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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객잔 정상 영업합니다 (129)화 (134/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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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연은 안간힘을 다해 몸을 일으켰다. 더러워진 옷에서 흙먼지가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다리가 비틀거려 똑바로 걷는 것도 쉽지 않았다. 절벽이 통째로 무너진 바람에 크고 작은 바윗덩이가 사방에 잔뜩 쌓여 있었다.

“제하야….”

커다란 바위 하나를 넘은 청연은 힘없는 목소리로 제하를 불러 보았다. 아무리 주변을 두리번거려도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제하….”

다시 한번 그를 부르려던 참이었다. 절벽이 무너져 생긴 돌무덤 너머에서 무언가가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청연은 오감을 바짝 곤두세우고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 소리는 멀어지거나 가까워지지 않고 한 군데에 머물렀다. 청연은 발소리를 죽여 조심히 그쪽으로 걸어갔다. 돌무덤을 옆에 끼고 빙 돌아서 걷다 보니 시커먼 무언가가 어렴풋이 보였다.

누군가의 발이었다. 버둥거리며 움직이고 있었으나 산 사람의 것은 아니었다.

‘제하랑 같이 떨어진 강시인가 보네.’

그렇게 생각하며 다가가 확인해 보니, 그것의 목에는 검이 꽂혀 있었다. 한 눈에도 알아볼 수 있는 제하의 검이었다.

‘추락하는 와중에도 싸울 정신이 있었구나.’

자루를 잡고 단단히 박힌 검을 빼내자 강시의 목에서 검은 피가 흘러나옴과 동시에 움직임이 잦아들었다. 검을 가만히 바라보던 청연은 이내 소리 높여 제하를 불렀다.

“제하야!”

이상했다. 검이 여기 있다면 주인도 근처에 있어야 당연한데, 그의 발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제하가 절벽에서 떨어져 다쳤다거나, 청연을 두고 멀리 떠나갔다는 건 더욱 말도 안 됐다.

그때, 마침 청연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움직임을 멈춘 강시의 한쪽 손에 묻은 무언가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저건….’

그 손을 빤히 들여다보던 청연의 눈이 커졌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곧장 걸음을 옮겨 제하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돌무더기를 들춰 보고, 이리저리 살펴보며 돌아다닐수록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제하야, 어딨어….”

급한 마음과는 달리 높은 곳에서 떨어지며 다친 몸이 성치 않았다. 잘 걷다가도 자꾸만 넘어지거나 주저앉게 되는 바람에 속도를 내기가 어려웠다.

결국 거친 돌밭 위를 기어가게 된 청연의 두 손은 엉망이었다. 산산이 조각나 뾰족한 돌들을 옮기고, 또 파헤치다 보니 여기저기 긁혀 피가 흘렀다.

마치 십 년 전, 마교에 납치당할 뻔한 어린 제하를 구했던 그날 밤 같았다. 불타오르는 문짝을 맨손으로 뜯어내면서 다친 줄도 몰랐던 그날.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던 그때도 간신히 제하를 찾았으니, 이번에도 당연히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청연은 그렇게 믿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이 불안해지는 건 조금 전, 강시의 손에 묻은 핏자국을 본 탓이었다. 검게 죽은 피가 아닌, 붉디붉은 산 사람의 피였다. 심지어 피가 채 마르지 않아 손가락을 타고 흘러내리는 장면을 목격한 순간, 입 안이 바짝 말랐다.

“제하야!”

청연은 한 번 더 외쳤다. 혹시라도 제하가 많이 다쳤다면 빨리 찾아내 치료를 도와야 했다. 그는 작은 움직임마저 멈춘 채 눈을 감고 청각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누군가의 미세한 목소리가 거친 바람 소리를 뚫고 귓가에 들려왔다.

“객…주님….”

금방이라도 멎어버릴 것처럼 희미한 숨소리도 함께였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제하의 기척임을 알아차린 청연은 억지로 몸을 일으켜 소리를 따라갔다. 양손에 쥔 두 자루의 검이 몸을 짓누르는 듯 무겁게 느껴졌다.

