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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객잔 정상 영업합니다 (137)화 (14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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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하의 말대로 돌아온 곳은 아비규환이었다. 마교는 차치하더라도 지원을 나온 정파 사람들이 같은 편을 공격하기 시작하니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각기 다른 차림새의 무복을 보면 그들이 어느 문파에 속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지만, 정작 그들은 자신들의 소속을 잊은 듯했다.

초점 없이 풀린 눈들이 이전에 빗속에서 보았던 무당파 도사의 것과 같았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도사는 무공을 잊은 것처럼 무작정 달려들었지만, 이 사람들은 각자가 익힌 무공을 정확히 기억하는 것처럼 보였다.

혈교의 섭혼술이 그때보다 훨씬 발전한 거다. 저들을 충분히 조종할 수 있을 정도로.

어느새 도관에서부터 곤륜여신봉의 기슭까지 퍼져 나온 사람들이 주변에 가득했다. 봉우리를 올라 마교와 혈교의 수뇌부까지 치고 들어가려는 이들과 그런 그들을 남김없이 죽여 버리려는 이들 사이에 난전이 벌어졌다.

“떨어지지 마시고 제 곁에 꼭 붙어 계세요, 객주님.”

제하는 당황한 것도 잠시, 청연의 안위를 신경 쓰기에 바빴다. 그러나 청연은 이 난장판이 그리 두렵지 않았다. 두려운 건 이런 게 아니었다.

사술에 지배당하는 무호를 설득해 함께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상 정신을 차린 그가 스스로 죽음을 택하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무호의 정신을 일깨운 내 잘못인가.’

하지만 그대로 전쟁을 이어 가게 내버려 두었더라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무호는 평생 꼭두각시로 조종당하느니 차라리 목숨을 끊는 쪽을 택했을 터였다. 이미 정해져 있었던 운명처럼.

“아무래도 다시 가봐야….”

무호가 있을 봉우리의 정상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지만, 그에게 쫓겨난 이상 한 발짝도 출입할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때 제하가 청연의 팔을 거칠게 끌어당기며 외쳤다.

“저쪽이요!”

그가 가리킨 언덕 너머에서부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오고 있었다. 대체 어디서 당했는지 몰라도 눈이 퀭하게 풀려 섭혼술에 조종당하는 게 분명해 보이는 정파 무인들이었다.

“제 뒤에 계셔야 해요.”

청연을 끌어당겨 자신의 등 뒤에 숨겨 놓은 제하가 말했다. 저 사람들이 더 가까이 다가오기 전에 전부 처리해 버리겠다는 비장함이 엿보였다.

“제하야.”

청연은 차분한 목소리로 제하를 불렀다. 경계를 잔뜩 세운 제하가 시선만 살짝 돌려 청연을 돌아보았다.

“같이 해.”

“…객주님.”

싸워도 같이 싸우자. 이제 도망치거나 숨을 생각은 없으니.

“난 여기에 있을게.”

청연은 고개를 돌려 정상을 멍하니 쳐다보며 말했다. 이렇게 하면 무호에게 들리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었다.

지홍은 안전히 하산하라고 당부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무호가 자신의 곁에 있지 못하도록 밀어낸다면 가장 가까운 곳에라도 서 있을 것이다.

그가 외로운 길을 걷는 건 더 이상 못 보겠으니까.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땅을 밟고 서서 자리를 지킬 것이다. 그에게 혼자가 아님을 상기시켜 줄 수 있도록.

결심을 마쳤을 땐 몸이 알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제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선 청연은 코앞까지 다가온 무리를 맞이했다. 동시에 세화의 검이 그들 사이를 날카롭게 비집고 들어갔다.

세화의 검법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기본기가 탄탄했다. 사형에게 두들겨 맞으며 몇 번이고 반복해 익힌 기초 동작들이 쌓이고 쌓여 실력의 근간을 이루었다. 그 모든 게 머릿속에 있었고, 새로운 단전을 만든 몸은 그것을 이행하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객주님!”

제하는 오만상을 쓰면서도 제게 달려드는 이들을 베었다. 그러나 청연을 말리기엔 이미 늦었다. 한숨을 푹 내쉬며 청연과 등을 맞댄 제하는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그자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겁니까? 객주님께서 그자를 설득하시기 위해 정상까지 올라가셨던 거 아니었습니까? 마교가 철수했다는 소식은 전혀 들은 적 없는데요.”

이를 악물고 상대의 검을 막아 내던 청연은 그 말에 답할 수 없어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무호가 뭘 하고 있는 지는 청연도 알지 못했다. 마인들이 당장 눈앞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곤륜산의 다른 곳에서 공격을 이어 가고 있는 건 확실했다.

그때, 산 전체를 뒤흔드는 진동과 함께 엄청난 굉음이 귀를 찢을 듯이 울려 퍼졌다. 본능적으로 몸을 낮추며 두 귀를 틀어막았던 청연은 정신을 차리고 제게 날아드는 검날을 쳐냈다.

‘무슨 소리가 이렇게….’

제하의 검이 순식간에 주변을 정리해 잠시 틈이 생긴 사이, 청연은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곤륜여신봉의 맞은편이었다. 소리의 근원을 찾아 눈알을 굴리던 그는 산 중턱 바위 절벽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굳어졌다.

“…시랑.”

