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제-4화 (4/122)

#04

“강하진 아무리 봐도 오 실장 이거야.”

“얼굴 보고 반해서 데려왔다고 오 실장이 지 입으로 말했잖아. 내가 들었다니까.”

“둘이 열여덟 살 차이 나지 않냐? 더럽게.”

“어리니까 더 좋아하겠지. 아, 우리 기획사는 몸 팔아 들어온 애 없어서 좋았는데.”

들려오는 소리에 문을 열려던 하진의 손에서 힘이 쭉 빠졌다. 오태근 실장님이 캐스팅한 것도 맞고, 많은 조언을 들은 것도 맞았다. 아이돌 쪽으로 한번 해 보면 어떻겠냐고 이야기를 해주신 분인 것도 맞고, 오 실장님의 그 믿음과 말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것도 맞았다. 하지만 저런 이야기를 들을 행동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아니, 저렇게 일 대 일로 트레이너 붙여서 해주는 게 말이 되냐고. 저 나이에 아이돌 하겠다고 들어왔을 때부터 존나 이상하다 했어.”

“매일 붙어먹었다던데. 밤마다 실장실에서 나오고.”

하진은 다시 안에서 들려오는 말에 쥐고 있던 손잡이를 놓았다. 그리고 뒤에 선 정우를 바라보았다.

“휴게실 더 있다 올까?”

“아니요. 왜 피해요? 진짜라서?”

“그런 거 아니야!”

다른 애들에게 오해받는 것도 싫지만, 정우에게 오해받는 건 정말 싫었다. 하진은 어떻게든 정우에게만큼은 절대 사실이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정우마저 오해를 한다면 정말 더는 버티기 힘들 것 같았다. 그만큼 간절했다.

“알아요. 형 밤마다 나랑 있었잖아요.”

“…….”

“나랑 붙어먹었다고 그러면 이해하겠는데, 실장실은 너무 갔는데.”

“…오해하는 거 아니지?”

“내 생각, 중요해요?”

“…응.”

정우는 손에 들고 있던 빈 콜라 캔을 꽉 구겼다. 그리고 연습실 앞 구석에 놓인 쓰레기통에 아무렇게나 처박고는 연습실 문을 활짝 열었다. 하진에 대해 신나게 루머를 퍼뜨리던 놈들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하진은 정우가 성큼성큼 모여 앉은 연습생들을 향해 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나도 작년에 왔을 때, 일 대 일로 트레이닝 받았었는데.”

“…….”

“그리고 하진이 형 한 달 동안 나랑 매일 밤 같이 있었어.”

“…….”

“차라리 나랑 붙어먹었다고 그래라. 그게 더 그럴듯하잖아.”

그렇게 잘 떠들던 연습생들 중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주먹질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이유를 불문하고 먼저 폭력을 행사한 사람은 무조건 영구 퇴출이라는 것을 알기에 참는 중이었다. 정우는 웃음기 없는 얼굴로 둘러앉은 여섯 명의 연습생을 바라보았다.

“억울하면 이럴 시간에 연습이나 해.”

그대로 휙 몸을 돌린 정우가 문을 잡고 선 하진을 바라보았다.

“뭐해요, 형. 들어와요. 연습해야지.”

“아……. 응!”

하진은 얼른 안으로 들어갔다. 정우의 옆 바닥에 모여 앉아 있던 연습생들이 일어나 이리저리 흩어졌다. 저에게 닿는 시선들이 한 번씩 느껴졌지만, 하진은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신경이 하나도 쓰이지 않았다.

“고마워, 정우야.”

“뭐가요. 내 생각 중요하다 그래서 말해준 거예요.”

“나 진짜 엄청 감동했어.”

“뭐 그런 걸로 감동까지 해요. 형이 매일 나랑 같이 있었고, 실장실 근처에도 간 적 없는 거 아니까 대신 말해 준 것뿐이에요. 이런 분위기에서 연습하는 거 싫어서.”

“그래도 고마워….”

