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제-7화 (7/122)

#07

아포제 데뷔 D-60일이 되자 더욱 구체적인 케어가 시작되었다. 한 달에 한 번쯤 다니던 피부과를 일주일에 한 번씩 가게 되었고, 헬스 트레이너 형의 PT 강도 또한 더욱 세졌다. 한 번 PT를 받고 나면 다리가 후들거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강도였다.

인규는 그것을 묵묵히 해냈고, 해성과 영우는 죽는 소리를 내며 PT 후에 한참이나 바닥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하진은 힘들지만,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기에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모든 트레이닝을 받았다. 저러다 쓰러지는 거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릴 정도로 열심이었다.

“좋아. 점점 자연스러워지네.”

카메라 테스트도 일주일에 한 번씩 기획사 안 스튜디오에서 이루어졌다. 소속 연예인들이 다니는 헤어샵에 가서 머리를 만지고, 과하지 않은 기본적인 메이크업을 받았다. 그리고 스튜디오에서 반나절 정도 여러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촬영했다.

“여기서는 잘해도 막상 생방송 이런 데뷔 무대에 서면 또 긴장 하게 되어 있어. 그건 어쩔 수 없어. 누구나 큰 무대에서는 긴장을 하니까. 그래도 너희 진짜 많이 자연스러워졌으니까 걱정하지 마. 두 달 남았잖아. 두 달이면 더 좋아질 거야. 자, 그럼 이쯤에서 우리 얼마나 발전했나 해성이 첫 테스트 영상이랑 비교 한 번 해볼까?”

포토그래퍼의 말에 해성이 비명을 지르며 손을 뻗었지만, 이미 벽면의 큰 스크린으로 잔뜩 경직된 해성의 영상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해성은 고개를 숙이고 귀를 막으며 이상한 소리를 마구 해댔다. 자신의 지난 영상 소리 하나도 듣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멤버들은 잔뜩 굳은 해성이 말을 더듬고, 포토그래퍼의 눈치를 보는 것을 보며 웃기 시작했다. 남 일이 아니라 웃으면 안 될 것 같은데 그래도 웃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영우는 아예 바닥으로 엎드린 채 웃고 있었다.

“자, 이렇게 내 눈치만 보던 해성이가 이렇게 변했어.”

처음으로 찍었던 영상이 멈추고, 오늘 촬영한 영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표정이며 분위기, 카메라를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잘생긴 얼굴과 여유가 묻은 동작 하나하나가 딱 아이돌처럼 보였다. 멤버들은 그런 해성을 보며 박수를 쳤다. 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만큼 대단한 발전이기 때문이었다.

“아, 형… 제발 아까 그거 삭제해 주세요.”

“안 돼. 이거 너희 리얼리티에도 들어갈 거고, 팬 미팅 때도 자료화면으로 쓸 거고, 앞으로 계속 따라다닐 거야.”

“와, 미쳤다. 그걸요? 백만 안티 생기잖아요.”

“새로운 조해성의 모습에 다 좋아할걸.”

“저 새로운 거 싫어요. 와, 그건 진짜 아닌데…….”

해성의 말에 다시 웃음이 터졌다. 그렇게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카메라 테스트를 마친 멤버들은 다시 연습실로 내려갔다. 하진은 아주 기본적인 메이크업만 한 정우를 흘끗 바라보았다. 카메라 테스트를 받는 동안에도 내내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만큼 오늘 정우의 분위기와 비주얼은 정말 완벽했다.

“정우랑 하진이는 지금 바로 데뷔해도 되겠다. 아니, 비주얼 둘 다 대박인데, 둘이 진짜 다르게 생기지 않았어? 너무 신기해. 어떻게 또 분위기가 저렇게 다르지.”

연습실에 들어서자마자 뒷걸음을 치며 정우와 하진을 바라본 영우와 해성이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진이 너는 그렇게 생겨서 아이돌 안 하고, 대학 다녔으면 어쩔 뻔했어.”

“어쩌긴. 한국대 아이돌로 사는 거지.”

