃음 지으며 얼른 갈아입을 옷을 아무렇게나 챙겨 들고 방을 나섰다. 그리고 욕실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미쳤다. 정말 미친 게 틀림없다. 미치지 않고서는 이럴 수가 없었다. 어떻게 정우를 상대로 이런 꿈까지 꾼다는 말인가.

아직도 몸 곳곳에 정우의 손길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입안을 헤집던 뜨거운 혀, 유두를 만지던 손끝, 목덜미를 핥던 느낌과 성기를 움켜쥐던 그 뜨거움이 동시다발적으로 하진을 두드렸다. 하진은 고개를 세게 젓고, 얼른 옷을 벗었다. 이 말도 안 되는 감정과 생각들을 다 씻어버리고 싶었다.

“…….”

그렇게 샤워 부스 안으로 들어간 하진은 이미 그 안에 가득 찬 축축하고 향긋한 습기에 떨리는 숨을 내쉬었다. 휘말리지 않으려고 따뜻한 물을 확 틀었다. 머리 위로 쏟아져 온몸을 적시며 흐르는 물줄기가 꼭 조금 전 느낀 정우의 손길 같았다. 하진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도저히 떨칠 수가 없었다.

이 안에 정우와 같이 쓰는 샤워바스 향이 가득했다. 저를 내려 보던 시선이 떠올랐다. 젖은 머리칼, 제 얼굴 위로 드리워진 차정우의 그늘.

“흐으…….”

손이 결국 다리 사이로 움직였다. 미쳤다. 미쳐버렸다. 이제 돌이킬 수가 없었다. 이미 반쯤 발기한 성기를 감싸 쥔 하진이 눈을 감았다. 몸을 조금 뒤로 해 물줄기가 머리 위로 쏟아지지 않는 곳에 선 채 부드럽게 성기를 매만졌다. 정우라면 어떻게 만져줄까. 그 크고 따뜻한 손이 감싸 쥐는 느낌은 어떨까.

“아… 하으, 으응…….”

아무리 물소리가 난다지만, 신음까지 내고 싶지 않아 하진은 입술을 아플 만큼 꽉 깨물었다. 아픔이 쾌감을 도우며 번졌고, 하진은 감은 눈 속 어둠에서 정우를 만들어냈다. 전부 벗은 저의 몸을 바라보는 정우의 시선, 손을 뻗어 몸을 매만지고, 성기를 움켜쥐는 그 손가락을 떠올렸다.

「형, 하진이 형.」

쏟아지는 목소리, 좋은 향과 체온. 하진은 그대로 사정했다. 원래도 성적인 생각을 그리 즐기지 않지만, 기획사에 연습생으로 들어온 뒤에는 더욱 그랬었다. 아예 그쪽으로 생각을 할 여유도 없었고, 자위를 할 시간도 없어 가끔씩 씻으며 의무적으로 했을 뿐이었다. 떠올리는 대상도 무엇도 없었다. 누군가를 이렇게 분명하게 떠올리며 자위한 것이 처음이라 죄책감이 너무나도 컸다.

“하아…… 하아….”

쏟아지는 숨과 수챗구멍 안으로 사라지고 없는 말간 점액질. 정우를 떠올리며 사정했다는 사실 그 자체가 하진을 바닥으로 확 끌어 내렸다.

“…사람도 아니야.”

제정신이 아니야. 하진은 그대로 다리를 구부려 앉았다. 몸을 앞으로 동그랗게 말며 고개를 숙이니 다시 물줄기가 머리 위로 쏟아졌다. 그냥 이대로 물에 잠겨 죽고 싶었다.

5개월 동안 모두가 안 될 거라는 도전을 했고, 결국 데뷔 조에 들었다. 그리고 6개월이라는 시간을 하루도 허투루 쓰지 않고 열심히 준비해 왔다. 그 시간들이 빛을 보기 바로 전날이었다. 아니, 이제 오늘이었다. 그렇게 다섯 명이 죽어라 모든 것을 바쳐 준비한 그날에 저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질러버린 것이었다.

“…….”

미쳤다고, 제정신이 아니라고 내내 자책을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하진은 그렇게 내내 밀어내고, 부정하던 마음과 강제로,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마주했다.

그룹 아포제 데뷔일 새벽의 일이었다.

***

욕실에서 나온 하진은 방이 아니라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정우와 마주쳤다. 정우는 하진이 나오자 벌떡 일어나 다가왔다. 혹시 다 들은 건 아닐까 싶었다. 크게 소리를 내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정우가 거실에 있어 신경이 쓰이고, 죄책감이 더 크게 다시 밀려들었다.

“안 잤어? 자는 줄 알았는데…….”

“형이 너무 안 나와서요. 물소리는 나는데 안 나와서 쓰러진 거 아닌가, 문을 열고 들어가야 되나 고민하던 중이었어요.”

“불러보지 그랬어.”

“무서워서.”

“뭐가?”

“형 진짜 쓰러졌을까 봐.”

정우는 이렇게 다정하고 착한 동생이었다. 저의 이런 불순한 마음을 알면 어떻게 될까. 그때도 저렇게 저를 보며 웃어줄 수 있을까. 하진은 웃으며 정우에게 다가갔다.

“저번에 한 번 쓰러졌다고 내 체력 무시하는데 나 우리 멤버들 중에 제일 건강하거든. 그런 걱정 안 해도 돼.”

“아, 형 강철 강 씨랬지.”

“그래, 그러니까 걱정 안 해도 돼.”

“그럼 다행이구요. 배 안 고파요?”

부엌으로 가는 정우를 본 하진이 수건으로 머리 물기를 문지르며 뒤를 따랐다. 정우는 냉장고를 열어 우유를 꺼내 들었다. 그것을 본 하진이 자연스럽게 식탁 위에 놓인 시리얼 통을 집어 들었다.

정우가 시리얼 볼 두 개를 꺼내 들었고, 하진은 그 시리얼 볼 안에 고소한 것과 달콤한 것을 적당하게 섞어 담았다. 정우 것에는 달콤한 것의 비율을 조금 더 높게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하진이 그렇게 담는 것을 본 정우가 마지막으로 저지방 우유를 따랐다. 그사이 스푼을 준비하는 것은 하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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