그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절벽이 무너진 곳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았다. 여전히 사람의 그림자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지만 제하의 기척이 똑똑히 느껴졌다. 바로 눈앞에 자리한 커다란 바위 아래에 있었다.

놀란 청연은 상처투성이가 된 손으로 바위를 저 멀리 밀쳤다. 그러고서도 제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한참이나 돌을 파헤쳤다.

“제하야, 내 말 들려? 제하야….”

그가 들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중얼거리며 돌을 옮기던 청연은 이내 제하의 머리카락 끄트머리를 찾아냈다. 곱슬곱슬한 갈색 머리가 돌 틈에서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청연은 그의 몸을 덮은 돌들을 거칠게 밀어내고, 힘없이 늘어진 몸을 안아 끌어올렸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제하는 막혀 있던 숨통이 트인 듯 쌕쌕거리며 숨을 내쉬었다.

“제하….”

제하를 평평한 곳에 반듯이 눕힌 채 상태를 살펴보려던 청연은 할 말을 잃고 굳어 버렸다. 그의 복부에 난 상처에서 홍수라도 난 것처럼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치 단단한 물건이 배를 관통한 것 같은 모양새였다. 상처를 자세히 들여다보던 청연은 그것이 사람의 손자국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객주님….”

피를 많이 흘려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제하가 작은 목소리로 청연을 불렀다.

“괘, 괜찮, 으세요? 안 다치셨….”

“말하지 마.”

제하가 힘겹게 말을 내뱉을 때마다 더 많은 피가 새어 나와 청연은 그를 조용히 시켜야 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참담해진 마음을 진정시키며 최대한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위해 애썼다.

‘일단 급한 대로 지혈부터….’

청연은 자신의 겉옷을 벗어 제하의 상처 위에 덮고 손으로 눌렀다. 그걸로는 부족해서 천을 길게 찢어 그의 허리를 꽉 동여맸다.

“…개, 객주님 안색이….”

그 와중에도 제하는 청연의 안색을 살폈다. 늘 또렷했던 연갈색 눈동자가 초점을 잃어 흐릿해지고 있었다. 청연은 그가 정신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났다.

“난 멀쩡해…. 많이 아프지? 곧 괜찮아질 거야. 걱정하지 마.”

그렇게 말하면서도 사실은 알고 있었다. 고작 지혈이나 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걸. 제하가 마교에 잠입하려다가 다쳤을 때보다도 부상이 훨씬 심각했다.

“아파요….”

청연은 차가워진 제하의 손을 잡으며 그의 얼굴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 주었다. 표정이 고통으로 일그러지다가도 의식을 놓을 것처럼 풀어지기를 반복해 마음이 철렁했다.

“제하야, 나 봐.”

“…….”

“나 보고… 힘들어도 조금만 참아. 눈 감지 말고.”

손으로는 상처를 힘주어 누르면서도 입으로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객잔에 자주 오는 단골손님들 이야기, 앞으로의 사업 계획에 대한 이야기. 그런 무의미한 말들로 제하의 주의를 돌리며 그가 정신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왔다.

“아, 그 얘기 해 줄까? 곤륜이랑 관련된 내 과거 이야기. 듣고 싶어 했잖아….”

청연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으나 제하는 반응이 없었다. 이제는 입을 열 기력조차 없어 보였다. 더욱 불안해진 청연은 그의 맥을 짚어 자신의 내력을 조금씩 흘려 넣어 주었다. 작은 힘이라도 그에게 도움이 되길 바랐다.

이 일이 끝나고 돌아가면 제하가 원하는 이야기를 모두 들려주기로 약속했는데. 반드시 그 약속을 지켜야만 하는데. 그의 맥박이 희미해질수록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될까 봐 무서웠다.

“제하야…. 조금만, 조금만 더 버텨. 응?”

청연은 차가운 뺨을 쓰다듬으며 애원하듯 말했다. 제하가 곤륜산까지 따라와서 이토록 크게 다친 건 전부 자신의 탓이었다. 자신을 지키려다가 이렇게 된 거였다.

