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형.”
“나 아파…….”
“…울어요?”
하진은 눈동자가 확 뜨거워지며 넘치는 느낌에 눈을 감았다. 눈가가 젖어 들며 눈물이 흘러내렸다. 차라리 몸이 힘들어서, 데뷔에 대한 과한 스트레스 때문에 이런 거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정우를 편하게 보지 못하고, 정우의 행동 하나하나에 과민하게 반응하는 게 싫었다. 다시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마음이 흔들리기 전으로, 정우를 봐도 그저 귀엽고 든든하기만 하던 그때로.
“힘들었구나, 우리 형.”
“…….”
“미안해요. 내가 형한테 더 잘했어야 됐는데.”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내가, 내가 이상해서 그래.”
내가 혼자 변해서 그래. 내 마음이, 내 생각이 달라져서 그래. 그러지 않으려고 하는데 멈출 수가 없어서 그래. 하진은 차마 소리 내어 이을 수 없는 말들을 삼키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눈물을 닦아주는 정우의 손길에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가서 연습해. 나 때문에 시간 뺏기는 거 싫어.”
하진의 말에 정우는 미간을 구기며 인상을 썼다. 그것은 화가 아니라 서운함이었다.
“여기 억지로 있는 거 아니에요.”
“…그런 말이 아니라…….”
“왜 그렇게 서운한 말을 해요. 나 아프면 형은 가서 연습할 수 있어요?”
“…미안해. 화내지 마. 잘못했어.”
하진의 말에 정우는 누그러진 표정으로 다시 눈물이 넘친 그 눈가를 부드럽게 문질러 닦아주었다.
“화 안 났어요. 속상해서 그래요. 형 아프니까.”
“…….”
정말 정우를 낯선 감정으로 좋아하는 걸까. 단순히 멤버로, 동생으로 좋아하는 게 아닌 것 같았다. 다른 형들도 전부 좋아하지만, 정우를 보면 느껴지는 감정들은 생기지 않았다. 두근거림이 없고, 설레지도 않았다. 귓가가 뜨거워지지도, 눈을 제대로 보지 못하겠는 그런 일도 없었다. 하지만 정우에게는 그 모든 것들이 일상처럼 생겨나 버렸다.
“…나 이제 괜찮은데, 가면 안 돼?”
“이거 다 맞을 때까지는 있으랬어요. 이제 좀 괜찮아요?”
“…응. 괜찮아.”
네가 있어서 괜찮아. 그리고 또 괜찮지 않아. 하진은 울지 말라며, 제 눈가를 부드럽게 닦아주고, 내내 머무는 정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마구 흔들리는 마음을 누르고 또 눌렀다. 마음을 덮은 손바닥이 들썩들썩 거렸다. 거센 그 움직임을 언제까지 막고 서 있을 수 있을까.
차라리 생각이 나지 않도록 잠드는 게 나을 것 같아 다시 눈을 감았다. 하지만 수액을 다 맞을 때까지 하진은 결국 잠들지 못했다.
***
아포제 데뷔 20일 전부터 티저가 공개되었다. 앨범에 실린 사진 중 가장 잘 나온 사진과 실리지 않은 미공개 사진 중 가장 잘 나온 사진이 거리에 걸렸다. 지하철역과 버스정류장, 옥외 간판과 스크린에도 아포제의 데뷔 임박을 알리는 영상들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D-20이라는 문구와 함께 시작되는 티저가 메인 동영상 사이트에 뜬 순간부터 기사가 넘쳐났다. 조회 수가 미친 듯 올라갔고, 댓글이 넘쳐났다. 아포제 멤버들은 회의실에 모여 그 티저 공개 현장을 지켜보았다. 벽에 붙은 대형스크린 세 개가 동시에 모든 것들을 보여주었다. 하나는 티저를, 또 하나는 조회 수가 올라가는 추이를, 그리고 또 하나는 댓글들을 분리해서 보여주었다.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도 반응이 좋은데? 알지. 우리 늘 기준 높게 잡는 거. 이제 카운트다운 보름 전부터 티비 광고 들어갈 거고, 열흘 남았을 때부터 리얼리티 예고, 개인 이미지 티저, 개인 영상 티저, 팀 티저 풀릴 거야. 그리고 음원 공개와 동시에 뮤직비디오 오픈될 거고.”
