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제-3화 (3/122)

#03

이런 애가 데뷔를 하는 거구나 싶었다. 얼굴, 피지컬, 음색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었다. 본격적으로 부르는 것도 아니고 낮은 목소리로 그냥 연습하듯 부르는데도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계속 듣고 싶을 정도였다.

“형, 정말 시간 없으실 걸요.”

“네? 아! 응! 미안해! 연습해, 연습해.”

하진은 정우가 저에게 준 종이를 그제야 바라보았다. 하얀 종이 위에 테스트 날짜, 테스트 방법 같은 것들이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다. 저에게 주기 위해 직접 쓴 모양이었다. 날이 선 예민한 분위기 속에서 받는 친절이라 그런지 더 고맙고, 마음이 갔다. 하진은 빠르게 집중을 해서 노래하다가 체크를 하고, 또 노래를 하다가 체크를 하는 정우를 다시 몰래 바라보았다.

진짜 정말 너무 잘생겼다. 누군가의 외모를 보고 넋이 나간 적은 처음이었다. 귓바퀴에 있는 작고 심플한 피어스조차 정말 잘 어울렸다. 정말 연예인을 코앞에서 보는 기분에 자꾸만 멍하니 얼굴을 바라보게 되었다. 하진은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또다시 정우를 바라보았다.

“…….”

“…….”

그리고 눈이 마주친 순간 얼른 고개를 돌려 괜히 휴대폰을 켰다. 실례가 될 정도로 너무 넋을 놓고 봐 버렸다. 창피해. 하진은 다시 연습에 집중한 정우를 보고는 휴대폰으로 시선을 내렸다. 무슨 곡을 해야 할지, 뭐부터 시작을 하는 게 맞는지 아직 아무것도 아는 게 없지만, 그래도 열심히 해보고 싶었다. 이 종이에 저를 위해 적어준 정우의 배려를 위해서라도 꼭. 하진은 갑자기 마구 넘치는 의욕과 함께 준비를 시작했다.

***

세상이 의욕만으로 다 되는 거라면 참 좋을 텐데,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다른 연습생들은 몇 번이고 해본 테스트지만, 하진에게는 처음이었다. 처음부터 좋은 등급을 받을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다.

아니, 좋은 등급은 고사하고, 완전히 망쳤다. 춤이야 한 번도 제대로 춰 본 적이 없어서 최하등급을 받는 게 당연했지만, 그래도 노래는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서도 부르고, 또 음악 가창 시험을 보면 늘 A를 받았는데도 완전히 망쳐버렸다. 떨어도 그냥 조금 떤 게 아니라 정말 염소처럼 떨어버렸다. 트레이너들의 굳은 얼굴과 딱히 할 말도 없다는 코멘트에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하진은 그렇게 댄스와 보컬 둘 다 최하등급을 받았다.

그런데 최하등급을 받은 게 아주 안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우습게도 하진이 테스트를 완전히 망치자 말을 거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었다. 눈이 마주쳐도 투명 인간처럼 대하던 사람들이 친절한 말로, 또 궁금한 게 많다는 듯 다가왔다. 견제하지 않아도 되는 형편없는 실력이라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형은 그 나이에 왜 갑자기 아이돌이 하고 싶어졌어요? 아니, 스물에 아이돌 연습생 들어오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없지 않나. 하다가 스물이 되면 몰라도.”

“아… 그게 한번 해 보면 어떻겠냐고 하셔서요. 그냥 지금 아니면 언제 내가 해 보나 싶기도 하고…….”

“우리 실장님도 감 다 떨어지셨네요. 괜히 형 고생만 할 텐데. 아, 그리고 말 놔요, 형. 저기 인규 형이랑 영우 형, 해성이 형, 지호 형 빼고는 다 형보다 어려요.”

“아… 그럼 그럴게. 저 형들은 오래 연습하셨어?”

그런 걸 질문이라고 하는 거냐는 표정으로 앳된 얼굴의 연습생이 하진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많이 먹었어도 열여섯 정도일 것 같은 아주 어린 얼굴이었다.

“인규 형은 5년 넘었어요. 해성이 형이랑 영우 형도 4년 됐고, 지호 형이 3년이요.”

“아… 다 진짜 잘하시겠다.”

“그럼요. 이번에 그룹 만든다는데 저 형들 중에 몇 명은 들어갈걸요. 마지노선이니까.”

“마지노선?”