여운이었다. 그의 흰 옷자락이 휘날릴 때마다 강풍이 일었고, 초식은 마치 검무를 추는 듯이 유려했다.

다만 그가 상대하고 있는 이들은 마교도, 혈교도 아닌 곤륜의 도인들이었다. 청연은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그들의 얼굴을 똑똑히 알아보았다.

세화가 마교의 간자에 의해 신강까지 끌려갔을 때 그를 잡으러 갔던 곤륜 일대제자 중 일부였다. 신뢰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싸늘한 눈빛으로 세화를 내려다보던 얼굴이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 눈빛이 지금은 섭혼술에 조종당하는 다른 이들과 다를 바 없었다.

그들을 마주 보는 여운의 얼굴에도 당혹스러움이 가득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원래의 날쌔고 매서운 기세 그대로였으나 청연은 알아볼 수 있었다. 그의 몸짓 하나하나에 망설임이 깃들어 있음을.

당시 일대제자였다면 지금은 장문인대다. 아무리 곤륜이 예전만 못하더라도 까마득한 어른들을 상대한다는 건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수까지 열세하니 웬만한 이들은 잠시도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여운은 버티고 있었다. 계속해서 굉음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정신없이 싸우던 이들도 힐끔힐끔 올려다볼 정도였다.

‘어떤 식으로 주술을 거는 거지?’

경지가 낮은 무인들도 아니고 심지어 장문인대가 당했는데, 여운이 멀쩡한 걸 보면 무언가 특정한 방법이 있을 터였다.

당한 이들의 눈이 풀리는 걸 보아하면 아무래도 눈이겠지. 혈교인들과 직접적으로 눈을 마주치면 조종당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건가.

그러나 고민을 이어 가기엔 여유가 없었다. 제하와 함께 여운을 도우러 가고 싶었으나 계속해서 몰려드는 적들에 정신까지 혼미해질 정도였다.

다친 다리 탓에 청연의 몸이 균형을 잃고 비틀거린 순간, 그 틈새를 놓치지 않은 누군가의 검이 잽싸게 치고 들어왔다. 청연은 간신히 몸을 돌려 피했지만 왼쪽 팔에 타는 듯한 통증이 찾아왔다. 깊게 베인 팔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객주님, 팔…!”

곧장 반응을 보이는 제하에게 청연은 괜찮다며 고개를 저었다. 고작 왼팔이었다. 아직 오른팔로 검을 쓸 수 있었다.

또다시 땅이 쿵쿵 울리는 진동에 고개를 든 청연과 제하는 저 멀리 언덕 너머를 바라보았다. 들판을 새까맣게 덮은 사람 무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무호를 만나러 가는 길에 보았던 혈교인들과 같은 복장을 한 이들이었다.

“이쪽으로 옵니다.”

제하의 말에 청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 사람들이랑 눈 마주치지 마.”

두 눈을 뽑아 버린 채 싸우는 한이 있더라도 도망치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 싸움이 계속된다는 게 바로 무호가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그를 혼자 두고 가지 않을 것이다.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붉게 타오르는 하늘 아래 전투는 계속되었다. 청연은 거친 숨을 토해 냈다. 상대의 눈을 보지 않은 채 다음 움직임을 예측해가며 싸우려니 힘이 배로 들었다.

그나마 제하의 활약으로 청연뿐만이 아닌 다른 이들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영약의 힘을 얻은 제하는 이전보다도 훨씬 강했고, 거뜬히 일당백을 해냈다.

덕분에 잠시 숨을 돌린 틈이 생긴 청연은 무릎을 짚고 섰다. 안 그래도 상처투성이였던 몸에 검상이 더해져 여기저기서 피가 흘렀다.

‘이럴 때가 아니라….’

일단 시랑을 도우러 가야 하는데. 그쪽 문제가 훨씬 심각해 보였지.

여운이 서 있던 절벽 위를 다시 확인하려고 할 때였다. 등 뒤에서 반가움을 듬뿍 담은 제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스승님!”

청연은 뒤를 돌아보았다. 숲 쪽에서 경공으로 빠르게 다가온 소명이 땅 위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사천에서 출발하기 전에 서신을 드렸는데 어찌 이제 오십니까? 스승님께 변고라도 생긴 줄 알고 걱정했습니다.”

소명은 말없이 제하를 흘긋 보더니 바로 시선을 돌려 청연과 눈을 맞췄다. 무언가 할 말이 있어 보이는 눈치였다. 그는 곧장 청연에게로 걸어오더니 입을 열었다.

“찾았습니다.”

“…찾으셨다니요?”

순간 청연의 손끝이 떨렸다. 소명의 다음 말을 듣지 않았음에도 무슨 이야기인지 알 것만 같아 가슴이 뛰었다.

“아직 결과를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만 시도해볼 만한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는 분명 무호의 사술을 해결할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무호를 살릴 수 있다. 아니, 적어도 시도는 해볼 수 있다. 그 작은 희망에도 청연은 차오르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소명에게 닦달하듯 물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뭐가 필요합니까? 예?”

“시간이 꽤 오래 걸릴 겁니다. 우선은….”

그러나 소명은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별안간 쾅 하고 들려온 굉음에 두 사람의 시선이 절벽 위를 향했다. 들뜬 마음으로 소명의 말을 기다리던 청연은 피가 싸하고 식는 것을 느꼈다.

‘시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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