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우리 객잔 정상 영업합니다 (124)화 (125/145)

124

사흘이라니. 하루 이틀도 아니고 사흘이라니.

무호는 적잖이 충격받은 얼굴로 청연을 응시했다.

어쩐지 걷는 것조차 삐거덕거리더라. 사흘 내내 몸에 멍이 들 정도로 잡혀 있었다는 건가.

그 오랜 시간 동안 정말 아무 일도 없었을 리 만무했다. 무호의 마음속에는 의심이 커다랗게 자라났다.

“이리 와 봐.”

“…응?”

무호가 손짓하자 청연은 옷을 입다 말고 비틀비틀 걸어왔다. 무호는 그의 팔을 끌어당겨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혀놓았다.

“뭐야, 또 왜….”

무호는 청연의 몸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사흘 동안 고생해서인지 얼굴이 약간 수척해져 있었고, 입술이 지난번보다 조금 더 찢어진 것 같았다. 그 외엔 딱히 이상한 점이 보이지 않았다.

“나 괜찮아. 괜찮다고….”

무릎 위에서 벗어나기 위해 바르작거리는 청연의 얼굴이 붉었다. 무호는 그를 놓아주지 않은 채 생각했다.

‘역시 어디 아픈 건가. 열은 없는데.’

맥을 짚어보기 위해 소매를 걷어 올리자 피부를 빨갛고 파랗게 물들인 멍 자국들이 드러났다. 무호는 짐짓 인상을 쓰며 그의 팔목 위에 두 손가락을 올렸다.

이번에도 큰 이상은 없었다. 기력이 쇠하기는 했다만 건강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니었다. 단, 한 가지 미묘한 점이 있었다.

“왜 이렇게… 양기가 부족하지?”

애초에 음기가 강한 몸도 아니고, 절맥증이 있는 것도 아닌데. 지금 청연의 몸은 이상하리만치 양기가 부족했다. 이 정도야 금방 회복할 수 있는 정도이긴 하지만 그래도 미심쩍은 건 어쩔 수 없었다.

무호의 중얼거림을 들은 청연은 얼굴을 더욱 붉게 물들이며 더듬더듬 말했다.

“너, 너 때문인가 보지. 저, 접문하면서 네가 다 뺏어간 거 아냐?”

“그럴 리가.”

그렇다고 하기엔 무호 자신의 양기도 평소보다 조금 부족한 상태였다. 그래 봤자 전체의 일 할도 안 되는 양이라서 그다지 티가 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아, 됐어. 이런 얘기는 그만하고.”

청연은 얼굴에 손부채질을 하며 말했다.

“너 앞으로도 가슴에 칼 꽂을 생각은 절대 하지 마. 그런 꼴은 내가 못 보겠어. 심장 떨려 죽을 것 같아.”

“네가 왜….”

“원래 인간이라면 그런 거야. 주변에 고통받는 사람이 있으면 걱정되고, 도와주고 싶고, 대신 아프고 싶고. 그게 일반적이고 당연한 거야.”

무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원래 인간이라면 그런 거라고? 위험한 상황에서도 몸이 부서져라 달려들어 도와주는 게 일반적인 거라고? 그렇다면 내 주변에는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청연 말고는 아무도 없다는 건가.

뭐, 생각해 보니 틀린 말은 아니다. 청연을 제외하면 제 주변은 죄다 개 아니면 벌레뿐이었다.

“아무튼… 그동안 혼자 버티느라 고생 많았어.”

청연이 목을 가다듬고는 말했다.

“이제야 알아서 미안해.”

“…….”

무호는 말없이 그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그가 건넨 사과에 온몸이 따뜻하게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대체 왜 미안해하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을 올곧게 바라보는 눈동자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내가 더….”

무호는 잘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열어 말했다.

“내가 더 미안해.”

사흘 동안이나 널 괴롭히고 아프게 해서.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건 여전히 어색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청연이 자신에게 바라는 게 그거라면 노력할 수 있었다.

무호는 손을 뻗어 청연의 찢어진 입가를 어루만졌다. 말랑하고 부드럽던 입술이 거칠어진 게 전부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니 속이 쓰렸다.

신강에 돌아가면 귀한 영약이란 영약은 죄다 끌어모아 청연에게 가져다줘야지. 아니다, 놈들에게 지금 당장 영약을 가져오라고 명을 내릴까.

“청연.”

“응?”

“…….”

“왜 불러 놓고 말이 없어.”

그냥, 이유 없이 불러 보았다. 그를 부르면 대답이 돌아오고, 그의 눈을 바라보면 자신을 마주 봐준다는 게 좋았다. 행복이라는 감정이 무엇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으나 이런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목소리만 들어도 몸이 따뜻해지고, 눈만 마주 보아도 마음이 녹아내리는.

“뭘 그렇게 봐….”

청연이 입술을 달싹였다. 어느새 그의 얼굴이 다시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진짜 어디 아픈가.’

무호는 발그레한 뺨을 만져 보기 위해 손을 움직였다. 그러자 청연이 놀라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는 후다닥 뒤로 물러나 말했다.

“나, 나 물 좀 마시고 올게. 사흘 동안 물도 못 마셨더니… 목이 말라서….”

“내가 떠올게.”

저런 몸으로 삐걱거리며 돌아다니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다. 무호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청연은 손을 휘휘 저었다.

“아니야! 내가 갈게. 객잔에 문제는 없는지 확인도 해봐야 하니까….”

그러더니 곧장 몸을 돌려 방에서 나가려고 했다.

“…그러고 가려고?”