“왜 울 것처럼 그래요.”

툭 건드려도 울 것 같은 얼굴의 하진을 본 정우가 손을 들어 하진의 눈가를 손끝으로 살짝 눌렀다. 그동안 참고 있었던 건지 눈물이 정말 툭 터져 나와 정우의 손끝을 적셨다. 정우는 조금 놀란 눈으로 하진을 바라보았다. 이런 얼굴로 평범하게 살려고 했다는 걸 믿을 수 없을 만큼 예쁜 얼굴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우는 것까지 이렇게 예쁠 필요가 있나 싶었다.

“미안해. 갑자기! 안 그러려고 했는데.”

하진은 저 때문에 정우의 손이 젖은 게 미안한지 얼른 고개를 숙이고 손등으로 눈가를 마구 문질렀다. 정우는 눈물로 젖은 손가락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손을 내려뜨렸다. 젖은 축축한 손끝이 이따금 화끈거렸다.

“연습하자, 연습!”

“…네.”

정우는 언제 울었냐는 듯 웃으며 거울 앞에 서서 몸을 푸는 하진을 가만히 눈에 담았다. 손끝을 흠뻑 적신 그 눈물이 말라 모두 사라질 때까지 그렇게 멈춰 선 채.

***

낯설던 것이 낯설지 않아지고, 어색하던 것이 어색해지지 않게 되자 하진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안무를 하면 어색해 보이던 몸은 완전히 적응을 해서 자연스럽게 변했고, 발성 또한 탁 트여 굉장히 듣기 좋은 소리를 냈다.

결국 월말평가에서는 B라는 높은 등급을 받아 부러움과 시기를 동시에 받았다. 그리고 연습생이 된 지 석 달이 됐을 때, 하진은 테스트에서 전체 A등급을 받아냈다.

영상을 보며 안무를 따는 것도 속도가 붙었고, 새로 무언가를 알려주면 전부 자기 것으로 흡수해 내는 능력도 뛰어나 전부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여전히 오태근 실장이 뒤를 봐주고 있다는 말이 하진을 괴롭혔지만, 눈에 보이는 실력이 너무나도 뛰어나서 소문들은 큰 힘을 얻지 못했다.

“아, 이번에 데뷔 못 하면 진짜 끝인데.”

“미치겠다, 진짜.”

내년 초에 새로운 보이그룹을 데뷔시킬 거라는 말은 들었지만, 정말 그 찌라시가 돌기 시작하자 연습생들도 술렁이기 시작했다. 다른 기획사도 아니고, 아이돌 그룹을 내놓기만 하면 늘 메가 히트를 치는 한영엔터의 새로운 남자 아이돌 그룹이기 때문이었다.

관계자가 반응을 살피기 위해 슬쩍 이야기를 흘렸고, 그것은 기정사실이 되어 주요 찌라시 한 자리에 자리 잡았다. 월요일 아침 그 소식은 증권회사를 시작으로 인터넷 전역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고,  주가는 폭등했다. 기자들은 앞다투어 누가 데뷔할 것인지 추측하는 기사를 내기 시작했으며, 그와 관련된 것들이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당연히 그 추측 기사의 중심에는 정우가 있었다. 차정우는 한영엔터의 단순한 연습생임에도 포털에 이름을 치면 정보가 나올 정도로 유명인사였다. 선배들의 뮤직비디오에 출연을 하기도 하고, 실전 경험을 쌓기 위해 선배들 무대에서 댄서로 활동을 하기도 했었다. 기자들은 차정우를 센터로 해서 그룹이 결성될 거라는 기사들을 마구 올리기 시작했다.

“아, 평가 다 조져서 안 될 것 같은데.”

“강하진 뽑히는 거 아냐?”

“아, 진짜 그건 오버지. 이제 5개월 해놓고 뭔 데뷔.”

“솔직히 얼굴 되고, 실력 되고, 오 실장이 밀어주는데 하고도 남지.”

“아, 존나 짜증 난다. 이번에 안 되면 이 짓을 3년은 더 해야 될 거 아냐.”

