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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객잔 정상 영업합니다 (132)화 (137/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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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도 상처, 저기도 상처….”

제하가 청연의 몸을 구석구석 살펴보며 푸념했다. 속상함을 온몸으로 표출하던 그는 슬픈 강아지 같은 눈으로 청연을 올려다보았다.

“제게 주실 영약을 구해 오시느라 이렇게 다치신 겁니까?”

“뭐, 그것도 그렇고… 절벽에서 떨어진 것도 있고….”

“객주님 때문에 정말 못 살겠습니다.”

“내가 방금 너 살렸는데.”

“지금 그걸 농담이라고 하십니까?”

청연은 한숨을 푹 내쉬는 제하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 사경을 헤매던 게 무색할 만큼 건강해진 모습을 보자 마음이 놓였다. 정작 자신은 동굴 속에서 겪은 환각의 여파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지만 말이다.

목에서 피를 쏟는 무호가 다시 눈앞에 나타날 것만 같아 불안했고, 발목까지 차올랐던 핏물의 온도가 여전히 생생하게 느껴졌다.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는 검은 눈동자를 떠올리며 초조해하던 중, 제하가 청연의 손을 따뜻하게 감싸 잡았다.

“아직도 안색이 많이 안 좋으세요. 저 숲 속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어요?”

“응…. 환영 같은 걸 봐서….”

“환영이요?”

청연은 가시가 박혔던 손바닥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어떤 식물 가시에 손을 찔렸는데 그 이후로 자꾸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없는 게 보이더라고.”

그러자 제하가 미간을 찌푸리고는 물었다.

“혹시 길게 늘어진 덩굴 식물이었습니까? 조그마한 보라색 꽃이 달려 있고요?”

“맞아. 어떻게 알았어?”

“저도 찔려본 적이 있으니까요. 그날 아주 고생했습니다.”

제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중에 스승님께서 알려 주셨는데, 그 식물의 가시에 찔리면 본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보게 된다고 합니다. 이미 벌어진 일이든 벌어지지 않은 일이든, 살면서 가장 보고 싶지 않은 순간을 목격하게 되는 겁니다.”

청연은 그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그게 사실이라면 자신이 가장 보고 싶지 않은 건 무호의 죽음이라는 걸까.

“넌 뭘 봤는데?”

청연이 묻자 제하가 갑작스레 시선을 피했다.

“그….”

“왜? 뭔데? 귀신이라도 봤어?”

“아뇨, 그으….”

답을 하지 못하고 질질 끌던 제하는 결국 얼굴을 붉히며 입을 열었다.

“객주님께서 칼에 찔려 아파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전에 배 위에서 그러셨던 것처럼요. 그러다가 쓰러지시더니 미동도 없으셨습니다.”

“…….”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객주님께 변고가 생기는 일이니까요….”

부끄러워하는 제하의 목소리를 듣던 청연은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때 주변을 살피러 떠났던 당 공자가 돌아와 말을 건넸다.

“두 사람은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요?”

그러자 제하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객주님께서 다치셨으니 잠시 쉬어가시도록 기다리는 중인데 불만 있으십니까?”

“저, 저 은혜도 모르는….”

맞다, 둘이 사이 안 좋지.

청연은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나 제하의 목덜미를 잡고 공자를 향해 꾸벅 숙이게 했다. 강제로 감사 인사를 올리게 된 제하는 눈알을 데구르르 굴리면서도 차마 불평하지 못했다.

“공자께서는 어디로 가십니까?”

청연의 물음에 그는 머쓱하게 목덜미를 긁적였다.

“그 뭐냐, 곤륜을 돕겠다는 명목으로 왔으니 돕기는 해야겠지. 잃어버린 친우들을 찾으면 그쪽에 합세하려고 하오.”

그의 말에 따르면 도경의 언변에 설득당해 곤륜을 지원하러 온 세가의 자제들이 한둘이 아닌 것 같았다. 정파 간의 화합을 원한다던 도경의 말이 문득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렇다면 저희와 함께 올라가시겠습니까? 아무래도 한창 전투가 벌어지는 쪽에서 도움이 필요할 가능성이 크니 말입니다.”

적의 쪽수가 무지막지하게 많으니 동행을 한 명이라도 늘리는 편이 더 안전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고 싶지 않았던 청연은 두 사람과 함께 걸음을 재촉했다.

“객주님, 잠시만요.”

높다란 바위벽을 맞닥뜨리자 제하가 말하며 가까이 다가왔다. 그가 무얼 하려는 건지 알아챈 청연은 손을 휘휘 저으며 만류했다.

“내가 알아서 갈게! 나 진짜 괜찮아!”

“영약의 효능을 직접 보여드리고 싶어서 그럽니다.”

씨익 미소 지은 제하는 청연을 번쩍 들어 올렸다. 옆에 있는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그는 단숨에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눈 깜짝할 새에 벽 위에 올라선 청연은 까마득한 아래를 내려다보며 감탄했다.

‘세상에. 한걸음에 몇 장을 뛴 거야?’

아래에서 혼자 남겨진 이의 외침이 애달프게 울려 퍼졌다.

“이봐, 나는!”

제하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무심하게 말했다.

“공자께서는 알아서 잘 올라오실 겁니다.”

“저분도 네 은인이신데….”

“예. 제게 부모도 없는 천애 고아라고 손가락질하던 은인이시죠.”