늘 준비만 하던 것들이 세상이 풀리기 시작하자 무섭기도 하고, 짜릿하기도 했다. 늘어나는 조회 수와 댓글이 굉장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쇼케이스 준비 시작할 거야. 뭐 곡들 연습이야 그동안 계속해서 어려울 게 없지만, 연습실에서 하는 것과 무대에 가서 하는 건 또 굉장히 다르거든. 리허설은 전날 밤에 한 번, 당일 오전에 한 번 할 거야. 그전까지는 기획사 공연 홀에 가서 실전처럼 연습할 거야. 이제 정말 데뷔 코앞이니까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잘들 하자.”
회의실 안으로 단단한 대답 소리가 울렸다. 하루가 정말 어떻게 지나는지도 모를 만큼 바빠 힘들기도 하지만, 이렇게 시작이 좋다는 평가를 받으니 기분이 좋았다.
“자, 그럼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쉬어.”
“정말요? 그래도 돼요?”
“그동안 정말 많이 고생했어. 내일부터 다시 데뷔 일까지, 아니, 데뷔앨범 활동 마무리할 때까지 제대로 쉴 시간 없을 거니까 오늘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잠도 푹 자고 해. 쇼케이스 준비하는 것도 그거 쉬운 일 아니니까.”
해성과 영우의 감격에 찬 환호에 데뷔 프로젝트팀 사람들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진은 얼른 정우와 같이 일어나 회의실을 나가는 직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또 했다.
“자, 우리도 퇴근하자.”
그리고 인규의 즐거운 목소리를 들으며 가장 마지막으로 회의실을 나섰다. 해가 지지도 않았는데 퇴근을 한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해가 뜰 때 숙소로 간 적은 있지만, 지난 몇 개월 동안 정말 해가 떠 있을 때 숙소에 간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숙소로 가는 차에 오른 하진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제 옆으로 올라 문을 닫는 정우를 바라보았다. 이제 거의 지정석이나 마찬가지였다. 뒤에 앉고 싶다는 인규의 선택을 중심으로 각자 원하는 자리를 골랐다. 그래서 하진과 정우는 형들이 모두 탄 다음 문 옆 자리에 앉게 되었다.
“와, 우리 실검 1위야. 아, 무서워. 미치겠다. 아, 나 진짜 갑자기 무대울렁증 생긴 것 같아.”
“형, 이영우 빼요, 우리.”
세상에 티저가 공개된 이후, 정말 시작되었다는 기분에 모두가 긴장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긴장된 분위기를 상쇄하고자 영우와 해성이 한껏 분위기를 띄웠지만, 잠시 웃음이 퍼질 뿐 완전히 두려울 정도로 긴장된 분위기를 풀 수는 없었다.
“이것 봐요. 형 실검 2위예요. 강하진.”
“못 보겠어. 진짜 너무 떨려. 나 아까 티저도 눈 감고 봤어.”
“눈 감고 어떻게 봤어요?”
“마음의 눈으로?”
“내가 진짜 형 때문에 못 살겠어.”
귀엽다는 듯 손을 뻗은 정우가 손가락으로 하진의 양쪽 볼을 잡고 꾹꾹 눌렀다. 그렇게 눌러 입술이 앞으로 튀어나온 하진을 본 정우가 소리 내어 웃으며 갑자기 얼굴을 확 가까이 가져왔다.
“아, 진짜 형 너무 귀여워.”
순간 입술이 닿을 것 같아 하진은 정우의 어깨를 밀며 몸을 확 뒤로 빼냈다. 창문의 서늘한 기운이 머리 뒤로 닿아 왔다. 너무 급히 뒤로 피해 순간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하진은 당황한 것 같은 정우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 분위기를 정리할 말들을 찾기 시작했다.
“다, 닿는 줄 알았잖아. 놀래라.”
하진은 어색하게 웃으며 괜히 빈손만 만지작거렸다. 심장이 엉망으로 뛰고 있었다. 정우의 얼굴이 다가오는 순간 심장이 고정되어 있지 못하고 아래로 떨어졌다. 더 이상 붙어 있을 수 없어 마구 이리저리 흔들리고 난리였다.