“그건 얼굴 낭비지. 우리 하진이 얼굴이면 나라 하나쯤 망하게도 만들 텐데.”

해성과 영우가 만담처럼 주고받는 말에 소리 내어 웃은 하진이 얼른 둘의 앞으로 다가갔다.

“망하게 하면 안 되죠. 팀도 망할 텐데요?”

“너랑 정우 비주얼이 딱 센터에 버티고, 우리 인규 형 딱 계셔 주시면 우리 팀 안 망해. 조해성이 입만 안 털면 무조건 된다.”

“형은요?”

“야, 강하진 실망이야. 나를 조해성 급으로 보고.”

다시 연습실 안으로 웃음이 터졌다. 물을 마시며 웃던 인규가 박수를 치며 가운데로 와 집중하게 만들었다.

“이제 안무팀 와서 우리 타이틀곡 안무 수정된 부분 보여준다고 하니까 준비하자. 수정된 거 다시 익히고, 동선 체크하고 하려면 우리 진짜 시간 없어. 이걸 다 해야 뮤비 촬영도 하지.”

타이틀곡과 서브타이틀곡의 안무 중 살짝 수정을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이 나왔고, 결국 조금 수정을 하기로 했다. 오늘은 그 수정된 안무를 다시 보고 배우는 중요한 일정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무가와 안무팀이 들어와 전면 거울 앞에 섰다. 하진은 자리를 잡는 안무팀을 정면에서 바라보았다. 정우가 그런 하진의 뒤로 와 허리를 끌어안았다. 하진은 순간 숨도 쉬지 못한 채 굳어버렸다.

“…….”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옆에 선 해성도 인규의 뒤에 서서 어깨에 턱을 올리고 있었다. 워낙 친하다 보니 멤버들 사이에 이 정도 스킨십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행해졌다. 왜 이런 당연했던 일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색하게 굴고 있는 걸까. 하진은 스스로를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수정된 안무는 훨씬 더 멋있었지만, 그만큼 복잡했다. 곡이 진행되는 3분 36초 동안 단 한 번도 쉬는 순간이 없어 보일 정도였다. 이걸 다시 익히려면 또 밤을 새야 할 거고, 그만큼 피곤해지겠지만 그래도 해야만 했다. 얼른 익혀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들끓었다.

모든 관심과 시선이 데뷔 조에 몰려 있고, 데뷔 조를 성공시키기 위해 모두가 고생하고 있기에 반드시 최고가 되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멤버들이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반드시 최고가 되고 싶었다. 아포제라는 팀 이름이 무색하지 않도록, 가장 높은 자리에 앉고 싶었다. 그래서 그 어느 순간에도 팀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죽어라 연습했다. 지금은 개인의 마음보다 팀을 위한 헌신이 가장 중요한 때였다.

하진 역시 그렇게 생각하려고 애썼다. 지금 중요한 것은 완벽한 데뷔였다. 단 하나의 실수도 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의 우려와 비난 같은 것들을 받고 이 자리에 선 만큼 누구보다도 완벽하고 싶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 도전한 제가 결국은 데뷔 조에 들어왔다. 그런 만큼 지금은 데뷔에만 온 신경을 쏟는 게 맞았다. 다른 생각을 하는 자체가 이상한 것이었다. 그래, 다른 생각은 하지 말자. 하진은 몇 번이나 스스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오늘도 내일 아침이나 돼야 숙소 들어가겠네요.”

듣기 좋은, 심장이 두근거릴 만큼 멋진 목소리가 귓가에 흘러들었다. 하진은 여전히 저를 뒤에서 끌어안고 있는 정우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일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닐 것이었다. 그냥 정우가 너무 가까워서, 그래, 그냥 정우가 너무 갑자기 가깝게 얼굴을 가져와서 놀랐을 뿐이었다.

날마다 같은 기분일 수 없고, 같은 감정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냥 데뷔가 코앞으로 다가오고, 해야 할 일은 많아서 감정이 예민해졌을 뿐이었다. 그래, 그럴 것이었다.