무호가 묻자 청연은 멈칫하고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걸치다 만 옷이 나풀거리는 걸 발견한 그는 흐에엑, 소리를 내더니 허둥지둥 손을 움직여 옷을 마저 입었다. 무호는 그 모습이 왠지 우스워 씰룩거리며 올라가려고 하는 입꼬리를 애써 끌어내렸다.

청연이 방을 떠난 뒤, 무호는 가만히 턱을 괴고 앉아 있었다. 그가 없는 방은 평소와 다르게 지루하고 따분했다. 천산의 대전에 앉아 있을 때와 느낌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멍하니 시간을 죽이고 있을 때였다. 마침 창밖에서 익숙한 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무호는 침상에서 느릿하게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굳게 닫힌 창문을 열자 전서구가 날아와 창틀에 내려앉았다. 여느 때와 같이 새의 발목에는 쪽지 한 장이 묶여 있었다.

둘둘 말린 쪽지를 풀어 그 위에 쓰인 글자를 읽은 무호는 헛웃음을 지었다.

“허….”

혈교 놈들이 곤륜산으로 향하고 있다고?

기어코 직접 전쟁을 일으키고야 말겠다는 건가. 무호는 쪽지를 대충 태워 버리고는 목을 긁적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저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비겁하고 약해빠진 정파 놈들 다 죽으라지, 뭐.

무호는 침상으로 돌아가 몸을 뉘었다. 청연의 향기가 가득 스며든 침상이 천산의 제 것보다 포근하게 느껴졌다.

전쟁이 나든 말든, 이 사람만 안전하면 된다. 이 사람만 위험을 피해 간다면 나머지는 싹 다 죽는다고 해도 알 바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아니, 감으려고 했다.

무호는 다시 눈을 번쩍 뜨고 침상과 벽 사이의 벌어진 틈을 바라보았다. 정신을 잃은 사이 청연과 얼마나 엎치락뒤치락한 건지, 침상이 바깥쪽으로 밀려나 벽에서 조금 떨어진 상태였다. 그 틈 아래 있는 무언가가 반짝인 것만 같았다.

‘…뭔가 숨겨 뒀어?’

청연이 침상 밑에 숨겨 둔 물건이라니, 괜한 호기심이 일었다. 무호는 눈을 빛내며 자리에서 일어나 침상을 조금 더 바깥으로 끌어냈다. 그러자 침상 아래에 숨겨져 있던 것이 모습을 드러내며 반짝거렸다.

‘함?’

제법 오래된 것 같은 철제 함이었다. 여기저기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최근까지 관리를 한 건지 녹슬지 않고 멀쩡했다.

손을 뻗어 들어 올리니 꽤 묵직했다. 그러나 이것은 함 자체의 무게일 뿐, 이리저리 흔들어 보니 그 안에 들어 있는 물건은 한없이 가벼운 듯했다.

무호는 함에 달린 주먹만 한 크기의 자물쇠를 바라보았다. 자물쇠 구멍에 열쇠가 꽂혀 있었다. 이 또한 청연이 최근에 열어 보았다가 열쇠를 그대로 남겨 둔 것처럼 보였다.

‘열어 봐도 되겠지.’

귀찮으니 자물쇠를 부숴버릴까 잠시 고민했지만, 그래도 청연의 물건이니 부수지 않고 존중하기로 했다. 열쇠를 잡고 천천히 돌리자 자물쇠에서 달칵 소리가 났다. 무호는 자물쇠를 풀고 함의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는 종이 몇 장이 들어 있었다. 만들어진 지 십 년은 족히 넘었을 것 같이 낡은 종이였다. 종이를 집어 든 무호는 그 위에 빼곡하게 적힌 글씨가 청연의 것임을 한눈에 알아차렸다.

‘뭘 이렇게 써둔 거야?’

청연이 아주 오래전, 누군가에게 쓴 서신임이 분명했다. 커져 가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무호는 글씨를 조금씩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자신의 것과 같은 정갈한 서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럴수록 그의 표정은 눈에 띄게 굳어 갔다. 마침내 글씨를 모두 읽었을 땐 차게 식은 눈으로 서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무호는 손에 든 종이를 꽉 움켜쥐었다. 낡디낡은 종이가 바스락 소리를 내며 구겨졌다.

***

청연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주방으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갔다. 그러기 무섭게 해령이 달려와 말을 걸었다.

“객주님, 괜찮으세요?”

“어… 괜찮다.”

“사흘 동안 방에서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거예요?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시고, 물 한 모금 안 드시고, 방 안에서는 뭔가 부서지는 소리만 들려오고. 다들 무서워했다고요.”

“아무 일도 없었어….”

아무 일도 없었을 리가. 무호에게도 똑같이 둘러대긴 했지만, 사실 거짓말이었다.

청연은 입 속을 물로 여러 번 헹궜다. 찢어진 입가가 아렸다. 입이 이렇게 되기까지 이런저런 사정이 있었지만 그다지 떠올리고 싶지는 않았다.

문제는… 그 모든 게 싫지만은 않았다는 거였다. 조금 전에도 입술을 만지는 무호의 손짓 하나, 눈빛 하나에 얼굴이 빨개진 걸 생각하면 내가 정말 미쳤구나 싶었다.

‘정신이 나간 건 나였나….’

무호를 도와주겠다고 생색이란 생색은 다 내놓고 이런 일에 얼굴이나 붉히고 있으면 안 되는 거였다. 청연은 복잡한 머릿속을 비우려고 애쓰며 마른 목을 축였다.

그때였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객잔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 사람은 곧장 주방으로 직진하더니 청연의 팔을 휙 낚아챘다.

“객주님!”

“…제하?”

갑작스러운 제하의 방문에 청연의 눈이 커졌다. 제하는 그런 건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외쳤다.

“지금 저랑 떠나요! 안전한 곳으로 모실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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