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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객잔 정상 영업합니다 (125)화 (126/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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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자니? 갑자기 왜?”

청연이 묻자 제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청연의 팔을 잡고 주방에서 나와 구석진 곳으로 끌고 갔다.

“객주님.”

걸음을 멈춘 제하는 청연을 내려다보며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그자한테 아무 얘기 못 들으셨어요?”

“누구? 무슨 얘기?”

“못 들으셨군요. 역시 객주님께도 중요한 사실은 숨겼나 봅니다.”

제하의 표정을 살피던 청연은 그가 무호 이야기를 하는 중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지만 애써 꾹 참고 말했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데. 자세히 얘기해 줘.”

그러자 제하는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마교가 곤륜으로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

“머지않아 곤륜산에 도착할 것 같다 합니다. 무림맹에서 회의를 거친 후 지원을 보내기로 했다는데, 그때까지 곤륜이 버틸 수 있을지 아무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하의 말을 들은 청연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들이 비현실적으로 들렸다.

“곤륜이 무너지고 청해가 함락되면 그다음은 사천입니다. 그놈들은 정파 무인들뿐만이 아니라 양민들까지 무분별하게 학살할 놈들입니다. 그러니 어서 저와 떠나요. 일단 스승님께서 계신 산서성으로 모실 테니 그곳에서 상황을 지켜보시다가….”

“잠깐.”

청연은 제하의 말을 끊고 답했다.

“잠깐만, 제하야. 기다려 봐.”

그러고서는 몸을 돌려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무호가 머무는 자신의 방으로 향하며, 청연은 생각했다.

곤륜으로 향하고 있다는 게 마교일 리 없었다. 교주가 지금 여기에 있는데 그의 허락도 없이 움직인다는 건 불가능했다. 무호가 서신으로 명령을 내렸다면 모를까.

게다가 무호가 그런 명령을 내렸을 거라고는 더욱 믿을 수 없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주술을 억누르기 위해 자기 가슴을 스스로 칼로 찌르던 사람 아닌가. 지난 사흘간 그와 붙어 있는 내내 서신을 쓴다거나 하는 행동은 보이지도 않았다.

딱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기는 했지만.

청연은 자신의 몸 위에 올라탄 무호가 눈동자를 새빨갛게 물들인 채 속삭이던 말을 기억했다. 이전에 발작했을 때는 말이 없거나 단순한 문장만 반복해서 말했는데, 이번에는 마치 정신이 똑바로 있는 것처럼 제대로 된 문장을 말하고 있었다.

‘내가 그놈들 다 죽여줄까? 너 그렇게 만든 곤륜 늙은이들.’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한 말이었을 뿐이지만, 그 말에서 여느 때보다 강렬한 진심이 느껴졌다. 청연은 무호가 당장 곤륜으로 달려가기라도 할까 겁이 나 식은땀을 흘리며 그를 말렸다.

‘그런 말 하지 마…. 괜히 손에 피 묻힐 필요 없어.’

‘왜? 죽어도 싸잖아.’

그 뒤에도 정파 놈들은 다 죽어야 한다는 둥 읊조리는 낮은 목소리에 등줄기가 오싹했다.

그래도 어디까지나 헛소리였고, 깨어나서는 기억하지 못할 테니 괜찮을 거라 여겼다. 그 상태가 사흘이나 지속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지금 곤륜으로 향하고 있다는 건 분명 혈교일 것이다. 그들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정파 사람들이 또 마교를 의심하는 거겠지.

당장 무호에게 가서 사실을 확인받고 싶었다. 그는 이번에도 모든 걸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청연은 자신의 방 문을 지체 없이 벌컥 열었다. 동시에 그 자리에 얼어붙어 말을 잇지 못했다.

무호가 없었다. 그의 옷가지를 포함한 물건들도 모두 사라졌다. 곧장 창가로 다가가 후원을 내다보았지만 이번에는 후원도 텅 비어 있었다.

기다리지 않고 청연의 뒤를 따라온 제하가 물었다.

“그자가 여태까지 여기 있었던 겁니까?”

“…어디 갔지?”

“객주님.”

“여기 있었는데 어디로….”

청연은 멍하니 창가에 서서 후원을 보며 중얼거렸다. 주방에서 물을 마시고 오는 그 짧은 틈새에 그가 사라져 버렸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설마 그새 떠난 건가. 일을 알게 되어 신강으로 돌아가 버린 걸까. 그러기엔 너무 위험한데.

무호의 사술이 발작한 뒤 얼마나 지속되었는지를 떠올렸다. 처음에는 몇 시진이었고, 지난번에는 이틀이었으며 이번에는 사흘이었다. 지속 시간이 점점 길어지는 데다가 빈도 또한 잦아지고 있는데 그 상태로 신강에 돌아간다면….

“객주님.”

청연이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제하가 등 뒤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청연을 달랬다.

“마음에 걸리는 게 있으시더라도 우선은 대피하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곤륜이 버텨 준다면야 좋겠지만 그러지 못할 가능성이 크니 객주님께서라도 안전한 곳에 계셔야 제 마음이 놓일 것 같습니다.”

그는 청연의 몸을 자신을 향하도록 돌려놓고 눈을 마주했다.