“스물둘이나 되는데 마지막이죠. 이번에 데뷔 못 하면 뭐… 다른 데로 가거나, 연기하거나 해야 되니까. 근데 형도 고생 좀 하겠네요. 그냥 지금 다른 거 한다고 해요. 언제 춤 배우고, 노래 배워요.”

직설적인 말들이 여기저기에서 다가왔다. 하진은 저를 둘러싸고 앉은 앳된 얼굴들을 보며, 지금 제가 아이돌 연습생에 들어온 게 어쩌면 무모한 선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테스트를 보고 나니 더 그랬다.

5년을 연습생으로 있던 사람도 아직 데뷔를 하지 못했는데, 이제 들어온 제가 어떻게 뭘 해낼 수 있겠는가. 부정적인 생각은 하고 싶지 않지만, 아주 가볍게 몸을 쓰는 어린 연습생들을 보며 위축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최하등급을 받은 덕분에 많은 연습생들과 같이 저녁도 먹을 수 있었고,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다. 저에게 유일한 친절을 베풀어 주었던 정우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정우는 연습생 생활을 한 지 1년 정도 되었다고 했다. 들어올 때부터 얼굴은 물론이고 피지컬, 노래, 춤 모든 부분에서 뛰어나서 ‘완성형’이라고 불렸고, 테스트도 볼 때마다 가장 높은 등급을 받는다며 다들 부러워했다. 당연히 내년에 나올 그룹 센터로 데뷔할 거라는 반응이었다.

다른 연습생들은 정우를 질투하거나 하지 않았다. 아예 열등감을 가질 필요도 없는 차원이 다른 위치에 있는 연습생이라며 그저 감탄을 할 뿐이었다.

하진은 젓가락을 입에 문 채 여기저기에서 쏟아지는 완전히 다른 세계의 이야기들을 듣고 또 들었다. 그냥 학교, 학원, 집을 다니면서 공부를 하고, 친구들이랑 게임이나 하고 놀던 저의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뭘 먹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하진은 다시 연습실로 돌아왔다. 연습실을 나설 때는 여럿이었지만, 다들 각자의 사정으로 집에 가거나, 보컬 레슨 학원 같은 곳을 가느라 다시 돌아올 때는 하진 혼자였다.

“형 안 갔어요?”

연습실 문을 열자 거울 앞에 서 있던 정우가 뒤를 돌아보았다. 하진은 반가운 마음에 얼른 정우에게 다가가 섰다. 연습생 애들한테 하도 찬양을 많이 들어 그런지 진짜 더 대단해 보였다.

“어? 너는? 아까 집에 간 거 아니었어?”

“잠깐 들렀다가 다시 왔어요. 연습도 해야 하고.”

“나도 연습하려고. 그런데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 너무 엉망이라.”

“일단 이 정도면 해볼 수 있겠다 싶은 곡, 안무부터 따서 그대로 따라 해 보세요. 아, 그리고 연습생 되면 처음으로 기본기라고 댄스 기본 배우는 거 있거든요. 아마 형도 내일부터 그거 할 거예요. 그거만 해도 몸이 풀려서 좀 나아요. 오늘은 일단 따라 할 수 있겠다 싶은 거 안무 따서 해 보세요.”

“아… 그런 게 있구나. 고마워. 나는 정식으로 트레이닝 받으러 들어온 게 아니고, 테스트처럼 한 번 넣어본 거라 그런 트레이닝 받을지 모르겠다.”

아이돌을 하기 위해 캐스팅이 된 게 아니라 일단 한번 보자고 넣어진 것뿐이었다. 그래서 사실상 모든 게 자신에게 달려 있었다. 망설이는 실장님에게 해본다고 한 건 결국 저였기 때문이었다. 테스트 등급 때문에 내일부터는 아이돌의 아 자도 꺼낼 수 없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열심히 해보고 싶었다. 끌려 나갈 때 끌려 나가더라도 이렇게 불명예스러운 퇴장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진은 저를 바라보는 정우를 보며 웃음 지었다. 누가 봐도 센터인 저런 멋진 애랑 같이 연습을 한다면, 저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긍정적인 기운이 마구 솟아올랐다.

하진은 스트레칭을 하는 정우를 전면 거울을 통해 바라보았다. 길쭉한 팔다리가 쭉쭉 늘어났다. 그런 정우를 보며 하진은 옆에서 비슷하게 따라 하며 몸을 풀었다.