수습, 그래 수습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제가 너무 매몰차게 밀어내서 정우의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 하진은 얼른 창에 붙이고 있던 등을 떼며 정우에게 가까이 몸을 기울였다.
“형 요즘 변했어요.”
“왜 그래… 미안해, 응? 진짜 순간 너무 놀라서 그랬어.”
“내가 키스라도 할까 봐요?”
“어? 그런 건 아니지만…….”
정우의 입에서 나온 키스라는 말에 귀 끝이 뜨거워지는 느낌이 났다. 늘 어둡던 차 안이 밝아 낯설었다. 이렇게 뜨거운데 빨개지지는 않았을까. 정우에게 들킬까 봐 겁이 났다.
“한 번만 봐주라.”
하진은 얼른 정우의 팔을 끌어안고, 늘 정우가 그러는 것처럼 그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전이라면 아무렇지도 않은 행동이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 속이 답답하고, 몸이 벌벌 떨렸다. 엉망으로 뛰는 심장은 이제 어떻게 손을 쓸 방법도 없었다.
“알았어요. 또 내가 져준다.”
“착해, 우리 막내.”
누그러져 부드러워진 목소리에 하진은 잠시 더 머리를 기대고 있다가 살짝 몸을 떼어냈다. 화끈거림도 옮는 걸까. 귀 끝에서 온몸으로 퍼진 화끈거림에 하진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엉망으로 흔들리는 마음을 제자리에 가지고 가 누르고 또 눌렀다.
***
멤버 개인의 이미지 티저와 영상 티저가 차례로 공개되며 날마다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했다. 관심을 끌기 위해 제일 먼저 센터인 정우의 티저가 공개되었고, 그야말로 엄청난 관심이 쏟아졌다.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는 반응부터, 저 얼굴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냐는 말까지 포털 사이트 기사 댓글을 점령했다.
단순 이미지뿐만이 아니라 정우의 얼굴이 움직이고, 압도적인 피지컬로 춤을 추는 영상 티저가 공개되자 그 반응은 더욱 뜨거워졌다. 솔직히 사진이야 포토샵으로 건드리면 되니까 어느 정도 사기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영상을 보니 사기가 아닌 게 확실하다며 정우의 외모에 감탄하는 댓글들이 줄을 이었다.
그렇게 정우를 시작으로 인규, 해성, 영우의 티저가 차례대로 올라왔다. 올라오는 날마다 각 멤버가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했고, 한영엔터에서도 그 반응들을 분석하며 그래프로 뽑아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개된 멤버는 하진이었다. 서로 다른 분위기를 가졌지만, 그래도 비주얼 우열을 가릴 수 없는 투톱을 맨 앞과 뒤로 배치해서 관심의 이탈을 줄이자는 계획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먹혀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하진의 티저가 공개되자 아포제에 대한 기대감과 하진의 예쁘고 잘생긴 얼굴에 조회 수와 댓글이 폭주했다. 딱히 마케팅을 위해 소속사에서 기사를 쏟아내지 않아도 될 만큼의 어마어마한 반응이었다. 하진은 티저가 공개된 자정부터 그다음 날 자정까지 24시간 동안 메인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유지했다.
“와… 내일 여기서 데뷔한다고?”
“…대단하다.”
소속사 전용 공연 홀에서 수도 없이 리허설을 했지만, 실제로 오천 명이 운집할 공연장에 와서 보니 생각보다 훨씬 더 크고 대단했다. 좌석이 뒤로 끝도 없이 보이고, 정말 이게 다 찰까 싶을 정도로 넓었다.
“미치겠다. 한 명도 안 오는 거 아냐?”
“티켓 다 팔렸다던데요. 기사 봤어요.”
“진짜?”
“네. 근데 실감이 또 갑자기 안 나요. 여기가 꽉 찬다는 게 뭔지 모르겠어요.”
“나도. 정우야 우리 어떡해. 우리 데뷔하나 봐.”
해성이 비련의 주인공처럼 정우의 품에 과장되게 안겨 흑흑 소리를 내는 것에 영우가 쓰고 있던 마스크를 내리며 웃었다. 하진은 정우의 웃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큰 손이 해성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고 있었다. 그게 얼마나 따뜻한지 알기에 괜히 마음이 오목해졌다. 말도 안 되고, 답도 없는 감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