“객잔에 들어올 때 분위기를 보아하니 아직 이곳까지는 소문이 퍼지지 않은 듯합니다. 소문이 퍼지면 사천을 떠나려 하는 사람들로 길이 복잡해져 발이 묶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객주님께서는 어서 필요한 짐을 챙기세요.”

“제하야….”

“빨리요.”

제하의 간절한 부탁에도 청연은 몸이 굳은 것처럼 꼼짝하지 못했다. 중원을 떠나자던 민아의 제안을 거절했듯이 이번에도 제하의 부탁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정든 객잔을 팽개치고 가고 싶지 않았을뿐더러, 아무것도 모르고 사천에 남아 있을 객잔 직원들을 나 몰라라 하고 도망치는 건 말도 안 됐다.

“나 안 가…. 아니, 못 가.”

청연은 제하에게 말했다.

“나는 못 떠나. 객잔 문 닫으면 갈 곳 잃을 직원이 몇 명인데. 저 인원을 다 데리고 떠날 것도 아니고.”

혼자서만 무사하자고 도망치는 건 정말 못하겠다. 직원들도 마음에 걸렸고, 지금 어딜 가서 무얼 하고 있을지 모를 무호도 마음에 걸렸다. 아슬아슬한 무호의 상태를 고려하면 그가 당장 돌변해 전쟁에 가담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리고 전투에 직접적으로 휘말릴 여운의 목숨 또한 위험했다. 곤륜이 무너져도 당장은 살아남을 거라지만, 그들이 중원 깊숙이 침투해 본격적인 전쟁이 벌어진다면 앞장서 나설 그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모두를 살리고자 한다면 전쟁이 일어나는 걸 막아야 했고, 전쟁을 막을 마지막 기회는 청해에 있었다. 곤륜이 무너지지 않고 버텨야 했다.

“대신 청해에 가야겠어.”

청연의 말에 제하는 사색이 되어 외쳤다.

“안 됩니다! 청해는 곧 쑥대밭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더 가야 한다는 거야.”

“차라리 저를 베고 가세요.”

제하는 간절하게 말하며 자신의 검을 내밀었다.

“차라리 저를 죽이고 가세요. 정파의 지원이 확실시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곤륜산에 간다는 건 사지로 뛰어드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제가 객주님을 어찌 보내드리겠습니까.”

“제하야….”

“이런 상황에서 경애하는 이를 순순히 보내 줄 이는 세상에 없을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게 숨이 붙어 있는 한 객주님께선 청해에 가지 못하십니다.”

청연은 말문이 막혔다. 제하가 자신에게 이토록 강경하게 구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는 게 그리도 어려우시다면 저와 함께 사천에 계세요. 상황을 지켜보다가 정말 위험해지겠다 싶으면 객주님을 어깨에 둘러업고서라도 떠날 테니 그렇게 아시고요.”

제하는 여차하면 억지로라도 청연을 끌고 갈 작정인 듯했다. 좋아한다고 엉엉 울면서도 항상 의사를 존중해 주던 아이가 이렇게 나오는 걸 보면 이 시점에 청해에 간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일이 더 커지는 걸 막으려면 무호라도 찾아야 하는데, 지금 신강으로 가는 길목이 열려 있을 리 만무했다. 이래서는 서신을 보낼 수도 없을 터였다.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무호를 추적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의 속도를 따라잡을 경지였다면 이렇게 고민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끈질긴 제하의 설득에도 청연은 쉽게 마음을 굳히지 못했다. 설득이라기보다는 청연을 막지 못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는 협박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두 사람은 한참을 옥신각신했다. 기척을 숨긴 누군가가 살금살금 다가와 창문을 타고 넘어오기 전까진.

외부인의 등장에 제하는 곧장 검을 빼 들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얼굴을 본 순간 표정을 굳힌 채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당신은….”

무호의 그림자가 되어 따라다니던 지홍이었다. 무호가 사천에 있는 동안 그도 근처에서 머물 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객잔에 혼자서 찾아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청연은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주군께…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

청연이 묻자 지홍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답했다.

“주군께서 출군을 명하셨습니다. 평신도를 제외한 전 인원이 지금 곤륜산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

“그리고 주군께서도 몸소 그곳으로 걸음하고 계십니다.”

출군이라니. 청연의 얼굴에 아연한 기색이 스쳤다.

“아시다시피 그분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것이 제게 주어진 사명입니다만….”

지홍은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

“이제는 그분께서 하시는 말씀 중 어느 것이 진심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는 지금 마교의 출군이 정말 무호가 원해서 내린 명령인지, 아니면 그가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내린 명령인지 구분할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진심이든 아니든, 저는 여느 때와 같이 그분의 명을 충실히 따를 것입니다. 천마신교의 모든 교인이 그리할 것입니다. 다만….”

“…….”

“단순한 부하가 아닌, 그분의 곁을 오래전부터 지켜온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그분께서 평생을 후회할 선택을 하실까 봐 두렵습니다.”

솔직히 그분께서 갑자기 전쟁을 명하실 이유가 없다는 걸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는 지홍의 말에 청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찾아와 이런 말씀드리는 걸 주군께서 아시면 제 목을 치시겠지만, 이 하찮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부탁드리겠습니다. 부디 그분을 설득해 말려 주십시오.”

지홍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그분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분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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