“내 생각 해서라도 조금만 버텨 줘. 제발….”

어떻게든 널 데리고 가서 치료받게 할 테니까. 그때까지만 제발.

중상을 입은 제하를 혼자 남겨 두고 갈 수는 없으니 그를 데리고 가야만 했다. 그러려면 지혈이라도 마쳐야 하는데 깊디깊은 상처에서 피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청연은 불을 피우기로 했다. 검날을 불에 달궈서 상처를 지지는 데 사용할 생각이었다. 마취약도 없는 곳이라 많이 고통스럽겠지만 일단은 목숨을 살리는 게 우선이었다.

청연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두리번거리며 마른 나뭇가지를 찾으려던 때였다. 저 멀리서 들려온 낯선 이의 목소리가 청연의 귓속에 똑똑히 박혔다.

“아니, 이게 다 무슨 난리래?”

누구지?

청연은 본능적으로 검을 집으며 다가올 위험에 대비했다. 다친 제하만큼은 반드시 보호할 것이다. 누가 됐든 그를 건드리려고 한다면….

“도경 이자는 날 두고 또 어딜 간 거야?”

때마침 그의 입에서 나온 익숙한 이름에 청연은 자연히 경계를 낮췄다. 이곳에서는 들을 일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이름이었다.

“하여간 오늘 일은 내 반드시 값을 정확히 계산해서 받아야… 어라? 거기 누구 있소?”

청연의 기척을 느꼈는지, 그 사람은 걸음을 빠르게 해서 다가왔다.

마침내 그의 얼굴을 분간할 수 있는 거리가 되었을 때, 청연의 눈에 들어온 것은 뺀질뺀질해 보이는 젊은 남자의 얼굴이었다. 바람에 휘날리는 녹색 장포와 그 위에 새겨진 문양이 눈에 익었다.

‘…사천당가?’

사천에 사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옷이었다. 게다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흐르는 부티라니, 누가 봐도 귀한 집 자식임이 분명했다. 난데없는 당가 공자님의 등장에 청연은 어리둥절해졌다.

“엑? 저자는…!”

반면에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는 제하를 발견한 그는 짧게 외치더니 제하에게 달려갔다. 그러더니 고개를 들어 청연에게 물었다.

“대체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거요?”

“그게….”

아니, 지금 그런 걸 설명할 때가 아니잖아.

정신을 차린 청연은 그를 붙들고 사정했다.

“도와주세요. 당가의 공자님이시라면 의술을 아실 테니 도와주실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다급한 청연의 말에 그는 난처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나는 지금 친우를 찾는 중이었소만…. 그런데 이쪽이 더 급해 보이긴 하는군.”

그는 지혈을 위해 감아놓았던 천을 들쳐 상처를 들여다보고는 혀를 쯧쯧 찼다.

“제발 지혈이라도 어떻게….”

“알았으니 좀 진정하시오. 이자와 그리 사이가 돈독하지는 않다만 내 친우를 생각해 그 정도는 도울 수 있지.”

그가 언급한 친우의 이름이 도경이라면 쉽게 누군지 추측할 수 있었다. 당가의 삼공자. 어린 제하와 치고받고 싸워 그를 어둠 속에서 펑펑 울게 만들었던.

그는 급히 손을 움직여 천을 풀고 상처를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초조하게 그를 지켜보던 청연은 물었다.

“지원이 도착한 겁니까?”

“그렇소. 크고 작은 문파에서 무인들을 보내왔소.”

“…오대세가에서도요?”

의아해진 청연은 고개를 갸웃했다. 도경의 말에 따르면 정파가 분열되어 가고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자신의 기억을 되짚어 보아도 무림세가들은 곤륜이 무너지든 말든 외면했던 것 같은데.

그러자 그는 한숨을 푹 내쉬며 답했다.

“그럴 리가. 내가 지금 여기 있는 걸 알면 집안 어르신들께서 경을 치실 것이오.”

“그렇다면 어째서….”

“나는 내 친우에게 납치당한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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