한 그룹이 데뷔를 하고 나면 그 그룹과 겹치지 않도록 같은 성별의 그룹은 적어도 3년 정도의 텀을 두고 데뷔했다. 그래서 데뷔를 놓치면, 기획사를 옮기는 연습생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3~4년이라는 시간을 연습생으로 버티며, 나이만 먹을 자신이 없기 때문이었다. 데뷔권이 아닌 연습생들이 지금부터 그 고민을 하는 것은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당연한 일이었다.

하진 역시 술렁이는 연습실에서 실시간으로 뜨는 기사들을 확인했다. 어쩐지 저와는 굉장히 멀게 느껴지는 기사들이었다.

“인터넷 봤어? 난리 났던데. 정우 너 검색어도 막 오르고.”

“이러고 데뷔 못 하면 망신이기만 하죠, 뭐.”

“네가 왜 데뷔를 못 해. 당연히 너부터 해야지.”

“그럼 형도 나랑 같이 해요.”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거울에 기댄 채 앉아 있던 정우가 그대로 고개를 기울여 옆에 앉은 하진의 어깨에 기대었다. 하진은 어깨 위로 느껴지는 기분 좋은 무게에 씩 웃었다.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정우는 굉장히 다정하고 살가운 성격이었다. 그런 정우와 5개월 동안 거의 매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연습을 하며 친해졌고, 마음속 깊은 이야기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 순간 둘 사이에 있던 선이 사라지고, 이제는 자유롭게 서로를 넘나들며 속을 알 수 있을 만큼 가까워졌다.

하진은 제가 아무것도 되지 못하더라도 이곳에 와서 정우를 알게 되고, 가까워진 것만으로도 인생에 큰 행복이라 여겼다. 그 정도로 정우를 의지하고, 좋아했다.

“난 정말 형이랑 같이 하고 싶은데.”

“나도 너랑 같이 하고 싶지. 그런데 그건 내가 하고 싶다고 다 하는 게 아니니까. 만약에 안 된다고 해도 최선을 다했으니까 괜찮아.”

“형이랑 매일 안 보고 어떻게 살아요.”

“말도 진짜 예쁘게 잘해. 난 너 데뷔하면 매일 티비로 볼 수 있는데 넌 나 못 보겠다.”

“싫어. 그렇게 말하지 마요. 같이 데뷔하면 되지. 난 형이랑 할 거예요.”

싫다고 말하면서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오는 정우에게서는 아주 좋은 향이 났다. 가방에 향수를 들고 다니는 건 봤는데, 향수에 별 관심이 없어서 뭔지는 알지 못했다. 그래도 지금 이 향이 정우에게 굉장히 잘 어울린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하진은 손을 들어 제 어깨에 기댄 정우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나 없을 땐 어떻게 살았어.”

“그러게요. 형 없이 나 어떻게 연습했지.”

농담과 진담이 뒤섞인 말들이 기분 좋게 오갔다. 그때 정우가 어? 소리를 내며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전화를 받으며 하진의 어깨를 한 번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진은 전화를 받으며 연습실을 나가는 정우를 바라보았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중요한 전화인 것 같아 보였다.

금방 들어올 거라고 생각한 정우는 한참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전화를 한 시간이나 하는 건가 싶어 연습실 바깥으로 나간 하진은 주머니 속에서 지잉 울리는 진동에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모르는 번호가 떠 있었다.

“여보세요.”

하진은 들려오는 오 실장의 목소리에 놀라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가 실장실로 혼자 오라는 말에 얼른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갑자기 왜 저를 실장실로 부른 걸까, 올라가는 동안 내내 이유를 떠올려 보았지만, 명확하게 잡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처음 캐스팅이 되어 계약을 할 때, 실장실에 온 후로 처음이었다. 다른 애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곳을 집 드나들 듯 다녔다면, 이렇게 긴장이 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굳게 닫힌 문 앞에 선 하진은 심호흡을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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