“…그래도 이번에 많이 도와주셨잖아.”

청연의 말에 제하는 아래쪽을 힐끗 내려다보았다. 벽을 반쯤 기어오른 공자를 곁눈질하던 그는 결국 아래로 뛰어 내려가 공자의 뒷덜미를 휙 낚아챘다. 청연은 사이좋게 절벽 위로 올라오는 두 사람을 확인한 뒤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조금 더 올라가다 보니 사람들의 목소리가 다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강시와 한바탕 싸우고 있는 듯했다.

제하는 청연의 팔을 끌어당겨 자신의 곁으로 바짝 붙이며 말했다.

“이제 더 이상 객주님께서 다치시는 일은 없을 겁니다.”

***

제하의 말은 허풍이 아니었다. 귀한 영약을 마신 그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 사람은 산 위를 수북하게 덮은 강시 떼와 마주치게 되었는데, 제하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반 이상이 갈려 나갔다. 무공을 쓰는 강시라고 해서 다른 건 없었다.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던 청연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이 손 쓸 틈도 없이 주변을 모두 정리해버린 제하 덕분에 길이 뻥 뚫려 있었다.

그리고 길을 뚫는 데는 당 공자도 한몫했다. 그는 심혈을 기울여 던진 비도가 강시의 목에 박혀 들어갈 때마다 기쁘게 환호했다.

“방금 봤소? 목을 아주 깔끔하게 찔렀는데.”

“예에….”

청연이 박수를 짝짝 치자 그의 어깨가 한껏 올라갔다.

그들이 가는 길에는 곤륜의 제자들도 있었고, 곤륜을 지원하기 위해 나온 각 문파의 사람들도 있었다. 쪽수는 여전히 강시 쪽이 우세했지만 정파 무인들이 한곳에 모여드니 그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낙엽처럼 쓰러지는 시체들을 뒤로한 채, 청연과 제하는 곤륜여신봉을 향해 달렸다.

‘이 속도라면 금방 도착하겠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빠르게 뛰었다. 곧 무호를 만날 거라는 생각에 긴장감이 밀려왔다.

무호는 지금 사술의 통제 아래 있는 걸까. 그러니까 곤륜까지 출군을 명했겠지. 그러지 않고서야 그가 곤륜을 치라고 명령했을 리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그를 진정시킬 수 있을까. 멈추게 할 수 있을까.

청연은 무호를 만나면 할 말들을 머릿속으로 열심히 정리했다. 그가 아무리 제정신이 아니더라도 자신을 죽이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용기가 났다.

“객주님, 보세요.”

제하는 생각에 잠겨 있던 청연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고는 지나온 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청연이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새까만 시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전부 강시였다. 이제 살아 움직이는 놈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오랜 싸움에 지친 곤륜파 제자들은 잠시 멈춰 서 한숨을 돌렸다. 어린 제자들은 땅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고, 좀 더 나이가 있는 제자들은 ‘감히 우리 곤륜산에서 이런 짓을 벌이다니’ 하며 펄펄 뛰었다. 전부 여유가 생겨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다행입니다.”

제하가 말했다. 그러나 표정은 못내 불안해 보였다.

그가 불안해하는 이유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마교인들이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상대한 건 고작 강시였을 뿐이다.

“빨리 가요, 객주님.”

“응.”

친우들을 찾으러 떠나는 당 공자를 뒤로하고, 두 사람은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반 시진 정도를 더 달린 그들은 드디어 목적지에 다다랐다.

이미 마교에서 차지한 곤륜여신봉에 무작정 발을 들여놓을 수는 없었다. 청연은 봉우리 기슭에서 지홍을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던 중, 제하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왜?”

청연이 묻자 제하는 조용히 하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러더니 청연을 바위 뒤로 끌고 가 몸을 숨겼다.

‘근방에 누가 있나?’

그렇게 생각하기 무섭게 봉우리를 내려오는 마인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청연은 숨소리를 죽이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익숙한 지홍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놈은 북쪽, 네놈은 서쪽으로 가거라. 가서 대기 중인 놈들에게 일러라. 교주님께서 진격을 명하셨으니 단단히 채비하라고.”

“예.”

청연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역시 무호는 사술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강시 떼는 선전포고에 불과했고, 이제 곧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될 터였다.

명령을 전달받은 흑의인들이 각자의 방향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지홍은 천천히 발걸음을 돌려 청연과 제하가 숨은 바위 쪽으로 걸어왔다. 청연이 바위 뒤에서 모습을 드러내자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들으셨겠지만 주군께서….”

“들었으니까 어서 가요. 시간 없어요.”

그러자 지홍은 제하를 힐끗 쳐다보았다. 당신은 죽어도 데려갈 수 없다는 굳은 의지가 표정에 드러났다. 혹시 제하가 함께 가겠다고 발끈하기라도 할까, 청연은 그를 토닥이며 말했다.

“다녀올게. 너는 아래에 있어.”

“…객주님.”

제하의 얼굴이 침울해졌다.

“안 다칠 테니까 걱정하지 마.”

“…….”

“그리고 너도 나 없는 동안 다치지 않게 조심하고.”

제하는 청연을 잡지 못했다. 잡아 봤자 소용없을 거라는 사실을 아는 듯했다. 고개를 떨군 채 말을 잇지 못하는 제하에게 몸조심을 당부하며, 청연은 무거운 발걸음을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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