“…….”

“…….”

거울 안에서 같은 포즈로 눈이 마주친 순간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정우와 크게 소리 내어 웃고 나니 어쩐지 조금 더 친해진 것 같아 좋았다. 하진은 금세 좋아진 기분으로 활짝 웃으며 다시 몸을 쭉 늘렸다.

***

정우의 말처럼 다음 날, 하진에게 특별히 댄스 트레이너가 한 명 더 붙었다. 기본기라고 하는 춤의 가장 기본이 되는 동작들을 배우고, 시간이 날 때마다 그것만 연습했다. 처음에는 손발이 같이 움직이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했지만, 반복하면 할수록 부드러워졌다.

해본 적이 없던 것들을 배운다는 것은 하진에게 굉장히 큰 즐거움이었다. 춤추는 것을 배우고, 발성하는 법을 배우며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몰랐다. 기초가 탄탄한 다른 연습생들과 바로 같은 연습실에서 같이 연습을 하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판단에 하진은 따로 트레이너들과 연습을 했다.

“뭐 이렇게 좋아졌어? 하진아. 너 연습 진짜 많이 했구나.”

딱 4주, 한 달이 지났을 때 하진은 두 번째 테스트를 받았다. 전부 최하등급을 받았던 지난 첫 테스트와는 분명 달랐다. 트레이너들이 놀랐고, 옆에 지켜보던 다른 연습생들도 확 상승한 하진의 실력에 당황할 정도였다.

전부 F등급을 받았던 하진은 한 달 만에 전부 C등급을 받았다. 3년 차 연습생인데도 C등급을 받은 연습생들은 하진의 등급에 위기감을 느꼈다. 고작 한 달 만에 이렇게 실력이 늘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강하진 대박인데? 따로 연습해야 한다고 해서 격리된 줄 알았는데, 집중 트레이닝 받은 보람이 있네. 축하해.”

“아, 고맙습니다. 형 아까 하시는 거 봤는데 진짜 대단했어요.”

“뭘. 매주 테스트 보느라 힘들어 죽겠다. 다음은 월말평가야. 아, 맞다. 너도 오늘부터 우리랑 같이하는 거지?”

“네. 잘 부탁드립니다.”

“나도.”

연습생들 중에 제일 나이가 많고, 또 연습 기간이 오래된 인규의 다정한 말에 하진은 조금 마음을 놓았다. 다른 연습실에 가서 혼자 연습을 할 때, 이게 안 되면 그냥 그만두고 배우 쪽으로 노선을 틀자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말처럼 되지 않고, 다시 이 연습실로 돌아와서 너무 좋았다. 한 달 동안 밤을 거의 꼬박 새워 가며 연습을 한 보람이 있어 정말 다행이었다.

“형, 아까 진짜 잘하던데요? 놀랐어요.”

“네가 도와준 덕분이야.”

“제가 뭘 했다구요.”

“나 연습할 때마다 같이 해줬잖아.”

“저도 하는 김에 같이 한 건데요, 뭘. 형이 열심히 해서 그런 거예요.”

다시 저에게 삭막해진 이 연습실 안에 정우가 있어 다행이었다. 그동안 밤을 새워 연습할 때마다 정우가 대부분 같이 시간을 보내주었다.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잡아주기도 하고, 노래를 연습할 때, 음을 잡아주거나, 코드를 해석해 주기도 했었다. 정우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렇게 힘을 내서 연습을 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내가 진짜 더 잘할게. 네가 잘해준 거 내가 다 갚을게.”

“음, 그럼 저 내일 개인평가 볼 게 있는데 오늘 같이 연습할래요? 저 영상도 좀 찍어주세요.”

“응! 좋아. 내가 다 해줄게. 그런데 어디 가?”

“아, 휴게실이요. 같이 갈래요?”

하진은 정우와 함께 연습실을 나섰다. 복도 끝에 있는 휴게실에 가기 위함이었다. 휴게실에 가면 늘 다양한 음료수가 꽉꽉 채워져 있었다. 대부분 칼로리가 없거나 아주 낮은 것들이었지만, 물보다 맛있는 것을 마실 수 있어 좋았다.

휴게실에서 정우의 개인평가 계획을 들으며 칼로리가 없는 콜라를 마신 하진은 정우와 함께 다시 연습실로 향했다. 그 앞으로 가서 문을 밀려는 순간, 불투명한 문 너머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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