“…….”

아무것도 아니라고, 정말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냥 사소한 오늘의 감정일 뿐이라고. 정우의 파고드는 목소리에 떨어지는 심장도, 끌어안은 두 팔에 힘이 들어갈 때마다 마구 흔들리는 세상도 외면한 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지금 이 흔들림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래야만 한다고.

***

데뷔 30일을 앞두고 시작된 뮤직비디오 촬영은 사흘이나 계속되었다. 총 일곱 개의 세트에서 촬영을 하고 또 했다. 총 일곱 벌의 의상이 준비되었고, 헤어도 의상에 따라 바뀌었다. 첫 뮤직비디오 촬영 때가 정말 힘들다는 말을 들어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든 과정이었다.

사흘 동안의 촬영을 마치고 나자 이제 정말 데뷔가 코앞이라는 게 실감되었다. 자면서도 손을 허우적댈 정도로 많이 연습한 곡이었지만,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앞에 휴대폰을 두고 동영상을 찍으며 몇 번이고 모니터를 했다. 1초, 1cm의 오차도 견딜 수가 없었다.

데뷔 일이 다가올수록 그 강박은 더욱 심해졌다. 쓰러질 때까지 연습하고 또 했다.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지만, 거기에 알 수 없는 감정까지 더해진 하진은 더욱 연습에 매진했다. 미친 듯 연습을 해야 땀을 흘리고,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힘이 들어야 정우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저에게는 방법이 없었다.

“형, 지금 반 박자 느리게 들어간…… 형!”

내가 반 박자 늦었나. 하진은 정우의 얼굴이 흐릿해지는 것에 눈을 깊게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뜬 순간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데뷔 조에 들기 전 거의 날마다 밤을 새우며 연습을 해도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았던 하진이 쓰러졌다는 소식에 회사가 발칵 뒤집혔다. 혹시 무슨 병이 있는 건 아닌지, 그래서 데뷔가 어려운 건 아닌지 여러 걱정들이 튀어나왔지만, 다행히 의사는 피로 누적과 스트레스, 탈진이라는 대답을 해 주었다. 그리고 수액을 놓아 주었다.

“나 회의가 있어서 회사 들어갔다가 와야 할 것 같은데 누구 한 명만 나 올 때까지 있어 줘라. 누가 있을래?”

매니저의 말에 정우는 그 어떤 머뭇댐도 없이 손을 들었다.

“제가 있을게요.”

“그래, 그럼 정우가 있고, 너희는 가자. 하진이 쉬어야 된다니까. 정우야,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네.”

형들이 나가는 것을 본 정우는 침대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의자를 조용히 당겨 앉았다. 이렇게 창백하고 아파 보이는 얼굴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늘 밝았고, 웃기만 해서 이렇게 쓰러질 정도로 힘들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정우는 꽉 조여드는 마음으로 힘없이 잠이 든 하진의 얼굴을 그렇게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

하진은 수액이 반쯤 들어갔을 때 눈을 떴다. 낯선 곳이지만, 여기가 병원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연습실에서 그대로 몸에서 힘이 쭉 빠져 쓰러지던 것을 기억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눈을 뜨고 말을 할 수는 없었지만, 매니저 형과 멤버들의 걱정하는 목소리를 잠시 듣기도 했었다.

“깼어요? 좀 괜찮아요?”

“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진은 고개를 돌려 저를 바라보고 있는 정우의 얼굴과 마주했다. 걱정이 잔뜩 묻은 얼굴에 마음이 또다시 흔들렸다.

“…안 괜찮은 것 같아.”

몸이 아니라 마음이.

“많이 아파요? 의사 선생님 부를게요.”

“정우야…… 나 이상해.”

너를 보면 마음이 막 흔들려. 머리 안이 하얗게 변하고, 전처럼 아무렇지 않게 대할 수가 없어. 너는 그대로인데, 내가 달라졌어. 달라지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 돼.

나 정말 이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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