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우리 객잔 정상 영업합니다 (133)화 (138/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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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환복부터 하셔야겠습니다.”

청연은 지홍이 내민 흑의를 빤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자 지홍이 설명을 덧붙였다.

“봉우리 위에 우리 쪽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라서 말입니다. 외부인의 등장을 달가워하지 않을 자들이 포진해있어 갈아입으시는 편이 안전할 겁니다.”

마교가 혈교와 연합했다는 소문을 떠올린 청연은 착잡한 얼굴로 옷을 받아 들었다. 수풀 속에서 옷을 대충 갈아입고 나오자 지홍이 물었다.

“몸에 마기를 담으실 수 있다고 들었는데, 맞습니까?”

“예….”

“그렇다면 잠시.”

지홍은 청연의 팔을 붙잡더니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가 무얼 하려는지 알아챈 청연은 생각했다.

‘몸 주인의 신념에 어긋나는 일을 하면 소멸한다고 했지만… 이건 직접 마공을 익히는 게 아니니까 괜찮겠지.’

팔목을 통해 전해져 들어오는 기운을 저항 없이 받아들이면서도 등줄기에는 소름이 돋았다. 사흘 동안 무호의 마기에 짓눌린 전적이 있어 이 정도는 별거 아닐 거라고 예상했는데, 혼탁하게 느껴지는 무언가가 몸속을 돌아다니는 느낌은 전혀 유쾌하지 않았다.

“괜찮으십니까?”

청연이 고개를 끄덕이자 지홍은 팔을 내려놓고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그를 따라 걷다 보니 같은 흑의를 입은 사람 몇 명을 지나치게 되었다. 그들은 청연을 힐끔힐끔 쳐다보았지만 지홍과 함께 있는 걸 확인하고는 시선을 돌렸다.

“저들은 모두 주군의 사람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

청연은 목소리를 낮추고 조금 전부터 가장 묻고 싶었던 질문을 속삭였다.

“교주님께서는 지금 정확히 어떤 상태신 겁니까?”

“그게… 완전히 다른 분이 되셨습니다.”

“…….”

“곤륜산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셨습니다. 출군을 명하시기는 했지만 우선 근방에서 대기하라 하셨고, 제가 주제넘은 소리를 지껄였을 때도 너그러이 넘어가 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지홍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그분의 심기를 조금이라도 거슬렀다가는 목숨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의 말을 듣던 청연은 의아해졌다. 무호는 주술을 잠시나마 억누를 방법을 알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냥 주술이 발작하도록 내버려 두었다는 것인가.

‘아니면 그 방법으로도 통제할 수 없게 된 건가….’

사안이 급하니 두 사람은 잠시도 쉬지 않고 산을 올랐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주변에 보초를 서는 듯한 무인들이 많아졌는데, 그들 모두가 마교도인 건 아니었다. 낯선 의복을 입은 사람들도 섞여 있었다.

‘혈교?’

지홍은 그들을 힐끗 보더니 청연을 다른 길로 이끌었다. 인적이 드문 숲길이었다.

“저들과는 되도록 부딪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어쩌다가 저들과 손을 잡게 된 건가요? 그것도 교주님 명령이었습니까?”

“예…. 전부 여기 도착한 이후에 벌어진 일입니다.”

무어라 첨언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이던 지홍은 순간 멈칫했다. 그는 빼곡하게 가득 찬 나무들 너머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이내 표정에서 긴장한 기색을 지워 낸 그는 청연에게 전음을 보냈다.

“지금부터는 제 등 뒤에서 삼보 떨어져 걸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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